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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속에서 피어난 꽃 꽃처럼 아름다운 뿔

화각장 이재만

불 속에서 피어난 꽃 꽃처럼 아름다운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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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려한 오방색 문양과 그림으로 기물을 장식하는 화각은 전통 공예 분야 중 가장 다채로운 색감을 표현한다. 조선시대 꽃을 피웠지만 일제강점기 셀룰로이드와 유리로 만든 값싼 유사품에 밀려 급속히 사라져간 화각공예를 유일하게 지켜온 고(故) 음일천 선생의 수제자인 이재만(李在萬·65)은 긴 세월 수도하듯 스승을 수발하며 귀한 화각기법을 전수받았고 이제는 전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연구와 노력을 더해 내구성 뛰어난 화각 작품을 내놓는다.
불 속에서 피어난 꽃 꽃처럼 아름다운 뿔

꽃 모양으로 만든 화각함. 이런 화형함은 나전과 대모를 섞어 만든 고려시대 함과 비슷하다.

‘화중련(火中蓮)’. 불 속의 연꽃. 꽃이 어찌 불 가운데서 피어날 수 있을까. 불교에서 화중련은 ‘보리(깨달음)의 꽃은 고통과 번뇌의 불길 가운데서 피어난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 화각장 이재만의 작품도, 인생도 화중련을 닮았다.

수소의 거친 뿔이 ‘꽃처럼 아름다운 뿔(華角)’로 화하는 순간을 가리켜 이재만은 “꽃봉오리가 탁 터진다”고 말했다. 그가 이 말을 한 것은 그 순간의 성취감과 기쁨을 말하기 위해서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꽃이 피어나기까지 수고로움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화각은 알록달록 화려하고, 조각조각 이어 맞춘 것이니 조각마다 꽃송이가 핀 것 같다. 꽃이 피어나는 순간은 찰나일지 모르나 씨앗이 땅에 떨어져 꽃이 피기까지 여정을 생각하면 한 송이 꽃이 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섭리이면서 동시에 불꽃 속에서 피어나는 위대한 기적 같다.

성한 손가락은 두 개뿐

불 속에서 피어난 꽃 꽃처럼 아름다운 뿔

채색까지 마친 각지는 칼과 사포 등으로 곱게 다듬으면 빛이 난다. 예전에는 녹각가루를 사용해 광을 냈는데, 요즘엔 광택제를 쓰기도 한다.

이재만은 서울 토박이로 1949년 태어났다. 하지만 호적에는 1953년생으로 돼 있다. 두세 살까지 홍역 등으로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넘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출생신고가 늦어졌다고 한다. 어린 시절 병치레는 이겨내면 더 야무진 몸을 만들어주기도 한다지만, 이재만은 손가락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손재주로 사는 장인의 운명치고는 얄궂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어 다니던 시절, 화로에 손을 넣는 바람에 왼손은 다 눌어붙어버리고 오른손은 엄지와 약지만 남았어요.”



워낙 어린 아기 손이어서 순식간에 녹아내린 탓에 치료조차 힘들었을 터. 그는 온전하게 남은 두 손가락을 움직여 보이며 덤덤하게 말한다. 그러나 생은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그에게 손재주를 부여했다. 더불어 보기 드문 낙천성과 활달함까지 선사해주었다.

“내 상황을 생각하고 한탄하면 뭘 합니까. 과거에 집착하면 현재를 살지 못해요. 구김살 없이 살아야지요.”

그런 성품 덕이었을까, 아니면 재주 때문이었을까. 그는 성한 손가락이 두 개뿐인 손으로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어릴 적엔 만화를 곧잘 그렸다. 할아버지가 단청장이었고, 그가 세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대목, 그리고 어머니는 자수를 곧잘 놓았다니 재주는 핏줄로 이어진 셈이다. 흔히 성격이 운명을 결정한다고 하는데, 장인의 세계에서는 소질이 운명을 만드는 것 같다. 그의 솜씨는 자연스레 화각의 세계로 그를 이끌었다.

“학교 친구 가운데 신문배달을 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화각장인 음일천(陰一天, 본명 음진갑) 선생님 공방에 배달하러 갔다가 그림 그리는 것을 보고 음 선생님에게 ‘그림 잘 그리는 친구가 있는데, 이 그림을 보면 좋아할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는 저를 공방으로 데리고 간 겁니다.”

열여섯 살 소년의 눈에 화각 그림은 ‘이상한 그림’이었다. 그런데 화각공방에 다녀왔다는 말을 들은 그의 어머니는 무슨 예감이 들었는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그를 앞장세워 공방을 찾았다.

“어머니는 제가 만화 그리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으셨는데, 화각은 한번 해보라고 권하시더군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전통 공예를 하셨으니 이쪽이 인연이라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 시절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인텔리 여성이었다. 미군 부대에서 장사도 하고 몇 만 평의 땅을 일구어 밭작물을 내다 파는 사업가이기도 했다. 네 아들 중 막내인 이재만의 미래를 특별히 고민했을 어머니가 화각 공방을 둘러본 후 내린 결론은 “손이 시원찮아 어렵긴 하겠지만 할 수는 있을 테니 도전해보라”는 것이었다.

“저는 처음에는 매력을 못 느꼈습니다. 자유롭게 그림 그리고 싶었는데, 공방에서 붙박여 하는 일이 답답하게만 보였어요.”

어머니는 그의 등을 떼밀다시피 공방으로 보냈고, 스승과 부모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줄 알던 착한 막내는 어쩔 수 없이 화각의 세계로 발을 내디디게 되었다. 그래도 그림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해 미대에 진학하려고 했으나 어머니는 미대보다는 공예가 낫다며 그를 주저앉혔다.

오늘날 중요무형문화재로 우뚝 선 그를 보면 과연 어머니의 당시 결정이 현명했지만, 그의 마음 한 자락에는 ‘그림이나 설치미술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아직 남아 있는 듯하다. 화가나 설치미술가의 작업은 수많은 공정과 까다로운 기술이 필요한 화각공예에 비해 자유로우니, 활달한 그의 성격에도 잘 어울렸을 법하다. 그러나 수많은 화가와 설치미술가에 비해서는 물론이고 다른 전통 공예 분야와 견주어보아도 화각장은 극소수에 불과하니 그의 존재는 더할 나위 없이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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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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