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에 100만 명 단체급식 추진
- 경기도 학교급식이 미래 유망사업으로
- 일괄 계약재배로 농가에도 이익
멜라민 분유, 하수구 식용유…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 친환경식품 기술의 중국 진출이 탄력을 받게 됐다. 가장 앞서 성과를 보이는 것이 ‘U-푸드 시스템(유비쿼터스 식품안전 시스템)’인데, 정부 측이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민간기업 측이 이를 상업화하는 ‘민관(民官) 공조’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U-푸드 시스템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한국식품연구원이 3년여에 걸쳐 개발한 것으로, 친환경식품 유통가공업체 (주)우리자연홀딩스(이하 우리자연)가 전용 실시권을 갖고 있으며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중국 진출을 돕고 있다.
우리자연은 지난 12월 4일 중국 베이징의 주중 한국문화원에서 중국 측과 ‘녹색식품 유통시범사업의 중국 내 실시’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중국에선 친환경식품을 ‘녹색식품’이라고 한다. MOU에는 한국 측에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와 한국식품연구원이, 중국 측에서 중국국제기술이전센터와 아시아산업기술이노베이션연맹이 참여했다.
우리자연에 따르면, 이 회사가 주도하는 한국 측 컨소시엄은 이번 MOU를 기반으로 베이징시와 함께 각각 500억 원씩을 투자해 베이징 지역 100만 명에게 친환경 단체급식을 제공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이 사업에 U-푸드 시스템을 적용한다고 한다.
MOU 체결 행사 뒤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주최하고 우리자연이 주관하는 ‘한중 녹색식품 스마트 유통기술 국제포럼’이 열렸다. 장지훙 베이징시 과학기술위원회 부주임, 샤자오강 중국 농림부 녹색식품발전센터 부주임, 왕유 중국 과학기술부 정책법규부 국장, 조일호 농림수산식품부 농무관 등 한중 정부 관리들이 발표 및 토론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신화통신’ 등 현지 언론들은 MOU와 포럼 내용을 보도했다.
“마법 같은 U-푸드 시스템”
이날 행사장에서 만난 전하술(53) 우리자연 대표는 “U-푸드 시스템은 경기도 학교 단체급식에서 효과가 입증되고 있는 최첨단 기술”이라고 말했다. 전 대표는 농림부 산하 농림수산정보센터 실장으로 근무하면서 농촌정보화 업무를 추진했고, 2012년 우리자연을 설립했다. 다음은 전 대표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 ‘음식이 하늘’이라는 중국의 옛말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나 중국에서나 식품 안전에 대한 관심이 꽤 높아진 것 같습니다.
“국민적, 국가적 관심사가 됐죠. 아이 키우는 부모, 건강에 신경 쓰는 청·장년층, 장수하고 싶은 노인 분들에게 ‘좋은 음식 잘 먹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별로 없죠. 채널A의 ‘먹거리 X파일’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 U-푸드 시스템이란 어떤 건가요.
“한국식품연구원이 개발해 우리가 최근 상용화한 친환경 농산물 생산-가공-유통 시스템입니다. 우선 농가가 계약재배를 통해 친환경 작물을 생산하도록 합니다. 그러면 소비자의 식탁에 오를 때까지 이 작물의 신선도를 유지하게 해요. 실시간으로 품질 상태의 변화를 체크하기 때문에 상한 작물은 소비자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게 마법과 같이 예방해주죠.”
이 시스템을 직접 개발한 김종훈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박사)은 기자에게 아래와 같이 그 원리를 설명했다.
“농산물은 박스 단위로 포장되는데, 산지에서부터 박스마다 센서태그(소형감지장치·RFID Sensor Tag)를 부착합니다. 이 센서태그를 통해 각 박스의 위치정보는 물론이고 내부의 온도, 습도, 신선도, 품질 상태가 실시간으로 관리자에게 전송되죠. 이상이 발견되면 바로 알 수 있도록 해줍니다.”
김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이 관리방식의 효과는 소비자, 유통센터, 농가에 고루 미친다. 소비자에겐 고품질의 건강식단을 제공하고, 유통센터엔 관리 효율성을 높여 식품 폐기물을 줄여주며, 농가엔 농산물 일괄구매로 안정된 고소득을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전하술 대표는 “농산물을 운송하는 트럭들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냉장 장치를 잠시 꺼둔다든지 해서 농산물이 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U-푸드 시스템에선 바로 적발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 U-푸드 시스템은 아이디어 상태에 가깝나요, 아니면 실용화 상태에 가깝나요.
“우리자연은 친환경 식품을 제조·가공하는 회사입니다. 경기도 초·중학교 단체급식에 두부, 빵, 작물 등 60개 품목을 U-푸드 시스템으로 공급하고 있어요. 서울시 학교 단체급식에도 일부 대고 있고요. 또 경기도는 공익법인인 ‘경기친환경조합공동사업법인’이 운영하는 ‘경기친환경농산물유통센터’를 통해서만 식자재를 학교급식에 공급토록 하는데 여기에도 U-푸드 시스템이 이미 사용되고 있어요.”
“식중독 사라져”
▼ U-푸드 시스템이 모든 광역단체의 학교 단체급식에 적용되는 건 아닌가요.
“그렇지는 않고요. 최근에 도입된 기술이라고 보면 됩니다.”
▼ 이 시스템으로 농산물을 대는 산지 농가에 특별한 변화가 있습니까.
“가령 귤은 제주의 어떤 친환경 농가와, 양파는 보은의 어떤 친환경 농가와, 이런 식으로 전국 농가와 거의 1년 단위로 수급계약을 합니다. 이렇게 일괄 계약재배로 유통과정을 줄이니 실제로 농가에 많은 이익이 돌아가고 있어요. 판매금액의 61.3%는 농가가 가져가고 나머지는 저희가 유통비용과 이윤으로 충당해요. 일반적으로 판매금액의 80%가 유통·물류비용인 점을 감안하면 실로 대단한 변화죠.”
U-푸드 시스템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어떨까. 정재훈 경기친환경조합공동사업법인 대표는 “식중독이라든지 학교 급식사고가 거의 사라졌다. 급식비 부담을 줄이면서도 식재료 품질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경기도에 세계적 수준의 식품유통시스템이 구축됐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우리자연의 연간 매출은 2012년 116억 원, 2013년 270억 원(경상이익 20억 원)이며 2014년엔 500억 원이 목표라고 한다. 새해 초 경기도 이천에 4만3491㎡ 규모의 ‘친환경 가공복합단지’가 들어서면 친환경 식자재를 수도권 학교급식 외에 대형마트에도 공급할 계획이다. 야트막한 녹색 언덕을 연상시키는 이 건물에 어린이를 위한 친환경 식품 학습장도 넣겠다고 한다. 전하술 대표는 “급식을 받는 아이들에게 ‘친환경 두부나 빵을 직접 만들어보겠느냐’고 물어보니 다들 ‘정말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 아이들에겐 이런 체험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 친환경 식품은 말 그대로 화학비료나 방부제 같은 것을 안 쓰거나 거의 안 쓰기 때문에 몸에 좋고 신선하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 반면, 같은 이유로 일반 식품에 비해 빨리 상할 것 같은데요?
“그래서 친환경 식품의 가격이 비싼 거죠. 예컨대 마트에서 친환경 양배추가 일반 양배추에 비해 몇 배 이상 비싸게 팔립니다. 우리는 이 점에 의문을 품었어요. 친환경 식품이 꼭 비싸야 하는가, 저렴하게 공급할 수 없는가….”
“친환경 식품을 값싸게”
▼ ‘발상의 전환’ 같은데 가능하다고 봅니까.
“저희 기술로 친환경 농산물에 적정한 온도와 습도를 제공하고 농산물에서 배출되는 것들을 조절하면 쉽게 무르지 않아요. 토마토로 토마토케첩을 만들 듯이 농산물로 가공식품을 제조할 때가 많은데요. 이때 보통은 영양소가 많이 파괴됩니다. 그런데 저희 세포가압가공소재화 기술은 세포벽이 파괴되지 않도록 합니다. 영양소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액상이나 분말로 만들어주죠. 이렇게 잘 저장하고 잘 가공하면 친환경 식품을 값싸게 공급할 수 있습니다.”
우리자연 등이 베이징에서 추진하는 친환경 단체급식이 왜 100만 명 단위일까. 이에 대해 전 대표는 “경기도에서 1200여 개 학교 100만여 학생을 대상으로 친환경 단체급식을 안정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100만 명을 성공 가능성이 높은 하나의 유니트(unit·사업단위)로 본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초 문을 여는 우리자연홀딩스의 ‘친환경 가공복합단지’ 조감도.
“한국과 중국의 식재료나 식문화가 유사해요. U-푸드 시스템은 범용성이 높은 기술이므로 중국에 충분히 적용가능하다고 봐요.”
▼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므로 아무래도 단체급식이 더 많겠죠?
“일단 (100만 명 단위로) 시범사업을 해본 뒤 경기도에서처럼 효과가 좋으면 중국 전역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 사업성은 충분하다고 봅니까.
“중국 정부가 시범사업에 대해 제도적 뒷받침을 보장하면 바로 투자가 들어오는 것으로 돼 있어요.”
이와 관련해 우리자연 측과 조건부 투자약정을 맺은 G사의 관계자는 “중국 친환경 식품사업 분야는 매우 큰 시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친환경 사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인식 수준은 어떻습니까.
“중국 정부는 대기오염과 위해식품을 국가의 가장 큰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어요.”
▼ 일본과 영토 분쟁을 빚고 있는 센카쿠 문제보다 더?
“그보다 더해요. 그래서 식품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죠.”
중국 농림부 샤자오강 부주임의 말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품질인증을 해주는 녹색식품의 비중은 2003년 5%에서 2012년 8%로 늘었다. 2012년 녹색식품의 총량은 1억 t정도라고 한다.
▼ 문제는 ‘중국 국민이 그 정책을 얼마나 신뢰하느냐’인데….
“불신이 너무 크다는 게 맹점입니다. 상당수 중국 국민은 대형 식품 사고를 자주 경험하다보니 자국산 식품을 잘 믿지 않아요. 그래서 중·상류층은 다소 비싸지만 한국산을 선호하고…. 심지어 한국에서 박스 포장된 채로 받기를 좋아해요. 운송과정에서 어떻게 했을까봐서요. ‘한국 시스템에 의해 품질이 보증된 중국산 친환경 식품’이라면 중국 국민의 이러한 불신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U-푸드 시스템의 중국 진출이 성공 가능성이 높은 이유죠.”
한중의 블루오션
▼ 국익 차원에선 어떤가요. 중국에 좋은 일일까요?
“중국은 세계 1, 2위의 농산물 생산국이지만 중국 농산물에 대한 신뢰도는 자국에서도, 외국에서도 매우 낮은 편이죠. U-푸드 시스템을 통해 중국 농산물의 신뢰도를 높인다면 중국의 국익에 큰 보탬이 되겠죠.”
▼ 그렇지만 그건 한국과는 무관한 ‘남의 나라 일’이 아닐까요.
“그 반대입니다. 우리나라 식자재 시장에서 중국산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어요(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12년 중국산 농산물은 45억 달러어치가 수입됐다. 특히 중국산 마늘, 당근, 양파, 배추, 생강, 브로콜리, 상추, 감자가 대거 들어오고 있다). 요즘 식당에서 내놓는 반찬을 보면 중국산 식자재로 만든 게 많죠. 중국산 농산물이 안전해지는 건 우리나라 소비자에게도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업계에선 한중 정상회담의 성과로 가시화한 이번 한중 친환경식품 협력사업이 향후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사례로 진행될지 주목하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의 조일호 농림수산식품부 농무관은 이날 국제포럼 종합토론에서 “권영세 주중대사는 이 사업에 굉장히 관심이 많으며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하술 대표는 “세계 여러 나라를 ‘식품비리, 식품불신 없는 나라’로 만들어보고 싶다. 친환경식품 분야는 국민복지와 경제성장에 모두 도움이 되는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