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월원각대조사가 중창…사찰 150여 개, 신도 250만
- 수행으로 내실…애국불교·대중불교·생활불교 실천
- “종교인의 발언은 신중하고 사려 깊어야”
- “朴대통령, 소통·화합 위해 상대 이야기부터 경청을”
취임 1년을 맞은 천태종 총무원장 도정 스님.
천태종은 현재 충북 단양의 총본산 구인사를 중심으로 서울 관문사, 부산 삼광사 등 전국 150여 개 사찰을 두고 있다. 중심 교리는 묘법연화경을 소의경전으로 삼아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되게 하는 것’이라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정신과 ‘부처님의 깨달음은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영원한 것’이라는 법화사상을 골자로 한다.
데이터 행정 도입
2012년 12월 총무원장에 취임해 천태종을 이끌고 있는 도정 스님을 서울 우면산 관문사에서 만났다. 스님은 상월원각대조사의 직계 제자다. 스님을 만난 날, 세상을 정화하려는 듯 전국에 함박눈이 내렸다.
▼ 총무원장에 취임한 지 1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종단 안정과 쇄신의 기반을 닦는 데 주력했습니다. 데이터 행정을 도입해 측근 인사와 주먹구구식 행정을 근절했고, 경력이나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종단 집행부와 지역 말사 주지 인사 등을 단행했으며, 체계적인 행정 계획을 세웠습니다. 종단 스님들뿐 아니라 재가불자들도 적극 협조해주셔서 종단이 더욱 현대화하는 토대가 마련된 한 해였습니다. 저를 총무원장에 지명해주신 종정 예하께 누를 끼치지 않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 취임 후 굵직한 행사들을 잇달아 치렀다고 들었습니다.
“먼저 말씀드릴 수 있는 게, 불교천태중앙박물관 개관입니다. 총본산인 구인사 옆에 만들었는데, 2003년 착공해 10년 만인 2013년 8월 문을 열었습니다. 국립박물관을 제외한 사설 박물관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가 아닐까 싶습니다. 소장 문화재도 1만5000여 점에 달합니다. 향후 상월원각대조사의 유품 전시관 개관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 천태종의 역사와 전통불교문화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게 될 문화 전진기지이자, 지역민의 문화 갈증을 해소해줄 문화 소통 공간으로 의미 있게 활용할 것입니다.”
▼ 충북 단양에 일심국제선원도 건립 중인 것으로 압니다.
“2014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일심국제선원은 종교와 종단, 지역과 계층,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 누구나 찾아와서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과 전통문화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활력을 되찾고, 삶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도록 복합 수행문화공간으로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특히 단양과 충북을 널리 알리는 또 하나의 명품 문화자원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공기(工期)가 다소 늦어져 차질을 빚었지만, 그만큼 준비하는 마음도 단단히 다져서 만전을 기해 불사에 임하고 있습니다.”
도정 스님은 1968년 입산해 1973년 상월원각대조사 아래서 득도했다. 전국의 주요 사찰 주지와 총무원 사회부장, 총무부장, 감사원장, 종의회의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 입산한 계기가 있다면.
“어려서부터 구인사에 다녔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대조사를 뵙고 흠모라고 할까, 감동을 받고 출가하게 됐죠. 당시 스님은 신통한 일을 많이 이루셨습니다. 절에 와서 기도하면 어려운 모든 문제가 다 풀리고 소원도 이루어지고 …. 제가 입산했을 때만 해도 구인사는 작은 암자였는데, 지금은 천태종 신도가 250만 명이 넘으니 그것도 다 스님의 신통이라 할 수 있지요.”
▼ 스님께도 그런 신통력이 있습니까.
“저도 배우고 싶었는데,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더군요(웃음). 신통은 수행정진을 하면서 마음이 되면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봅니다. 마음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마음이 되면 앉아서 천리 밖을 볼 수도, 천리 밖 세상의 소리도 다 들을 수 있습니다.”
▼ 육영수 여사도 생전에 상월원각대조사와 친분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육 여사께서도 관심이 있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누님인 박재희 여사가 특히 인연이 깊었습니다. 구인사 창건을 돕기도 하고, 와서 살기도 했습니다. 종단 명예회장도 맡으셨고.”
求福 대신 作福
▼ 천태종은 애국불교, 대중불교, 생활불교를 지향한다죠.
“대조사께서 수행의 초점을 이 3대 지표에 맞추라고 정해놓으셨습니다. 일제하에서 수행하며 핍박을 많이 당하신 스님께서는 ‘나라 없는 종교는 없다’며 애국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종단은 어떤 집회든 국운융창(國運隆昌)을 기원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복을 비는 구복(求福)불교가 강했지만 스님께선 ‘복은 빈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스스로 복을 짓는 작복(作福)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절에 갔을 때만 착한 마음을 갖는 게 아니라 생활할 때에도 늘 부처님이 계신 법당에 있다는 마음으로 사는 게 생활불교입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항상 깨끗하면 어디서나 연꽃이 핀다’는 게 바로 그 뜻입니다. 대중불교는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함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남북 화합과 통일에 기여하는 게 가장 큰 애국불교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1월 개성 영통사에서 열린 남북 합동 법회는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영통사는 대각국사 의천 스님께서 35년간 주석하신 곳이자 돌아가신 곳입니다. 천태종의 원뿌리라 할 수 있는 곳이죠. 16세기에 화재로 소실된 후 방치되다 우리 종단이 북측과 공동으로 복원사업을 진행해 2005년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이후 의천 스님의 제사를 지내고 성지순례를 하는 등 민간 교류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문제가 걸림돌이 돼 큰 진전이 없는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해 기회가 되는 대로 적극 나설 계획입니다.”
▼ 대중불교를 지향하기 때문인지 사회사업도 활발하게 벌이는 것 같습니다.
“복지재단을 만들어 작은 역할이라도 하려고 합니다. 얼마 전 필리핀이 태풍 하이옌으로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우리가 자비를 통해 돕는 건 당연한 일이죠. 종단 사찰을 돌며 모금 법회를 진행해 성금을 모았습니다. 보통은 먹을 것, 입을 것 중심으로 지원하는데 그건 그 순간으로 끝납니다. 그분들이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를 생각하다 어부들이 스스로 먹고살 수 있도록 배와 그물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배 한 척 만드는 데 30만 원이 든다고 하더군요. 300척을 제작했습니다. 현지에서 일자리 창출도 하고 어부들도 자립할 수 있어 일석이조가 아닐까 합니다.”
수행에 僧俗 없어
조계종과 달리 천태종은 스님들의 육식과 음주를 허용한다. 비구니는 삭발하지 않고 유발(머리를 단정히 위로 올림)을 한다. 일반 대중과의 경계를 허물고 보다 가까이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고자 하는 대조사의 뜻이라 한다.
“전통불교에서는 승(僧)과 속(俗)의 차이를 크게 두고, 남녀 차이가 하늘과 땅이라고 하는 데 반해 우리 종단은 수행적인 측면에서 승과 속, 남녀노소의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수행에선 재가불자와 출가자가 같이 정진해야 한다는 대조사의 유지에 따라 천태종은 재가불자들도 스님들처럼 여름과 겨울에 각 한 달씩 안거수행을 한다. 구인사 안거수행에 참여하는 신도만 매회 1000명이 넘는다. 다른 신도들도 지역 사찰에서 한 달간 밤부터 새벽까지 관세음보살 염불수행을 한다.
▼ 현재 재가불자의 동(冬)안거가 진행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다른 종단에선 찾아볼 수 없는, 천태종만의 특징입니다. 출가자만 행하던 안거를 ‘실천과 수행 없이 불교의 미래는 없다’는 생각에 일반 대중에게까지 확대 실시한 것이 우리 종단 신도 안거의 유래입니다. 현재 구인사에서 1200명 정도가 한 달 동안 안거를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하안거, 동안거에 1000여 명씩 참여합니다. 단기 출가하는 거죠. 여기 참여하지 못하는 재가불자들은 집에서 가까운 사찰에서 수행을 합니다. 주경야선(晝耕夜禪),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밤에 사찰을 찾아 참선과 예불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종단은 어느 절이든 24시간 내내 문을 닫는 법이 없습니다.”
▼ 얼마 전엔 신도 수계산림대법회도 열었죠.
“그간 천태종은 다른 종단과 달리 신도수계법회를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대조사께서 일부 신도들에게 불명(佛名)과 계(戒)를 주신 바 있지만, 대조사 열반 이후로는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수행력이나 신심이 부족한 재가불자가 섣불리 계를 받을 경우 향후 수행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61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두 차례 실시하는 ‘재가불자 한 달 안거’에 재가불자들이 대거 동참하고, ‘백만독 관음정진’ 불사도 지속적으로 펼치며 재가불자들의 수행이 일정 수준을 넘어섰다는 판단이 들어 첫 신도수계산림을 한 것입니다. 이는 대조사의 유지를 받들고 적극 실천하는 일로, 앞으로도 가능하면 매년 실시할 예정입니다.”
▼ 사찰이 산속이 아니라 도심에 있는 것도 생활불교를 실천하기 위해선가요.
“스님께서는 일찍부터 불교는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강당을 빌려서든, 천막이든, 군대든 중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법회를 하셨습니다. 처음엔 불교계에서 비판이 많았습니다. 산중이 아닌 도심에서 무슨 불교냐고요. 하지만 지금 이 복잡한 세상에서 쌓인 근심 풀려고 깊은 산중에 있는 절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종단은 중생이 언제든지 찾아와 참선할 수 있도록 도심 사찰을 지향합니다.”
중생은 모두 한몸
▼ 사람들은 세상 살기가 갈수록 힘들다고 아우성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부처님께서 보살의 마음이라 강조하신 동체대비심(同體大悲心)을 실천해야 합니다. 즉, 우리 중생은 모두 한몸이라는 인식 아래 살아가야 해요. 예를 들어 왼팔이 아프면 오른팔이 좀 더 고생하면서 무거운 짐을 들어야 합니다. 반대로 오른팔이 아프다면 왼팔이 고생해야겠지요. 이렇게 조율되지 않는다면 두 팔 모두 크게 고생하겠죠.
중생이 모여 사는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이 세상을 구성하는 하나의 몸입니다. 권력을 가진 자도, 못 가진 자도 동체대비심으로 서로 돕고 살아가야 합니다. 국민소득이 높다고 행복한 나라가 아닙니다. 히말라야의 작은 나라 부탄은 국민소득이 2000달러도 안 되지만 국민행복지수는 우리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세속적인 욕심을 조금만 덜어놓는다면 모두 함께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자타불이(自他不二), 동체대비의 가르침입니다.”
▼ 사람들은 왜 불행하다고 느끼는 걸까요.
“사람에겐 남과 비교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자신보다 낮고 부족한 사람과 비교할 때는 별생각이 없다가 자신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을 보면 질투합니다. ‘사는 게 힘들다’는 이들 중엔 정말 경제적으로 어려워 힘들다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남과 비교해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남을 시기, 질투하지 않는 게 최선입니다. 물론 번뇌를 끊지 못한 중생이다보니 어렵습니다. 스스로를 남과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저마다 성격·외모가 다르고, 전생에 쌓은 업도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해요. 비교하려는 마음이 생길 때마다 수행을 통해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 내 가족,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야죠. 이런 습관이 몸에 배면 내게도 남에게도 너그러워집니다.”
▼ 물질만능주의의 영향 때문이겠죠.
“과도기적 단계가 아닌가 합니다. 경제와 교육과 의식이 함께 가야 하는 건데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생각이 못 따라가는 것이죠. 시간이 조금 더 걸려야 제대로 같이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역할을 교육과 종교가 해야겠죠.”
▼ 서민들은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정치권은 선거 1년이 지나도록 대선불복 논란으로 시끄럽습니다. 또한 이념갈등이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느낌입니다.
“나라가 안정되고 국민이 뜻을 하나로 모아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서로 함께 사는 상생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서로 배려하고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가 되어야 해요. 그런데 지금 저마다 입으로는 상생을 말하지만 상대를 무시하고 불인정하고 욕합니다.”
지난 11월 개성 영통사에서 대각국사 열반 912주기 남북 합동다례재를 하고 있다.
‘네 탓’보다 ‘내 탓’
▼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독선과 아집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다 옳고 남이 하는 건 다 아니라는 거죠. 욕심이고 이기주의일 뿐입니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불교 용어로 하심(下心)이라고 하죠. 불교에서는 인과응보를 많이 말합니다. 잘되면 내가 지어놓은 복이고, 안되면 내가 만들어놓은 업이라는 것이죠. 모든 게 남의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는 생각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내 탓이 아니고 네 탓으로 돌리다보니 골이 점점 깊어지고 세상도 험악해지는 것 같습니다.”
▼ ‘모든 게 내 탓’이라고 가르쳐야 하는 게 종교인데, 오히려 국민의 증오심을 부추기는 종교인도 있는 듯합니다.
“종교인이 사회 현상에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부처님께선 찬성하는 편입니다. 시대의 아픔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표출되는 행동이 특정 집단이나 특정 개인의 이익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돼선 안 됩니다. 국민적 갈등과 분란을 야기해서도 안 되고요. 종교인의 발언은 신중하고 사려 깊어야 합니다. ‘내가 이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하는 게 종교인의 도리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되고 잘못 판단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신중을 기해서 해야죠.”
▼ 정치권의 갈등이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 부족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스님께서도 2013년 초에 박 대통령에게 소통과 화합을 당부했는데요.
“그분의 소통 방식에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화합하려면 먼저 소통을 잘해야 합니다. 소통이 잘되면 이것저것 다 풀리게 돼 있어요. 소통이 잘되려면 남의 견해도 충분히 들어야 합니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는 통로가 제대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 새해를 맞는 국민에게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누군가 제게 재미있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떠나가는 년(年)은 미련 없이 보내고 다가오는 새 년은 기대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간 년이나 새 년이나 겪어보면 똑같다’고요. 모두들 새해에는 지난해 못 이룬 꿈을 이루고 싶어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게 우리네 인생사입니다. 그건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된 마음과 노력 없이 막연하게 새해를 맞기 때문이에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꿈을 이루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노력한다면 국가의 꿈도 이뤄지지 않을까 합니다.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