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에 시사만화 ‘나대로 선생’을 연재 중인 이홍우(李泓雨·58) 화백은 서슬 퍼렇던 계엄하의 1980년 11월12일을 잊지 못한다. 검열에서 계속 ‘불가’ 판정을 내려 네다섯 차례나 다시 그린 끝에 나대로 선생을 처음 선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화백은 그로부터 27년간 단 며칠의 여름휴가를 제외하고는 ‘나대로 선생’을 한 회도 거른 적 없다.
이 화백이 최근 에세이 ‘나대로 간다’(동아일보사)를 펴냈다. 그의 만화 같은 인생과 더불어 독자의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 있을 추억의 네 컷 만화들이 두루마리처럼 펼쳐진다. 그 속에 박종철 물고문 사건, KAL 858기 폭파 사건, 수서비리, 대구 지하철 참사, 옷 로비 사건, 황우석 파동 등 한때 뜨겁게 달아올랐으나 금세 잊히고 만 사건사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혹자는 대한민국을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하지만, 네 컷 만화에 담을 만한 소재가 늘 넘쳐나는 것은 아닐 터. 이 화백 역시 ‘이러다 내 얼굴이라도 그려 내보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며 애간장 태울 때가 많다. 그런데 마감이 임박한 오후 4시 무렵까지는 어떻게든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니 희한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때론 아이디어 두 개를 들고 고민할 때도 있다. 그럴 땐 “마치 상대 패는 무엇일까 고민하는 도박판의 타짜 심정과 비슷하다”고 한다.
마라톤 선수들이 30km 이상 달리다 보면 모르핀이나 헤로인을 복용했을 때와 같은 도취감과 쾌감을 경험하는데, 이를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한다. 이 화백은 “돌아보면 매일 마감하는 과정 자체를 즐긴 것 같다. 마감을 앞둔 긴장이 주는 전율과 존재감, 그것은 내게 러너스 하이였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