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호

‘중도친서민 선봉’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쓴소리

“청와대 참모들 너무 자만, 경고신호 무시했다”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10-06-24 16: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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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서민정치, 현장에서 안 먹히고 있다
    • 공직사회 가장 큰 문제점은 탁상행정과 부패의식 둔감
    • 6·2지방선거는 민심 제대로 반영, 나라 발전에 지장 없다
    • 새 시대, 새 국민 요구에 맞는 혁명적 변화 없으면 한나라당에 미래 없다
    •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한테 지지받는 정당 돼야
    • 측근들, “은평을 보선 나가면 죽는다” 만류하지만 …
    ‘중도친서민 선봉’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쓴소리
    파란색 얇은 점퍼에 청바지를 입은 이재오(李在五·65) 국민권익위원장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손에는 아이폰을 들고 있었다. 일찍이 트위터를 사용해온 그인지라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는 타고난 활동가다.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활기가 넘치고 현장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는 지난해 9월 국민권익위원장에 취임한 이후 매일같이 민원현장을 찾아 지역주민들의 고충을 해결해왔다. 주변에서 “이재오 캐릭터에 딱 맞는 자리”라는 얘기가 나왔다.

    6·2지방선거 이후 여권은 선거 참패의 원인을 놓고 내홍을 겪고 있다. 이런 마당에 그의 거취가 관심을 끄는 것은 7월 중 치러질 한나라당 전당대회와 서울 은평을 보궐선거 때문이다. 전당대회의 경우 불출마를 선언하긴 했지만 여권 실세로 통하는 그인 만큼 일정한 노릇을 하리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또한 그의 보선 출마 여부는 한나라당은 물론 여권의 권력구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인 그가 2008년에 이어 또다시 낙선한다면 개인은 물론 여권에도 치명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폰과 트위터

    인터뷰는 아이폰 얘기로 시작됐다. “보름 전에 구입했는데 그날 새로운 버전이 출시되는 바람에 김 팍 새버렸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언제 보아도 그의 웃음은 싱그럽다. 그는 웃을 때 이마의 굵직한 주름을 비롯해 얼굴의 모든 근육이 확 풀린다. 그래선지 지난해 출간된 그의 자서전 제목이 ‘함박웃음’이다.



    “아이폰을 해보니 참 재미있더라. 그런데 이거 하면 다른 일을 못하겠더라고. 자꾸 들여다보게 되니. 백수 비슷한 사람이나 하는 거지…(웃음) 일정한 직업이 있는 사람은 곤란하겠어.”

    그는 아이폰으로 트위터도 하는데 속도가 매우 느리다. 차 안에서 한 문장 입력하면 10㎞가 지나간다는 것이다. 현재 그의 트위터 추종자(follower)는 2000명쯤 된다고 한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부패방지와 국민의 권리보호 및 구제를 위해 과거의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국가청렴위원회,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 등이 합쳐져 2008년 2월 새로 출범한 기관이다. 권익위는 최근 ‘청렴韓세상 만들기’ 범국민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권익위 직원들과 대학생 청렴홍보단이 시민들에게 ‘청렴韓세상’ 배지를 달아주고 홍보물을 나눠주는 행사다. 5월7일 서울역 광장에서 발대식을 갖고 주요 기차역과 강남버스터미널에서 1차 캠페인을 전개했다.

    6월10일에 시작한 2차 캠페인은 부산 대전 광주 인천 춘천 등 5개 도시에서 동시에 전개됐다. 이 위원장은 10일엔 부산에서, 11일엔 대전에서 공직유관단체 간부들에게 청렴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그의 반부패 청렴 특강은 55일간 75회에 걸쳐 실시됐다. 총 수강자는 2만7000여 명. 고위공직자가 1만여 명이고 일반공직자와 일반인은 각 8000명이 넘는다.

    ▼ 강의를 듣는 공무원들의 반응이 어떠했나.

    “억수로 좋아하지. 강의내용이 곧 내 인생 살아온 얘기거든. 내 삶이 곧 한국 현대사니까. 해방둥이로 태어나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정변, 5·18민주화운동을 겪은 얘기와 국회의원 돼서 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에서 느낀 점을 내 삶과 결부해 얘기를 하니 다들 재미있어 한다. 듣기 전엔 삐딱하게 여기다가 다 듣고 나서는 엄청 좋아하지. 자기들 말로 광팬이 됐다고 그래. 강의 끝나고 화장실 가면 악수하려고 쫙 서 있다니까.(웃음)”

    ▼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이 정권이 인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 위원장 혼자 인기를 누리는 것 같은데, 그건 좀 문제가 있지 않나.

    “내가 자꾸 (인기를) 끌어올리니까. 친서민 중도실용을 외치는데, 장관들 면면을 보면 거기에 어울리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 그런데 유일하게 촌스럽게 생긴 게 하나 끼어 있으니까.(웃음) 나는 또 실제로 만날 돌아다니면서 오래 묵은 민원 해결하니까 사람들이 좋아하지. 언론에선 나를 권력의 실세라고 하지만 정권 바뀌고 내가 나를 위해 권력을 쓴 건 요만큼도 없잖아. 다 국민 애로사항을 해결하려 쓴 거지.”

    미풍양속과 부패

    ‘중도친서민 선봉’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쓴소리

    아이폰으로 트위터를 하는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

    취임 후 그는 ‘모든 민원은 현장에 답이 있다’는 표어를 내걸고 전국을 돌았다. 그간 414곳을 방문했는데, 그중 벽지와 농어촌 및 취약계층(장애인·독거노인·다문화가정 등) 주거시설이 150개소다.

    ▼ 그토록 자주 현장을 찾으니 이 정권에 대한 일반 국민의 정서를 잘 알 수 있겠다.

    “잘 안다. 지역민들이 애로사항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좌담회나 간담회를 통해 정부에 대한 불만도 얘기하고 비판도 하니까.”

    ▼ 가장 큰 불만이 뭔가.

    “서민 어렵다는 거지. 경제지표가 좋아졌다는 건 말뿐이다. 경제가 좋아져 나라가 경제대국 15위 안에 든다고 하지만 실제로 서민은 살기 어려우니까.”

    ▼ 늘 그런 괴리가 있는 것 같다. 정부에서 홍보하는 수치와 현장의 수치 간에.

    “물론 선진국에도 그런 괴리는 있다. 문제는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생활고를) 극복할 수 없는 사회적 조건이다. 우리나라도 그게 큰 문제다. 농촌에 가보면 땅도 있고 농사지을 거리도 있지만 실제로 농사짓기가 어려운 환경이 많다. 일손도 없고. 젊은 사람들은 점차 떠나지, 농산물 가격은 들쭉날쭉하지, 외국농산물은 자꾸 들어오지…. 우리나라는 정부가 진짜 농촌에 돈 많이 퍼붓는다. 이런 나라가 세계에 없다. 무슨 정보화마을이다, 지도자마을이다 해서 각 부처에서 돈이 쏟아져 들어간다. 문제는 그러한 정부의 지원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능력을 가진 지도자가 없다는 거다.”

    ▼ 취임한 지 9개월째다. 공직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뭐라 생각하나.

    “첫째는 여전히 남아 있는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이다. 탁상행정을 현장행정으로 바꾸면 국민 고충의 70% 이상을 해결할 수 있다. 탁상행정을 하다 보니 각종 제도와 법규가 녹이 슬어버렸다. 현장행정을 하면 그 녹을 벗길 수 있다. 책상에 앉아 서류를 보면서 ‘이거 안 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장에 가보면 안 해주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면 되게 해주는 법규를 찾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공무원의 가장 큰 문제가 위로 올라갈수록 현장을 기피하고 대중을 멀리하는 거다. 소수 엘리트 속에 둘러싸여서 자기 권위만 찾는다. 그러니 관료주의가 되는 거다.

    둘째는, 부패에 대한 공직자들의 인식이 아주 원시적인 점이다. 부패와 미풍양속을 구별하지 못한다. 상급기관에서 높은 사람이 내려오면 으레 하급기관 사람이 밥 사고 술 사는 걸로 안다. 그 비용은 개인 돈이 아니라 업무추진비에서 나간다. 상급기관 사람은 출장비를 갖고 내려간다. 그걸로 밥 사먹고 술 사먹으면 된다. 관폐 끼치지 말고. 그런데 하급기관이 상급기관에 밥 사고 술 사주고 차비 주는 걸 미풍양속으로 여긴다. 사실 이게 부패거든. 산업화를 거치면서 그런 부패 문화가 공직사회에 만연해 있다. 이것을 청산하고 탁상행정으로 해결 안 되는 국민의 고충을 현장행정으로 해결하면 금방 선진국 되는 거지.”

    “검사 비리, 검찰에 맡겨선 안 돼”

    그는 역대 정부에서 해결하지 못한 민원을 순식간에 해결해버렸다. 전국 21개 시군을 방문해 총 1251건의 고충민원을 상담·해결했다. 506건의 정책 건의와 제도개선 요구를 발굴해 그중 473건을 처리했다. 이른바 이동 신문고다.

    주요 민원해결 사례를 보자. 속초비행장 인근 건축물의 고도제한 완화 문제를 48년 만에 해결했고, 시공허가가 나지 않아 15년간 불법거주 상태로 방치됐던 부산 남산동 빌라 입주민들의 고충을 해소했다. 이밖에 전남 목포시 연산동 백련마을 택지개발사업 조기시행, 88올림픽고속도로 방음벽 추가설치 및 소음피해 방지대책, 전남 순천시 철도횡단 도로 및 육교 설치, 전주 행치마을 앞 전라선 철도 교량화 등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문제를 많이 해결했다. ‘해결사’ ‘암행어사’라는 별명이 붙을 만했다.

    ▼ 다른 사람이 아니고 이재오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평가도 있다. 만약 위원장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다른 위원장도 나처럼 열정을 갖고 정말 해야겠다고 달려들었다면 해결했을 거다.”

    ▼ 권력실세라 생각하니, 공무원들이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게 아닌가. 말 안 들었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어서.

    “그건 아니다. 중앙정부의 기관장이 내려가면 하위기관 기관장들이 민원현장에 오게 돼 있다.”

    ▼ 역대 위원장 중에 이 위원장처럼 현장에서 민원을 해결한 사람이 있었나.

    “이렇게 하는 건 별로 없었지. 다들 공무원 스타일로 했으니까. 나는 공무원 스타일이 아니잖은가. 권익위원회법 45조에 현장조정회의라는 게 있다. 민원 처리에 대해 관계기관의 장(長)들이 모여 합의하면 민법상 효력이 있다. 그걸 근거로 내가 활동하는 거지.”

    ▼ 고위공직자들의 부패나 비리를 조사하는 게 쉽지 않다. 최근 검찰 스폰서 파동이 있었다. 지난해 검찰총장 내정자가 그런 일로 물러나기도 했고. 힘 있는 사람들의 부패를 척결하는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해봤는지.

    “내가 들어가기 전부터 권익위가 고민하던 문제다. 권익위에 고위공직자 비리에 대한 고발권이 있잖은가. 부패신고가 들어오면 고발해야 한다. 권익위원회법에 규정된 고위공직자는 국회의원, 판·검사, 장·차관, 시도지사, 경무관 이상 경찰관, 준장 이상 장성 등이다. 그런데 권익위엔 고발권만 있지 수사권이 없다. 잘못하면 우리가 무고죄로 걸릴 수도 있다. 그래서 권익위가 기초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 조사권 정도는 가져야 한다는 게 한국공법학회의 의견이다.”

    그는 “검사 비리를 검찰에 맡겨선 안 된다”며 고위공직자의 비리 수사를 전담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전(前) 정권에서도 적극 추진했는데 한나라당이 장악한 국회 법사위에서 반대해 무산된 것 아닌가? 검찰도 그렇고.

    “한나라당에 검사 출신 의원이 30명이 있는데… 지금도 그렇다. 또 검찰이 엄청 반발하지 않는가. 자기네 권력을 빼앗기는 줄 알고.”

    ▼ 그러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여당 내에서 자꾸 논의해야 한다. 불가능하다고 문제제기를 안 하면 영원히 덮인다. 이번에 스폰서 검사 파동을 계기로 검찰이 기소권 일부를 내놓겠다고 하지 않았나.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만든다는 얘기가 자꾸 나오니 검찰이 기득권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계속 노력해야 한다.”

    “민심이 한나라당을 견제한 것”

    그는 업무추진비(판공비)를 안 쓰는 것으로도 화제가 됐다. 장관들은 보통 업무추진비로 한 달에 수백만원씩 쓴다. 1000만원 이상 쓰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는 업무추진비로 한 달 평균 90만원을 쓴다는 것이다. 쓰지 않은 업무추진비를 모아 지난해 연말 국·실장들에게 직원 회식비 하라고 나눠줬다고 한다. 올해 들어와선 과장 13명에게 나눠줬고.

    ▼ 너무 안 써도 문제 아닌가. 공적으로 쓰라고 나오는 돈인데….

    “그게 말하자면 장관들 로비하라고 나오는 돈 아닌가. 국회 가서 로비하고 언론에 홍보도 하라고. 나는 내 몸으로 홍보 다한다. 국회의원들과 밥 먹으면 자기네가 돈 낸다. 골프도 못한다. 특별히 돈 쓸 데가 없다.”

    ▼ 장관급이면 품위유지 비용이 필요하지 않나. 어디 가서 봉투도 줘야 하고.

    “나는 버스,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격려금은 거의 안 나간다. 지금 그 법을 아예 없애려 한다.”

    ▼ 그게 원래 윗사람이 생색내는 거 아닌가. 자기 돈도 아니면서.

    “그것도 일종의 부패지. 물론 양로원이나 장애인단체에 주는 건 다르다. 그러나 자기홍보나 자기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격려금 주는 것은 부패다.”

    ▼ 국무회의 때 그런 얘기를 좀 하나.

    “밖에서 강연하면서 하지. 국무회의에서 그런 얘기하면 자기가 뭐 실세라고, 목에 힘들어갔네, 어쩌고 할 것 아닌가.”

    돈 문제에 관한 한 그는 확실히 예사롭지 않은 면이 있다. “재산 많은 사람이 국무위원 하면 안 된다”는 그의 소신은 이명박 정권의 이미지에 영 어울리지 않는다. 따로 노는 느낌이다. ‘가난하더라도 정의롭게 살자’라는 ‘촌스러운’ 가훈(家訓)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 이 정부에서 가장 친서민적인 활동을 하는 고위공직자로서,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라 할 만한 6·2지방선거 결과에 상당히 실망했을 것 같은데….

    “국민권익위원장으로서 보기에 민심이 제대로 반영된 선거였다. 중앙권력을 갖고 있는데 지방권력까지 가지면 오만해지잖은가. 적당히 야당 단체장도 나와야 권력이 긴장도 하고 견제도 받는 것이다. 나는 크게 봐서 지방선거 결과가 나라 발전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본다. 각 정당의 이해관계로 따지면 누가 졌다 이겼다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인 것이다. 또 지방권력을 몽땅 다 준 것도 아니잖은가. 전체 득표율을 보면 한나라당이 1~2% 이겼다.”

    ▼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참패 아닌가. 정치권이나 언론의 해석도 그렇고.

    “참패라기보다는 진 거지. 민심이 한나라당을 견제한 거지.”

    ▼ 견제를 한다는 건 불만이 많다는 뜻 아닌가. 민심이반 아닌가.

    “당연하다. 그 점에 대해 한나라당은 패배를 받아들이고 겸허하게 수용하는 자세를 갖춰야지. 정부도 반성해야 한다. 친서민 정책 펴고 경제 살리기와 안보에 주력하는데 왜 국민이 등을 돌렸는지.”

    ▼ 6·2지방선거 결과를 MB 대 반(反)MB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건 아니지. 여전히 대통령 지지도는 높으니까.”

    ▼ 4대강이나 세종시 등 주요 추진사업에 대한 반대여론이 표출된 게 아닌가.

    “실사구시(實事求是) 차원에서 봐야 한다.”

    ▼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추진방식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세종시 문제도 마찬가지고.

    “그건 반성할 점도 있다.”

    ▼ 세종시 문제는 정부안대로 추진하는 게 옳다고 보는가.

    “국회로 넘겨줬으니 국회가 가부간에 결정하겠지.”

    ▼ 6월7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많은 의원이 선거 패인으로 4대강과 세종시 문제를 거론했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 천안함 사건을 북풍으로 키운 것에 대한 부작용도 꼽았고.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선거는 정당에서 후보를 공천해 치르는 게 아닌가. 선거결과는 그 후보에 대한 심판이고.”

    ▼ 의원들은 민심과의 괴리가 패인이라며, 청와대와 정부가 그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선거 끝나면 늘 당과 정부 간에 책임 공방이 벌어진다. 우리가 야당 할 때 여당은 안 그랬나. 그래서 지방선거 한 번 하면 여당 지도부가 바뀌지 않던가.”

    ▼ 막연하게 그런 얘기가 나올 수 있다고 할 게 아니라 구체적인 평가를 해달라.

    “그런 평가가 옳다 그르다 말할 수도 없고, 말할 필요도 없다.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게 정치인의 고유 임무다. 민심을 반영하는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졌으니 의원들이 그런 요구를 하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 비판내용에 대해선?

    “내용이 옳고 그른지는 따져봐야 할 점이 있다. 정부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엔 뭔 소리냐, 할 수도 있잖은가.”

    ▼ 의원들의 비판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말씀이신지.

    “동의 여부를 떠나 사안별로 따져봐야 한다는 거지.”

    “국무회의 때 두 번 세게 얘기했다”

    그는 지난해 ‘신동아’ 인터뷰(2009년 9월호)에서 청와대 수석들과 장관들의 정무적 판단 능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를 언급하자 “그때는 권익위원장에 취임하기 전이었지”라고 비켜가려 했다.

    ▼ 자리에 있고 없고가 뭐 중요한가. 지방선거가 끝난 후 여권 내부에서도 청와대 인적쇄신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 위원장 생각은 어떤가.

    “내가 정부에 들어가 보니 다 열심히 일하더라.”

    ▼ 생각이 바뀌었나.(웃음)

    “선거결과가 안 좋으면 일을 열심히 해도 잘못한 게 되는 거지.”

    ▼ 청와대 수석들에 대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린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제대로 진단을 못하고 제대로 정책방향을 못 잡아준 거로 봐야지. 그러니 선거에 실패한 거지. 선거에 진 것이 청와대 책임은 아니지만 일부 참모가 정확한 판단을 못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거다.”

    ▼ 판단을 잘못해도 한참 잘못한 게 아닌가. 민심의 흐름과 동떨어지는….

    “너무 자만한 점이 있지. 내부에서도 몇 번 선거가 어려울 것이라는 경고신호가…. 전통적으로 지방권력은 여당에 주지 않는다. 한나라당이 두 차례 야당 할 때 지방권력을 싹쓸이하지 않았나. 그 견제심리는 늘 작동된다.”

    ▼ 잘못하니까, 불만이 크니까 반대하는 거지 무조건 견제하는 건 아니잖은가.

    “민심은 중앙권력과 지방권력 간에 균형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야당 할 때는 지금보다 더 싹쓸이했다.”

    ▼ 그때는 노무현 정부가 워낙 망치니까….

    “(웃음) 그때는 서울 25개 구청장을 우리가 다 먹지 않았나. 지금은 그래도 4개는 건졌다.(웃음)”

    ▼ 권익위원장으로서 민생현장을 돌면서 민심이 돌아섰다는 것을 느꼈을 법한데.

    “정부가 지원은 엄청 하는데 현장에 가보면 반영되지 않고 있다. 그게 진짜 갑갑한 거다. 그래서 지금 우리 권익위에서 정부보조금 실태 조사를 하고 있다. 정부 지원이 수요자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 현장에 가보면 다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참 이해가 안 된다. 부처들이 억대 예산을 쓰는데 왜 그게 현장에 전달되지 않는지.”

    ▼ 국무회의 때 그런 얘기를 하나?

    “두 번 세게 얘기했다.”

    ▼ 다른 부처 장관들이 뭐라 하나.

    “내가 옳은 소리만 하니 다들 가만히 있지. 듣고만 있는 거지.”

    부자정권, 부자정당

    ‘중도친서민 선봉’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쓴소리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은 은평을 보선에 출마할 결심을 굳혔다.

    그는 정책과 현장의 괴리를 실례를 들어 설명했다.

    “다문화가정 얘기를 해보자. 내가 현장에 가 보니 한 사람의 외국인에 대한 관리부처가 여러 개야. 법무부, 보건복지부, 여성부, 행정안전부…. 외국인 관리는 한 부처가 맡아야 한다. 한 사람의 외국인이 입국해 취직하고 결혼해 사는 걸 총괄하는 부처가 있어야 한다. 부처마다 조금씩 관련 업무를 갖고 있어 조정을 하려 해도 부처 이해관계 때문에 안 된다. 노인복지 예산도 그렇다. 복지부, 노동부 등 여러 부처의 예산이 따로따로 집행돼 정책의 효율성이 없다. 이런 공자말씀을 하니 누가 반박을 하겠나. 현장에 가서 적어온 수첩 보면서 얘기하는데….”

    ▼ 이 위원장의 터전인 은평구는 서민이 많이 사는 곳이다. 과거에도 그런 경향이 있었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특히 심했다. 서울의 강남 3구에 한나라당 지지가 집중됐다.

    “그렇지 않다. 시장 투표결과를 보면 강북에서 이긴 데가 많다.”

    ▼ 전체 당선자 수로 보면 그렇지 않나.

    “구청장만 보면 강남 3구와 강북 1구밖에 없지.”

    ▼ 정부가 친서민 정책을 표방하는데, 민심은 거기에 호응하지 않는 것 같다.

    “서민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는 한나라당 표가 적게 나오고 부자가 많이 사는 지역에서는 많이 나왔다.”

    ▼ 너무 심한 것 아닌가.

    “꼭 그걸 두고 말할 건 아니지만, 그래서 부자정권, 부자정당 소리를 듣는 거지. 정치라는 건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거다. 부자는 가만 둬도 먹고사니까. 하지만 없는 사람은 정부가 정치의 힘으로 도와 잘살게 만들어줘야 한다.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한테 더 지지를 받는 정당이 돼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서민정치를 하자는 게 아닌가. 그런데 정부의 이념이나 정책노선이 현장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게 이번에 드러난 거지. 엄청난 괴리가 있었다는 것이.”

    ▼ 지금 분위기로는 위원장께서 은평에 출마해도 당선된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그런 얘기하면 선거법에 걸린다.”

    그는 이제 그만하자고 했다. 기자는 마무리 질문 몇 가지만 하겠다며 놓아주지 않았다.

    ▼ 전당대회 때 당대표로 출마하지 않나.

    “출마하지 않는다고 발표하지 않았나.”

    ▼ 확실한가.

    “그거 나가려면 지금 공직에서 사퇴해야 한다.”

    “혁명적으로 변해야”

    ▼ 위원장 임기를 채울 건가.

    “임기야 내 마음대로 되나.”

    국민권익위원장의 임기는 3년이다.

    ▼ 본인 의지가 중요하지 않나. 맡은 일에 얼마나 보람을 느끼고 사명감을 가졌느냐에 따라….

    “공무원 일은 본인 의지와 관계없다. 윗사람이 그만두라면 내일이라도 그만둬야지.”

    ▼ 일반 부처 장관도 아니고, 경질될 일은 없지 않은가.

    “그거야 뭐…. 공무원 임기는 자기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다.”

    ▼ 지금 한나라당이 위기라고 보나.

    “어려운 국면이지. 한나라당은 혁명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국민의 요구에 맞는 혁명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구시대 흐름을 이어가지 말고.”

    ▼ 그러면 중요한 것이 인물인데….

    “더는 얘기하면 안 된다. 내가 공무원인데 특정정당의 변화를 요구하는 건 곤란하지.”

    그는 “현재 당적도 없다”며 선거법 위반 여부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 선거와는 상관없는 얘기 아닌가. 일반적인 정치 얘기인데.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하기 위해 직접 총대를 멜 생각은 없는가.

    “총대를 뭐 내가 메고 싶다고 메나. 나는 지금 공무원인데.”

    ▼ 지금 멨다가 잘못하면 중간에 아웃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나는 거취나 자리와 관련해 다음엔 뭐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다. 이 자리를 목숨 걸고 지켜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이 자리는 일을 위한 자리지, 지키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더 일할 필요가 없으면 내놓으면 된다.”

    ▼ 이 위원장의 캐릭터에 매우 적합한 자리 같다. 실제로 일을 하는 것도 그렇고. 임기를 마치고 대통령선거에 나가면 될 것 같은데….

    “(웃음) 내 자리도, 오늘 모가지가 떨어지나 내일 떨어지나 모르는 판에….”

    ▼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큰 꿈을 안고 살지 않나.

    “지금은 공무원이잖은가. 공무원이 무슨 정치인의 꿈을 얘기하겠나, 건방지게. 자기 할 일이나 열심히 하지.”

    “위험한 게임”

    ▼ 당 체제 정비나 화합 차원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새 대표를 맡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얘기하면 선거법에 걸린다니까. 민주당도 마찬가지지만 한나라당도 구시대를 답습하고 기득권을 지키려 하면 안 된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국민적 요구에 맞는 혁명적 변화가 없으면 미래가 없다.”

    ▼ 그래서 인물이 중요한 것 아니겠나.

    “여기까지만 하자. 인물은 당에서 찾지, 뭐….”

    그는 늘 그랬듯이 바빴다. 하회탈처럼 활짝 웃으며 작별인사를 하기가 무섭게 다음 일정으로 옮겨갔다. 몇 사람이 아까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과 그리스의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이날 저녁 그는 상암동으로 가서 직원들과 함께 ‘청렴韓세상 만들기’ 거리 캠페인을 벌일 거라 했다.

    은평을 지역의 몇몇 단체는 그의 보궐선거 출마를 촉구하는 연판장을 만들어 그의 사무실에 제출했다. 측근에 따르면 그는 은평을 보선에 출마하는 쪽으로 결심을 굳힌 듯싶다. “내가 죽더라도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강한 의지를 비치고 있다는 것이다. 정국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정권의 레임덕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통령 측근인 자신이 나서서 승리를 거둬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그의 측근들은 “위험한 게임”이라며 극구 말리고 있다. 지방선거 결과에 비춰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의 분위기로는 ‘나가면 죽는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 그의 출마 여부는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만큼 이명박 대통령과의 마지막 조율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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