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은 창의성 발휘 어려워…한국의 IBM 돼라”
- “아버지는 대기업 키워 ‘한강의 기적’, 朴은 창소기업 키우길”
- “대통령 직속 창소기업지원위원회 설립해야”
- 성매매 의혹 사건 무죄판결…뒤늦은 명예회복
중소기업법률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주성영 전 의원은 최근 경제 에세이 ‘창고의 다윗’을 펴냈다.
이에 대해 주성영 전 의원은 “경제발전 혜택이 대기업에 편중돼 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우리나라는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고, 국내 고용 중 88%가 중소기업에 의해 창출된다. 대다수 기업과 국민이 지금의 경제호황 혜택에서 소외되는 구조다. 지금 같은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가 이어진다면 우리 경제는 더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중소기업, 그중에서도 ‘창소기업’(창조경제의 핵심이 되는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문료 많아 사단법인化
17,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주 전 의원은 검사 출신의 법조인이다. 국회에서도 8년 내내 법사위에서 활동했다. 그런 그가 요즘 ‘중소기업 살리기’에 ‘올인’하고 있다. 2012년 대구와 서울에 중소기업법률지원센터를 만들었고, 지난 11월엔 경제 에세이 ‘창고의 다윗’을 펴냈다. 이 책에는 왜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하는지가 설득력 있게 담겨 있다.
▼ 중소기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불미스러운 소문으로 인해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대구시당위원장으로 총선을 책임지고 성공적으로 치렀다. 총선 후 주위에서 무료법률사무소를 차리라는 권유가 많았는데 내 체질엔 안 맞는 것 같았다. 대구는 대표적인 중소기업 도시다. 변호사 자격이 있고 국회에서 8년 동안 법사위 활동을 했기에 종합해 봤을 때 중소기업을 법률적으로 돕는 일을 하는 게 맞겠다 싶어 중소기업법률지원센터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 잘되고 있나.
“많은 중소기업이 찾고 있다. 생각도 안 했던 자문료가 쏠쏠하게 들어온다. 실제 법률적인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불쌍해서 주는 것이겠지만(웃음), 웬만한 대형 로펌 연매출 수준으로 들어왔다. 그 돈을 함부로 쓰면 안 되겠다 싶어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사단법인은 회계도 투명해야 한다. 수입의 20% 이상을 운영비로 써도 안 되고, 목적사업에만 사용해야 한다. 지원센터는 앞으로도 내 필생의 과업으로 가져갈 생각이다. 중소기업에 나라의 미래가 달렸기 때문이다.”
▼ ‘창고의 다윗’은 어떻게 쓰게 됐나.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후보 유세단장으로 활동했는데, 대선 화두가 복지와 창조경제였다. 자연스럽게 창조경제와 중소기업의 결합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 고민과 대안을 책으로 정리해봤다. 1년 정도 중소기업 법률지원 활동을 한 것을 가지고 전문가인 양 책까지 내도 되겠나 하는 고민도 있었지만 법률가, 정치인의 시각으로 한국 경제를 분석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삶은 개구리 증후군
▼ 책의 부제가 ‘삼성전자는 이미 3류다’이던데, 세계적 대기업을 너무 깎아내린 건 아닌가.
“홍수가 나서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떠내려가도 우리나라엔 별문제가 없지만 삼성전자가 부도나면 바로 망한다. 우리처럼 한 기업이 국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나라는 없다. 그런데 지금 삼성 등 대기업의 행태를 들여다보면 정말 3류다. 삼성이 변화하고 의식을 바꾸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 경제 펀더멘털은 바뀌지 않는다. 삼성을 비난하려고 한 게 아니라 애정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거다.”
▼ 삼성 같은 대기업이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라는 건가.
“미국이나 유럽의 대기업들은 시작이 창소기업이었다. 그래서 조직이 커져도 내부에 창조적인 기업정신이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리 대기업은 전근대적인 기업에서 출발했기에 태생적으로도 창의적인 마인드가 부족하다. 삼성전자만 해도 그렇다. 애플이 처음 스마트폰을 개발, 출시했을 때 삼성이 취한 행동은 모든 로비를 동원해서 한국시장 상륙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KT가 수입을 강행하자 할 수 없이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들었다. 미래에 대한 준비가 없었던 거다.”
18대 국회 시절 주성영 전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냉철하게 봐야 한다. 삼성 제품 중에 세계 1등은 많지만 어느 것 하나 먼저 개척한 게 없다. 후발주자로 시작해 1위에 오른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모방, 개선, 압축성장, 혁신, 스피드, 불량률 제로 등 삼성전자의 트레이드마크가 원동력이 됐다. 지금까지는 이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었지만 한계가 있다. 모든 변화에 이렇게 대응하겠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더 이상 모방하고 따라잡을 대상이 없으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어쩌면 지금 삼성은 호시절의 끝물에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자칫하면 삶은 개구리 증후군에 빠질 수 있다.”
▼ 삼성이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보나.
“주어진 문제를 빨리, 정확하게 푸는 것에서 나아가 새로운 문제 자체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데 삼성에 그런 능력이 있을까.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직원 의식은 관료화한다. 관료화한 대기업집단에서는 원초적으로 창의성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우리 경제의 미래가 어둡다고 말하는 거다. 삼성은 2009년부터 5대 신사업을 추진했지만 의료기기 분야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실패했다. 의료기기 분야에서 그나마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M·A(인수합병)했기 때문이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 창의적이지 않다고 대기업을 해체하라는 말인가.
“대기업이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닌 창조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미국에서 전문가들에게 앞으로 100년을 살아남을 기업을 조사했는데, 가장 많이 손꼽힌 게 IBM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키운 게 IBM이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는 명멸할 수 있어도 IBM처럼 새로운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회사는 살아남을 수 있다. 삼성이 이런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새로운 아이디어로 기술을 개발하는 수많은 벤처기업이 있다. 이런 창소기업들을 지원하고, 개발에 성공하면 제값을 주고 인수하면 된다.”
한국과 독일의 중소기업 수는 350만 개 정도로 비슷하다. 하지만 중견기업은 독일이 40만 개가 넘는 데 비해 한국은 1300개에 불과하다. 국제경쟁력을 가진 중소기업 숫자에선 차이가 더 크다. 주 전 의원은 정부가 나서서 창소기업을 지원,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소기업지원위원회’
“오늘날의 대기업집단은 박정희 대통령 때 압축성장을 위해 제도적으로 키운 것이다. 그 시절엔 그게 필요했고, 실제 우리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그 결과 재벌 중심 경제구조가 됐고, 대기업이 이윤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폐단이 생겨났다. 이젠 대기업집단들의 투자에만 매달리는 방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먹여살리는 대기업을 육성했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미래의 대한민국을 먹여살릴 창소기업을 키워야 한다.”
그는 미국, 독일, 이스라엘 등 선진국들은 일찍부터 중소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이들의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우리는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보나.
“법률적으로는 중소기업 보호 육성과 관련한 좋은 정책, 제도는 다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운용과 실천이 안 된다. 관료들이 문제다. 법을 더 만들고,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부로 만든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이 문제의식을 갖고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민간 기업인이 참여하는 창소기업지원위원회(가칭)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어 대통령이 힘을 실어줘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수출점검기구를 만들어 매달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이 회의에 기업인도 참석했고, 민원을 제기하면 그 자리에서 해결해줬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창소기업인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민관합동위원회가 필요하다. 기존의 동반성장위원회로는 한계가 있다.”
▼ 최근 가업 승계 기업들 사이에 상속세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요구가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상속세 면제는 부의 대물림이라는 부정적 시각도 많다.
“몇 년 전, 세계 손톱깎이 시장을 석권하던 쓰리세븐(777)이라는 기업이 상속세 때문에 매각됐다. 반면에 대기업은 상속세를 얼마나 내고 있나. 힘 있는 사람은 다 피해가고 힘없는 사람들만 돌을 맞는다. 세금은 제대로 걷어야 하지만, 어렵게 일군 가업을 상속세 때문에 이어가지 못하고 남에게 팔아넘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소기업의 나라로 불리는 독일도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상속세를 파격적으로 유예해준다.”
공정성이 경제민주화
▼ 정부와 사회는 청년들에게 창업에 도전하라고 장려하지만,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자녀의 창업을 반대하는 부모의 비율이 52%를 넘었다. 창업했다 실패하면 사회적으로 패배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는 창업 여건이 아주 좋지 않다. 특히 실패에 아주 인색하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이전에 서너 번은 실패한 게 보통인데, 우리는 한 번만 실패해도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혀 재기가 불가능하다. 그런 점을 개선해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만 자금이 부족한 창업인들에게 대출이 아니라 투자를 해주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 일을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이 해야 한다.”
▼ 창조경제에 적합한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창조경제에 대한 개념 정리가 안 된 것 같다.
“개념이 정리되면 이미 창조경제가 아니다. 창조경제는 유기체처럼 살아 있는 것이다. 무인 자동차라는 개념이 처음 나왔을 때 모두들 그게 과연 실현 가능할까 의심했다. 그걸 실현하는 게 창조경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실현 단계에 와 있는 지금은 창조경제가 아닌 게 됐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MP3나 커피믹스처럼 이전에 세상에 없던 것을 우리 중소기업이 만들었지 않나. 이처럼 아직 세상에 없는 선도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이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창조경제다. 여기에 공정성, 즉 경제민주화의 개념을 덧붙여야 한다.”
▼ 공정성을 어떻게 구현하라는 얘긴가.
“중소기업이 어렵게 기술을 개발해도 대기업에 일방적으로 빼앗기는 경우도 많다. 미국은 특허를 안 받아도 시장에서 가치를 평가해 제값을 주고 사는 게 일반화해 있다. 이처럼 아이디어와 비즈니스화 사이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공정거래위원회 하는 것 보면 아직 멀었다. 공정은 약자에 대한 배려이고, 불법·편법·특혜를 근절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대기업 죽이기가 아니라 창소기업을 육성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대기업집단이 지배하는 우리 현실에서 창소기업이 사회적 배려 속에 공정하게 경쟁해 싹을 틔우고 시장원리에 따라 왕성하게 성장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하는 게 진정한 경제민주화다.”
恒産, 恒心
그는 창소기업 지원과 육성은 정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도 심혈을 기울여야 할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맹자에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고 했다. 일자리가 곧 복지의 시작이고 끝이란 이야기다. 지금 실업률이 높다고 아우성이다. 실업자는 넘쳐나는데 중소기업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일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구인과 구직 사이에 갭이 있어서다.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그런 갭이 생긴다. 지자체장이 자기 지역에서 소통의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 또한 과거엔 공무원과 군이 수출을 주도하고 기업을 이끌어줬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보다 공무원이 더 무지하고, 오히려 수출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지자체부터 공무원과 기업이 함께 수출을 고민하고 추진할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지자체장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 역량의 절반을 창소기업 육성에 들여 전념한다는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
주 전 의원은 검찰 출신인데도 18대 의원 시절 검찰 개혁을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성매매 의혹’ 수사를 받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그는 2013년 1월 무죄 판결을 받았다. ‘표적수사’였다는 주장이 제기된 이유다. 억울함을 풀기 위해 다시 출마할 생각은 없었느냐고 묻자 “그러면 사람이 더 추해질 뿐”이라고 말했다.
“정의란 것은 그 자체가 정의로워야 할 뿐 아니라 정의롭게 보여야 한다. 벌써 저쪽에서 내 명예를 더럽히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 자체로 더렵혀진 거다. 그럴 땐 미련 없이 벗어던지는 게 정의로운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