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호

드라마 ‘보고 싶다’로 연기대상 2관왕 윤은혜

“다음에 만날 사람이 첫사랑일걸요?”

  • 김지영 기자│kjy@donga.com

    입력2013-02-21 11: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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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이비복스 언니들, 날 따돌린 게 아니라 보호했다
    • 배우로서 더 단단해지고 싶어 연출 공부 시작
    • 내 안의 ‘다른 색깔’ 드러낼 30代 기대
    • 존경하는 배우 전도연·김희애, ‘절친’은 손예진
    • 정우? 해리? 둘 다 싫어요, 이상하잖아요…
    드라마 ‘보고 싶다’로 연기대상 2관왕 윤은혜
    윤은혜(29)를 처음 만난 건 2004년 여름쯤으로 기억된다. 5인조 걸그룹 베이비복스의 막내였던 그는 예능 프로그램을 찍고 있었다. 취재차 녹화 현장을 찾은 기자는 여러 출연자 가운데 유난히 발랄하고 털털한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내심 눈썰미가 있다고 자부하던 터였는데 그날은 그가 누군지 단박에 알아채지 못했다. 화면에 비친 모습보다 얼굴이 훨씬 작고 미모도 웬만한 배우보다 빼어나 잠깐 신인연기자로 착각했더랬다.

    그런 그를 2월 5일 오후, 9년 만에 재회하자 반가움과 함께 궁금증이 일었다. 예전의 선머슴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보호본능을 자극할 만큼 여려 보이는 이유가 뭘까. 1월 17일 드라마 ‘보고 싶다’를 끝낸 후 계속 아팠던 탓일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세월이니 설령 그가 변했대도 이상할 건 없다. 더구나 그는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2005년 베이비복스 탈퇴 후 직업을 배우로 바꿨고, 트렌디드라마 ‘궁’(2006)과 ‘커피프린스 1호점’(2007, 이하 ‘커프’)으로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안방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했다. 드라마에 비해 영화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그때부터 ‘가수 출신’이라는 선입관 탓에 불거진 연기력 논란이 차츰 수그러들었다.

    ‘보고 싶다’의 여주인공 이수연을 연기하는 동안에는 호평이 이어졌다. “밝고 건강한 이미지만 어울릴 줄 알았는데, 어릴 적 성폭행을 당한 이수연의 복잡 미묘한 감성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의견이 많았다. ‘보고 싶다’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아 아시아 전역에 판권이 팔렸다. 지난해 말엔 이 작품으로 MBC 연기대상에서 한류스타상과 인기상을 받았다. 인기 부문 ‘2관왕’을 차지한 것이다.

    인기와 연기 사이



    ▼ 2관왕, 예상했나요.

    “사실 커플상 받으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으로 갔어요. 인기상은 기대도 안 했어요. 내가 인기 있는지 모르겠거든요. 어릴 때부터 활동해서 해외에 계신 분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세요. 팬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열심히 해라, 힘내라는 뜻에서 주신 것 같아요.”

    ▼ 인기가 거추장스러울 때도 있는지.

    “인기가 많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관심의 대상이 된 것 같긴 해요.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만 관심의 정도가 인기와 비례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 다른 사람의 시선이 불편하진 않나요.

    “상황에 따라 달라요. 상대가 편하게 행동하면 저도 편하게 받아들이지만, 자유롭게 다니고 싶었는데 예상치 않은 부분에서 방해받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거든요. 그분들 잘못은 아니지만 그럴 땐 스트레스를 받아요.”

    ▼ 소녀에서 숙녀로 훌쩍 자란 느낌이에요.

    “나이가 들었으니 당연히 그래야죠(웃음). 아직 아이 같은 구석이 있긴 하지만. 빨리 30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여자로서는 몰라도 배우로서는 그 시기가 기대돼요. 어릴 때 데뷔해서 지금도 저한테서 풋풋하고 밝은 이미지만 보려는 분이 많아요. 제 안에 있는 다른 색깔들로 어필하려면 나이를 더 먹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30대가 기다려져요.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과정을 행복한 마음으로 즐기고 있어요.”

    ▼ 보이시한 캐릭터도 잘 어울리던데.

    “제가 연기했던 보이시한 캐릭터는 ‘커프’의 고은찬밖에 없어요. 나머지는 말괄량이거나 여성성이 강한 캐릭터죠. 나름대로 천천히 변화를 주고 싶었는데 배우 2년 차 때 파격적인 남장여자 역이 들어왔어요. 그 작품이 ‘커프’였죠. 신기하게도 대본을 석 장쯤 읽었을 때 ‘아, 이건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다음에도 ‘여성스러운 캐릭터로 변신해야지’ 했던 건 아닌데 ‘아가씨를 부탁해’를 하게 됐고요. 고은찬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다른 모습을 보여드려도 성에 안 찰 거라는 예상은 했어요. 대신 여자다운 역도 어울린다는 점만이라도 인정받고 싶었죠.”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그에게선 ‘커프’의 고은찬 같은 구석을 찾을 수 없었다. 천생 여자라는 느낌이 들게 단아하고 아리따웠다.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살펴도 못난 데가 없다. 이 여자에게도 외모 콤플렉스가 있을까.

    “전 제 얼굴을 별로 안 좋아해요. 다만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화보를 많이 찍었는데 ‘어떻게 꾸며도 잘 어울린다’고들 하더라고요. 어떤 이미지를 대입했을 때 자연스럽게 이입이 된다면서요. 그런 얘기 들으면서 내 장점은 이거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특별하게 어디가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운명 바꾼 길거리 캐스팅

    그는 1999년 베이비복스의 다섯 멤버 중 팀에 가장 늦게 합류했다. 나이도 가장 어렸다. 데뷔 당시 열다섯 살 중학생이었으니 학업과 가수활동을 병행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터. 더구나 그전까지 그의 꿈은 화가였다. 미술에 남다른 소질을 보이던 그가 갑자기 가수가 되겠다고 하자 부모는 완강히 반대했다.

    “제가 연예계에 관심을 둔 적이 없기 때문에 무척 의아해하셨어요. 부모님은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미술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지원해주겠다고 하셨어요. 제가 그림으로 상을 여러 번 받았는데도 경제적으로 도움을 못 주신 게 마음에 걸렸던 것 같아요.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거든요. 부모님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셔서 며칠을 고민했어요. 부모님 마음을 잘 아니까요. 그런데 길거리에서 캐스팅 제의를 자주 받다보니 마음이 흔들리더라고요. 그림은 커서 취미처럼 배울 수도 있으니까요. 고심 끝에 가수를 선택했더니 부모님도 제 뜻을 존중해주셨어요. 그 뒤로 부모님께는 한 번도 힘들다고 얘기한 적이 없어요. 제가 선택한 길이니 그 책임도 혼자 져야죠.”

    ▼ 길거리 캐스팅으로 데뷔한 건가요.

    “그렇긴 한데, 데뷔 후에도 길거리 캐스팅 제의를 여러 번 받았어요. 화면으로 볼 때랑 얼굴이 많이 달라서 한동안 주변 사람들도 제가 데뷔한 사실을 몰랐어요(웃음).”

    ▼ 베이비복스 내에서 따돌림당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소문일 뿐이에요. 전 지금도 언니들 만나면 존댓말을 써요. 한 살 차이가 나도 선배에 대한 예의를 지켜요. 베이비복스 시절부터 몸에 뱄거든요. 그게 다른 팀과 다른 점이었어요. 남의 눈에는 언니들이 군기 잡는 것처럼 보였나본데, 존댓말을 쓰다보면 분위기가 냉랭해질 순 있지만 싸울 일이 없어요. 아랫사람이 계속 존댓말을 쓰니까 윗사람도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기가 힘들거든요. 서열이 분명해서 오히려 불평불만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저로선 그 상황을 버텨내야 하고, 잘못한 게 있으면 반성하고 노력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죠. 언니들보다 늦게 들어가 부족한 점이 많았으니까요. 그 때문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언니들이 엄마처럼 저를 이끌어주고 보호해줬어요. 정말 불화가 있었다면 7년을 어떻게 버텼겠어요? 언니들이 차츰 저한테 고민도 털어놓고 서로 마음을 나누다보니 한 가족처럼 가까워졌어요. 지금도 언니들과 연락하고 지내요.”

    ▼ 학교에선 어땠나요.

    “조용했어요. 한 번도 나서본 적이 없어요. 지금도 부끄러움을 잘 타서 앞에 나서서 뭔가를 도모하는 일이 없죠. 친구들이 없진 않았지만 무리 지어 다니지 않았어요. 친한 친구 한 명만 있으면 되는 그런 아이였어요. 남학생 친구도 많지 않았어요. 인기가 없었어요(웃음).”

    ▼ 어릴 때 데뷔해서 아쉬운 점은 없는지.

    “아쉬운 건 많지만 ‘왜 그때 이런 걸 누리지 못했지?’ 하고 지난 일을 후회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어느 쪽으로든 마음을 정하고 나면 장점을 많이 보려고 해요. 가뜩이나 외로운 직업인데, 안 좋은 것만 생각하면 저만 힘들고 우울해지잖아요. 데뷔 전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이런 생각은 해봤어요. ‘남친(남자친구)’ 손잡고 길을 걸어보는 추억도 만들고, 친구를 좀 더 많이 사귀어서 전화번호를 다 받아놓을 것 같아요. 학업에 대한 아쉬움은 지금 채우고 있고요.”

    서울 구정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연예활동으로 바빠 정규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대신 2003년 경희사이버대에 들어가 관광레저경영학을 전공했다. 5년 뒤인 지난해부터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상학을 공부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엔 자신이 연출한 단편영화 ‘뜨개질’로 부산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진출해 감독으로서의 재능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연기든, 요리든 대충 못 넘겨

    ▼ 영화 연출에 관심이 많은가봐요.

    “연출자의 눈으로 배우를 보고 싶었어요. 연출을 배워 감독이 되려는 게 아니라 배우로서 좀 더 단단해질 거라는 생각에서요. 마침 들어온 작품 중에 마음에 드는 건 없고, 시간을 죽이는 게 아깝기도 해서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어요. 친한 감독이 추천해줬거든요. ‘뜨개질’은 대학원에서 실습과제로 만든 작품이에요. 영화 연출이 생각보다 어려워 괜한 욕심을 부렸구나 싶기도 했어요. 내가 연기할 때 진정성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배우로서 오기를 부린 거였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연기를 하다보면 내 캐릭터에 빠져 과한 욕심을 부릴 때가 있거든요. 좀 내려놔도 되는데 끝까지 우겨서 찍는 거죠. 제3자의 처지에서 모니터로 보니 그런 불필요한 욕심이 보이더라고요. 많이 반성하고 많이 배웠어요.”

    ▼ 슬럼프는 없었나요.

    “없다면 거짓말이죠. 연기할 땐 완벽주의자 같은 면이 있어요. 작은 것도 대충 넘기지 못해요. 다 내 손을 거쳐야 안심이 돼요. 그러다보니 매사에 생각이 많고 내 맘처럼 되지 않으면 힘들어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헤어나기 버거울 정도의 슬럼프를 겪은 적은 없어요.”

    드라마 ‘보고 싶다’로 연기대상 2관왕 윤은혜
    ▼ 힘들 땐 어떻게 이겨냅니까.

    “크리스천이라 기도를 많이 하는데, 시간보다 더 좋은 약은 없더라고요. 아무리 힘들어도 지나고 나면 괜찮아지거든요.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고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울고 힘들어해도 힘든 일을 겪고 나면 그 시기에는 다 필요한 경험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돼요. 그래서 현재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려고 해요.”

    ▼ 별명이 ‘윤길동, 윤혜자, 집순이’더라고요.

    “오래전 팬들이 지어준 거예요. 제 팬은 다 언니들이에요. 어떤 얘기를 해도 가벼이 넘기지 않고 존중해주는 분들이죠. 제가 손윗사람에게 깍듯이 예의를 차리는 편이거든요. 도에서 벗어나는 걸 못 참고요. 그런 걸 보고 나름의 카리스마가 있다며 ‘윤혜자’라고 하더라고요. ‘윤길동’은 해외 이곳저곳을 잘 왔다갔다 한다고 붙여주신 별명이고요. ‘집순이’는 지인들이 지어준 애칭이에요. 그림 그리고 요리하면서 집에서 잘 논다고요. 요리하는 걸 참 좋아해요. 한식, 양식 가리지 않아요. 빵도 만들 줄 알아요(웃음).”

    ▼ 요리책을 내는 건 어때요.

    “에세이라면 몰라도 요리책은 전문가처럼 할 게 아니라면 못 낼 것 같아요. 요리를 좋아하는 만큼 대충 만들고 싶진 않거든요.”

    “씨름 잘해서 ‘소녀장사’예요”

    가수시절 윤은혜의 대중적인 애칭은 ‘소녀장사’였다. SBS 예능프로그램 ‘실제상황 토요일’의 ‘엑스맨을 찾아라’ 코너에서 천하장사 출신 MC 강호동을 업는 ‘괴력’을 발휘해 얻은 별칭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윤은혜는 “기운 세서가 아니라 씨름을 잘해서 소녀장사라고 불렸다”며 오해를 바로잡았다.

    “여자 출연자를 상대로 씨름을 해서 계속 이기니까 저도 신기했어요. 뼈가 약해서 팔씨름은 못하는데 씨름은 좋아하고 잘해요. 강호동 씨가 힘쓰는 기술이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덕에 ‘소녀장사’가 됐는데 그걸 못나고 뚱뚱하고 못생긴 이미지로 잘못 이해한 분도 있더라고요. 어감이 우스꽝스럽지만 전 그 별명이 싫지 않아요. 씨름 잘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잖아요(웃음).”

    ▼ 낯을 가리는 편인가요.

    “낯가림이 심했는데 많이 나아졌어요. 근데 이것도 상대적이더라고요. 상대방이 마음을 열고 깊은 관심을 보이면 저도 마음을 다 열지만, 저에게서 보고 싶은 면만 보려고 다가오면 마음을 닫아버려요.”

    ▼ 연기 데뷔작인 ‘궁’은 어쩌다 찍게 됐나요.

    “베이비복스를 탈퇴하고 처음 찍은 작품은 영화 ‘카리스마 탈출기’예요. ‘궁’보다 늦게 개봉해 ‘궁’으로 데뷔한 게 됐죠. 그 영화는 저랑 성격이 안 맞아 애초에 거절하고 싶었어요. 찍을 때도 힘들고 불편했고요. 연기 수업을 정식으로 받아본 적이 없어서 연기라는 안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황인뢰 감독님이 저한테 ‘궁’의 주인공 자리를 안 주셨을 거예요. ‘궁’을 찍기 전 오디션을 봤어요. 연기력을 시험하는 오디션은 아니었고 감독님과 얘기만 나눴어요. 감독님이 물어보는 대로 제 얘기를 했는데 나중에 원작 만화를 보니 주인공 신채경의 캐릭터가 저랑 똑같더라고요. 취미가 만화 그리기고, 남동생이 하나 있고, 자란 환경도 저와 비슷하고요. 그게 너무 부끄러웠어요.”

    ▼ 왜요.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라 캐릭터가 비슷해서 주인공을 딴 거잖아요. 돌아보면 운명처럼 채경이 역이 주어진 것 같아요. 애썼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걸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했어요. 그때는 뭔지도 모르고 연기를 해서 지금도 ‘궁’을 못 봐요. 연기 못해서 볼 자신이 없어요.”

    ▼ 연기가 꽤 자연스러웠는데.

    “그땐 멋 모르고 겁 없이 한 거지, 지금 그렇게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편하게 다가가는 건 할 수 있지만 채경이처럼 매사에 엽기적이고 쾌활한 성격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때도 편한 사람 앞에서 오버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많이 연구하고 노력했어요.”

    ▼ 극중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실제로도 그런 줄 알았어요.

    “저랑 얘기하면 생각했던 모습과 다르다고들 해요. ‘커프’를 찍을 때도 실제 취미나 취향은 ‘채정안 언니가 더 털털하고, 은혜가 더 여성스럽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제 안에는 분명 고은찬이나 신채경 같은 면이 있지만 여성스러운 면도 있는데 단면만 가지고 평가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그런 사람들하고는 얘기를 길게 하기가 힘들어요. 답답해요(웃음).”

    ‘보고 싶다’ 덕에 겸손해져

    ▼ 작품 선택 기준이 뭔가요.

    “즐겁게 촬영할 수 있고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 작품, 시청자 입장에서 보고 싶은 작품을 선택해요. 대본을 보면서 이미 연기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끌리는 작품이 있거든요. 마음 같아선 닥치는 대로 여러 작품을 하고 싶기도 해요. 칼도 자꾸 써야 잘 들 듯이 많은 것을 담다보면 여러모로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경력이 쌓일수록 작품 고르는 일이 간단치 않아요. 작품이 흥행이 안 되면 배우생활에 지장을 받거든요. 출연 제의도 줄어들고 다음 작품을 고를 때도 제약이 따르니까 그런 점 때문에 겁먹게 되는 게 사실이에요. 흥행과 상관없이 연기생활에 도움이 되는 작품, 후회하지 않을 만한 작품을 하는 게 가장 좋아요.”

    ▼ ‘보고 싶다’도 그런 이유로 선택한 건가요.

    “그전에 찍다가 엎어진 작품도 있고 제작이 무산된 작품도 있어서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보고 싶다’ 대본을 보면서 위로가 되더라고요. 밤새 읽었는데 느낌이 매우 좋았어요. 하지만 언젠가 이런 작품이 들어오겠지 하면서 마음을 내려놨어요. 제 것이 아니면 욕심 부리지 않거든요. 그래서 제가 포기한 작품이 잘돼도 ‘나한테 들어왔던 거야’ 하고 밖에다 얘기하지 않아요. 감독, 작가와 미팅할 때도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고 나갔어요. ‘제 모습과 닮아 있다면 제 것이 되게 해주세요, 제 것이 아닌데 과욕을 부리는 거라면 다음에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요. 그런데 고맙게도 작가님이 수연이 대사를 쓸 때 내 생각이 많이 났다고 하시더군요. 얘기가 잘돼서 이수연 역을 맡게 됐는데 며칠 뒤 오해가 생겨서 그 작품을 못할 뻔했어요.”

    ▼ 어떤 오해?

    “캐스팅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의견조율이 잘 안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저를 생각하면서 대본을 썼다는 작가님의 한 마디에 다 치유가 됐어요. 배우로서 좀 더 겸손해지는 계기도 됐고요. 다 내려놓았다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할 수 있게 되니까 다른 쪽으로 예민해지더군요. 정말 잘해서 많은 걸 보여드리고 싶다는 그런 각오로 임했어요.”

    ▼ 마지막 촬영 날 쓰러졌다고 하던데 지금은 괜찮은가요.

    “아직 안 좋아요. 좀전에도 병원에 갔다 왔어요. 의사가 몸의 밸런스가 무너졌다고 하더라고요. 웬만하면 잘 버티는데 촬영 내내 추위와 싸웠더니 몸이 금방 망가지더라고요. 전엔 촬영 끝나고 나서 한꺼번에 앓았는데 이번엔 추운 곳과 더운 곳을 왔다갔다 했더니 체력소모가 많았던지 막판에 무너졌어요. 그전에 한 작품들에 비하면 우는 신이 많았던 것 빼고는 가장 편하게 찍었어요. 고맙고 미안할 정도로요. 추위가 문제였어요. 너무 추워 못 버틴 것 같아요. 촬영 끝나기 일주일 전부터 몸이 붓더니 이유 없이 살찌고 그랬거든요. 지금도 많이 부어 있어요. 혈액순환이 안 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한약 지어 먹었더니 많이 나아졌어요. 일주일 전만 해도 쓰러져 있었거든요.”

    ▼ 수연이의 성폭행 트라우마가 감정적으로 힘들게 한 건 아닌가요.

    “수연이는 어린 시절 성폭행에 대한 기억을 잊었어요. 성폭행 가해자를 만났을 때는 끔찍한 상황이 떠올라 부들부들 떨었지만, 평소에는 옆에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채워줘서 아픈 기억을 잊고 편하게 지내요. 같은 아픔을 겪어도 어떤 사람은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만 어떤 사람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밝게 살잖아요. 수연이도 그랬어요. 작가님도 아픈 기억 때문에 우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고요. 수연이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에요. 밝은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밝은 캐릭터요.”

    ▼ 이제 수연이를 마음에서 비웠나요.

    “털어낼 게 없어요. 신기해요. 해피엔딩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비극적 결말이 될 거라는 소문도 돌았지만, 그러면 수연이처럼 상처 받은 분들에게 아무런 희망도 위로도 줄 수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내심 행복한 결말을 바랐는데 작가님과 마음이 통했던 것 같아요.”

    가수 재도전할 수도

    ‘궁’의 주지훈, ‘포도밭 그 사나이’의 오만석, ‘커프’의 공유와 이선균, ‘아가씨를 부탁해’의 윤상현,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강지환까지 드라마에서 그의 상대역은 대부분 연상이었다. 그런데 ‘보고 싶다’의 두 남자주인공 박유천과 유승호는 그보다 두 살, 아홉 살 아래다.

    ▼ 연하와 연기한 건 처음인데 어떻던가요.

    “의외로 편했고, 어리게 느껴지지도 않았어요. 나이 차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런 데 신경 쓰면 연기에 집중하지 못해요. 동생을 남자로 생각한 적이 없어서 감정 잡기가 힘들 줄 알았는데, 그 친구들이 워낙 연기를 잘해서 저도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 ‘보고 싶다’로 연기대상 2관왕 윤은혜

    드라마‘보고 싶다’의 한 장면.

    ▼ 닮고 싶은 배우가 있나요.

    “전도연 선배님, 김희애 선생님을 무척 좋아해요. 연기하는 스타일뿐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멋있어요. 그분들 작품을 보면 나도 나중에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죠.”

    ▼ 다시 무대에 서고 싶진 않나요.

    “지금도 무대를 생각하면 설레요. 다만 가수로서 멋진 모습을 못 보여드려서 ‘가수 출신’이란 게 부끄럽죠. 무대에서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했다면 자랑스러운 과거로 생각했을 거예요. 다른 배우에겐 없는 또 하나의 재능을 가진 거니까요.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대에 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도 정말 하고픈 음악이 있을 땐 영화나 드라마 OST(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에 참여해요.”

    ▼ 걸그룹 출신 연기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조언할 게 있을까요. 저희 때는 팀 활동에 누가 되거나 다른 멤버에게 미안해서 개인 활동을 꺼렸는데, 요즘은 많은 것을 포기하지 않고도 각자 재능을 살릴 수 있는 분위기인 것 같아요. 그게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요. 노래와 연기에 모두 집중하려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두 배는 더 힘들 텐데도 두 가지를 다 잘 해내는 게 대단해요.”

    ▼ 드라마 성적은 대체로 좋았는데 영화로는 재미를 못 본 것 같네요.

    “‘마이 미니 블랙드레스’는 잘 안될 줄 알았지만 그 작품을 안 찍고 30대로 넘어가면 후회할 것 같았어요. 흥행이 저조해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 거죠. ‘고양이를 부탁해’ 같은 영화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그림이 가볍게 나온 건 좀 아쉬워요.”

    ▼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없어요. 모든 캐릭터에 애착이 가요. 너무 힘들었거나 개성을 살리지 못해서 아쉬운 캐릭터도 있어요.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는 다 저랑 조금씩 닮았어요. 그렇게 닮은 부분을 저랑 안 어울린다거나 어색하다고 평가할 땐 좀 충격을 받죠. 앞으로 연기하기가 많이 힘들겠구나 싶거든요.”

    그는 연기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매년 한두 편만 찍었다. 다작을 하지 않으니 연기 공백이 남보다 긴 편이다. 그만의 여가 활용법이 궁금했다.

    ▼ 쉴 땐 뭐하나요.

    “손을 가만두지 못해 요리하고 그림 그리는 게 취미가 됐어요. 따로 전시회를 연 적은 없지만 제 그림을 많이 보셨을 거예요. 뉴욕에 가서 말을 그려 트위터에 올린 적도 있고, 아프리카에서 아이들 얼굴을 그린 그림이 방송에 나간 적도 있어요. 패션이나 사진에도 관심이 많아요. 예쁜 그릇이나 아이디어북, 인테리어 보는 걸 좋아해요.”

    스물둘에 결혼하고 싶었다

    ▼ 작년에 처음 클럽에 가봤다면서요.

    “작품 끝나고 뒤풀이 차원에서 간 적은 있지만 개인적으로 놀러간 건 처음이에요. 이목을 끄는 데를 쉽게 가는 성격이 아니라서 저 나름의 도전이었죠. 처음에는 자유롭게 노는 게 신기해서 한두 번 더 갔는데 클럽 체질은 아닌 것 같아요. 잠깐 있었는데도 재미가 없어서 그냥 나왔어요. 전 좋아하는 사람들과 얘기하며 술 마실 때가 더 좋아요. 술자리라서가 아니라 그런 편한 분위기에서 얘기를 나누는 게 좋아요.”

    ▼ 술은 잘하나요.

    “불편한 자리면 많이 안 마셔요. 안 취하려고 노력해요. 술을 잘 못하거든요. 와인 한두 잔이면 적당히 취하더라고요.”

    그의 나이도 어느덧 20대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잘생긴 꽃미남 배우들과 짝을 이뤄 때론 풋풋하고 때론 절절한 사랑을 나누는 연기도 여러 차례 했다. 드라마만 찍었다 하면 상대역과 스캔들이 나는 여배우도 있건만 그는 지금껏 이렇다 할 ‘사고’를 친 적이 없다. 2000년대 중반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던 가수 김종국과 러브라인을 형성하며 ‘당연하지 커플’로 불리기도 했지만 이 역시 다분히 재미를 위한 ‘설정’이었다.

    ▼ 연애엔 관심이 없나요.

    “항상 관심이 있었어요.”

    ▼ 이상형은.

    “함께 있으면 편하고, 대화가 잘되는 사람이 좋아요. 대화가 잘 통한다는 건 관심사와 관점이 비슷하다는 거겠죠. 외모는 잘 안 봐요. 잘생긴 사람은 별로예요. 보면 볼수록 매력 있는 사람이 좋아요.”

    ▼ ‘보고 싶다’의 정우(박유천 분)와 해리(유승호 분) 중 한 명을 택한다면.

    “둘 다 이상해요. 외모나 성격은 두 사람 모두 좋지만 사랑 표현이 과해요(웃음). 사랑하지 않는데 남자친구가 해리처럼 집요하게 다가오면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 한 여자를 14년 동안 좋아하는 정우 같은 타입도 내키지 않아요. 그런 두 남자가 실제로 대시해오면 둘 다 거절할 것 같아요.”

    ▼ 첫사랑은 언제 했나요.

    “서로 마음을 다해 좋아하는 첫 번째 사랑이 첫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만날 사람이 첫사랑이 될 것 같아요. 수줍음이 많아서 짝사랑을 자주 했어요. 혼자 좋아하다 말고…그런 적이 많아요. 지금도 수줍음을 많이 타는데 예전보다는 나아졌어요. 어릴 때야 학교에서 멋진 친구를 보면 짝사랑을 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럴 기회가 없어요. 짝사랑이라도 해보고 싶네요.”

    ▼ 연애 상대로 연예인은 어떤가요.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공감대가 있으니까요. 서로 하는 일도 잘 이해해주고 말도 잘 통할 것 같아요.”

    ▼ 사랑하면 푹 빠지는 스타일?

    “그런 것 같아요. 남친뿐 아니라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하면 다 주는 편이에요.”

    ▼ 연예인 친구는 있나요.

    “동갑내기는 아니지만 손예진 언니랑 친해요. 연예인보다 일반인 친구가 더 많아요. 친하기도 일반인 친구들과 더 친하고요. 친구가 많지 않아요. ‘넓게’보다는 ‘깊게’ 사귀는 편이에요.”

    ▼ 20대가 끝나가는 게 아쉬울 것 같아요.

    “전혀 안 그래요. 저는 20대에 많은 것을 해봐서 뿌듯한 29세랍니다. 아프리카 가서 봉사도 했고…힘들었던 만큼 굉장히 많은 것을 얻었어요. 특히 지난해는 좋은 작품도 찍고, 공부도 새로 시작하고, 심사위원도 해보고, 별의별 것을 다 경험했어요. 아쉬울 것도 서운할 것도 없어요.”

    ▼ 30대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지금의 연장선이 아닐까 싶네요. 지금처럼 살지만 어떤 면에서는 더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연령대가 달라졌다고 해서 크게 바뀌는 건 없을 거예요. 굳이 안 달라져도 보는 사람은 다르게 볼 수 있겠죠. 제가 어떤 작품을 하느냐,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보는 각도가 달라질 테니까요.”

    해가 바뀔 때마다 특별한 목표를 세우기보단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왔다는 윤은혜. 지금 그는 “늘 그랬듯 다양한 작품을 해보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과유불급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며 마음 비우고 들어온 대본들을 보고 있다”고 했다.

    ▼ 연예인이 안 됐으면 지금 뭘 하고 있을까요.

    “주변 사람들 얘기가, 뭘 하더라도 잘하고 잘 먹고살 것 같다더군요(웃음). 딱히 하나를 특출나게 잘하진 않는데 두루두루 잘한다고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도 제 걱정은 안 했어요. 무인도에 떨어뜨려놔도 살 것 같다고 하셨어요. 전 지금도 돈이 없으면 알바(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먹고살 용의가 있어요. 연예인이라도 먹고살기가 막막하다면 다른 살길 찾는 걸 주저하지 않을 거예요. 감당할 수 있는 고충은 어떻게든 이겨내거든요.”

    ▼ 결혼은 안 할 건가요.

    “웬걸요. 스물두 살에 결혼하고 싶었어요. 20대엔 못 이룬 꿈, 30대엔 이루려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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