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호

“한약, 캡슐에 넣으면 신약? 국민 건강 위험하다!”

천연물신약 백지화 투쟁 안재규 대한한의사 비대위원장

  • 최영철│ftdog@donga.com

    입력2012-11-21 17: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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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공인 허가기준 안 지킨 국내용 신약
    • “한약 처방, 한방재료 현대화한 신판 한약제제일 뿐”
    • 독성검사·일부 임상시험 면제, 외국선 식품으로 팔려
    • 식약청, 잇따른 신약 허가기준 변경의 속내는?
    • “체질 무시하고 양의사 처방하면 치명적일 수도”
    • 정부 모르쇠 일관, 제약사 “우린 할 것 다 했다”
    “한약, 캡슐에 넣으면 신약? 국민 건강 위험하다!”
    한의사들이 천연물신약 문제로 들끓고 있다. 2008년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에 의해 허가된 천연물신약 6종이 한방 처방을 그대로 베끼고 기존 한약을 단순 추출해 만든 것임에도 양방 의사만이 처방할 수 있게 한 전문의약품으로 지정하고 보험급여를 적용한 것은 부당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의사들은 “천연물신약은 한약을 가루 형태로 만든 후 캡슐에 담아 영어이름을 붙인 한약제제일 뿐”이라며 “한약에 대해 문외한인 양방 의사가 환자의 체질을 무시하고 처방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부작용은 국민의 몫”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한의사들은 천연물신약 허가 백지화를 주장하며 자신들이 벌이는 싸움이 ‘밥그릇’ 때문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고 한다. 현재 천연물신약으로 처방되는 6종의 전문의약품 모두 풍습냉열(風濕冷熱)이라는 한방적 환자 체질론에 따라 적절히 처방하지 않을 때엔 치명적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한의사들의 우려다.

    일선 한의사들은 대한한의사협회 집행부가 천연물신약에 대해 정책의 원천적 백지화가 아닌 한의사의 처방권을 요구하고 나서자 지난 9월 2일 임시 대의원총회를 개최하고 김정곤 대한한의사협회장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한의사들이 바라는 건 천연물신약에 대한 처방권이 아니라 천연물신약 정책의 원천무효화였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천연물신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한한의사 비상대책위원회(한의사 비대위)가 출범했다.

    천연물신약? 신판 한약제제!

    “한약, 캡슐에 넣으면 신약? 국민 건강 위험하다!”

    10월 24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천연물신약 정책 규탄 집회.

    비대위가 개최한 천연물신약 백지화 집회에는 평일인데도 연일 수천 명의 한의사가 참여하고 있다. 10월 18일 충북 청원군 오송읍 식약청 앞에서 열린 집회에는 1500명이, 10월 24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집회에는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5500여 명, 11월 15일 부산에서 열린 집회에는 영남권을 중심으로 5000여 명이 모였다. 한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은 총 2만 명, 이 중 한의사 협회 소속 한의사가 1만6000여 명인 점을 고려하면 천연물신약 정책에 대한 한의사들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천연물신약은 도대체 무엇이고 한의사들이 제기하는 천연물신약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어떤 것일까. 11월 7일 서울 강서구 한의사협회 내에 마련된 한의사 비대위를 찾아 안재규 비대위원장(61)을 만났다. 안 위원장은 한의사협회 부회장을 거쳐 2002년 한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한 인물로 현재 한의사협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와병 중임에도 비대위를 이끌게 된 이유에 대해 “후배들에게 부끄럽고 천연물신약으로 인해 우리 한의학이 죽어가는 현실, 이로 인해 국민의 건강권이 침해되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 한의사 비대위가 최근에 구성된 이유는 뭔가요.

    “지난해 9월 자생한방병원의 처방인 청파전을 그대로 캡슐에 담은 신바로캡슐이 나오기 전까지는 천연물신약의 실체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게 나오고서야 우리가 식약청에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 거지요. 창피하지만 천연물신약이 진짜 신약이 아니라 가짜 한약이라는 걸 그 때 알았습니다. 가짜 한약이 양약으로 탈바꿈한 걸 지난해 천연물신약의 허가가 난 후에야 비로소 깨달은 거지요. 그런데 한의사협회가 천연물신약 문제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니까 한의사 회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겁니다. 천연물신약 문제에 한의계가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거죠.”

    ▼ 천연물신약과 일반 신약은 어떻게 다릅니까.

    “신약은 화학적 성분에서 추출한 약과 천연 성분에서 추출한 약으로 나뉩니다. 국제적인 의미의 천연물신약은 쉽게 말해 버드나무에서 단일 성분을 추출해 만든 아스피린을 떠올리면 되죠. 주목(朱木)에서 추출한 탁솔과 같은 항암제도 그렇고요. 천연물에서 기존에 없던 특정 성분을 추출해서 만든 약으로, 그 자체로 화학식 구조가 딱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국내 천연물신약은 한약 그 자체나 한방 처방대로 한약을 섞어서 그냥 엑스(진액)를 뽑아낸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예를 들면 돌아가신 배원식 한의사의 처방인 활맥모과주를 그대로 알약으로 만든 게 레일라정이고 자생한방병원의 처방인 청파전을 그대로 만든 게 신바로캡슐이죠.”

    ▼ 그럼 기존 한약제제나 생약제제와는 또 어떻게 다릅니까.

    “사실 한방 처방이나 기존에 썼던 한약을 그대로 쓰거나 한두 약재를 가감해서 추출하는 건 원래 한약제제의 개념이거든요. 한약제제라는 게 탕약 형태였던 한약을 현대화해서 사람들이 먹기 좋게 만든 것이니까요. 현재 한의원에서 환자들에게 주는 가루한약이 바로 그겁니다. 소청룡탕이나 삼소음 같은 가루로 된 감기약이 그거죠.

    생약제제는 좀 애매한데요. 한약재를 이용해서 만들기는 하는데 서양 의학적 원리로 만든 약을 말합니다. 약국에서 파는 광동탕이나 쌍화탕 같은 것이죠. 지금 한국에선 천연물신약, 한약제제, 생약제제의 개념이 전부 뒤섞인 이상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가 그걸 바로잡자는 겁니다. 국제공인 규격에 맞게 말입니다. 이런 논리로 보면 천연물신약은 한의사가 처방하는 한약제제가 되어야 맞습니다.”

    냄새 풀풀 나는 고시 변경

    ▼ ‘식약청에 속았다’는 표현을 썼는데.

    “천연물신약에 대한 정의가 처음 법적으로(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촉진법) 규정된 2000년 즈음에는 아스피린이나 탁솔 같은 천연물 성분 추출 신약만 천연물신약으로 인정됐는데요. 이게 고시가 자꾸 개정되면서 2008년 이후에는 한약재 통추출물과 한약 복합 처방 추출물까지 천연물신약의 정의에 포함됩니다. 그러다 2012년 현재에는 한의사들이 처방하고 있는 십전대보탕까지 추출하는 물질(용매)을 슬쩍 바꾸면 천연물신약으로 개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정작 한방 처방과 한방 재료를 쓰는 데도 한의사들은 그 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돼 있었던 겁니다. 한약의 과학화, 세계화를 위해 개발한다는 정부의 말에 깜빡 속은 것이지요.”

    정부는 2001년 천연물신약 연구기반 구축 및 개발을 독려하기 위해 ‘천연물신약연구개발촉진계획’을 수립했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는 1, 2차 계획을, 2008년부터는 2, 3차 계획을, 2012년부터는 3차 계획을 수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천연물신약에 대한 정의가 개정되면서 식약청 고시에 의해 천연물 성분 추출약에 한약재 통추출물, 한약 복합 처방 추출물이 하나씩 추가됐고 2012년에 이르러서는 여기에 한약 처방 용매변경 추출물까지 포함됐다.

    2008년부터는 천연물신약 허가 기준에서 전통 한의서와 한방의료기관 임상경험을 근거로 독성검사와 임상시험 일부가 면제된다. 국내 각 제약사는 이때부터 천연물신약 개발을 들어가 2011년까지 6개 경구용 천연물신약이 무더기로 허가받았으며 현재 60~70여 개 제품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 식약청이 법상 정의를 계속 바꾼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천연물신약 개발 계획은 2000년대 초반 국가 차세대 성장동력 개발 차원에서 시작된 겁니다. 국가 주도형 사업이었죠.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촉진법이 그때 제정됐습니다. 앞에도 얘기했다시피 애초에는 아스피린이나 탁솔같이 특정 성분을 추출해 신약을 만드는 것이었죠. 그런데 초기에 1600억 원 이상의 막대한 국가 예산이 투입되고도 아무런 성과가 없자 단일 성분, 단일 본초를 넘어 기성 한약 처방의 추출물까지 신약으로 규정해버린 거죠. 한국의 제약 기술 수준으로는 단일 성분 신약을 만드는 게 상당히 어렵거든요. 지난 10여 년 동안 총 9000억 원의 연구비가 투입됩니다. 결국 성과가 안 나오니까 고시를 조금씩 변경해주면서 천연물신약의 범주를 넓게 해준 겁니다. 연구와 성과를 내기 쉽게요. 그게 우리의 판단입니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부

    “한약, 캡슐에 넣으면 신약? 국민 건강 위험하다!”

    대한한의사협회 내 허준 동상 옆에 선 안재규 위원장.

    ▼ 식약청은 당초 천연물신약이 신판 한약제제라는 걸 몰랐을까요?

    “당연히 알았죠. 이번 식약청 국감에서 모 의원이 식약청에 신약 리스트를 제출하라고 했는데 천연물신약은 모두 빠져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식약청도 현재의 천연물신약이 자료제출의약품, 즉 일반적인 신약 개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이를 숨기려 한 거죠. 식약청은 이에 대해 국내에서 새로 정의한 ‘신약’ 개념이라고 변명을 하는 상황입니다.”

    ▼ 식약청이 2008년부터 고시를 통해 천연물신약 허가기준에서 독성검사와 일부 임상시험을 면제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왜 그런 건지는 저희도 모르겠습니다만, 식약청은 ‘기성 한의서 수재(收載)와 한의사 사용경험’을 근거로 일부 독성검사와 임상시험을 면제했다고 합니다. 결국 천연물신약이 한약제제란 걸 인정한 셈이지요. 얼마 전 식약청이 천연물신약도 ‘독성검사와 임상시험을 한다’고 주장하며 모티리톤정을 예로 들어 저희 주장에 대해 반박한 적이 있는데요. 실제로는 8가지 독성 검사 중에서 단 2가지의 독성검사만을 거치고 3가지 임상시험 중에서 한 가지 임상시험만을 시행한 겁니다. 이렇게 형식적 수준의 독성검사와 임상시험을 거치는 이유조차 역시나 한의사들이 오랜 기간 써왔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게 어떻게 신약이 됩니까.”

    대한의사협회(회장 노환규)는 한의사 비대위의 이런 주장에 대해 “천연물신약은 말 그대로 자연의 식물, 광물 등 천연물에서 약효 성분을 취해 만든 약물로, 소위 음양오행 같은 한방 이론에 따라 지었다는 한약과는 완전히 다른 약물”이라며 “한의사들의 주장대로라면 지구상의 모든 천연성분 추출 신약은 모두 한의사만이 쓸 수 있는 한약이 된다”고 반박했다.

    의협은 한의사 비대위가 천연물신약 관련 집회를 이어나가자 11월 7일 한방대책특별위원회 명의의 성명을 통해 “한의사들의 주장 뒤에는 의사들만 사용할 수 있는 현대 의약품을 쓰고자 하는 음모가 숨어 있다. 사정당국은 불법으로 천연물신약을 공급하고 사용하는 한의사를 강력하게 처벌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안 위원장은 “의협이 천연물신약이 개발된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결코 현대 의약품 운운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양의사들은 식약청이 기존 한의서와 한의사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천연물신약의 독성검사와 임상시험을 일부 면제한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의사가 모든 약을 다 쓰겠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아스피린 탁솔을 쓰겠다고 한 적도 없죠. 천연물신약은 한약을 현대적으로 개발한 의약품인 신(新)한약제제라고 주장하는 것뿐입니다.”

    한편 한의협과 의협이 지난 6월 보건복지부에 의뢰한 천연물신약 처방권에 대한 유권해석도 5개월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더욱이 일반 한의사들은 천연물신약에 대한 처방권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천연물신약 정책 자체의 폐기를 요구하고 있지만 식약청과 보건복지부는 한의사 비대위의 잇따른 집회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며 각 제약사들은 의사와 한의사의 눈치를 보며 “허가에는 독성검사 조항이 없다 해도 각 회사 자체 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다. 임상시험도 충분히 할 만큼 했다”라는 판에 박힌 말만 되뇌는 상황이다.

    천연물신약의 폐해

    ▼ 독성검사와 임상시험 면제로 발생하는 폐해가 있다면.

    “요즘 전 세계적으로 신약개발 과정에서 독성검사와 임상시험이 강화되는 추세입니다. 그 이유는 동물시험이나 인간 대상 일부 임상시험에서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일단 의약품으로 허가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처방했을 때는 가벼운 것으로부터 치명적인 부작용까지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그 전모가 드러난 탈리도마이드의 비극이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죠.

    천연물신약의 경우 한의사들은 기존에 써왔던 한약 처방과 한약제제이기 때문에 한의학적 진단을 거쳐 어떤 환자에게 어떻게 써야 할지 잘 알기 때문에 부작용이 일어날 수 없죠. 하지만 양의사들은 부작용 자체가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약이라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조차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는 졸음과 수면을 유발하는 진정효과로 1950~60년대 50여 개 국에서 임신부의 입덧치료제(구토치료제)로 사용됐다가 단지증 등의 기형아 출산이 보고되면서 1960년대 말 금지된 약물이다. 1960, 1961년 이 약을 먹은 임신부 중 1만 명이 기형아를 낳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제조사인 독일 그루넨탈은 동물시험에서 부작용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고 강변했지만 사람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드러나자 지난 9월 50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 실제 양의사가 처방할 때 어떤 부작용이 생길까요.

    “쉽게 예를 들어봅시다. 스티렌정은 애엽, 즉 쑥을 달여서 만든 건데요. 위염에 쓰이는 약재죠. 한의사들은 애엽이 소화기가 찬 환자에겐 효과가 있지만 몸에 열이 많은 사람에겐 도리어 위염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걸 잘 알죠. 시네츄라나 조인스정, 레일라정, 모티리톤정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양의사들은 그냥 의약품 정보에 기록된 대로 배 아픈 사람에게 스티렌정 처방하고, 소화 안 되는 사람한테 모티리톤 처방합니다. 그래서 호전이 안 되거나 부작용이 나는 환자에게 부작용이 발생해도 양의사는 왜 그런지를 몰라요. 의약품 정보에 기록된 대로 처방한 것이니까요. 양의사들은 그게 약 부작용인지, 환자에게 다른 병이 생긴 것인지조차 감별하지 못합니다.”

    ▼ 양의사는 의대에서 한의학을 전혀 배우지 않습니까.

    “양의사들은 한의학 과목을 거의 배우지 않습니다. 일부 의과대학에서 한의학개론 정도는 배운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한약의 기초학문인 본초, 방제학, 한방 약리학 등을 배우지 않으니 약재와 체질의 관계를 알 수가 없는 거지요.”

    한국에선 신약, 외국에선 식품

    ▼ 천연물신약이 불러올 가장 큰 폐해는 무엇인가요.

    “한약, 캡슐에 넣으면 신약? 국민 건강 위험하다!”

    인터뷰 도중 서러움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는 안재규 위원장.

    “우선 한의학에 무지한 양의사가 한약제제인 천연물신약을 처방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 가장 크고요. 두 번째로는 지금까지 들어간 9000억 원의 국민 세금이 모두 다 낭비됐다는 점이죠. 그리고 지금도 이 천연물신약들이 국민건강보험에 등재돼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고 있다는 점도 해당되죠.”

    ▼ 어떻게 보면 한약의 우수성을 입증한 셈 아닌가요.

    “한약 처방의 우수성은 이미 ‘과학적’으로 많이 평가됐습니다. 한의학이 항상 신성장동력으로 꼽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죠. 그래서 한약을 현대화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한 건데요. 문제는 한약을 현대화한 한약제제가 양약(천연물신약)으로 팔리면서 한의학의 발전을 저해하고 국민의 건강을 해친다는 거죠. 한약 처방의 우수성은 이미 우리 양의사만 제외하고는 모두 다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 천연물신약이 외국에선 건강기능식품으로 팔린다는데.

    “신약 허가기준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기 때문이죠. 독성검사, 임상시험 중 일부가 면제됐기 때문에 인정을 받을 수 없는 것이죠. 심지어 ‘천연물신약 중엔 독성 약재들이 일부 섞여 있는 반면 그에 대한 안전성 자료는 부족해 해외에선 건기식으로조차 허가를 받기 힘든 제품이 많다’는 얘기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 실제 건기식으로 수출한 사례가 있는지요.

    “외국에서 약으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걸 식약청이 신약으로 인정한 건 참 부끄러운 얘기입니다. 조인스정이 호주에서 좀 팔리고 스티렌정도 일부 팔렸다는데 그 금액은 아주 미미합니다.”

    ▼ 식약청 스스로 “오랜 기간 한약 처방을 통해 안전성이 검증됐다”는 신약을 왜 전문의약품으로 지정했을까요.

    “그 부분을 알 수가 없어요. 참 답답한 게 식약청은 유독 천연물신약에 대해서만큼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요구해도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부작용이 많기 때문에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된 것인지, ‘신약’ 이라서 분류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절대 밥그릇 싸움 아니다”

    ▼ 천연물신약 문제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일단 한의사에게 그 처방권을 달라는 얘기가 절대 아님을 밝혀둡니다. 당연히 한의사의 것인데 달라고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현재의 왜곡된 천연물신약 정책을 백지화하고 국제적 기준에 맞도록 천연물신약 개념과 허가 제도를 다시 마련해야 합니다. 지금 허가된 천연물신약은 사실 한약제제로 편입해야 합니다.”

    ▼ 현재 허가가 나거나 준비 중인 천연물신약은 어떻게 합니까.

    “지금껏 출시된 것들도 한약제제로 허가하기엔 보강돼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조금 보강해서 한약제제로 재허가받도록 하면 됩니다. 허가 준비 중인 천연물신약도 한약제제로 허가받도록 정부에서 책임을 져야겠죠. 그것들은 모두 현대화된 신판 한약제제니까요.”

    ▼ 최근 들어 한의협 집행부 퇴진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협회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가 천연물신약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한 게 가장 큰 이유이고요. 거기에다 한의원 조제 탕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첩약의보’ 문제가 기름을 부었습니다. 일반 한의사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있는 상황에서 한약조제 시험을 통과한 약사(한조시 약사)들도 거기에 동참하게 하는 보건복지부의 안(案)에 협회가 합의한 듯한 제스처를 취하자 평회원들이 발칵 뒤집힌 거죠. 정확하게 말하자면 협회장 퇴진 요구가 아니라 한의계의 민주화운동 선상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하는 게 옳습니다.”

    ▼ 한의계 민주화운동이란 무엇입니까.

    “이건 비대위 차원에서 말씀드릴 내용은 아니지만 한의사 협회장선거는 250명의 대의원이 뽑는 간선제입니다. 그러다보니 일반 한의사 평회원의 생각이 반회, 분회, 지부를 거치면서 집행부로 전달이 잘 안 됩니다. 간선제로 뽑힌 협회장과 집행부가 평회원의 뜻에 반하는 정책들을 계속 벌이다보니 협회장 퇴진 요구에 이어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진 거죠. 일선 한의사들은 줄곧 직선제를 주장했거든요.”

    안 위원장과의 인터뷰 후 4일이 지난 11월 11일 한의사협회는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고 회장 부회장을 제외한 이사 전원을 물러나게 했으며 협회장선거를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일선 한의사들은 이에 대해 한의사협회 민주화가 시작됐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이 자리에서 첩약의보 문제에 대한 결정권은 한의사 비대위로 일임됐으며 이에 따라 비대위는 조만간 보건복지부에 첩약의보 적용 반대 의견을 분명히 전달할 계획이다.

    안 위원장에게 “천연물신약 문제가 국민의 건강권과 깊은 연관이 있는 데도 일반인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젊은 한의사들만 나서는 같다”고 말하자 그는 “많이 반성하고 있다. 부끄럽게 생각한다. 세계 의학을 주름잡을 수 있는 한의학이 국민과 유리되는 게 슬프고, 정부와 제약업체에 의해 죽어가는 게 안타깝다”며 이내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한동안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내던 그는 “천연물신약 싸움은 절대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려는 한의사의 충정이다. 이번 기회에 관련 제도와 법률을 제대로 정비해 죽어가는 한의학을 살리고 발전시키겠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천연물신약 문제는 정부가 분명히 책임지고 마무리지어야 합니다. 국민의 혈세가 낭비됐고 국민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제약사의 잇속만 불리고 그 피해는 국가와 국민에게 돌아가는 상황이 계속될 겁니다. 정부는 하루 빨리 이 문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해결하길 바랍니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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