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말하는 다윈, 다위니즘

“글로벌 금융위기는 인간의 본성 오해한 경제학이 만든 비극”

  • 임소형│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9-02-05 1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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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는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2월12일),‘종의 기원’ 출간(11월24일) 150주년인 해다. ‘다윈의 눈으로 본 세상’은 치열하면서도 아름답고, 혹독하면서도 눈부시다. “진화의 개념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 삶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는 명제가 ‘지식 혁명’을 이끌고 있다. 다윈은 죽지 않고‘지금, 여기서’살아 숨쉰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말하는 다윈, 다위니즘
    명함에 동물을 그려 넣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게다. 그것도 까치와 개미, 침팬지, 3가지씩이나.

    “명함을 엄청나게 찍었습니다. 동물 그림이 특이해서인지 한 장 꺼내놓으면 너도나도 달라고 해서 금방 동이 나요. 까치와 개미는 우리 연구실에서 벌써 십수 년째 연구해온 동물입니다. 그중 궁극적인 연구 목표는 침팬지 같은 영장류죠. 영장류 연구가 오랜 꿈이었는데, 최근 막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연구와 자문, 집필 등 여러 가지 일 때문인지 조금은 지쳐 보였다. 하지만 한편으론 약간 들떠 있는 듯했다. 꿈이 이뤄지고 있는 덕분이다.

    “영장류 연구라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동물과 친해지는 데만도 몇 개월은 기본입니다. 야생에서 살며 침팬지를 연구한 동물행동학자 제인 구달 박사도 처음 6개월 동안은 침팬지의 그림자도 못 봤답니다. 그런데 말이죠, 우리 연구팀은 영장류 연구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 돼 벌써 세 가족의 데이터를 모으고 있어요. 이렇게 초고속으로 진행된 영장류 연구는 아마 없을 겁니다. 운이 좋았죠.”

    사람과 가장 유사한 동물인 영장류 연구는 진화생물학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제자인 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가 최근 국내 영장류 연구의 물꼬를 튼 것이다.



    2009년은 진화론을 제안한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태어난 지 꼭 200년이 되는 해. 다윈의 저서 ‘종의 기원’이 나온 지는 올해로 150년이 됐다. 이런 시점에 최 교수의 영장류 연구 소식을 듣게 돼 반갑다.

    그가 ‘운이 좋았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영장류 연구는 벌써부터 선진국이 거의 선점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영장류를 연구할 만한 지역엔 미국과 독일, 영국, 일본 학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깊은 오지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국내 최초 영장류 생태연구

    ▼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영장류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정남쪽으로 내려가면 구농할리문이라는 국립공원이 있어요. 인도네시아의 식물학자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죠. 우리 학생들이 이곳에 놀러갔다가 자바 긴팔원숭이를 발견했죠. 뜻밖에도 이 원숭이를 아무도 연구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기회다 싶어서 인도네시아 식물학자들에게 이 원숭이를 우리가 연구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하는 거예요. 파이 한 조각을 덥석 쥔 셈이죠. 국립공원에 있는 원숭이다 보니 사람에게 거부감이 없어서 연구하기도 수월합니다. 올해부터 논문을 쓸 예정입니다.”

    ▼ 자바 긴팔원숭이는 어떤 동물입니까.

    “영장류에는 침팬지와 고릴라, 오랑우탄, 긴팔원숭이, 이렇게 4가지 동물이 있습니다. 긴팔원숭이는 그중 작은 편이라 소형 유인원으로 불리죠. 다른 3가지는 대형 유인원이고요. 대형 유인원 연구는 외국 학자들이 많이 했습니다. 우리가 이제 뛰어들어봐야 만년 후발주자밖에 안 되겠죠. 그런데 긴팔원숭이는 상대적으로 연구가 덜돼 있습니다.

    침팬지와 오랑우탄은 종(種)이 하나뿐이고, 고릴라도 한두 종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긴팔원숭이는 여러 종이 있죠. 비교 연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중 인도네시아 자바에 있는 자바 긴팔원숭이는 특히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또 자바 긴팔원숭이는 다른 종의 긴팔원숭이와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이 있어요. 논문을 쓰면 학계에서 큰 관심을 끌 것 같습니다.”

    ▼ 자바 긴팔원숭이가 가진 특징으로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원래 긴팔원숭이는 암수가 듀엣으로 노래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1년 정도 관찰해본 결과 자바 긴팔원숭이는 듀엣을 하지 않습니다. 긴팔원숭이라고 해서 모든 종이 다 듀엣을 하는 게 아니라는 논의가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또 긴팔원숭이는 금실 좋은 일부일처제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우리와 같이 연구하는 한 미국인 교수가 예전에 수마트라섬에서 긴팔원숭이를 연구하다가 엄격한 일부일처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어떤 가족엔 암컷이 2,3마리 있고, 또 다른 가족엔 수컷이 2, 3마리 있다는 거죠. 결국 일부일처제인지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말하는 다윈, 다위니즘
    ▼ 자바 긴팔원숭이 연구는 한국이 선점하게 된 셈이네요.

    “서울대 이상묵 교수가 저서 ‘0.1그램의 희망’에서 과학자가 선점한 연구 영역을 ‘부동산’이라고 표현했더군요. 그 표현을 빌리면 구농할리문에 있는 풍부한 동물 종은 우리 연구팀의 부동산이 되는 거겠죠. 그곳을 우리 이화여대 에코과학부의 열대연구소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일본이 지어놓은 연구소를 지금 우리가 빌려 쓰는데, 좀 비싸서 최근엔 아예 근처 마을의 집을 한 채 빌렸습니다. 열대생태전진기지처럼 말이죠. 오랜 꿈이 현실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굴드 vs 도킨스

    긴팔원숭이는 언어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특히 관심을 갖는다. 암수가 듀엣으로 노래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언어는 최근까지도 진화생물학계에서 논쟁의 중심에 있다. 언어가 다윈이 말한 적응의 산물이냐, 아니냐를 놓고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 언어가 적응의 산물인지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젠 적응 쪽이 판정승한 거 아닙니까. 사실 인터뷰 전까지만 해도 스티븐 제이 굴드를 통렬히 비판하는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 양반 살아생전에 진화생물학자들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후 진화론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했다. 하지만 그 뒤로 다윈의 이론을 수정, 보완해 각자의 방식으로 체계화하려는 진화생물학자가 속속 등장했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미국 하버드대의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다. 그는 2002년 5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최 교수는 미국에서 공부하던 때 만난 굴드 교수를 떠올렸다. 그에게 굴드 교수는 ‘명석한 고집불통’으로 기억되는 것 같다.

    “그렇게 머리 좋은 사람 없을 겁니다. 몇 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죠. 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 굴드 교수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100명이 앉을 수 있는 강의실이었는데, 복도까지 수백 명의 학생이 줄을 서서 기다렸죠. 이공계뿐 아니라 인문계 학생들까지 왔으니까요. 굴드 교수의 강의는 화려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거의 셰익스피어를 연기하는 배우 수준이거든요. 한번은 굴드 교수가 강의 도중에 미국 학부생과 라틴어로 10여 분 동안 문답을 주고받는데, 전혀 못 알아들으니 너무 화가 났어요. 가방 챙겨서 벌떡 일어나 나가버렸죠. 굴드 교수가 뒤통수에 대고 다시는 자기 수업에 들어오지 말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더군요.”

    ▼ 굴드 교수를 비판하는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중은 굴드 교수를 진화론의 대표주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굴드 교수가 잘못 얘기한 점도 많아요. 사람들을 압도하고자 과거에 자신이 했던 주장을 뒤집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굴드 교수는 암을 두 번 앓은 사람입니다. 처음엔 혈액암이었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굴드 교수를 싫어한 사람들이 암에 걸린 것처럼 쇼 했나 하는 반응을 보일 만큼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음으로 폐암에 걸렸을 땐 손쓸 틈도 없이 세상을 떠났죠. 진화생물학자들은 굴드 교수에 대해 애증이 있습니다. 기가 막힌 학자였던 건 사실이에요.”

    굴드 교수와 함께 현대 진화론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학자가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으로 유명한 영국 옥스퍼드대의 리처드 도킨스 교수다. 진화학자들은 진화의 속도와 단위, 세기 등 여러 측면에서 굴드 측과 도킨스 측으로 나뉘어 논쟁을 벌여왔다.

    ▼ 이쯤 되면 도킨스 교수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굴드 교수를 학문적으로 공격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입니다. 도킨스가 칼을 뽑은 뒤부터는 일반 대중도 진화학계에서 뭔가 일이 났나 싶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굴드 교수가 세상을 떠난 겁니다.”

    진화론의 양대 고수가 펴낸 책들은 국내에서도 널리 읽혔다. 그만큼 진화론이 다른 과학 분야의 수많은 이론 가운데서도 일반의 관심을 많이 받는다는 증거다.

    인간은 지금도 진화한다

    ▼ 굴드 교수의 강의에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학생들도 많이 찾아왔다고 했죠. 일반인이 그렇게 진화론에 관심이 많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반대로 말하면 진화론처럼 공격을 많이 받는 과학 분야도 드물죠.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뭔가 허술해 보인다는 점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게 바로 진화론’이라고 얘기하는 학자도 있으니까요. 단순하고 간결한 이론이지만 파고 들어가다 보면 엄청난 매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진화론을 얘기하지만 그중 약 90%는 잘못된 진화론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생물학과 교수들 중에서도 현대 진화론을 그 옛날 19세기 진화론으로 이해하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생물학의 근간이 다윈의 진화론임에도 진화론을 전혀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생물학자가 될 수 있고, 이미 돼 있어요. 참 애석한 일이죠.”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말하는 다윈, 다위니즘

    국립과천과학관에서 5월10일까지 열리는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 기념 ‘다윈전.’

    ▼ 대학의 교과과정에 진화론이 있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없는 대학이 많죠. 있어도 제대로 이해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드뭅니다. 서울대에 있을 때 진화론 과목을 나와 다른 교수님이 함께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다른 얘길 하니까 학생들이 무척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진화의 최첨단 논쟁에 깊숙이 빠져들어 있지 않으면 자칫 아주 다른 얘기를 할 수 있어요. 약간만 방향이 어긋나도 말이죠.”

    ▼ 일반인이 잘못 알고 있는 진화의 개념은 어떤 게 있습니까.

    “인간이 진화를 멈췄다고 생각하는 게 대표적이죠. 굴드 교수가 바로 그런 궤변을 늘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시골이 아닌 도시에 살고 있으니 ‘자연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진화가 진행되지 않는다고들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자연선택이란 말에서 ‘자연’은 도시가 아닌 대자연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인공, 인위의 반대 의미인 ‘자연스러운’이라는 뜻이 강한 거죠. 그 어느 누구도 진화를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윈이 얘기한 진화의 4가지 조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그는 변이와 유전, 경쟁, 자손을 진화의 4가지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말했다. 변이가 일어나야 하고, 그 변이가 다음 세대로 유전돼야 한다. 자원이 한정돼 있어 생물은 경쟁할 수밖에 없다. 또 서로 다른 개체가 적응에 따라 누구는 자손을 많이 낳고 누구는 덜 낳게 된다는 것이다.

    “어려서 죽는 아기도 있고, 살아남은 사람은 경쟁을 거쳐 결혼을 해 서로 다른 수의 자손을 낳습니다. 그러면 다음 세대 개체군의 유전자 빈도가 변하게 되죠. 이런 걸 멈추려면 세상의 모든 인간이 살아남아 모두 번식을 하고 똑같은 수의 자식을 동시에 낳아 그들도 다 죽지 말아야 합니다. 불가능한 얘기죠. 진화는 언제나 벌어지고 있습니다.”

    생물이 진화한다는 개념은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친숙하다. 그러나 인간이 진화의 꼭대기에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의견이 여전히 엇갈린다. 진화가 진보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최 교수의 스승인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진화는 진보라고 생각한다.

    ▼ 교수님은 어떤 의견입니까.

    “진화는 절대로 진보가 아닙니다. 현재 진화학계에서는 진보가 아니라는 쪽과 진보라는 쪽의 비율이 7:3 정도입니다. 내가 얘기하는 진보는 ‘의지적인 진보’가 가능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기린이 고개를 계속 내밀다 보니 길어졌다는 식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는 거죠. 무작위로 유전자 조합이 나타나 진화가 이뤄지는 것이지, 더 나아지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목적이나 의지로 진화하는 건 아닙니다.”

    ▼ 교수님은 진화의 단위를 유전자라고 보는 의견입니까.

    “맞습니다. 다수준 선택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죠. 시간이 가면서 다수준 선택론이 무너지는가 싶으면 다시 나오고. 아마 이 논쟁도 오래갈 것 같습니다.”

    도킨스 측 진화학자들은 자연선택이 유전자 수준에서 작용한다고 주장해왔다. ‘생명의 진짜 주인은 유전자이며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기계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동물의 각종 행동은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한 전략으로 진화해왔다는 것. 이에 대해 굴드 측은 자연선택이 개체나 집단처럼 유전자보다 높은 수준에서도 작용한다고 반박한다. 이것이 바로 다수준 선택론이다.

    ▼ 유전자 선택론을 지지하는 위치에 서 있다면 유전자 하나하나를 조작해 만드는 유전자변형작물(GMO)이 진화에 미칠 영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유전자를 조작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진화는 어떻게 될까요. 이게 바로 진보 논란의 핵심입니다. 유전자 조작으로 더 나은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에겐 미래를 전망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죠.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기가 막힌 맞춤 유전자가 개발됐다고 칩시다. 이 유전자만 갈아 끼우면 20년은 더 살 수 있다고 말이죠. 가격은 4000만원입니다. 20년 동안 4000만원 못 벌겠어요? 너도나도 모두 새 유전자로 갈아 끼울 겁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분명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전 국민이 똑같이 이 유전자를 갖게 됐어요. 중국에서 하필 이 유전자를 공격하는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요. 개체 수준에서 보면 진보했지만 개체군 수준에선 멸종의 가능성을 만든 겁니다.

    GMO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은 생산량이 늘어 도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이러스가 나타날 경우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아직 난 GMO에 대해 무조건 찬성이나 반대 의견이 아니지만 어쨌든 다양한 고찰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경제위기 진화론으로 풀어야

    다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사회 곳곳에서 진화론을 생물학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많다. 진화심리학이나 진화경제학 등은 이미 학문의 한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는 분위기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말하는 다윈, 다위니즘

    최재천 석좌교수의 저서 및 역서.

    ▼ 이런 흐름이 진화론 확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진화생물학자들은 그동안 진화론을 사회 여러 현상에 적용하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습니다. 하지만 학계에선 그런 시도가 주류라고 생각하지 않는 의견이 많았죠. 올해가 지나면 양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존 이론이나 학문, 제도 등을 통해 해결되지 않던 문제들이 진화와 유전의 관점에서 보면 명확히 해결되기도 합니다. 진화론이 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몇 년 전 법조계와 여성계가 서로 다투던 일이 있었습니다. 여성계는 여성 살인자의 형량이 남성 살인자보다 더 무겁다며 성차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법조계는 여성 살인자의 죄질이 더 나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반박했죠.”

    최 교수는 연구실의 책장에서 책을 한 권 꺼내 들었다.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살인의 진화심리학.’조선시대 일어난 살인사건 문서를 전문가에게 부탁해 해석한 다음 유형을 분석해 직접 쓴 책이다. 18~20세기 살인사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살인사건의 주종을 이루는 건 치정 문제입니다. 남자가 자기 여자가 부정을 저지른 것 같다고 여길 때 여자나 상대 남자를 죽인 거죠. 남자가 순간 욱해서 상대 남자를 쳤는데 책상 모서리에 부딪혀 죽는다든지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여자가 남자를 죽인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죽이려면 치밀하게 기획해야 합니다. 욱해서 죽이려고 덤비면 힘이 달려 당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한 번에 확실하게 일을 처리해야 해요. 오래 계획하고 냉혈하게 죽이기 때문에 여성 살인자의 죄질이 나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여성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걸 대부분 자책하며 받아들이죠.

    여성 살인자의 형량이 높을 수밖에 없는 진화심리학적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런 고찰이 법에 반영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법을 갖고 판결을 내리니 문제가 생기는 거죠.”

    ▼ 최근의 경제위기도 진화적으로 설명이 가능한가요.

    “경제학의 지평 자체가 변하고 있습니다. 이번 금융위기가 계기가 된 거죠. 미국 대학의 신임교수 중엔 행동경제학이나 신경경제학자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행동경제학, 신경경제학은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경제학의 흐름이다. 전통적인 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충동구매처럼 합리적인 사고로는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이런 점이 바로 전통 경제학의 한계로 최근 지적되고 있다.

    “기존 경제학은 경제활동의 주체인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학문이었습니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경제의 주체인 인간이라는 동물의 행동과 심리에 관한 과학적 분석을 결여한 경제학이 논리의 한계에 부딪힌 것이죠. 2002년 미국 프린스턴대의 심리학자인 카네만 교수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죠. 전통적인 경제학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경제학계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 진화를 경제학에 접목하는 연구를 해볼 계획은 없습니까.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남았다면 아마 진화경제학자가 돼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주니어펠로로 3년 정도 있었습니다. 주니어펠로로 뽑히면 학자로선 굉장한 영광입니다. 뽑히는 순간 여러 대학에서 러브콜을 받고, 3년 동안 조교수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으니까요.

    주니어펠로에 지원할 때 연구계획으로 경제학과 진화생물학을 접목시키는 주제를 써 냈습니다. 경제학의 ‘경쟁 가능한 시장 원리’라는 이론을 동물행동 연구를 통해 산업경제를 설명하는 데 적용해보려는 시도였어요. 그게 벌써 10년이 넘었으니 서울대로 부임하지 않고 미국에 남아 연구했으면 내가 진화경제학의 선두주자가 됐을지 모를 일입니다.”

    ▼ 동물행동 연구를 산업경제에 적용한다니 흥미롭습니다.

    “독특한 방식으로 번식하는 새가 있습니다. 암컷이 오면 여러 마리의 수컷이 저마다 춤을 추는 등 갖가지 개인기를 발휘해 암컷을 유혹하죠. 암컷은 둘러보다가 맘에 드는 수컷을 골라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으면 데려다 혼자 키워요. 다윈의 성선택론에 꼭 맞는 시스템이죠. 이런 행동을 보이는 새가 20종이 넘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암컷과 실제로 짝짓기를 하는 수컷은 몇 마리에 불과합니다. 잘난 수컷이 명확하다는 얘기가 되죠. 그런데 암컷들이 누굴 선택할지 하루 종일 결정을 못할 때도 있어요. 수컷들이 비슷비슷하단 얘기겠죠.

    ‘경쟁 가능한 시장 원리’에서 말하는 시장은 진입이나 퇴장이 어렵지 않은 구조입니다. 앞으로 이런 구조의 산업이 생겨날 거라는 예측입니다. 이 원리에서는 비행기 회사를 예로 들었습니다. 항공산업은 비행기를 빌려서 공항세를 내고 들어가면 됩니다. 다른 항공사보다 싸게 해주면 승객을 모을 수 있어요. 큰돈이 들지 않죠. 한 공항에서 사업을 하다 잘 안 되면 다시 다른 공항으로 옮겨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앞서 말한 새의 경우 무리를 지어 암컷에게 구애를 하러 다닙니다. 수컷들은 자기가 어느 무리에 들어갈지를 스스로 결정해요. 이 무리에 섞여봤다가 아니다 싶으면 다른 무리로 옮겨가죠. 그러다 보면 결국 비슷비슷한 수컷끼리 모이게 됩니다. 시장 구조와 새들의 번식 행동 구조가 뭔가 비슷해 보이지 않습니까. 둘을 연결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요”

    통섭형 인간으로의 진화

    요즘 각광받는 인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재다능’이 아닐까. 대학 입시나 기업 공채 면접에서 성격이나 봉사활동, 취미생활 등이 평가에 영향을 미칠 만큼 사회가 다양한 능력을 갖춘 사람을 선호하고 있다. 이런 흐름 역시 진화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최 교수는 진화보다는 ‘통섭’을 들었다. 통섭은 최 교수가 스승인 윌슨 교수의 저서 ‘Consilience’를 번역하면서 국내에 처음 소개한 말이다. 분야 간 경계를 뛰어넘는 ‘대통합’을 뜻한다.

    “과거엔 전문인을 선호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들은 점점 더 복합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칼로 썰 듯이 둘로 나뉘는 게 아니에요. 21세기가 ‘통섭형 인간’을 원하는 이유입니다. 대통령은 대운하 논란이나 쇠고기파동을 토목이나 통상의 문제로 보는데, 사실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거든요. 그 복잡한 네트워크를 이해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 시대는 자기 전문분야는 분명히 있되 다른 어떤 분야든 뛰어들어 일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를 원하고 있습니다.”

    ▼ 통섭형 인간을 선호하는 게 다수준 시각에서 보면 사회가 진화하는 방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생명체가 살아남고 번식하려면 여러 현상에 대해 복합적으로 적응해야 합니다. 단 한 가지 측면에서 완벽히 적응했다고 해도 다른 적응이 이뤄지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죠. 우리 인간이 과거 한 가지만 잘하면 되는 전문인으로 잘살 수 있었던 건 수명과 관계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예전엔 30~40년 일하면 됐으니 한 가지만 잘하면 충분했어요. 하지만 이젠 90~100년을 살아야 합니다. 잘하는 것 하나 갖고는 부족합니다. 기업이 통섭형 인간을 찾기 전에 스스로 먼저 통섭형 인간이 되지 않으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거죠. 머지않아 직장인들이 직종을 평생 5번 바꾸게 될 거라는 예측도 나왔습니다. 대학에서 한 가지 전공만 열심히 하면 첫 직장을 구하는 데는 유리하겠죠. 하지만 이후엔 어떻게 될까요. 15~20년 공부해서 단 20년 먹고살 수 있는 직업으로 끝낸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최 교수는 이런 이유로 수학(修學)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연과학과 인문학 같은 기초학문이 수학능력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결국 다양한 인재를 선호하는 흐름을 진화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겠네요. 최근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침팬지의 화석을 비교한 결과 호모사피엔스 화석에서만 고령화의 흔적이 나타난다는 연구가 있었습니다. 호모사피엔스가 애당초 고령화를 작심한 종이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다른 암컷은 자기 새끼 기르기 바쁜데, 호모사피엔스 암컷은 나이 든 암컷에게 새끼를 맡길 수 있어 시간적 여유가 생겼답니다. 그래서 문자를 개발하는 등 다른 활동을 하면서 만물의 영장이 됐다는 거죠. 인간의 유전자에 내재된 고령화가 요즘 들어 본격적으로 현실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진화로 통하는 세상사

    최근 우리 사회에선 진화생물학자가 흥미롭게 여기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말이다. 국제결혼이 늘고 있다는 것. 최 교수 역시 다문화 가족의 증가에 관심이 많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지금처럼 피가 섞인 시대가 있었나 싶어요. 국내 농촌은 거의 절반이 국제결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한국도 빠른 속도로 다인종국가로 변하고 있습니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흥미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죠. 국지적으로 일어나던 진화가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이 상태로 계속 가면 언젠가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을 텐데, 앞으로 어떤 결과를 빚을까 상당히 귀추가 주목됩니다.”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내내 최 교수는 쉬지 않고 진화를 역설했다. “너무 많이 떠들었다”며 너털웃음을 지으면서도 그는 “감히 세상의 그 무엇도 진화를 통하지 않고는 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성화장품 시장이 여성화장품 시장보다 커질 겁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말이죠. 여성들은 더 예뻐지기 위해 화장을 하지만, 남성들은 살아남기 위해 화장을 할 겁니다. 그런 시대가 곧 올 겁니다.”

    다윈에 대한 높은 관심은 탄생 200주년이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진화론은 생물학의 범주를 넘어 ‘지식 혁명’을 이끌고 있다. “진화의 개념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 삶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고 최 교수는 말한다. 그의 조언대로 직종을 5번 바꿀 준비를 해야 한다면, 남성화장품 관련 직업도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하지 않을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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