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호

‘자객으로 돌아온 동지’ 정대철

열린우리당 고문 “노 대통령은 ‘레임덕’ 인정하고 당과 타협하라”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6-12-07 1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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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밥 지어준 사람, 노무현은 밥 먹은 사람”
    • “盧, 부시 의견 전했더니 거꾸로 말해”
    • “盧, 퇴임 후 정치서 손떼야…노사모 재결집도 안 된다”
    • “CEO 30명 영입해 다른 이미지 신당 만들 터”
    • 정운찬·문국현은 관심표명, 황창규·표문수는 작업 중”
    • “친노계, 시간 지나면 통합 신당으로 흡수될 것”
    • “고건 쪽에서 ‘통합 신당 같이 해보자’ 답 왔다”
    ‘자객으로 돌아온 동지’ 정대철
    정대철(鄭大哲·62) 열린우리당 상임고문(전 민주당 대표)는 ‘오뚝이’다. 그는 경성비리 사건, 굿모닝게이트 사건에 연루돼 잇따라 사법처리된 바 있다. 2004년 1월부터 1년 넘게 수감 생활을 했다. 웬만한 정치인 같았으면 잊힌 인물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정 고문은 지금 정계 개편의 중심에 서 있다.

    열린우리당 중진, 통합신당파, 친노계, 민주당 지도부, 고건 캠프, 국민중심당, 대선주자 물망에 오르는 야심가 등등, 그는 요즘 만나는 사람이 많다. 또한 많은 사람이 그를 찾는다. 너무 많이 찾아서, 그의 비서는 “대표님은 휴대전화가 없다”고 말한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결합은 통합 신당의 핵이다. 끊어진 근육을 이어 붙이듯, 두 당을 붙여줄 ‘집도의(執刀醫)’로는 정대철이 적임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 쪽에서 억셉트(accept)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란다.

    되살아나는 ‘비운의 황태자’

    정대철 고문이 되살아난 데는 8선 의원·외무장관을 지낸 선친 정일형 박사와 어머니 고(故) 이태영 변호사의 후광이 작용한 게 사실이다. 정 고문은 2002년 대선 당시 선대위원장으로서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이었지만 여권에서 냉대를 받다 사법처리 됐다. ‘팽(烹) 당해 나락으로 떨어진 콘셉트’로 인식되면서 “죄는 밉지만…”이라는 동정심이 발동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비운의 황태자’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어 그는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누가 면회를 왔다갔는지가 일일이 뉴스가 될 정도였다.



    특히 그는 ‘전쟁’이나 다름없던 대선을 지휘하면서도 ‘인심’을 잃지는 않았다. 한나라당으로부터도 말이다. 타고난 낙천성과 유연함. 이것이 그를 되살린, 그의 컬러였다. 11월14일 오전 서울 중구 약수역 부근 개인 사무실에서 정 전 대표를 인터뷰했다. 인터뷰라기보다는 대화에 가까웠다.

    그는 “지난 대선 때 우리 남산에서 한잔 했었죠?”라며 기자를 맞았다. 당시 노무현 후보 선대위원장이던 그가 폭탄주를 몇 잔 마신 뒤 “서청원(당시 한나라당 대표, 이회창 후보 선대위원장)과 내가 얼마나 가까운지 아나…”라며 너스레를 떨었던 기억이 났다.

    ▼ 그 사이 옥고(獄苦)도 치르고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요즘 다시 활발한 정치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여권 정계개편에 뛰어든 까닭은 무엇입니까.

    “원상복구하자는 거예요.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이 힘이 부족하니까 합쳐서 한나라당에 한번 대항해보자는 겁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정치에 활력을 주는 일이기도 하고요.”

    ▼ 잘 되겠습니까.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당 사수론’을 지지하는 의견도 적지 않은데요.

    “통합 신당이 된다, 안 된다 여러 얘기가 많은데 가장 중요한 것은 대선주자예요. 오픈 프라이머리에 좋은 분이 많이 참여해 제대로 된 대선주자가 나오면 대선은 해볼 만해지는 겁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열린우리당으로는 안 들어오겠다고 하고, 새 거 만들면 고려해보겠다고 하니 신당을 만들자는 거죠.”

    “삼성, 현대, SK에서 사람 물색 중”

    ▼ 흥행이 될 만한 신당의 경선 주자로는 어떤 인물들을 꼽고 있습니까.

    “고건 전 총리, 김근태 당 의장, 정동영 전 장관 외에도 강금실 전 장관, 추미애 전 의원,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 등 6~8명을 좋게 보고 있습니다.”

    ▼ 정 고문께서 그분들을 직접 만나 대선 참여를 권유하고 있나요.

    “얼마 전 문국현 사장을 만나서 뜻을 전했더니 흥미있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추미애 전 의원도 미국에서 귀국한 뒤 차 한잔 했습니다. ‘같이 하자’고 했더니 관심을 보였습니다. 추 전 의원은 최근 선거에 나온 적도 없고 해서 신선감이 있습니다. 추 전 의원이나 강금실 전 장관은 박근혜 전 대표의 대항마가 될 수 있습니다.”

    ▼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고건 전 총리가 통합 신당에 합류할 것인지는 특히 관심이 가는 대목인데요. 그분들의 의사도 들어봤습니까.

    “정운찬 전 총장도 요즘은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고 전 총리 쪽에는 나와 친한 분들이 있어서 그분들 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어요. 그쪽에서도 ‘정 그렇다면 같이 해보자’는 답이 왔습니다.”

    신당의 성패는 참여자의 면면에 달려 있다.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는 민생개혁세력의 총연대를 제시했다. 그러나 정 고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열린우리당은 그간 너무 왼쪽으로 갔다. 이제 조금 중간으로 와야 된다”면서 기업인을 끌어들이는 데 특히 노력 중이라고 했다.

    “삼성, 현대, SK의 전직 사장들 중에 쓸 만한 사람이 꽤 많더라고요. 표문수 전 SK텔레콤 사장에게도 전화를 넣었습니다. 전·현직 CEO들을 한 30명 정도 신당에 동참시키면 신당이 열린우리당과는 다른, 좋은 이미지로 국민들에게 보일 겁니다.”

    ▼ 고 전 총리는 연말쯤 독자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범여권 통합 신당론에 김을 빼는 상황 아닌가요.

    “나는 각 세력이 서로 시간을 좀 맞춰서 했으면 합니다. 그런데 이쪽(열린우리당)에서 너무 (신당 창당) 움직임이 없으니 고건 캠프에서는 답답한 거죠. 지지율 관리도 해야 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신당 창당 발표를 한 걸로 압니다. 지금은 ‘좀 늦추라’며 고 전 총리를 말리는 중입니다. 통합 신당 창당도 어차피 내년 봄까지는 끝나거든요. 우리 쪽에서는 ‘한두 달 차이인데 같이 하자’고 하는 거죠. 신당을 만들 때는 각자 미련이 다 있어요. 그래도 참고 인내하는 자세가 꼭 필요합니다. 조급해선 안 돼요.”

    정 고문은 “고 전 총리는 행정은 딱 떨어지는 양반이다. 그는 중용을 지키면서 진보, 개혁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때가 좋았다”며 고 전 총리를 치켜세웠다.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친노(親盧)계를 중심으로 당 사수론도 적지 않다. 이들의 향후 행보도 관심거리인데, 정 고문은 이들이 통합 신당 쪽으로 ‘흡수’될 것으로 내다봤다.

    “노 대통령, 콤플렉스 버려라”

    ▼ 친노계 등 적지 않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열린우리당 해체에는 부정적인데요.

    “내가 만나본 친노계는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대화를 하다보면 해결책이 나옵니다.”

    ▼ 통합 신당론과 친노계의 당 개조론이 맞서다 열린우리당이 분열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습니다.

    “통합 신당 쪽에서 좋은 분들을 충원해 대통령후보 경선의 그라운드를 만들어 내면 그 흡인력에 의해 열린우리당 분들은 거의 다 통합 신당으로 올 겁니다. 그러나 몇몇 분은 열린우리당의 미약한 법통을 그나마 중시해서 당에 남을 수도 있겠죠. 죽어도 못 가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감정 부활은 안 된다’면서 열린우리당 해체에 사실상 반대하고 있지 않느냐”고 묻자 정 전 대표는 ‘레임덕론’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레임덕(lame duck·통치권력의 누수)을 걱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국민이 요구해도 잘 양보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밀리면 레임덕이 온다’고 보는 일종의 콤플렉스라고 할까요. 그래서 그립(grip)을 놓지 않는 거죠. 그러나 세상과 국민이 원하면 맞춰 가줘야 합니다. 노 대통령에게 이미 레임덕이 온 것은 사실입니다. 가령 2008년 2월 대통령 퇴임 하루 전날이면 이미 대통령이 아닌데, 지금이 그 시점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고 온건하게 당과 타협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 노 대통령에게 직접 통합 신당의 필요성을 얘기했다면서요. 대통령은 어떤 반응이던가요.

    “대통령을 몇 번 만나서 얘기를 전했습니다. 신당 구상을 편지에 담아 대통령에게 보내기도 했고요. 그러나 이 문제로 대통령과 깊이 토론해본 적은 없습니다.”

    ▼ 노 대통령은 퇴임한 시점에도 63세로 젊습니다. 노 대통령이 퇴임 후 정치활동을 계속할 것이라는 얘기가 친노계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노사모도 아직 건재하지 않습니까.

    “대통령의 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퇴임한 대통령은 다시 정당에 들어가 국회의원이 되려 하거나 자기의 세를 모으는 식으로 현실 정치에 관여해선 안 됩니다. 미국의 카터나 클린턴처럼 필요할 때 한 번씩 역할은 할 수 있겠지만 일상적으로 정치를 해선 안 되죠. 노사모의 재결집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초연하게 멀리서 도와주면 됩니다.”

    정 고문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사퇴론이 번져갈 때 노 후보를 끝까지 사수한 주역이다. 불법선거자금 문제도 선대위원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검찰에 기소되기도 했다. 그는 2003년 민주당 대표로서 ‘민주당 분열 반대’를 줄곧 주장했으나 신당 창당 추진파가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간 뒤 결국 민주당을 탈당하고 이들과 합류했다. ‘동아일보’의 한 칼럼은 “노사모(‘노무현이 사기친 모임’)의 대표는, 대선 일등공신이었으나 옥고를 치른 뒤 팽된 우리당 정대철 상임고문”이라고 썼다. 그러자 청와대는 동아일보에 대해 “해악성이 마약과 같다”고 비판했다. 정 고문은 하루도 편할 날 없던 2003년을 회상하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그 칼럼 얘기를 꺼냈다.

    “동아일보 노사모 칼럼 재밌더라”

    ▼ 2003년 노 대통령이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만들도록 했나요.

    “민주당 분당의 책임은 열린우리당뿐만 아니라 민주당에도 있습니다. 처음에 민주당을 깨자고 한 대표적 주역은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과 조순형 현 민주당 의원입니다. 조 의원은 당시 신당을 만들자고 나를 설득하기도 했거든요. 조 의원이 지금은 열린우리당과의 통합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나는 민주당을 분열시켜선 안 된다고 노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말했어요. 그 양반은 지역주의 탈피라는 취지에는 동감했지만 꼭 신당을 만들겠다는 건 아니었어요. 창당과정에 특별한 의견이 없었습니다. 다만 분당에 앞장선 사람들이 대통령을 설득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을 뿐이지요. 그런데 민주당에서 폭력사태가 난 이후에는 노 대통령이 분당 쪽으로 기운 듯합니다. 당시 분당 문제에선 이해찬 전 총리, 김원기 국회의장,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도 소극적이었고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오히려 내 쪽에 좀더 가까웠죠.”

    ▼ 정 고문이 민주당을 떠나 신당으로 갈 때 당 의장 자리를 보장받았으나 지켜지지 않았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내가 먼저 말을 꺼낸 게 아니라 그쪽에서 먼저 ‘당 의장으로 모시겠다’고 하데요. 그런데 막상 입당하니까 그 약속은 어디로 날아갔는지, 상임고문 자리를 주더군요. 내가 꼭 자리 보고 간 건 아니지만 나중에 이해찬 전 총리, 김원기 국회의장에게 ‘그때 신당 쪽에서 내게 의장 자리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했습니다. 농담으로 한 얘기였는데 조금 당황하더군요. 내가 신당으로 간다고 하자 아는 사람들이 다 말렸어요. 가면 배신당하고 구속될 거라고요. 사실 내가 민주당에 남아 한화갑 식으로 버텼으면 구속 안 됐을 겁니다.”

    ▼ 그때 일로 노 대통령에게 섭섭한 감정이 생기진 않았나요.

    “노 대통령에게 그런 감정은 없습니다. 원래 밥 짓는 사람 따로 있고 밥 먹는 사람 따로 있는 법이죠. 얼마 전에 동아일보에서 나를 ‘노사모(노무현이 사기 친 모임) 대표’라고 한 칼럼을 봤습니다. 허허. 비유가 재밌더군요. 청와대는 그런 정도는 너그럽게 봐주면 됩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선대위원장이 ‘국립대(구치소)’ 간 게 미안했는지 삼성전자 다니던 내 아들을 청와대 행정관에 채용하더군요.”

    2003년 노 대통령의 측근이던 모 장관은 “검찰 수사에 협조하라”고 정 고문을 압박했고, 신당 주역인 모 의원은 정 고문에 대해 “민주당과 다시 합치자는 주장을 하려거든 당을 떠나라”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 당 회의 때도 정 고문의 자리는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다. 당시 정 고문은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측근에게 “나 사기 당했어”라고 신세 한탄을 했으며, 민주당 모 의원과의 술자리에서는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라는 유행가를 부르기도 했다.

    ▼ 대통령이 아드님을 채용한 게 눈길을 끌었습니다.

    “나는 썩 내키지는 않았어요.”

    ▼ 옛날 중국의 황제가 제후를 단속할 요량으로 그 아들을 불러올려 벼슬을 준 것과 같은 건가요.

    “그런 건 아니지만, 대통령이 꼭 내 아들을 쓰겠다고 우기더라고요. 좋은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아들놈이 얼마 뒤 2004년 총선 때가 되자 내 지역구(서울 중구)에서 출마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옥중에서 김원기 의장을 불러 아들을 말려달라고 했더니 오히려 원기 형님이 나를 설득하더군요.”

    정 고문의 아들은 한나라당 박성범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정 고문 부자는 ‘교통정리’를 해야 했다.

    “아들은 선거에서 떨어지고 나는 석방이 되고 나서 부자간에 ‘지역구 조정’을 했습니다. 아들은 ‘원래 아버님 거였으니 아버님이 다시 가져가세요’라고 하던데, 진심에서 우러난 말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아니다. 나는 통합 신당이 마지막 과업이니 네가 계속 맡아라. 3대째 정치가문을 한번 만들어봐라’고 점잖게 얘기했습니다.”

    “한인옥 형수님에게 사과”

    정 고문은 서울구치소에서 유력 정치인을 만나면 “아이고, 여기서…”라고 반기며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출소한 이후에는 박지원 전 장관, 박주선 전 민주당 의원,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이연택 전 대한체육회장, 최돈웅 전 한나라당 의원 등 ‘구치소 동기’들을 규합해 ‘신(新) 장발장회’라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 ‘정 고문에게 청탁성 자금을 줬다’는 증언을 해서 정 고문이 구속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굿모닝게이트의 주역 윤창렬 전 사장도 함께 구치소에서 복역했죠.

    “나를 보더니 달려와서는 무릎을 꿇더군요. ‘자네를 용서한다’고 했어요. 내가 몇 번 재판정에 서고 그랬는데, 내 사건 담당이 김홍일 검사에 김종필 판사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얼마 전 김홍일 검사에게 소주 한잔 하자고 전화했더니 조금 거북해하더군요. 내가 수감 중일 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나를 다섯 번이나 면회왔어요.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 이 전 총재라면 2002년 대선 때 맞서 싸운 적장(敵將)인데….

    “사실 사석에서는 ‘회창이형’이라고 부릅니다. 제 중·고·대학 선배입니다. 어릴 때부터 자주 어울리고 그랬어요. 이 전 총재가 세 번째 저를 면회 왔을 때 ‘이제 그만 오시라’고 했어요. 그러자 이 전 총재는 ‘함께 수감된 서청원 전 대표를 면회하고서 자네를 어떻게 안 보고 가겠는가’ 하시더군요.

    이 전 총재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남자들 놀음 때문에 여성까지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선대본부에서는 이 전 총재의 부인 한인옥 여사의 기양건설 돈 수수 의혹을 터뜨리려 했습니다. 나는 반대했지만 결국 그렇게 했고, 나중에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면회 온 이 전 총재에게 이 점을 사과드렸고, 나중에 형수님을 직접 찾아뵙고 ‘죄송했다’는 말씀을 드릴 생각입니다.”

    정 고문은 “통합 신당은 좀더 이념적 중간지대로 가야 한다”면서 청와대에 균형 인사(人事)를 주문했다.

    ▼ 노무현 대통령의 전시작전권 단독행사 발표로 안보불안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정 고문께선 2002년 노 당선자의 대미특사로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죠.

    “특사로 가기 전이었어요. 선거가 끝난 지 며칠 만에 러포트 주한 미군사령관이 내게 찾아와서는 ‘부시 대통령의 뜻’이라면서 미군 지상군 재배치에 따라 한국 지상군으로 전시작전권을 이양할 뜻을 밝혔습니다. 나는 이를 노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최근 노 대통령은 마치 우리가 요구해서 작전권을 가져오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조만간 조순형도 만날 것”

    ▼ 당선자 대일특사로서 고이즈미 당시 일본 총리를 만났을 때의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고이즈미 당시 총리는 한·미·일 삼각 체제를 함께 구상하자고 했습니다. 그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당시에는 독도 사태가 일어날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 후 한일관계가 왜 그렇게 나빠졌는지….”

    ▼ 북한 핵실험 이후 금강산 관광 문제를 둘러싸고 대북 현금지원은 안 된다는 등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데요.

    “폭탄 들고 와서 너 죽고 나 죽자고 하는데 포용만 할 수는 없죠. 북핵 해결을 위해선 한미관계, 한일관계를 공고히 해야 합니다. 계속 피해만 다니면 나중에는 몰려서 굴종하게 됩니다. 금강산 관광은 당분간 안 했으면 합니다. TV 화면의 반쪽에 버섯구름, 다른 반쪽에 북한 관광 그림이 등장하면 이상한 국민 취급을 받습니다.”

    ▼ 열린우리당에서는 한나라당의 집권은 국가적 불행이라며 용납할 수 없다고 하는데요.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뭐, 크게 달라지는 것 있겠습니까. 유연하게 정치하는 게 좋습니다. 항상 박빙이던 역대 대선 결과가 증명하듯, 여권도 신당 잘 만들고 오픈 프라이머리 잘하면 대선에서 한나라당과 접전을 벌일 수 있습니다.”

    정 고문은 “지금의 청와대는 386 때문에 서툴러 보인다. 실정(失政)의 핵심은 바로 아마추어리즘이다. 청와대는 사람을 쓸 때 잘 가려가며 쓰고, 균형을 맞췄으면 한다. 또 국민이 뭔가를 요구하면 즐겁게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예상 외로 활기차 보였다. “조만간 조순형도 만나보겠다”고 했다.

    ‘강물은 웅덩이를 만나면 그것을 다 채운 다음에야 앞으로 나아간다(不盈科不進).’

    정 고문은 “맹자(孟子)의 이 글귀가 나의 지난 처지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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