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가지+잘난 척+엽기’ 3종 세트 환상 연기 눈길
- 외모와 목소리 때문에 생긴 선입관 신경 안 써
- 수다 떠는 것보단 자기계발에 더 관심
- 연예인 X파일, 성형 의혹설…상처 입었지만 성숙의 계기
- 안젤리나 졸리처럼 자아 확실한 여성상 연기하고파
1년여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한 한예슬이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다. 늘 도도하고 ‘싸가지’ 없는,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특유의 새침한 표정으로 “꼬라지하고는…”을 쏘아붙이는 부잣집 사모님 ‘안나 조’,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뒤에는 성질은 그대로지만 때론 바보 같은 ‘나상실’ 역을 맡아 ‘환상의 커플’에서 그야말로 ‘환상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
그의 망가지는 연기는 ‘삼순이’를 뛰어넘는다. 아이스크림을 훔쳐 달아나다 차 유리창에 얼굴을 뭉개고, 자장면 한 그릇을 순식간에 게걸스레 해치운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후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내 꼬라지가 왜 이런 거야” 하며 울부짖는 장면은 배꼽을 잡게 한다.
그와의 인터뷰는 제대로 망가질 뻔했다. 일단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면 인터뷰가 불가능하다. 우리 방송 여건상 대개 그 주에 방영될 분량을 그 주에 촬영하는 식이어서 짬을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기대 없이 인터뷰를 청했는데, 한예슬은 “시사지 인터뷰는 처음”이라며 스케줄을 살펴보더니 “모처럼 촬영이 일찍 끝날 것 같은 날이 있으니 그날 촬영장에서 보자”고 했다. 오후 4∼5시면 촬영이 끝날 것 같다고 해서 그보다 조금 일찍 경남 남해읍에 있는 촬영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매니저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아침부터 촬영이 많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예슬은 머리는 산발을 한 채 1970년대에나 입었을 법한 촌스러운 옷을 걸치고 있었다. 메이크업도 ‘촌티’ 그 자체였다. 그래도 예쁜 얼굴인데 어떠랴 싶어 “사진부터 먼저 찍자”고 했더니 “처음 만나는 ‘신동아’ 독자께 예쁘게 보이고 싶은 여배우의 욕심을 헤아려달라”며 완곡히 거절했다.
화려한 캐릭터인 안나 조 신(scene)을 촬영할 때 틈을 내 사진을 찍기로 했지만 그 신 촬영은 이튿날 새벽 4시가 돼서야 시작됐다. 더구나 가발을 쓰기 때문에 헤어스타일도 문제였다. 배우도 촬영스태프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라 사진을 찍기 위해 촬영을 미뤄달라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한예슬도 피로에 절어 눈이 풀려 있었다. 그런 처지에서도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일이 이렇게 돼서 정말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촬영하다 피부병으로 고생
드라마 ‘환상의 커플’에서 한예슬은 “한예슬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역할”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리얼한 연기를 보여준다.
▼ 음식이 입에 맞아요?
“어디서든 뭐든 다 잘 먹어요. 먹는 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 남도음식이라 좀 짤 텐데요.
“서울에서 먹는 거랑 조금 다르다는 생각만 했어요. 어, 듣고보니 좀 짜네요(웃음).”
▼ 먹는 거 좋아하는 사람은 요리도 잘한다던데.
“미국에 있을 땐 요리하는 거 좋아했어요. 양식, 한식 다 잘해요. 오빠 친구들 오면 찌개도 끓여주고 그랬어요. 김치찌개 된장찌개는 기본이고, 닭볶음도 자신 있어요.”
“오빠 친구들이 맛있다고 하더냐”고 묻자 “맛이 있든 없든 맛있게 먹는 게 더 중요한 거예요”라며 까르르 웃는다.
▼ 남해는 처음이죠?
“네. 너무 아름다워요. 이런 곳도 있었구나 싶어요. 특히 석양이 질 무렵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들판의 수풀이 흔들리면서 저 멀리 푸른 바다가 반짝거리는 광경은 정말 끝내줘요.”
▼ 남해는 아름답지만 촬영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을 것 같네요.
“그야말로 중노동이죠(웃음). 9월19일부터 촬영을 시작했는데 그 후 제작발표회 때와 인천공항 신을 찍을 때 빼놓고는 줄곧 여기서 살았어요. 오늘(11월4일)까지 하루도 촬영을 쉰 적이 없어요. 아침 7시에 시작해서 일러야 새벽 1시, 늦으면 새벽 3시에야 끝나요. 인터뷰는커녕 대사 외울 시간도 없어요.”
▼ 어떤 장면을 찍을 때 가장 고생스러웠나요.
“초반에 빗속에서 오지호씨와 몸싸움하는 신이 있었는데, 사흘 동안 밤새도록 살수차에서 뿜어내는 물을 맞으며 찍었어요. 바닷가라 바람도 세고 너무 추워서 나중엔 정신이 혼미해지더라고요. 바다에 빠지는 장면도 힘들었고요. 덕분에 피부염이 생겨 고생했어요. 지금은 나았지만 그때는 촬영하기 힘들 정도로 심했죠.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겼는데, 바닷물 때문인지 살수차의 물이 오염돼선지 모르겠어요. 피곤한 상태라 더 쉽게 감염된 것 같아요.”
“인기는 거품”
▼ 고생한 만큼 화제가 되고 있는데, 인기를 실감하나요.
“여기서는 눈뜨면 촬영만 하니까 잘 모르는데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조금 느껴져요. 댓글이 엄청 많이 달리더군요. 읍내에서 촬영할 때 주민들이 ‘꼬라지하고는…’을 연발하는 걸 봐도 그렇고요. 미국에 계신 엄마랑 매일 통화를 하는데 교포들 사이에선 우리 드라마가 제일 인기래요. 한국에서 방영된 지 4∼5일 후면 미국에서 비디오테이프로 나오는데, 요즘 ‘환상의 커플’이 한국 드라마를 통틀어 대여 순위 1위래요, 호호.”
늦은 밤 읍내에서 길거리 촬영을 할 때는 새벽 2시가 넘었는데도 50명이 넘는 주민이 지켜봤다. “싸가지다” “한예슬 얼굴, 정말 조그맣다”는 수군거림이 끊이지 않았다.
▼ 오랜만에 드라마에 복귀했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데뷔한 뒤로는 너무 바빠서 미국엘 한번도 못 갔어요. 부모님이랑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기에 그간 미국에도 갔다 오고, 창(唱)도 배우고, 승마도 배웠어요. 창은 석 달 정도 했는데, 발음 교정도 하고 하이톤인 목소리를 안정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 것 같아 기회가 되면 더 배울 생각이에요. 물론 저의 이런 목소리까지 장점으로 봐주는 날이 왔으면 좋겠지만요.”
한예슬은 연기 잘하는 배우, 인기 많은 배우보다는 ‘인간적인 배우’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어머, 아니에요. 안나 조와 저는 전혀 달라요. 제게도 털털하고 활달하고 좀 엉뚱한 면이 있긴 하지만, 안나 조는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캐릭터잖아요.”
▼ 경쟁심과 성취욕이 강할 것처럼 보여요.
“맞아요. 욕심도 많아요. 하지만 결과에 집착하기보다는 과정을 즐기는 편이에요. 결과가 나쁘다고 절망하고 좌절하면 상처만 받을 뿐이죠. 그래서 작품이 끝나면 처음부터 쭉 되돌아보면서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생각해요.”
옆에 있던 매니저가 말을 거들었다. 미국에서 자라 그런지 한국식 사고방식과는 좀 다른 면모가 있다는 것.
“가령 스태프가 촬영소품을 옮길 때 우리도 도와주는 게 자연스럽잖아요. 그런데 예슬씨는 그 시간에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더 잘하자는 주의예요. 그만큼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해요. 그렇다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성격은 아니에요. 예의도 깍듯하고요. 애교도 많아요.”
▼ 외모와 목소리 때문에 ‘차가워 보인다’ ‘도도해 보인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그래서 속상한 적은 없나요.
“그건 제가 아직 많은 것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천천히 시간을 갖고 제 이미지를 바꿔갈 거예요. 물론 제 외모로 인한 선입관 때문에 안티 팬들이 생겼을 땐 속상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아요.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진짜 저는 아니니까 당당할 수 있어요. 배우는 배우로서의 세계와 실제의 자신을 혼동하면 안 돼요. 그렇지 못하면 네티즌의 악플 때문에 상처받고 힘들 수 있죠.”
▼ 악플 중에는 연기력에 대한 비판도 많았죠.
“제겐 무명시절이 없었어요. 모델로 데뷔하자마자 인기를 얻었고,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논스톱4’에 출연했죠. 처음 걸음마를 뗀 아이치고 그 정도면 잘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부족함을 깨닫고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봐요. 지금 잘한다 못한다 하는 것보다 얼마나 노력하고 있고, 얼마나 발전하고 있고, 앞으로 얼마만큼 발전할 가능성을 품은 연기자인지가 중요하지 않겠어요?”
▼ 이젠 연기가 뭔지 느낌이 옵니까.
“예전에는 꼭두각시처럼 하라는 대로 흉내만 냈다면 지금은 아, 이런 게 연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캐릭터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생긴 거죠. 그리고 잘하든 못하든 연기를 즐겨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걸 절감했어요.”
섹시한 외모와 하이톤의 웃음소리 같은 특유의 매력은 여전했지만, 예전엔 느낄 수 없던 ‘굳은 심지’ 같은 게 엿보인다. 스스로도 “1년 전까지만 해도 연예계에 갑자기 발을 내디딘 철없는 행운아였지만 지금은 좀더 성숙해진 것 같다”고 평했다.
“전에는 배우보다 스타로서의 이미지에 신경 쓰고 인기도 제법 누려봤지만 별로예요. 스타는 거품도 많고 반짝하는 유행일 뿐이에요. 욕심을 버리니까 연기할 때 좀 편안해요. 시청자들도 편안하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고요.”
신데렐라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는 고향이 미국이다. 부모가 미국 유학 중이던 1982년에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5년 정도 한국에서 살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세리토스대학 컴퓨터그래픽학과에 입학했다. 연예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1년 슈퍼모델 선발대회에서 입상하면서. 그 후 CF모델로 활동하며 매혹적인 외모와 늘씬한 몸매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은 그는 시트콤 ‘논스톱4’, 드라마 ‘구미호외전’ ‘그 여름의 태풍’에 출연했고, 가수와 MC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그는 본격적인 연예활동을 위해 2004년 미국시민권을 포기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한예슬에 대해 “분위기가 동양적이면서도 서구적인 아름다움을 지녔다. 요염하면서도 매력적이다”라고 칭찬했다.
“글쎄요. 워낙 바빠서 외로움을 느낄 여유도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뭔가 할 일을 찾아다녀요.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요. 친구들도 만나긴 하지만 그냥 의미 없는 수다를 떠는 것보다는 뭔가 자기계발이 될 수 있는 유익한 일을 찾아다니는 게 더 좋아요. 그리고 드라마나 방송 일을 할 때는 거기에 집중하기 때문에 외로울 시간이 없죠.”
▼ 어떻게 연예인이 됐습니까.
“연예인이 되리라곤 꿈도 꾼 적이 없고, 이렇게 한국에 살게 될지도 몰랐어요. 연예계와 접할 만한 환경도 아니었고요. 말 그대로 ‘내 꼬라지에 무슨 연예인?’이었던 거죠. 그런데 대학 1학년 때 슈퍼모델 선발대회 미주예선이 열렸어요. 주위에서 권유하기에 추억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나가게 된 거죠.”
▼ 연예인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 뭘 하고 있을 거 같아요?
“공부해서 뭔가 토대를 잡았겠죠. 아마 사업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는 집 좋아하고 땅 좋아하거든요.”
▼ 부동산 컨설팅 사업 같은 것?
“건축사업을 했을 수도 있고 리조트 사업을 할 수도 있었겠죠.”
▼ 지금도 언젠가 그쪽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기회가 되면 연기를 하면서 학교에 편입해 공부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솔직히 연예인 생활을 평생 하고 싶은 생각은 많지 않아요. 사생활을 침해받는 게 싫어서 대중 앞에 서 있는 게 힘들기도 했어요. 젊고 아름답고 대중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이 일을 하겠지만, 힘에 부치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때를 위해 미리 커리어를 쌓아놓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 미래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모양이네요.
“인기도 얻고 돈도 벌면서 신데렐라 같은 삶을 살았지만 별로 행복하진 않았어요. 남들이 볼 때 행복할 듯한 것만 충족했지, 정작 제가 원하는 것은 외면했던 것 같아요. 사람이 돈과 명예를 갖는다고 행복한 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그렇게 삶에 대해 고민하다 인생을 50∼60대까지 길게 봤더니 답이 보이더군요. 인생 별거 아니더라고요. 정말 그렇잖아요. 고등학교 다닐 때는 그게 인생의 전부인 것 같지만 사회에 나와 보면 학창시절은 극히 작은 부분인 것처럼, 인생을 길게 보면 지금의 연예계 생활도 작은 부분일 뿐이잖아요. 저는 아직 어리고 앞으로도 긴 인생이 남아 있으니 연예계에 모든 걸 걸기보다는 좀더 넓게 보면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내고 그걸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공인(公人)이라 즐거운 까닭
▼ 연예인 활동을 하다보면 기쁜 일도 있고 마음 아픈 일도 있었을 텐데요.
“처음엔 상처받는 일이 더 많았어요. 그땐 철도 없고 사회가 어떤 건지도 잘 몰랐으니까요. 연예계 X파일이나 성형 의혹설로 상처도 받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런 건 모든 여자 연예인이 거쳐가는 과정 같더라고요. 그걸 견뎌내면서 좀더 성숙해진 것 같아 이젠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요.”
▼ 기쁜 일로는 어떤 게 있나요.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데, 엄마가 저를 무척 자랑스러워하신다는 것. 가족과 친척들도 저더러 ‘가문의 영광’이라고 하고요(웃음). 누구보다 엄마가 저를 보며 행복해하시는 걸 보면 ‘내가 효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아요. 그리고 저로 인해 사람들이 즐거울 수 있다는 걸 기쁘게 생각해요. 얼마 전, 인터넷에 이런 글이 올라왔어요. ‘부모님이 이혼 후 아버지가 웃음을 잃었는데 드라마를 보며 다시 웃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요즘 주말만 기다린다. 아버지의 웃음을 찾아줘 감사드린다’는 내용이었어요. 정말 보람을 느꼈어요. 연예인이라는 게 먹고살기 위한 직업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사명감 같은 게 생겼어요.”
▼ 연예인의 사회적 책무를 느낀 거로군요.
“과거엔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그저 내 명예와 커리어라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달리 공인이 아니라 이래서 공인이구나 싶어 어깨가 무거워졌어요. 그 자체가 즐겁고,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의 안젤리나 졸리
▼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된장녀’ 논란이 일었는데, 알고 있나요?
“그런 게 있었어요? 잘 몰라요.”
▼ 겉멋 들고 명품 좋아하는 허영심 많은 여성을 ‘된장녀’라고 비난하죠.
“명품, 사치 같은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제가 보기에 자신이 열심히 일한 만큼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돈을 흥청망청 써서야 안 되겠지만, 힘들게 번 만큼 어느 정도 누린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 같아요. 저는 직업이 연예인이라 유행을 리드하기 위해 패션과 명품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해요. 물론 지나친 사치는 자제해야겠지만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최고급 자동차나 명품을 사들이는 것보다는 집처럼 투자가치가 있는 것에 돈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다음 작품은 정해졌나요?
“여러 작품이 들어와서 검토하고 있어요. 아마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 꼭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지금 잘할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다는 게 감사해요. 사람들이 저의 엽기적인 모습을 보고 즐거워한다면 그런 것도 좋겠죠. 캐릭터 변신에 조급하지 않아요. 개인적으로는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미국에서 자라서인지 안젤리나 졸리처럼 강한 캐릭터가 좋아요. 미국 드라마엔 강한 여성상이 많은데 한국에선 여린 여성상을 좋아하더라고요. 하지만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서 강한 여성상도 괜찮을 듯싶어요.”
▼ 강한 여성이란 졸리처럼 근육질 있는 여성을 말하는 건가요.
“독립적인 여자죠. 남자에게 의존하는 멜로 여주인공보다 자아를 확실히 가지고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지킬 줄 아는 여자가 좋아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제가 살아남기 위해 틈새시장을 노리는 거라고 해요(웃음).”
▼ ‘이런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면?
“제가 외모는 좀 새침하고 까칠해 보여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든요. 저는 연기 잘하는 배우, 인기 많은 스타, 그런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인간적인 배우’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유행이나 인기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길을 행복하게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세계적인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71)는 한예슬을 보고 “동양적이면서도 서구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요염하고 매우 매력적이다.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변신에 능한 배우인 것 같다”며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배우라고 칭찬했다.
▼ 디자이너 아르마니가 한예슬씨의 매력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더군요. 그의 말처럼 해외에 진출할 계획이 있나요.
“어머, 저에 대한 조사를 정말 열심히 하셨네요. (기자의 어깨를 다독이며) 기특해라, 제대로 된 기자의 자세라고 생각해요….
그런(해외에 진출할) 욕심도 있는 반면에 평범하게 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아직까지 맘을 못 정하고 있는데, 연기 생활을 계속할 거라면 정말 열심히 해서 할리우드에서도 끝을 봐야죠. 그런가 하면 평범하게 여자로서의 행복을 누리면서 살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온 며칠 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쩜 좋아, 어쩜 좋아… 그날 너무 죄송했어요….”
“그날 마지막 촬영은 무사히 마쳤냐”고 묻자 “거의 죽음 문턱까지 왔다갔다 했답니다” 하며 웃었다. 연일 이어지는 빠듯한 촬영 일정으로 몸도 마음도 완전히 지쳤다는 그는 “그래도 연기하는 재미에 힘든 줄 모른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남해의 푸르름을 머금은 하이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