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함 사태…통일의 시기 빨라질 수도
- 중국-홍콩식 통합으로 GDP 3배 뛴다
- ‘핵 정상회의 개최’ 건의해 대통령이 수용
- 민주평통은 통일운동의 플랫폼
충북 청원 출신으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온 그는 행정고시 22회로 서울시의 파리주재관, 경쟁력강화본부장을 지냈다. 이명박 시장의 재임 후반기 2년(2004년 8월~2006년 7월)간 대변인으로 활동했으며 대선 후엔 대통령직인수위 전문위원, 여수엑스포조직위 사무총장으로 일해왔다.
김 처장 임명 후인 5월25일 정부는 민주평통 사무처장을 ‘정무직(차관급)’으로 승격했다. 이 때문에 김 사무처장은 사표를 쓴 뒤 재임명되는 절차를 거쳤는데, 이 대통령이 민주평통의 위상을 강화하고 김 처장의 역할에 무게를 실어주기 위한 조처로 해석되기도 한다.
6월 초 서울 남산 기슭 민주평통 사무실에서 김 처장을 만났다. 에어컨은 가동되고 있지 않았다. 김 처장은 배석한 직원에게 언제부터 하계복장으로 바뀌는지 물어보더니 “지난해 서울 계동 현대사옥에 있을 땐 에어컨 때문에 넥타이 벗기가 싫었다. 감기 들까봐”라고 했다. 여수엑스포조직위는 현대사옥 4층에 입주해 있었다.
“대통령이 왜 나를…아하! ”
▼ 그러고 보니 집무실이 계동에서 남산으로 바뀐 거네요.
“현대사옥의 동편으로 창덕궁이, 그러니까 죽은 권력의 세계가, 서편으로는 청와대 감사원 정부종합청사가, 그러니까 산 권력의 세계가 펼쳐져 있죠.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잘 보여요. 현대사옥의 주인들은 서편 사무실이 덥고 별로 안 좋은데 서편을 더 선호해왔어요. 고(故) 정주영 회장도 그랬고.”
▼ 소 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해 화제가 되기도 했죠.
“그분이 남북관계에 기여한 바가 많지만 후일담을 들어보면 부정적인 요소도 적지 않았던 것 같아요.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접근, 그런 점을 많이 생각하게 해요.”
김 처장의 취임사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잘 아시다시피 저는 민주통일의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런데 대통령님이 왜 저를 이 자리에 보내셨는지를 헤아리다 아하! 새로운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시구나 하는 깊은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 ‘새로운 접근’이라는 말, 자주 하시네요.
“대통령님이 서울시장으로 계실 때 행정직인 나를 기술직만 가던 도시개발부서 뉴타운사업본부장에 임명하신 적이 있어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신 건데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지금도 대통령님이 나를 그냥 막 (임명)한 거는 아니라고 봐요. 그분은 확신이 없인 안 하시죠.”
▼ 요컨대 이 대통령이 김 처장에게 주문하는 새로운 접근의 핵심이 뭔가요?
“지난 정권 10년간 민주평통은 위상과 역할이 상당히 약화되었어요. 대통령께선 과거의 민주평통과는 다른 ‘일하고 성과 내는 조직’으로 변화하기를 원한다고 봐요.”
▼ 어떤 성과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우리나라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기구로서 이름 그대로 한반도의 민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필요한 점을 대통령에게 자문하는 곳입니다. 과거 정권이 유명무실하게 운영했는지는 몰라도 앞으로는 이러한 헌법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여 평화통일의 설계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 성과를 내보라는 뜻 같습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때 별정직으로 격하된 사무처장을 정무직으로 환원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봐요.”
통일은 ‘일자리 창출’ 사업
대통령에게 자문한다는 건 두 가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하나는 말하는 사람도 대충 말하고 듣는 사람도 대충 듣는 형식적 절차에 그쳐 쓸모가 없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그 반대로 말하는 사람이 중요한 내용을 말하고 듣는 사람도 진지하게 듣는 경우인데, 듣는 사람이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므로 이때 자문의 효과는 상당히 크게 나타날 수 있다.
김 처장은 당연히 민주평통의 새로운 접근은 후자를 지향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자문위원들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보다 효과적으로 수렴하여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상시자문체제로 조직을 개편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2~3회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핵 안보 정상회의 유치도 민주평통이 해외 자문위원의 건의를 검토하여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이 받아들여져 성과를 낸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자문위원들의 전문성을 강화해가는 한편 조직 내에 여러 겹의 검증장치를 두어 자문의 질을 높이려고 한다. 사무처부터 과거의 타성과 습성을 버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 사무처는 어떤 일을 하는 기구인가요?
“사무처는 스스로 산출물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전문가나 오피니언 리더인 자문위원들을 통해 결과물을 얻는 중개기관이죠. 따라서 자문위원들이 통일을 위한 실질적 활동을 펼 수 있도록 판을 벌이는 구실을 합니다. 그러나 소극적 모습으로는 안 되며 자문위원들을 조직화하고 이끌어가야 해요.”
▼ 민주평통은 많은 수의 해외동포 자문위원을 두고 있는데, 주로 어떤 분들이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편인가요?
“예를 들어 북미주 자문위원의 71%는 미국과 캐나다 시민권자로 이 나라 주류사회에서 연방의원들과 다양한 교류를 하고 있어요. 큰 현안 중 하나인 한미FTA(자유무역협정)의 미 의회 비준을 위해 FTA 반대파 의원들의 설득에 나설 계획이라고 해요.”
▼ 민주평통은 관변단체 정도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내가 취임한 후 한 인터넷 포털에 검색어로 민주평통을 입력하여 검색해보니 ‘관변단체’라는 설명이 버젓이 올라오더군요. 즉시 해당 포털에 수정을 요구했어요.”
▼ 민주평통을 모르는 사람도 많죠?
“그런 측면도 있을 거예요. 일 많이 하고 성과를 내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한편으로 국민이 알 수 있도록 우리 목소리를 낼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4월20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민주평통 자문회의에 민주평통 이기택 수석부의장(오른쪽)과 김병일 사무처장(왼쪽)이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평화통일운동을 벌여나가는 거죠. 빠르게 준비해나가고 있어요. 통일을 위해 범민족적 의지와 역량을 결집하라고 법으로 명시되어 있기도 해요. 국내외 1만7000여 민주평통 자문위원과 6만여 회원이 손과 발이 되어줄 겁니다. 평화통일운동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봐요. 통일은 꿈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 처장이 생각하는 통일은 어떤 모습인가요?
“통일은 과정이라고 봅니다. 통일 자체가 목표가 되어선 곤란해요. 8000만 민족이 한반도에서 평화롭게, 행복하게 사는 게 궁극적 목표이고 통일은 그 길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인 거죠.”
▼ 많은 사람이 남북한은 같은 민족이므로 서로 돕고 언젠가는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통일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죠. 이런 통일에 대한 의식이 잘못된 건가요?
“그러한 통일관이 ‘우리의 소원’이라는 노래에서 나타나는 막연한 통일지상주의거나 아니면 통일냉소주의죠. 지금은 경제적 관점의 통일관이 필요하다고 봐요. 통일은 원래 한 나라 같은 민족이었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남북한 국민 모두가 잘살고 한반도가 최고의 경쟁력을 갖춰나가는 중요한 과정이므로 추진해야 한다는 관점이죠.”
▼ 그러한 통일관의 근거는 뭐죠?
“국민이 ‘왜 통일을 해야 하나’ ‘이대로가 좋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봐요. 그건 과거 정권이 국민에게 통일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민주평통은 앞으로 통일의 전략과 비전을 국민과 적극적으로 공유해나갈 계획입니다. 통일비용을 걱정하면서 독일의 통일 사례를 거론하는데 상당히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요. 사실은 말이죠, 독일은 통일 이듬해인 1991년 대비 2006년 GDP(국내총생산)가 77.9%나 증가했습니다. 1인당 GDP도 72.86% 늘었고요. 수출은 무려 229.97%나 증가했어요. 통일 후 독일은 세계에서 수출 1위, 교역 2위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 독일 통일이 ‘고통스러운 통일’만은 아니라는 이야기 같은데요. 북한과 통일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한국에 성장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보나요?
“통일한국은 굉장히 경쟁력 있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골드만삭스가 이미 분석하고 있잖아요. 이에 따르면 남북한이 중국-홍콩 방식(1국2체제 방식)으로 통합한다면 현재 8325억달러 수준인 한국의 GDP는 2050년 6조5000억달러가 되고, 한국의 1인당 GDP도 3배가 증가하는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통일은 국가경쟁력 제고 사업이고 일자리 창출 사업이며,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 경제에도 활로를 열어주는 사업입니다. 국민들 사이에서 이러한 통일 인식이 확산되도록 하는 게 우리의 임무이기도 해요. 통일은 국민 개개인이 주체가 되어 추진하는 게 가장 좋으니까요.”
‘북한 내 친(親)통일세력’ 도와야
천안함 침몰 사태로 남북한은 대치국면이다. 민주평통의 요즘 활동도 천안함 이슈에 집중돼 있다. 김 처장은 “북한 정치체제에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이번 사태가 통일의 시기를 좀 더 빨리 부를 수도 있다”고 했다.
▼ 정부의 천안함 침몰사건 진상조사 결과 발표 이후 긴장이 매우 높아지고 있죠.
“천안함을 침몰시킨 행위는 사실상 전쟁행위죠. 같은 민족에 대한 배반이고요. 북한은 6·25 남침을 비롯해 1·21사태, 아웅산 폭탄 테러, 대한항공기 폭파 도발을 해왔는데 이번 천안함 사태는 과거 냉전시대 대결구도와는 다른 상황에서 벌어졌다는 점에 의미가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북한의 군 중심의 선군(先軍) 정치가 한계에 이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내부 모순의 심화로 외부에서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는 얘긴가요.
“문호를 개방해 국제사회에 편입된 중국, 베트남 외엔 공산주의 국가가 모두 몰락했잖아요. 북한은 한동안 제한적 시장체제 도입으로 조금 나아지는 듯했으나 과거 회귀적 화폐개혁으로 원위치로 돌아갔죠. 주민의 삶은 어려워지고 집권체제 유지에 위험신호가 켜졌겠죠.”
▼ 남북관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통일론은 적당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을 텐데요.
“한반도의 정세 변화 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통일 환경도 복잡해지고 있어요.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한반도의 운명을 개척해야 해요. 통일논의에 부적당한 시기란 없습니다. 지금 통일에 대한 인식, 준비, 행동이 필요한 이유죠. 북한은 한국의 협조 없이는 위기탈출이 어렵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해요.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안보태세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평통은 북한정권의 붕괴나, 그럴 리도 없겠지만, 남북한의 총체적 대결을 원하지 않아요. 다만 북한 내에서 ‘친(親)통일·평화세력’이 강화되도록 도와주어 북한사회의 변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북한 내에서 한국과의 통일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통일이 되는 겁니다.”
▼ 정부가 대북 전단 배포와 확성기 방송을 보류했는데….
“목표는 확고해야 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전술은 융통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한다고 해놓고 왜 안 하느냐’는 비판에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정부가 대북 대응에서 후퇴한 것이 아니고, 앞으로 신축적으로 하면 된다고 봐요.”
기 소르망과의 역설의 논쟁
김 처장은 여수엑스포조직위 사무총장 시절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과 ‘엑스포 논쟁’을 벌인 바 있다. “여수엑스포에는 ‘환경’만 있지 ‘과학’이 빠져 있어 인류의 발전을 이끌기 어렵다”는 기 소르망의 지적에 “여수엑스포의 주제인 ‘살아 있는 바다’는 정보통신과학 바이오과학 에너지환경과학의 결합이며 이러한 비전은 인류를 농업혁명에 버금가는 바다혁명으로 이끌 수 있다”고 반박했다.
‘환경’이 곧 ‘과학’이라는 역설의 논법을 사용한 그는 지금 다시 ‘남북의 극한대치’가 곧 ‘통일의 징조’라고 주장한다. 그는 “취임하는 날 천안함 사태가 났다. 통일은 그냥 얻어지는 게 결코 아니라는 점을 새삼 확인했다”면서 “민주평통은 모든 통일운동의 플랫폼(platform·승하차장)으로서, 통일을 준비하는 대표 조직으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