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호

경호업계 홍일점, 고은옥 ‘퍼스트레이디’ 대표

“힘으로 보디가드 하던 시대는 끝, 고객은 섬세한 팔방미인 원해요”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입력2005-10-25 1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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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도, 경호무술, 용무도 합계 12단
    • 이혼소송, 스토킹, 학교폭력으로 경호 대중화
    • 예방할 수 없는 ‘돌발사고’…의뢰인과 경호원의 사랑
    • 자존심 구겨진 날, 처음이자 마지막 ‘현장 일탈’
    • “은옥씨는 남자를 지치게 해요”
    경호업계 홍일점, 고은옥 ‘퍼스트레이디’ 대표
    약속시각보다 조금 늦게 나타난 그는 듣던 대로 미인이다. 170cm, 늘씬한 키에 잿빛 정장이 잘 어울린다. 희고 고운 피부에 핑크빛 아이섀도를 바른 커다란 눈. 꽃처럼 예쁘다. 마스카라로 살짝 들어올린 속눈썹은 길고 풍성하다.

    “요즘 화장이 좀 진해졌어요. 경영자가 되고 보니 사회적으로 기대하는 이미지라는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파마도 처음 해봤는데, 관리를 잘 못해서 다 풀어졌어요….”

    미소를 머금고 얘기할 때마다 방금 바른 듯한 립글로스가 반짝반짝한다. 고은옥(高恩玉·27). 이름마저 곱고, 상냥하기만한 그의 어디에서 그런 강단이 나올까.

    그는 경력 10년차의 베테랑 경호원이다. 태권도 4단, 경호무술 4단, 용무도 4단 해서 합계 12단의 무술 실력을 자랑한다. 그동안 미하일 고르바초프, 톰 크루즈 등 해외 유명인사를 비롯해 1000명이 넘는 사람의 신변을 보호했고, 2003년 말부터는 국내 최초의 여성전문 경호업체인 ‘퍼스트레이디’ 대표를 맡고 있다.

    그가 경호업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건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6년 겨울. 수능시험을 마치자마자였다. 언니가 얌전히 책을 읽을 때 동네 개구쟁이들과 어울려 구슬이며 딱지를 치고, 여동생이 피아노를 배울 때 태권도장에서 뛰고 구르던 그에겐 특별할 게 없는 선택이었다.



    “집에 딸만 셋이다 보니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아들 타령하는 걸 많이 듣고 자랐어요. ‘이 집은 누가 제사를 지내냐’ ‘양자를 들여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소리가 듣기 싫었죠.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에 여자들만 남게 되자 이제 내가 아들 노릇을 해야겠구나 생각했어요. 여학교에 다니면서도 머리를 남학생처럼 짧게 깎고, 운동을 열심히 해서 태권도와 육상 선수로 활약했죠. 그래서 여학생들한테 초콜릿이며 사탕 선물도 많이 받았어요. 장래희망도 군인이나 경찰이었고요. 그러다 우연히 경호원이란 직업을 알게 돼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는데 천직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자라고 못할 일이 뭐냐”

    어려서부터 닦은 태권도 실력으로 금녀(禁女)의 벽을 넘은 그는 남자 동료들과 똑같이 경호에 필요한 교육을 받고 현장에 투입되기만 기다렸다. 그런데 다른 경호원들이 몇 번씩 일을 나가도록 유일한 여성인 그에겐 임무가 주어지지 않았다. 고객들은 ‘경호원’ 하면 으레 건장한 남자를 떠올리기에 회사에서 그를 현장에 파견하기를 주저했던 것. 조르고 졸라 며칠 만에 겨우 나간 현장에선 의뢰인이 남자 경호원으로 교체해달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충분한 자격요건을 갖추고 똑같이 교육을 받아도 여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면 화가 났다.

    그냥 물러설 순 없었다. 어머니에게서 “여자라고 못할 일이 뭐가 있냐”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고 자란 그는 오기로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첫 경험’을 했다. 고객은 유명 가수.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팬들을 저지하느라 온몸이 멍투성이가 됐지만 회사와 의뢰인의 우려를 모두 씻어내는 계기가 됐다.

    현장 출동이 잦아질수록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명지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뒤에도 경호 아르바이트는 계속됐다. 2학년 때는 아예 경호업체 정식 직원으로 취업했다. 그 때문에 졸업이 남보다 1년 반이나 늦어졌지만 캠퍼스의 낭만을 느낄 겨를도 없을 만큼 그는 “일에 완전히 미쳐 있었다”고 한다.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매번 다른 현장, 새로운 사람들을 접해야 하는 경호원은 제 적성에 딱 맞는 일이었어요. 제가 원래 가만히 앉아서 펜 굴리는 체질이 아니거든요. 경호원을 고용하는 사람들이 대개 사회 고위층이다 보니 배울 점도 많았어요. 가령 기업 최고 경영자를 수행할 때면 그들의 경영 마인드나 인생철학을 엿볼 수 있었죠.”

    해가 갈수록 여성 경호원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는 것도 그를 신나게 만들었다. 여성 경호원에 대한 수요 증가는 경호 영역의 확대와 흐름을 같이한다. 과거엔 경호의 범위가 대통령과 정부 고위 인사, 연예인 등 특정계층에 대한 신변보호에 국한됐으나, 몇 년 전부터는 수행비서, 행사 안전요원으로도 투입되고 있다. 의뢰인들이 경호 역량은 남성에 비해 뒤지지 않으면서 훨씬 섬세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여성 경호원을 선호하면서 그의 몸값도 치솟았다. 그는 여성 경호원에 대한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깨닫고 2003년 11월, 여성 전문 경호업체 ‘퍼스트레이디’를 설립했다.

    현재 ‘퍼스트레이디’에 등록된 경호원은 12명. 12명이 개별적으로 팀을 꾸려 별도의 팀원을 확보하고 있다. 이 밖에 관공서, 기업체 등에 파견돼 장기간 상주 근무하는 계약직 경호원도 상당수. 대규모 행사 경호를 맡게 되면 100명 이상을 동원해야 하는데, 그럴 때는 다른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하거나 프리랜서를 동원한다. 회사 설립 후엔 경영에만 전념할 계획이었지만 여성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급할 땐 그도 직접 현장에 뛰어든다.

    대규모 행사 경호를 수주하면 동원인력이 적게는 수십명에서 수백명에 이르고, 건당 매출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이 오간다. 그런 까닭에 그가 독립법인을 설립하겠다고 하자 여자 혼자서, 그것도 스물다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너무 성급하지 않냐며 우려하는 이가 많았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TV 홈쇼핑에 개인 경호 상품을 내놓으면서 경호를 특정 계층의 전유물에서 일반 상품으로 대중화했고 6억원의 연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 매출목표는 15억원. 그는 무난히 목표를 채울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요원들을 통솔하는 리더십, 인적 네트워크를 맺고 경호를 수주하는 능력, 한번 인연을 맺은 고객을 단골로 만드는 꼼꼼한 서비스가 성공 포인트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못 미더워하던 고객들도 한번 맡겨보고 나서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책임감에 크게 만족하죠.”

    운전, 비서, 통역까지

    고객은 크게 건설회사, 여성 경제인, 연예인, 일반인으로 분류된다. 이 중 건설회사는 ‘퍼스트레이디’를 비롯한 대부분의 경호업체에서 놓쳐서는 안 될 가장 비중 높는 고객 중 하나다. 재건축 및 재개발 현장과 모델하우스, 주주총회 등에 경호원이 수시로 동원되기 때문. 그도 인정하듯 암암리에 계속되어온 건설회사와 ‘어깨’들 간의 검은 거래를 경호업체들이 양지로 이끌어낸 것이다.

    “경호업이 지금처럼 활성화되기 전까진 모두 ‘깍두기 형님들’이 도맡아 했던 일이죠. 그래서 초창기엔 건달들이 경호업체를 차리곤 했어요. 요즘도 상당수 경호업체가 ‘그분’들을 끼고 있어요. 물론 저희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분들이 거래를 성사시키면 일정액의 커미션을 지급하죠.”

    그러나 그렇게 성사되는 계약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재개발 및 재건축 현장에 남성 경호원만 투입할 경우 건설회사와 대립하는 사람들을 저지하다가 자칫 성추행 혐의를 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에 여성 경호원을 필요로 한다. 모델하우스나 주주총회에서도 우락부락한 남성 경호원들보다는 여성 경호원들을 배치해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조성하는 추세다.

    여성 경제인은 새롭게 부상하는 고객층이다. 신변 보호는 물론 운전과 비서 업무까지 편하게 맡길 수 있어 여성 경호원을 고용하는 여성 경제인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것. 고은옥 대표는 “여성 경호원을 채용해 골프장은 물론 해외 출장에 동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경호원의 업무 영역이 운전, 비서, 통역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엔 경호원의 자질로 체격조건과 운동실력을 최고로 꼽았는데, 요즘은 그건 기본이고 그 이상의 다양한 능력을 갖춰야 해요. 운전, 컴퓨터 실력은 물론 외국어 구사 능력도 필요합니다. 고객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그들이 원하는 경호원의 조건도 점점 구체화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만능, 멀티 플레이어를 원하죠.”

    고졸 이상의 학력에 신장 160∼165cm, 태권도 유도 등 무술 유단자이면 경호원이 되기 위한 기복적인 조건은 갖춘 셈이다. 그러나 고객의 기대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 인재 육성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고 대표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11월5일부터 한 달간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주관으로 여성 경호원 양성 과정을 마련할 예정이다. 그가 직접 커리큘럼을 만들었는데, 운동은 기본이고 에티켓, 외국어, 컴퓨터, 응급처치 등을 교육하고 극기훈련을 통해 정신력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보고 듣되 말하지 말라

    경호원이 지켜야 할 불문율 중 하나가 ‘보고 듣되 말하지 말라’이다. 이 수칙은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사를 경호할 때 특히 요구된다.

    “연예인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데 매력을 느껴 경호원이 된 사람도 있어요. 경험과 자질이 부족한 경호원들에겐 연예인의 은밀한 사생활을 곁에서 목격하고도 입 다물고 있어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데이비드 베컴도 경호원 때문에 사생활이 폭로돼 곤욕을 치렀잖아요. 후세인은 경호원이 은신처를 알려줘서 미군에 붙잡혔고요. 경호원이 기본적인 인성을 갖추지 않으면 의뢰인뿐만 아니라 회사에도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경호원에겐 무술만큼이나 정신교육이 중요하죠.”

    최근엔 ‘특수한’ 목적으로 경호를 의뢰하는 일반인이 늘고 있다. 이혼소송을 앞둔 여성이나 왕따, 스토킹으로 정신적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여성 경호원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이혼소송을 준비 중인 여성이 남편의 협박과 폭력이 두려워 이혼 수속을 밟을 때부터 경호를 의뢰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여성 경호원이 의뢰인의 집으로 찾아가 법원에 동행하고, 볼일을 마치면 다시 집으로 데려다줍니다. 어떤 고객은 바로 집에 가면 남편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면서 그냥 좀 함께 돌아다니다가 아무 데다 내려달라고 하기도 해요. 그럴 땐 같은 여자로서 정말 마음이 아프죠.”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를 경호할 때는 처음엔 마지못해 경호원과 동행하던 아이들이 점차 ‘언니’ ‘누나’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부모에게도 하지 않던 학교생활 이야기며 고민을 털어놓고, 마침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게 될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이 밖에 혼자 사는 여성을 노리는 범죄가 늘면서 독신자 아파트에 배치되거나 채무·원한 관계로 얽힌 결혼식이나 장례식장에 투입되는 일도 종종 있다.

    사랑에 빠진 경호원

    경호업계 홍일점, 고은옥 ‘퍼스트레이디’ 대표
    경호를 받을 일이 없는 일반인은 대개 케빈 코스트너·휘트니 휴스턴 주연의 ‘보디가드’, 클린트 이스트 우드·르네 루소 주연의 ‘사선에서’ 같은 영화를 통해 경호원에 대한 환상을 품는다. 의뢰인의 목숨을 노리는 가해자들과 팽팽한 두뇌싸움을 하고, 의뢰인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날려 방패막이가 되는. 우리나라는 실탄이 장전된 총기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 영화에서처럼 극적인 상황이 연출되는 일은 드물지만, 최근 압사 사건이 벌어진 경북 상주 공연장처럼 군중이 몰리는 곳이나 이권이 개입돼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는 현장은 언제나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경호원이 오물을 뒤집어쓰거나 몸에 멍이 들고, 생채기가 나는 건 예사다. 스토킹 피해자를 경호하다 스토커가 모는 차에 의뢰인과 함께 치인 경호원도 있다. 고 대표는 몇 해 전 건설회사 임원을 경호하다 사람들에게 떠밀려 자동차 문에 손가락이 끼였다. 고통이 심했지만 일단 의뢰인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현장을 정리한 뒤에야 병원을 찾았다. 이미 오른쪽 검지의 뼈가 으스러지고 신경이 끊어진 상태였다. 손바닥에서 살점을 떼어내 이식했지만 원 상태로 되돌리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도 그의 오른쪽 검지는 첫 번째 마디가 굽은 상태로 고정돼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위험한 현장이라고 해서 무조건 피하고 볼 수는 없다. 고 대표는 직원들 교육 차원에서 노사분규 현장이나 재건축 및 재개발 현장 경험을 최소 한 번씩은 하게 한다.

    그런데 아무리 교육을 하고 호신술을 익히고 가스총, 3단봉, 전자충격기로 무장해도 예방할 수 없는 ‘돌발사고’가 있다. 고 대표는 그로 인해 단골 고객사에 금전적인 보상을 한 적도 있다.

    “모델하우스에 파견된 여성 경호원과 고객사 직원이 서로 좋아하게 된 거예요. 그게 소문이 나고 일에 차질이 빚어지는 바람에 제가 위약금을 물어야 했어요. 현장 밖이나 계약이 끝난 다음에 교제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경호원은 의뢰인에게 사적인 감정을 품으면 안 되는 게 원칙이지만 대부분의 여성 경호원이 20대 초·중반으로 결혼 적령기에 있다 보니 사랑에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영화 ‘보디가드’에서도 경호원과 의뢰인이 사랑의 열매를 맺잖아요. 실제로 의뢰인과 결혼한 여성 경호원도 있어요.”

    청년 사업가와 그를 1년 가까이 경호한 여성 경호원 커플이었다. 그는 “경호 업무만으로도 챙겨야 할 게 많은데 미묘한 감정까지 신경 써야 하니 쉽지 않다”면서도 자신은 “의뢰인의 아들이면 모를까, 상대하는 의뢰인 대부분이 고령이라 교제 상대가 될 수 없다”며 웃는다.

    자존심과 신용으로 버텼는데…

    ‘젊은 사장’답게 웬만한 일은 화통하게 웃어넘기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게 되는 웃지 못할 일도 많다. 전화로 개인 경호를 의뢰해 나가보면 어쭙잖게 돈 자랑을 하면서 “일당의 두 배를 줄 테니 교외에 나가서 놀다 오자”며 치근대는 사람이 가장 흔한 유형. 그런 경우 정중히 인사하고 돌아서 나온다. 대부분 그 정도에서 마무리되지만 가끔은 매운 맛을 보여줘야 할 때도 있다.

    “노사분규가 장기간 계속된 모 기업에 경호원들을 몇 달간 파견한 적이 있어요. 같이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고객사 직원들이 경호원에게 친근하게 구는 것까지는 좋은데, ‘내 직원이나 다름없으니 한번 데리고 놀자’며 노골적으로 불쾌한 행동을 하는 임원이 있었어요. 너무 심하다 싶어 제가 관계자들이 보는 앞에서 따귀를 때렸죠. 그렇지 않으면 경호원들이 힘들어지니까요.”

    창업하기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약속된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현장을 떠나온 적도 있다. 경호원을 돈 주고 부릴 수 있는 하수인쯤으로 여기고 인간적으로 모멸감을 갖게 한 여자 의뢰인이었다.

    “아들 둘을 둔 유부녀 사업가였어요. 단골 고객이었는데, 주말에 남자들과 단란주점에서 밤새 즐기는 동안 경호원을 옆에 세워두곤 했어요. 신변보호보다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목적이 컸죠. 그런데 어느 날, 남자 연예인과 함께 2박3일 일정으로 제주도 여행을 가면서 남자 경호원 한 명, 여자 경호원 한 명을 고용한 거예요. 두 아이와 남자 연예인, 남자 연예인의 어머니를 동반한 여행이었어요.

    제주도에 도착해서 남자 경호원은 두 아이를 데리고 관광을 하고, 전 의뢰인 곁에 있어야 했어요. 그러면서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다 해야 했죠. 의뢰인이 화장실에 들어가면 따라가서 담배를 꺼내주고, 손을 씻으면 휴지를 들고 옆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어요. 그러다 단 둘이 있게 돼 분위기가 어색하기에 ‘대표님, 참 바쁘게 지내시네요’라고 했더니 의뢰인이 ‘이렇게 안 살면 당신들처럼 살아야 하잖아’ 그러는 거예요. 그동안 자존심과 신용으로 버텨왔는데 그런 말까지 들으면서 더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당신 수중에 돈 떨어지면 사람들이 이렇게 붙어 있나 봐라’ 하면서 나와버렸어요. 다행히 회사에서도, 다른 요원들도 저를 이해해줬어요. 다들 불만이 쌓일 대로 쌓였던 차였거든요.”

    여성 경호원을 고용하면서 미모와 체형을 보고 선발하는 고객사도 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한 달에 5000만원 이상 매출이 발생하는 모델하우스에 투입될 경호원을 선발하는데, 고객사에서 직접 면접을 보면서 요원들을 계속 퇴짜놓는 거예요. 모두 경호에 맞는 신체조건을 갖춘 상태였는데도 ‘뚱뚱하다’ ‘키가 작다’ ‘못생겼다’면서….”

    못마땅한 처사였지만 놓치기 아까운 고객이라 꾹 참았다. 경영하면서 힘든 건 이처럼 불만이 있어도 속으로 삭여야 할 때가 많아진 점이다.

    화려한 싱글이 좋아요

    일에 대해 회의를 느낄 때도 있지만 그는 경호원만큼 여성이 대우받는 직업이 드물다는 걸 알기에 여성 경호원에 대해 알리고, 인재를 육성하는 데 더욱 힘을 쏟을 생각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게 싫어서 남자처럼 보이려고 했던 적도 있어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여자 경호원이라서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있어요. 남자 경호원은 몇천명인 데 반해 여성 경호원은 전국에 100명이 채 안 돼요. 그래서 요즘은 하루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남자 경호원이 8만∼10만원 받을 때 여자는 12만∼15만원을 받아요. 우리 사회에서 드물게 여성이라는 게 장점이 되는 직업이죠. 개인 경호나 골프장 같은 시설에서 파견 근무를 하게 되면 월 210만∼250만원, 많게는 300만원까지도 벌 수 있고요. 20대 초반 여성의 수입치고는 꽤 많은 편이죠.”

    그는 “경호원이 유망 직업으로 인기를 끌면서 전국에 경호 관련 학과가 60여 개로 늘어났지만 아직까지 여성 경호원은 수요에 크게 못 미친다”며 “경호원은 젊을 때 잠깐 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고정관념이 경호학과 출신 여성들을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달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경호의 범위가 수행, 통역 등으로 확대되고 있고, 경호원 관리나 후진 양성도 중요한 업무여서 경호원이 된 뒤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길이 다양하게 열려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고 대표의 머릿속은 여성 경호원에 대한 틀을 깨고, 중국 캐나다 일본 등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휴대전화 출동 경호 서비스, 온라인 쇼핑몰 등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결혼할 생각은 없는 걸까.

    “이왕 일을 벌였으니 결혼은 사업을 어느 수준까지 일궈놓은 다음으로 미루고 싶어요. 그리고 결혼을 하려면 제가 하는 일을 이해해줄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제게 관심을 보이던 사람들도 대부분 ‘은옥씨는 남자를 너무 지치게 해요’ 하면서 떠나갔거든요. 주위에 일 때문에 남자친구와 헤어진 경호원도 많아요. 남자친구가 싫어해서 일을 그만둔 경우도 더러 있고요. 남자 때문에 일을 못하는 것보다는 화려한 싱글이 좋죠(웃음).”

    인터뷰를 끝내고 사진 찍는 동안 그를 지켜보니 앞모습보다 옆모습이 더 예쁘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말했다.

    “코 수술하고 싶어요.”

    그는 스물일곱 살 여자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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