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호

스물넷의 완벽주의자 오승환의 야구 본능

“나는 행복하다, 그러나 이겨야 더 행복할 수 있다”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6-12-07 18: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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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29일, 삼성과 한화의 코리안시리즈 6차전. 9회말 3대 2, 투아웃에 만루. 타석에 들어선 한화의 데이비스는 투수를 향해 위협적으로 방망이를 흔들며 웃어 보인다. 투스트라이크 투볼. 경기는, 아마도 지금 던지는 이 공 하나로 승패가 갈릴 것이다. 입술을 앙다문 투수는 공을 고른다. 오로지 야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절정의 긴장. 투수의 싸늘한 눈초리에서는 어떤 생각도 읽을 수 없다.
    • 와인드업, 말 그대로 온 힘을 실은 단 하나의 공, 정면승부. 빠르게 날아간 공은 힘이 잔뜩 실린 강타자의 배트스윙 밑을 교묘히 파고든다. 삼진, 그리고 우승. 가면 같던 투수의 얼굴에는 하나 가득 웃음이 피어오르고, 포수는 그를 향해 달려온다. 그제야 스물넷이라는 나이를 실감하게 하는 그 웃음, 데뷔 2년차인 삼성의 최강 마무리 투수 오승환이다.
    스물넷의 완벽주의자 오승환의 야구 본능

    10월29일 코리안시리즈 6차전에서 한화를 상대로 마무리 투구를 하는 오승환.

    무이일구(無二一球)를 아는가. 1983년,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한국 프로야구에 혜성같이 등장해 ‘한 시즌 30승’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남긴 비운의 투수 장명부가 지난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일본에서 운영했던 가게의 벽에 남겨놓았다는 글귀다. 둘도 없는 오직 단 하나의 공, 오로지 지금 던지는 이 공만이 세상에서 자신이 던질 수 있는 유일한 공이라는 마음의 상태, 무이일구.

    기자는 야구를 잘 모른다. 야구뿐 아니라 스포츠라는 것 자체에 그다지 조예가 깊은 편이 못 된다. 그나마 프로야구 원년 OB베어스의 어린이 팬클럽 회원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때 명징하게 각인된 우승 환호의 기억 때문에, 매년 가을 코리안시리즈 경기만은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정도다.

    그런 기자에게 문득 오승환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가 코리안시리즈 6차전에서 던진 마지막 공 하나 때문이었다. 우승의 향방이 자신의 오른쪽 어깨에 걸려 있는, 누구나 도망가고 싶을 수밖에 없을 그 순간에 한 점 흔들림 없이 정면승부를 거는 저 선수의 영혼이란 어떤 것일까. 오직 단 한번 주어진 그 공을 던지면서 그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스쳐갔을까. 그는 무엇 때문에 저 극단의 긴장에 온몸을 던져 마주하는 것일까.

    11월3일, 코나미컵 아시안시리즈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삼성팀이 훈련하는 대구구장을 찾았다. 돌부처라는 별명,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중평, 그리고 그 굳게 다문 입술. 오승환과의 인터뷰는 쉽지 않을 것임이 분명했다. 제법 쌀쌀한 기운이 느껴지는 한적한 경기장에 선수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똑같은 유니폼, 백넘버가 없는 점퍼를 입은 선수들 사이에서 오승환 선수를 찾기란 간단치 않았다. 화면에서 본 압도적인 체구와 가면인 듯 차가운 표정의 오승환은 거기 없었다. 대신 훈련을 마치고 기자와 마주앉은 사람은 운동선수답지 않은 말끔한 피부와 겸손한 말투를 가진 ‘미소년’이었다.

    오승환이 내내 진지한 자세로 훈련에 임한 그날은, 공교롭게도 그가 후보로 올랐던 정규리그 MVP 시상식 다음날이었다. 수상은 올해 데뷔한 한화의 선발투수 류현진(19)에게 돌아갔다. 지난해에도 유력한 MVP후보였지만 신인상에 그치고 만 그에게 아쉬움이 없을 리 없다. ‘인간 오승환’을 엿보기 위해 난감할 수밖에 없는 첫 질문을 던졌다. 극히 ‘모범적인’ 답이 돌아온다.



    “시상식장에서도 그렇고 전에도 그렇고 전 정말 마음 편하게 있었어요. 지난해 MVP를 탄 손민한 선배가 시상식장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MVP 트로피보다 우승반지를 끼고 싶다, 바꾸고도 싶다.’ 모든 선수가 1월부터 힘들게 훈련하면서 세우는 목표는 우승입니다. 누구도 ‘나는 올해 꼭 MVP를 할 거야’ 하고 마음먹는 경우는 없거든요. 그런데 저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승을 했어요. 그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습니다.”

    치마 입고 자란 어린 시절

    시즌 최하위, 수모에 수모를 거듭하던 삼미 슈퍼스타즈가 일본에서 은퇴를 준비하고 있던 장명부에게 영입을 타진하던 1982년에 오승환은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야구공을 잡은 그는 이후 경기고와 단국대를 거쳐 2005년 프로에 데뷔했고, 첫해에 트리플더블(승리, 세이브, 홀드에서 모두 두 자리수를 기록한 투수)을 기록해 신인왕과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한다. 올해 들어서는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보여준 발군의 피칭으로 세계 야구계를 긴장시키더니, 마침내 한 시즌 47세이브라는 아시아 최고기록을 세우며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최전선에 섰다.

    공식기록에 따르면 오승환의 키는 178cm, 체중은 92kg이다. 기자의 키는 177cm. 눈대중으로 보니 공식기록이 1~2cm 부풀려진 듯했다. 엄청난 체구로 보이는 화면 속의 그에 비하면 크지 않은 키다. 아마도 특유의 표정이 주는 위압감이 실제보다 더 커 보이게 하는 것이리라. 보통 사람의 1.5배쯤 돼 보이는 엄청난 팔과 어깨도 한몫했을 것이다. 혹시 둘레를 재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아뇨, 재본 적은 없고요, 많이 빈약해요”라고 답하며 시선을 내리깔고 수줍게 웃는다. 저 팔이 ‘많이 빈약하다’니, 겸손이 지나쳐도 농담이 된다.

    ▼ 눈매가 매섭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텐데요, 혹시 친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서 그런 얘기를 들어봤나요? 스스로 어떤 성격이라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해요.

    “TV를 본 분들은 대개 그렇게 말씀하시는데요, 밖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웃기도 잘 웃고 말도 잘 하거든요. 제 표정이 왜 그렇게 되는지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일부러 날카롭게 보이려고 의식하는 건 아니에요. 저도 모르게 그렇게 돼요. 내성적인 성격은 아닌데,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낯을 좀 가리는 편이에요. 친해지면 말도 많이 하고 장난도 잘 치고. 처음 본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내성적이라고.”

    ▼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태어난 곳은 전북 신태인입니다. 익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요.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부모님이 거기서 귀금속 세공업을 하셨어요. 세 살, 네 살 터울 삼형제의 막내로 자랐습니다. 지금은 이 얘기를 하면 아무도 안 믿고 웃기만 하는데, 부모님이 원래는 딸을 낳으려고 하셨기 때문에 한동안 치마를 입히고 머리를 묶어주셨대요(웃음). 사진도 있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몸이 좋지 않았죠. 친척이든 동네 사람이든 누나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한두 살 위 여자들한테 누나라고 잘 못해요.”

    ▼ 예전 기사를 찾아보니 야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공부를 꽤 잘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잘하지는 않았어요. 흥미를 못 느꼈던 것 같아요. 대략 반에서 10~15등쯤. 오히려 들에서 산에서 뛰어 노는 걸 좋아했어요. 중학교 때부터는 거의 합숙생활을 했으니까 집에는 자주 가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죠.”

    ▼ 아마추어 때도 공을 던질 때 그렇게 진지한 표정이었나요.

    “아뇨, 그런 거 전혀 몰랐어요. 아마추어에서는 팬층이 두텁지 않았고 봐주는 사람도 고작 부모님 정도였으니까요. 저도 프로 들어와서 처음 들었어요. 저도 모르는 뭔가가 달라진 거겠죠.”

    부상, 그리고 재활의 기억

    첫해와 이듬해를 엄청난 성적으로 마무리한 루키. 언뜻 보면 축복 받은 야구인생이겠지 싶다. 오승환은 이미 고교 1학년 때 메이저리그의 공개테스트 제의를 받았을 정도로 유망주 중의 유망주였다. 그러나 이후 그의 야구기록에서 공백으로 남아 있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교 2학년까지, 그는 절망보다 더 깊은 나락을 맛봐야 했다. 부상의 악몽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허리 부상, 대학교 1학년 때의 팔꿈치 인대접합수술. 단국대 강문길 감독의 안목이 없었다면 고교를 졸업하며 야구를 그만둬야 했을 처지였다. 대학 1, 2학년 두 해를 고스란히 재활훈련으로 보내며 공 한번 만져보지 못한 그는, 4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마운드에 복귀해 대학리그를 평정하며 팬들의 뇌리에 ‘오승환’이라는 이름 석 자를 박아넣기 시작한다. 춘계 대학리그 우수투수, 추계리그 우승. 본인에게는 눈물겨울 수밖에 없는 부활 스토리다.

    ▼ 미니홈피에 들어가보니 ‘미치자…내가 하는 일에 미쳐버리자’는 제목이 인상적이더군요. ‘나는 행복하다’는 글귀도 눈에 들어오고요. 마치 ‘행복해야 한다’고 되뇌는 것처럼 들린다고 할까요.

    “같은 글귀를 휴대전화 첫 화면에도 적어놓았는데요, 일종의 좌우명 비슷한 거죠. 제가 한창 재활훈련을 받고 있을 때 아프지 않은데 꾀병을 부리는 친구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애들을 봤어요. 그걸 보면서 그때까지는 몰랐던 걸 깨달았죠,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나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걸. 마운드에 서서 안타를 맞고 홈런을 맞고 점수를 내줘도 그건 내가 공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고 내가 할 일이니까, 그러니까 무척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 2002년 월드컵 기간에 전국이 난리가 났는데도 재활훈련을 받느라 몰랐다면서요.

    “서울 옥수동의 학교 숙소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해서 잠실에 있는 재활원에 도착하면 밤 10시까지 재활훈련만 했어요. 밤중에 버스를 타고 학교 근처에서 내려 숙소까지 걸어가는데 갑자기 주택가에서 막 함성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무슨 일인가 했더니 월드컵이라더군요. 지금도 그날이 무슨 경기였는지는 몰라요(웃음).

    스물넷의 완벽주의자 오승환의 야구 본능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지만, 사실 재활이라는 게 정말 끔찍하거든요. 스스로 포기하고 싶다는 유혹을 많이 느꼈어요. 다른 뭘 한들 못할까, 차라리 포기하고 술집에서 서빙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그때가 대학 1, 2학년 때였기 때문에 아침부터 밤까지 재활훈련을 하고 학교에 돌아가면 선배들 빨래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줘야 하고…그런 궂은일 다 하고 새벽에 잠을 자요. 그런데 빨래는 제가 하지만 제 유니폼은 거기 없잖아요. 궂은일은 어느 신입생이나 다 하는 거지만, 저는 경기장에 못 나가거든요. 혼자 재활센터에 갔다가 마치고 학교에 오면 왠지 다른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듯한 기분. 그들은 경기장에서 뛰고 땀을 흘리죠.”

    ▼ 다른 선수들이 많이 부러웠겠군요. 특히 그 무렵 경기고에서 함께 지내던 이동현 투수가 LG에 입단해서 ‘무서운 아이’로 불렸죠.

    “그런 면이 없지 않았어요. 동갑이고 같은 투수니까 학창시절 내내 의식하며 지냈죠. 특히 고등학교 때는 같이 생활하면서 놀기도 같이 놀고 무척 친하게 지냈거든요. 그랬는데, 제가 부상을 당한 고3때 동현이는 황금사자기 최우수선수로 뽑히고 막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죠. 그렇게 상반된 길을 가다보니까…. 재활훈련 하는 동안 동현이가 TV에 나오고 잘하고 하는 걸 보면, 나도 할 수 있겠다, 할 수 있다 그런 마음을 먹게 되었죠. ‘지금 내가 웃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나도 웃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 듣고보니 어린 시절 이동현 선수를 평생을 같이 가야 할 라이벌이라고 느꼈던 것 같군요. 남자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법이잖아요.

    “라이벌 의식이라고 하기는 좀…. (웃음) 이런 얘기는 누구나 하는 얘기여서 식상하기도 할 텐데, 정말 운동선수에게는 누구보다 자기자신을 이기기가 힘들어요. 재활훈련을 할 때는 밤에 혼자 뛰었거든요. 아무도 보는 사람 없이 혼자 뛰는 거니까 제가 뛰기 싫으면 안 뛰어도 되는 거죠. 사실 무서웠어요. 혼자 준비하고 나가서 뛰기까지의 그 순간이 너무 무서운 거예요. 뛰면 정말 힘드니까, 오늘은 얼마나 더 힘들까 생각만 해도 무서운 거죠.

    그래도 되게 많이 뛰었어요. 학교 주변의 언덕길을 뛰고 구르고…. 그건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걸 이겨내기가 정말 힘들었지만, 언젠가는 지금 내가 뛰는 게 도움이 되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렇게 믿었고 또 그렇게 됐죠. 그거 하나였어요.”

    재기에 성공한 오승환은 그해 가을 가능성을 알아본 또 한 명의 스승을 만난다. 그가 일생을 두고 존경해온 사람, 삼성의 선동렬 감독이다. 계약금 1억8000만원을 받고 2차 1번으로 지명받아 삼성에 입단한 그는 첫해 뛰어난 성적으로 선 감독의 기대에 부응한다. 이 무렵 선 감독이 오승환을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다는 흥분 섞인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지난해 여름 마무리 투수로 자리를 굳힌 오승환은 올해 정규시즌에서 모두 63경기에 출전해 109개의 삼진을 잡았다.

    ‘오승환 표정 16종 세트’

    그는 보통 8회나 9회에 마운드에 선다. 큰 점수차로 뒤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등판할 이유가 없다. 쉽게 말해 그의 기회는 ‘9회말 투아웃에 한 점차 리드, 주자 만루’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다. 경기장의 모든 시선이 그의 손끝을 향한다. 공 하나만 잘 던지면 여기서 경기를 끝낼 수도 있고, 패배의 쓴맛을 볼 수도 있다. 마무리 투수의 숙명이다.

    “흔히 긴장감 하면 축구의 승부차기 키커를 얘기하는데, 그보다 마무리 투수가 더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승부차기는 경기를 비긴 다음에 하잖아요. 골이 들어갈 확률도 높고요. 그러나 마무리 투수는 팀이 이기고 있는 경기에 나가고, 뒤엔 아무도 없어요. 20~30개의 공 중에 한 개만 잘못 던져도 팀이 고생해서 만들어놓은 승리를 날려버리는 거잖아요.”

    그 절정의 긴장에 맞서는 오승환의 최대 무기는 단연 흔들림 없는 표정이다. 인터넷에는 ‘오승환 표정 16종 세트’라는 유머 게시물이 떠다닌다. 분노, 슬픔, 흡족 등의 소제목을 달아놓았지만, 실제로는 똑같은 사진이다. 강타자를 삼진으로 돌려 세워도, 홈런을 맞아도, 세이브를 날려도 늘 변함없이 똑같은 표정으로 묵묵하게 덕아웃으로 돌아오는 그의 얼굴을 익살맞게 표현했다.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철가면’ ‘포커페이스’ ‘돌부처’ 같은 별명이 주렁주렁 달린다.

    통계로 분석할 수 있는 오승환의 최대 강점은 빠른 직구다. 최고시속 152km. 그러나 그의 직구에는 숫자로 표시될 수 없는 특징이 있다. 초속(初速)과 종속(終速)의 차이가 5km 내외로 매우 작다는 것이다. 타자석을 스치는 순간에도 140km대를 유지하는 이른바 ‘돌직구’다. WBC에서 그를 지켜본 메이저리거들이 ‘110마일로 던지는 것 같다’고 말한 까닭이다.

    “타자가 누군지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의 이 강력한 직구는 공을 뿌리는 임팩트 순간 꺾였던 상태를 풀며 잡아채는 손목의 힘이 남다르다는 것과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독특한 투구 자세 덕분이라는 게 중평이다. 특히 본인도 “TV를 통해 보면 내가 봐도 웃긴다”고 하는 투구 자세는 언뜻 ‘온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오버스로 선수로는 드물게 임팩트 순간에 두 발이 모두 땅에서 떨어진다. 이 반동력이 그대로 공에 실려 엄청난 종속이 나온다는 것이다. 정석대로 자세를 바꾸려 해봤지만, 볼 컨트롤이 되지 않아 포기했다는 게 본인의 고백이다.

    “뭐, 폼으로 야구하는 건 아니니까요.”

    ▼ 공 하나하나에 엄청난 신경을 쏟는 게 느껴집니다. 독특한 투구폼 때문에 온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은데요.

    “아뇨. 스트레스 전혀 안 받고 있어요. 코리안시리즈 같은 경우는 엄청 큰 경기고 무조건 이겨야 하는 상황이니까 더 집중해서 하는 건 있지만, 그런 것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 마무리라는 보직 자체가 팽팽한 긴장의 연속인데, 스트레스가 없을 수 있나요?

    “네. (기자가 웃음을 터뜨리자) 아뇨, 정말로요. 일단 공을 던지는 게 좋아요. 남들 들으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정말로 좋아요. 선발투수는 4~5일 로테이션 등판하니까 매일 공을 못 던지잖아요. 저는 매일 던지고 싶어요. 그래서 마무리가 좋아요.”

    ▼ 경기장에 나오면 감이 생기나요, 본인이 오늘 등판할지 아닐지.

    “초반에 감을 잡는다고 하기는 어려워요. 항상 나간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가 6, 7회가 되면 준비는 해요. 코치님이 와서 몸을 풀라고 하시기 전에 점수상황을 보고 워밍업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는 거죠.”

    ▼ 가끔은 좀 무겁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그런 상황이. ‘올 것이 왔구나’하는 좀 무섭다는 생각.

    “아뇨, 지금까지는 그렇게 느낀 적이 없어요. 또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 일종의 자기최면인가요?

    “글쎄요, 자기최면이라면…. 이런 게 있어요. 마운드에 올라가서 혼자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뒤에서 정말 다 해주잖아요. 물론 마운드는 외로움을 느낄 만한 자리죠. 모든 사람이 쳐다보고, 공간적으로도 한가운데 떨어져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뒤에 동료들이 있으니까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삼진을 잡아도 잡아주는 포수가 있기 때문에 삼진을 잡는 거고요. 제가 던지는 공 하나에 승패가 엇갈릴 수도 있지만, 마운드에 서면 승패를 떠나서 공 하나에 집중하다보니까 외로움을 핑계 댈 틈이 없어요.”

    ▼ 몸을 풀 때는 무슨 생각을 합니까. 상대를 어떻게 요리할까?

    “어떤 타자가 나올 거라는 계산은 하지만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점수차가 별로 안 나는 상황에서 등판하다보니, 그 순간에는 타자들의 집중력이 엄청나게 높아요. 그러니 4번 타자건 9번 타자건 다 힘든 상대예요. 타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장단점은 있겠지만 그런 걸 많이 생각할 이유가 없어요. 대신 불펜에서는 그날 제 컨디션이나 결정구로 뭘 쓸지 체크를 하죠. 오늘은 변화구가 잘 던져지는 날이라든지, 아웃코스 코너워크가 좀 된다든지…. 불펜에서는 많이 안 던져요. 다섯 개 정도면 대략 알 수 있죠.”

    ▼ 마운드로 걸어가는 동안에는 무슨 생각이 드나요? 관중이 모두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데.

    “되게 단순해요. ‘아 이제 차례가 됐구나’, 당연하다는 느낌이랄까요. 준비해왔으니까. 어떤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에요. 떠오르는 이미지도 없고요. 공을 던지기 전에 잠시 하늘이나 눈에서 가장 멀게 보이는 관중석을 봐요. 예전에 그런 소릴 들었거든요, 먼 곳을 보다 가까운 곳을 보면 사물이 더 잘 보인다고. 먼 곳을 바라보다 포수를 바라보면 미트가 더 정확히 보이는 기분이 들어요. 그것도 일종의 자기최면이라면 자기최면이겠죠. 단순한 게 더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것저것 떠올리는 것보다는.”

    ‘단 하나의 공’

    스물넷의 완벽주의자 오승환의 야구 본능
    그는 비음주에 비흡연이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는 줄 모를 만큼 주량은 센 편이지만, “며칠간 열심히 훈련한 성과를 단 한번에 날릴 만큼 몸이 망가지는 게 싫어” 거의 마시지 않는다고 말한다. 근육이 풀린다는 것이다. 담배 또한 마찬가지다. 학창시절 호기심으로 입에 대본 경험 뿐이다. 종교도 없다. 어린 시절 친구를 따라 교회에 몇 번 나가본 게 전부다.

    1억80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계약금, 사상 최고 인상률을 기록한 올해 연봉 6000만원, 내년 연봉은 또 얼마나 인상될지 알 수 없다. 20대 젊은이라면 ‘쓰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을 만도 하건만, 그는 아직 차가 없다. 운전면허도 없다. 개인적으로 움직일 때는 택시를 탄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차를 살 계획은 없다고 한다.

    여자친구도 없다. 자기를 편하게 해줄,그래서 야구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줄 사람이 아니면 앞으로도 연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단다. 오로지 야구뿐이다. “너무 재미없게 사는 거 아니냐”는 물음에 “야구가 가장 재미있다. 그걸로 충분하다”는 모범답안이 다시 한번 돌아온다. 야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야구가 뭐란 말인가.

    ▼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이답지 않은 집중력인데요, 목표를 위해 스스로를 절제하는 능력이 대단해 보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편이었나요? 공부에 흥미가 없었지만 성적이 나쁘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집중한다곤 하는데, 안 될 때도 많았죠(웃음). 또래 애들과 다르게 행동 하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었거든요. 그렇지만 그런 건 있었어요, 같이 놀고도 나중에 뒤에 가서 꼭 해야 하는 일은 하는.”

    ‘야구에 방해가 되는 것은 하지 않는다’는 그의 이 놀랄 만한 집중력은, ‘공 하나’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듯했다. 지난 2월 WBC를 앞두고 일본의 강타자 후쿠도메 고스케는 “오승환과 겨뤄보고 싶다”고 말했다. 소감을 물은 취재진에게 오승환은 “후쿠도메가 누구냐”고 되물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외국 야구경기를 거의 보지 않는 그는 야구인라면 누구나 동경할만한 대선수들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공을 잘 던지는 게 중요하지, 상대가 누구인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그의 말을 듣고보니, WBC 당시 “메이저리거도 별것 없더라”고 했던 것으로 전해진 그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 듯 했다. “상대가 메이저리거라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와전됐을 것이다. 주변의 모든 상황을 가능한 한 탈색시키고, 오로지 자신의 손끝에서 던져지는 단 하나의 공에 집중한다는. 그에게 야구는, 마치 체조선수의 공중돌기와 비슷한 것 같았다. 스스로 만족할 만한 공을 던지기 위해 심지어 상대방이 누구인지조차 의도적으로 잊으려 한다는 느낌이었다.

    그에게 그 ‘단 하나의 공’에 대해 물을 때가 되었다.

    ‘내 공을 쳐라, 나는 오승환이다’

    ▼ 일본팀과 맞붙은 WBC 8강전에서의 마지막 투구를 기억하는 이가 많습니다. 9회말 1사1루 상황에 등판해서 아라이를 삼진으로 잡고 다무라 선수와 마주했죠. 그때 다무라가 폴대를 약간 빗나가는 대형 파울을 날립니다. 그때는 기분이 어땠나요, 가슴이 철렁했나요?

    “아뇨. 맞는 순간 알았죠, 이건 파울이라고. 타이밍이 안 맞은 공이었어요. 직구를 기다리고 휘두른 배팅 타이밍이었는데, 그 공은 변화구였거든요. 그러니까 정확한 포인트보다 한 클릭 앞에서 맞은 거죠. 정면에서 보는 저는 ‘딱!’ 하는 순간 파울이라는 걸 정확하게 알죠.”

    ▼ 흔히 투수가 장타를 맞는 건 둘 중 하나라고 합니다. 타자가 그 코스, 그 구질을 기다려 노려치거나 아니면 실투였거나. 이 공이 실투였구나, 하는 순간에는 어떤 기분이 들죠?

    “굉장히 빨리 알아요. 공이 손을 떠나기 전에. 조그마한 차이에서 정말 많이 달라지거든요. 던지는 순간 아! 하고 느낌이 와요. 공을 놓은 위치가 있어요. 타이밍이 너무 빨랐다 혹은 늦었다, 한 0.001초쯤? 공이 손가락을 스치는 느낌도 다르고요. 가장 큰 건, 던지는 마지막 순간에 손목으로 공을 잡아챌 때 충분히 눌러주지 못했다거나 샜다는 느낌이 들죠. 그러니까 공이 떨어지기 전에 알죠.

    그렇다고 이건 홈런이다 이건 안타다라고 아는 건 아니고요. 그렇게 느끼는 투수는 없을 거예요. 실투가 나와도 타자는 삼진을 먹을 수 있는 게 야구니까요. 반대로 아무리 잘 던져도 안타든 홈런이든 맞을 수 있고요. 더욱이 공이 날아가는 짧은 순간에는 그 생각을 계속하고 있을 수가 없어요. 타자가 스윙을 하든 공을 때리든 바로 반응해야 하니까요. 실투든 아니든 신경 쓰지 말고 다음 공을 생각해야죠.”

    ▼ 결국 그 경기에서 다무라는 마지막 공을 헛스윙하고 한국팀이 승리합니다. 그때도 그렇고 이번 코리안시리즈에서 데이비스를 삼진시킨 마지막 공도 마찬가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절대로 피해가지 않고 정면으로 승부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언론사에서는 오 선수의 피칭을 기사로 만들면서 ‘칠 테면 쳐봐라’라는 제목을 달았더군요. 결정적인 순간에는 도망가는 공을 던지지 않는 이유가 뭔가요.

    “우선 말씀드릴 게, 저는 아직 공의 80~90%는 진갑용 포수의 사인을 따라요. 늘 믿고 던지기 때문에, 코리안시리즈 6차전에서 갑용이 형이 바깥쪽 사인을 보냈을 때 저도 바로 오케이를 했죠.

    그때 타석에 나온 데이비스 선수가 많이 웃었죠. 썩 기분 좋은 웃음은 아니죠(웃음). 근데 그때는 저도 같이 웃었어요. 보신 분도 되게 많아요, 돌부처가 웃었다고. 그전에 감독님이 마운드에 한번 올라와서 저를 많이 진정시켜주셨어요. 제 마음은 3차전, 4차전 때보다도 더 편했어요. 진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지우고 또 지워라’

    ▼ ‘이 경기는 여기서 끝난다?’ 어쭙잖은 에러 하나라도 동점이 될 수 있는데?

    “끝난다는 생각보다는, 진다는 생각을 안 했죠. 점수를 줘도 질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지 않는다고. 마운드에 서면 지금 상황이 얼마나 위급한가,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아요. 타자의 위협적인 모션이나 표정 같은 것도 별로 신경을 안 쓰고요. 감독님도 항상 주문하시는 게 ‘자신 있게 던져라’는 거니까요. 사람들은 흔히 감독님이 마운드에 올라오시면 뭔가 대단한 얘기를 하고 가는 줄 아는데, 정말 특별한 게 없어요(웃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그런 말도 없어요. 자신 있게 던져라, 딱 그거거든요.

    물론 저는 지금 제가 던지는 공의 구질이나 구위나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보완하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고요. 그렇지만 마운드에 섰을 때는 그 부족한 것으로라도 승부를 겨뤄야죠. 프로야구 선수니까요. 자신 있게 던져야 해요.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러자면 많은 걸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 구질이 다양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면승부로 나설 수밖에 없지 않은가, 오 선수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야구장을 1년에 서너 번 오신 관중이라도 제 결정구는 직구라는 걸 알아요. 1년간 같이 경기한 상대팀 타자들은 당연히 잘 알고 있죠. 그처럼 아는 상태에서 경기를 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때마다 싸우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표현하고 싶어요. 상대 타자와 싸우고, 상대와 싸워야 하는 그 상황과 싸우는 거예요.

    자신이 있어야만 해요. 내 볼을 쳐라, 나는 직구다, 나는 빠른 볼이다, 그렇게 던질 수밖에 없어요. 타자가 직구를 노리고 있죠. 그렇지만 직구를 노리는 상태에서 직구를 던져도 코스가 매우 중요하죠. 아무리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좋은 코스의 좋은 직구가 들어가면 타자는 칠 수 없어요. 그렇다면 제게는 선택이 단 하나뿐인 거예요. 제가 가장 잘 던질 수 있는 공을 정말 죽을 힘을 다해 가장 잘 던지는 거죠. 그게 제 싸움이에요.”

    본인은 달변이 아니라지만, 그는 정말 말을 잘했다. 인터뷰 내내 이어진 미묘한 질문에도 그는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고 알기 쉽게 전달했다. ‘단 하나의 공, 그것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잊는다.’ 홈런을 맞든 안타를 맞든 포볼을 내주든, 국가 대항전이든 코리안시리즈 9회말이든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그의 배짱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지우고 또 지워라, 그러면 가장 중요한 것이 남으리라.’ 이건 흡사 선(禪)불교의 가르침이 아닌가. 그러고보니 돌부처라는 그의 별명이 새삼스럽다.

    ▼ 그렇지만 사람인 이상 큰 걸 맞으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코리안시리즈 3차전은 어땠나요? 그날 심광호 선수에게 투런 홈런을 맞았죠. 올해 들어 두 번째 피홈런이었는데요.

    “저한테는 오히려 공부가 됐다고 생각하니까요. 한국시리즈 들어가기 전에 몸살이 나서 운동을 많이 쉬었어요. 컨디션 조절에 크게 애를 먹었죠. 프로에 들어와서 그런 적이 처음이었어요. 늘 몸이 좋은 상태에서 마운드에 섰기 때문에 그런 걸 몰랐어요. 3차전이 중요한 경기였거든요. 만일 그 경기에 졌으면 우승을 못할 수도 있었죠.

    물론 홈런을 딱 맞은 그 순간에는 다리에 힘이 쭉 빠지죠. 그동안 해온 게 다 없어져버렸다는 생각이 들 만큼. 공 하나에 모든 게 그렇게 돼버리는 거죠. 저한테는 정말 다행이었던 건 그 경기를 이겼다는 거예요. 저한테 상처가 될까 걱정하시는 분들은 ‘네가 시나리오를 그렇게 써서 짜릿하게 이길 수 있었다’고 말해주셨어요. 지금 우승하고 나니까 웃으면서 말할 수 있게 됐지만, 그 속에서 저는 얼마나…정말 그 경기를 졌다면 저는 아마 울었을 거예요. 그 정도로 많이 힘들었어요. 이겼으니까 편히 잘 수 있었던 거죠.”

    ▼ 본인의 실투로 경기에서 진 날은 어떤가요? 5월17일 두산전에서는 4실점을 하기도 했는데요. 경기장에서는 돌부처 같아 보이는 오 선수도 숙소에 돌아가면 잠을 못 이루는가요?

    “(한참 여운을 둔 뒤) 밤새 끙끙 앓아요. 생각이 막 겹쳐요. 한쪽에서는 그때 이렇게 던졌어야 했나 그런 생각을 막 하다가, 또 한쪽에서는 지나간 일이니까 잊자 잊자 잊자 막 그러죠(웃음). 그렇지만 가장 큰 건 빨리 야구장에 나가서 빨리 마운드에 서서 공을 던지고 싶다는 거예요. 빨리 나가서 내가 던지는 공을 확인하고, 마운드에서 타자를 상대로 이기고 세이브를 올리고, 그래야 자신감을 더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척이나 확인하고 싶어해요, 저는. 안타를 맞고 홈런을 맞으면 다음날 더 빨리 야구장에 나가고 싶어요. 그 기억을 잊어버리려면 내가 못 던지는 게 아니다, 내 공은 이렇다라는 걸 빨리 확인받아야 하는 거죠. 그래야 이길 수 있는 거니까요.”

    ▼ 그렇게 지고 나면 마운드에서 누군가를 떠올리나요. 죄송하다거나. 감독님이든 부모님이든 헤어진 여자친구든.

    “누구도, 한 번도 떠올려본 적 없어요. 그건 이겨도 마찬가지예요. 오로지 저를 생각하면서 던지는 거예요. 진짜 자신 있게 말씀드리는 건데요, 잘 던졌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자랑스럽다거나 못 던졌다고 해서 누구를 볼 면목이 없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왜 내가 져야 하죠?”

    완벽주의자.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나니 머릿속에는 이 단어 하나가 뚜렷하게 떠올랐다.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실패의 경험을 쉽게 잊지 못하지만, 그는 그 경험조차 다음 성공의 발판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았다. 집에서는 여전히 부모님을 아빠, 엄마로 부른다는 이 스물네 살 청년의 속에는 다른 누구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난공불락의 완벽주의자가 들어 있었다.

    “일상생활에서도 조금 그런 기질이 있어요. 그냥 스윽 지나가도 될 걸 그냥 못 지나쳐요. 운동할 때도 잘 안 된 동작이 있으면 그런 건 꼭 하고 넘어가야 돼요. 이상하게 보실 수도 있지만, 잠자리에서 자고 일어나서 이불을 갤 때도 항상 꼭 똑같이 개놔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꼭 같은 방식으로 접어서, 꼭 그 자리에 꼭 그 상태로. 가면서 비뚤어져 있으면 되돌아와서 풀고 다시 개서 똑바로 해놓고 가요. 분명히 그런 면이 있어요.”

    ▼ 어려서부터 그랬나요.

    “글쎄요, 어려서는 안 그런 것 같아요. 아마 야구를 하면서…확실하진 않지만, 특히 부상을 당하고 재활훈련 하는 동안 그런 게 조금 더 심해진 건 아닐까 생각할 때는 있어요.

    사실 제가 지금 좋은 자리에서 인터뷰할 수 있는 것도, 많은 분이 좋아해주시고 별명도 붙여주시고 하는 것도, 제가 무슨 일이 생겨서 선수생활을 못하게 되면 불과 1~2년 안에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릴 거예요. 그걸 저는 알고 있어요. 언제나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하는 거죠.

    언젠가 마운드에 서는 게 무서워질 수도 있겠죠. 슬럼프는 언제든 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남들보다 그걸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수생활을 못할 것이라고 두렵게 생각한 적은 없어요. 다쳐도 또 재활을 하면 돼요. 해봤으니까요. 물론 엄청나게 고생스럽겠죠. 그렇지만 지금은 더 자신이 있는 게, 프로에 와서 보니까 환경이 너무 좋아요. 관리도 잘하고. 언제든 남들보다 더 빨리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거죠.”

    ▼ 결국 부상의 경험 때문인가요, 그 완벽주의는? 혹은 지금은 두렵지 않다는 건가요?

    “글쎄요…. (한참 여운을 둔 뒤) 아니죠. 그래도 두려워요. 두렵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두렵지 않은 것은 다르죠. 이상한 말 같지만 정말 그렇다고 느껴요. 단순히 부상이 두렵다, 재활의 고통을 겪어봤기 때문에 그 무서움을 안다, 그런 차원은 아니에요. 다른 선수가 연습을 하고 있으면 불안하고 두려워요. 나도 나가서 연습해야 할 것 같고. 물론 무조건 연습을 많이 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지만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게 지금은 또 아마추어 때와는 달라졌어요. 그때는 정말 던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거든요. 안타를 맞고 홈런을 맞아도 스스로 행복하다고 끊임없이 되뇌었죠. 물론 행복해요. 지금도 행복해요. 그렇지만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상대를 이기고 내가 홈런을 안 맞고 안타를 안 맞으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게 바뀌었어요.

    학교 다닐 때는 몰랐지만, 여기는 프로예요. 상대를 이겨야 제가 빛나는 거고 저희 팀이 이겨야 좋은 거고요. 좋은 거라는 건 다른 게 아니에요. 생활이 바뀌는 거죠. 프로니까요. 이 선수를 내가 이기면 나는 좀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는 거예요. 프로는 실력이 있어야 하고 또 그만큼 보상을 받아요. 그래서 어떻게든 이겨야 되는 거예요. 이기면 더 행복하니까, 지금보다도. 똑같이 운동하는데 왜 내가 남들한테 져야 하죠? 질 이유가 없어요.”

    무서운 얘기였다. 한 시즌 최다 세이브 아시아 신기록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다. ‘여기는 승부 하나로 사람이 죽고 사는 동네다, 대학 때처럼 내가 좋아서 던지는 걸로 끝나는 동네가 아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승부의 무서움을 알면 알수록 공을 던지는 어깨에 힘이 더 많이 실리는 건 아닐까.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고 공 하나에만 집중하는 능력이 오승환의 철벽투구를 만들어낸 자기최면이라면, 승부의 무서움을 되새길수록 공을 던지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까. 그는 “승부를 생각한다고 해서 야구장에서 하는 행동이 바뀌면 안 되죠”라고만 짧게 대답했다. 더 캐물을 수 없으리만큼 단호했다.

    중요한 건 지금이다

    그는 경기가 끝나도 모범생이다. 그의 팬 사이트에는 코리안시리즈 우승 뒤에 벌어진 축하파티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샴페인을 터뜨리며 환호하는 그 화면 속에서, 오승환은 대선배인 양준혁 선수의 머리 위에 ‘두 손으로’ 샴페인을 붓는다. 환희의 절정에서도 그는 절대로 자기를 놓지 않는다.

    별다른 취미가 없다는 그는, 굳이 말하라면 독서를 꼽겠다고 했다. 최근에 읽은 책을 묻자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라는 제목을 댔다. 인간관계를 잘 맺는 법에 관한 책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 없이 말하고 행동하지만, 똑같은 상황이라도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남들의 호감을 살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단 한번의 행동으로도 인생이 180。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되도록 교통규칙을 잘 지키려 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에게 바로 싫은 티를 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에는, 운동에 지장을 주는 것 못지않게 남들에게 취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인 측면도 있다고 했다. 바늘 하나 들어갈 구멍이 없어 보이는 이 사내의 말 가운데 그래도 재미있었던 부분은 대학 시절 사귄 여자친구가 여섯 명이라는 것이었다.

    “그게 많은 건가요? 제 또래에서는 그리 많은 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

    지금도 가끔씩 생각나는 여자친구가 있느냐고 묻자 “지나간 사랑은 돌아보지 않는다”고 답한다. 유명해지고 나자 연락을 해오는 친구도 있지만, 별로 마음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난히 여성팬이 많고 가끔은 ‘들이대는’ 이들도 있지만, 그 역시 별달리 신경이 쓰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좋게 봐주시니까 기분이 좋죠. 남자로서는 기분 좋은 일 아닌가요?”라고 되물으며 웃는 게 전부다.

    그에게 ‘20년 후의 오승환’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단순히 야구를 잘하는 게 끝이 아닐 거라는, 어느 정도 위치에 서고 나면 좋은 일도 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은 정도가 전부라고 말했다.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20대일 수 없는, 20대이기에 가능한

    우리는 누구나, 순간마다 승부의 갈림길에 선다. 누구에게나 삶은 마운드만큼이나 고독하다. 가끔은 ‘그까짓 승부가 다 무엇이란 말이냐’며 헛웃음을 짓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누구도 맞설 수 없는 강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2006년의 오승환은, 그 꿈의 절정에 섰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민감한 나이에 겪은 부상의 기억, 끔찍한 재활의 경험은 그에게 다른 모든 것을 끊어내고 오직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남겨준 듯 보였다. 스물넷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철저한 자기통제, 아니 어쩌면 아직 스물넷이기 때문에 가능할지 모를 자기통제였다. 그의 ‘무이일구’에 담긴 비밀이다.

    그와 헤어지고 난 뒤 서울로 돌아오는 밤 기차에 앉아, 문득 10년쯤 후에 그를 다시 한번 인터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스스로 선택하고 단련한 몰입과 집중이 그의 삶과 야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의 말처럼, 10년 뒤에도 기자가 여전히 기자일지, 그가 여전히 야구선수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도 알 수 없기에 생각하지 않겠다는, 아무도 알 수 없기에 내가 지금 던지는 공 하나에만 집중하겠다는 이 무서운 사내. 그의 이름은 오, 승, 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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