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호

세계여행에 꽂힌 ‘글로벌 거지 부부’

나이·국적·상식 초월한 소소한 행복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4-05-21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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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부부가 있다. 해마다 평균 8개국을 넘나드는 이들은 자칭 ‘글로벌 거지 부부’다. 한국과 일본에서 각기 나고 자라 태국에서 인연을 맺은 이들에겐 그 무엇도 걸림돌이 아니다. 성격 ‘싱크로율’ 100%를 자랑하는 이 부부가 사는 법.
    세계여행에 꽂힌 ‘글로벌 거지 부부’
    2009년 12월 초, 낯선 여행지 태국의 한 식당에서 세 번째 만난 남녀 사이에 장난기 섞인 대화가 오갔다. “미키, 한국 비자 원해?” “응. 파쿠(‘박’의 일본식 발음), 넌 일본 비자 원해?” “응. 그럼…, 결혼할까?” 그로부터 4개월 뒤, 남녀는 각기 한국과 일본에서 혼인신고를 마치고 부부가 됐다. 남자는 스스로를 ‘대한민국 사회 부적응자’라 칭하는 박건우(31) 씨, 여자는 일본인 나카가와 미키(40, 이하 미키) 씨다.

    태국 배낭여행 중 숙소에서 우연히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결혼한 지 3년이 넘도록 지상에 ‘우리 집’ 한 칸을 마련하지 않았다. 배낭을 메고 한국과 일본, 동남아를 떠돌던 부부는 마침내 지난해 9월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책을 쓰기 위해서였다. 최근 박씨는 9세 연상연하 커플의 무일푼 여행기 ‘글로벌 거지 부부’를 펴냈다.

    “드디어 신혼집을 마련하셨네요.” 축하 인사를 겸해 기자가 던진 첫마디에 그는 “집이라기보다…그냥 ‘거처’를 마련한 거죠. 잠시 머무르는 곳”이라고 정정했다. 5평 남짓한 크기의 25만 원짜리 월세 집에 살면서 “지금 너무 좋고 행복하다”는 이 남자, 아니 이 부부가 사는 법이 궁금해졌다.

    아홉 살 차 연상연하 커플

    “우리나라 남성 평균 초혼 연령이 32세라는데 스물여섯 살에 결혼이라니, 좀 이르지 않았나요?” 속으론 ‘(나이가) 아깝지 않으냐’고 묻고 싶었지만 “지금이 너무 좋다”는 박씨의 말에 에둘러 표현했다. “태국 식당에서 ‘결혼할까?’ 했을 때 미키가 한술 더 떠 4개월 뒤 돌아오는 자기 생일에 혼인신고를 하자고 했어요. 그때 미키 나이를 처음 알았고, 제가 초등학생 때 이미 사회인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좀 받았죠. 하지만 저나 미키에게 나이는 아무 상관없었어요.”



    3개월 뒤 한국에 들르겠다는 미키 씨를 남겨두고 그는 먼저 귀국했다. 한국 땅에 발을 디디자 여행에 취해 붕 떠 있던 마음도 현실로 돌아왔다.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 냉정하게 따져보기 시작한 것. “그때 제 전 재산이 달랑 27만 원이었어요. 주변에선 우리 만남이 영화 같다고 했지만 막상 결혼하면 그 영화가 멜로물일지 호러물일지는 테이프를 돌려봐야 알 거 아니에요? 결혼해도 될 정도로 미키를 사랑하는지, 지금까지 내키는 대로 살아온 제가 가정을 돌볼 능력은 있는지, 혹시 미키에게 숨겨둔 자식이 있다면 어쩌나…. 이런저런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었죠. 특히 제게 결혼은 은하계 너머 안드로메다에나 있던 개념이었거든요.”

    미키 씨도 박씨의 사정을 모르지는 않았다. 첫눈에 호감을 느낀 그녀의 마음을 떠보려는 잔꾀로 꺼낸 결혼 이야기지만 막상 미키 씨의 반응에 “난 가진 돈도, 집도, 직장도 없는 사회 부적응자”라고 솔직히 고백했기 때문이다. 그때 그녀가 “내가 일본에 돌아가서 기숙사 딸린 직장을 구할 테니 둘만의 인생을 시작해보는 게 어때?”라고 태연히 말하지 않았다면 둘의 결혼은 현실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혀 있던 어느 날, 태국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긴 태국 출입국관리사무소인데, 전화 받는 분이 미키 씨 남편 되시죠? 미키 씨가 오늘 렌털 바이크로 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내서 유치장에 있습니다.” 40~50대 남자로 짐작되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이어졌다. “지금 당장 태국으로 오셔서 합의를 봐주셔야만 미키 씨가 유치장에서 나갈 수 있습니다. 사정이 안 되면 제게 40만 원을 보내주십시오. 제가 보호자로 합의를 대신 봐드리겠습니다.”

    돈 얘기에 의심이 갔지만 일단 상대가 불러주는 대로 계좌번호를 받아 적고 전화를 끊었다. 곧장 미키 씨에게 전화를 걸자 그녀가 자다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물으니, 얼마 전 바에서 만난 한국 사람한테 제 전화번호를 알려줬다는 거예요. 한국 사람과 결혼한다고 했더니 연락처를 묻더래요. 남 일인 줄만 알았던 일이 막상 저한테 벌어지니 헛웃음만 나왔어요. 사기꾼한테 전화를 걸어 살벌한 육두문자에 상소리를 엄청 퍼부어줬죠.” 그 일로 ‘미키의 남편’이 되는 건 기정사실이 됐다.

    “네 인생이니 네가 알아서 하라”

    그녀가 한국에 들어올 날이 다가오자 또 다른 고민이 박씨를 괴롭혔다. 집안이 보수적인 데다 경상도(부산) 남자인 아버지 성격이 불같아서 그녀와 섣불리 대면시켰다간 자칫 대형사고(?)가 터질 수 있었기 때문.

    “고교 1학년 때 권위의식과 위계질서, 집단문화가 너무나 엄격한 학교에서 숨 쉴 공간이 없었어요. 어느 날 작심하고 혀에 피어싱을 하고 머리를 새빨갛게 염색한 뒤 등교했어요. 똑같은 교복에 똑같이 짧게 깎은 스포츠형 머리를 해야 하는 게 싫었고, 학업과 용모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였어요. 선도부 선배, 선생님한테 엄청 맞았죠.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부분에 대해 대화하고 싶었지만 선생님도 아버지도 도저히 대화가 안 됐어요. 학교를 떠날 결심을 하고 ‘자퇴신청서’를 받아온 뒤 며칠간 무단결석을 했어요. 그 사이 학교에선 퇴학처리를 하고 아버지한테 통보했더라고요.”

    세계여행에 꽂힌 ‘글로벌 거지 부부’

    남편 박건우 씨와 아내 나카가와 미키 씨.

    그날 저녁 현관문에 들어서자 펜치가 날아왔다.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그는 흥분한 아버지를 피해 2층 방으로 도망쳤다. “창문으로 뛰어내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데 더 이상 다른 연장은 안 날아오더라고요. 그길로 집을 떠나 독립했어요. 가출이 아니고요. 사실 무단결석 기간에 학교는 안 갔지만 교복 입고 자원봉사 활동하러 다녔거든요. 대책 없는 불량학생이 아니었는데 아버지도 학교도 안 알아주니 알아서 독립한 거죠.”

    박씨의 나이 17세, 고교 입학 3개월 만이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난 건 19세 때였고, 그 후로도 1~3년에 한 번씩 띄엄띄엄 얼굴을 보는 부자 사이가 됐다.

    고심 끝에 서울 잠실의 한 테마파크 지하식당을 ‘결혼 통보’를 위한 장소로 정하고 아버지와 누나를 불러냈다. 설마 사람 많은 공공장소에서 ‘욱! 하실까’ 싶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말 대신 미키 씨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폭탄선언을 했다. “이 여자와 결혼할 겁니다.” 며느리 될 사람이 일본인에다 아들보다 9세나 많다는 사실에 아버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태가 어떻게 번질지 몰라 잠시 뜸을 들인 그는 내친김에 밀고 나가기로 했다.

    “결혼을 인정하고 부자지간에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든지, 아니면 지금부터 남남이 되든지 선택하시라고 했어요. 아버지는 긴 한숨을 쉬시더니 ‘네 인생이니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의외의 반응이라 그때 처음 아버지한테 큰 빚을 진 기분이었어요. 앞으로 잘사는 걸로 보답해야죠.”

    “애를 낳으라”

    미키 씨와 예비 시아버지와의 첫 만남은 예상대로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었다. “장래에 시아버지인 나를 모시고 살 수 있느냐?”는 말에 그녀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싫은데요. 둘이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던 것. 결혼 후 첫 추석 때 20여 명의 일가친척이 모인 자리에서도 미키 씨는 그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아빠, 커피 마셔!” 아직 한국 문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개성 강한 아내를 보호하려고 그가 짜낸 잔꾀가 명절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됐다.

    “집안어른들께 미키가 외국인이란 사실을 각인시키려고 절대 존댓말을 쓰지 말라고 했거든요. 미키가 주방에서 커피를 내오면서 아버지한테 커피를 건넬 때 뭐라고 해야 되는지 묻기에 ‘다가가서 귀에 대고 작게 말하라’고 했어요. 근데 멀리 있는 아버지한테 냅다 우렁차게 소릴 지른 거예요. 또래 사촌들은 어른들 때문에 큰소리도 못 내고 웃음을 참느라 눈물을 쏟고, 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죠. 그 와중에 당신 며느리가 저질러놓은 사태를 수습하느라 태연스레 ‘아까 마셨어. 미키야, 너 마셔’라고 하시더라고요.”

    미키 씨를 만나기 전 일본에서 체류하며 노약자용 세발자전거를 이용해 장기 여행을 한 경험이 있어 일본 문화를 웬만큼 아는 박씨에게도 그녀 못지않게 적응하기 힘든 게 처가 분위기였다. 결혼 전 예비 처가에 인사를 가려고 일본으로 떠난 그는 비행기에서 내려 배로 갈아타고 미에현에 도착했다. 선착장으로 마중 나온 예비 장모의 첫인상은 예사롭지 않았다.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팬 데다 입엔 담배를 물고 계셨어요. 옷은 밤무대 스테이지에서 방금 내려온 것 같은 차림이었고요. 나중에 다방에서 나갈 때 찻값도 본인 건 따로 내시고요. 4대가 대대로 농사짓는 처가에 갔을 때도 형님(미키 씨 오빠) 부인만 빼고 나머지 식구들한테 거의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어요.”

    처가 방문에 앞서 일단 예비 사위를 다방으로 안내한 미키 씨 어머니는 그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첫마디부터 “애를 낳으라”고 했다. “장모님이 우리 2세를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주신다면 생각해보겠다고 했어요. 기가 찬 듯 혀를 차시더니 ‘일주일 정도는 키워줄 수 있다’고 했어요. 다행히 결혼은 반대하지 않는 표정이어서 안심이 됐죠.”

    양가 부모는 지금도 두 사람에게 2세를 재촉한다. 2대 독자인 박씨에게 집안에서 “대를 이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준다면, 처가 쪽은 특히 장모가 부부를 심하게 압박 중이다. 딸이 나이가 많은 데다 아이가 없으면 ‘9세 어린 젊은 사위가 살다 도망갈까’ 걱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부는 2세를 가질 생각이 없다.

    한창 팔팔한 나이에 유부남이 되고 보니 사람들이 종종 그에게 묻는다. 결혼해서 행복하냐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Yes’라고 대답하면 열에 아홉은 같은 반응이다. “원래 신혼 땐 다 그래. 쫌만 더 살아봐!” 그는 “안타깝게도 그 기대를 채워주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성인이 돼도 ‘2차 성장기 반항아’로 살아가는 자신의 삐딱한 심보(?)가 결혼 선배들의 확신에 예외를 만들어버릴 작정이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만나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내달린 배낭족 부부답게 두 사람은 올해에만 벌써 한 달 반 정도 해외에 머물렀다. 지난해까지 1년 중 한국에 머문 기간은 고작 90일 정도에 불과했다. 해마다 평균 8개국을 넘나든 부부는 그동안 인도, 중국, 태국, 인도네시아, 대만,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호주, 뉴질랜드 등지를 다녀왔다. 그중 호주와 뉴질랜드는 ‘워킹홀리데이’를 이용했다.

    “주로 동남아를 다녔는데, 그건 어디를 가든 비행기 티켓 값을 ‘2인 50만 원 이하’로 정했기 때문이에요. 현지에서 둘이 한 달 머무는 데 드는 돈은 40만 원이면 충분해요. 대신 숙소와 먹는 것 등 모든 걸 아껴야죠. 저 혼자 여행할 땐 하루 숙박비로 가장 적게 쓴 게 1000원이었어요. 둘이 다닐 땐 하루 5000~8000원인 숙소를 이용했죠. 평범한 친구들도 ‘충격’을 받을 만큼 지저분하고 낡은 숙소지만 우리는 그런 곳에 익숙해서 별문제 없어요.”

    원조 ‘프리터족’

    자칭 ‘글로벌 거지 부부’라고 했지만 실은 두 사람은 원조 ‘프리터족’이라 할 수 있다. ‘자유롭게 살기 위해 일정한 직장이나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해결하는 청년층’인 것. 일자리가 없어 최근 의미가 조금 달라진 ‘생계형 프리터족’과는 다른 부류다. 월세 25만 원을 포함해 부부가 쓰는 한 달 평균 생활비는 40만~50만 원.

    한 달에 절반 정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고 여유 있게 살자는 게 이들 부부의 이심전심이다. 1인 최저생계비가 60여만 원인데 두 사람 생활비가 그 3분의 1밖에 안 든다는 게 가능할까?

    박씨의 얘기다. “미키는 약속이 있으면 차비를 아끼려고 제기동 집에서 광화문까지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요. 결혼 전 10여 년간 태국 등을 배낭여행하며 걷는 데는 도가 튼 거죠. 저도 마찬가지고요. 또 미키는 여행 중이 아니면 ‘히키코모리’ 기질이 있어서 외출도 잘 안 해요. 안 나가면 돈 쓸 일도 별로 없죠. 구멍 난 양말도 여러 차례 기워 신고, 20대 때 사용하던 닳아빠진 지갑을 아직도 써요.”

    그게 전부는 아니다. 부부는 화장실을 갈 때 전기요금을 아끼려고 헤드랜턴을 사용한다. 용돈을 벌기 위해 잘 쓰지 않는 물건들을 벼룩시장에 들고 나갈 때도 있다. 외출할 때 컵도 각자 갖고 다닌다. 물을 마시든 커피를 마시든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지구와 환경을 살리고, 자연도 살리면서 자신들도 함께 사는 부부의 삶의 방식은 ‘덜 소비하기’다. 대학생 한 달 용돈이라 해도 믿기지 않을 만큼 적은 액수로 살면서도 이들이 행복한 이유다.

    10대 때 집을 나와 대전, 서울 등지에서 낮엔 아르바이트로 생계비를 벌고 밤이면 기타를 들고 밴드 생활을 전전하며 지낸 박씨도 한때 번듯한 사회인이 되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25세에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관광통역가이드 자격증도 땄다. 학벌 대신 삶의 전쟁터에서 자신을 지켜줄 ‘무기’로 일본어를 선택해 틈틈이 공부도 했다. 덕분에 ‘한국말 잘하는 일본인’으로 종종 오해도 받는다.

    “유학을 가고 싶어 검정고시를 봤는데 솔직히 ‘고졸’은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기록이에요. ‘초졸’이면 딱 좋을 거 같은데…. 잠깐 미쳐가지고 긴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회사에 다닌 적도 있어요. 동료들과 유대관계를 맺는 게 쉽지 않고, 윗사람한테 어떻게든 나를 포장해서 어필하려는 모습이 너무 싫었어요. 항공사에 취직하고 싶어 문신을 지울까 잠깐 고민한 적도 있어요. 일찍이 음악인으로 잘됐다면 거만하고 기고만장했을 거예요. 성격상 사회생활을 했다면 위로 올라가려고 물불 안 가렸겠죠. 그럼 남한테 상처 주는 존재가 됐을 거고. 그렇게 살긴 싫거든요. 막노동에 셀 수도 없이 많은 허드렛일을 해보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나이 초월, 국적 초월, 상식 초월’ 마인드에선 부부가 막상막하다. 단 한 번도 결혼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미키 씨를 보며 슬그머니 걱정이 됐던 박씨는 한국의 전반적인 결혼 문화, 빚을 내서라도 남자가 집을 마련해야 하고 집안 배경이나 학벌, 연봉 등 조건이 사랑보다 앞서는 풍토임을 줄줄이 읊은 끝에 “나 같은 한국 남자가 신부를 얻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했다. 가만히 그의 말을 다 들은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한 뒤 딱 한마디 던졌다. “결혼은 서로 좋아서 하는 거 아냐?”

    취미 빼고 성격은 완벽한 ‘싱크로율’을 자랑한다는 두 사람은 서로 어떤 점에끌렸던 걸까. 싸구려 태국 숙소 복도에서 처음 만났을 때 먼저 말을 건 이는 미키 씨였다. ‘머리 긴 남자’가 이상형이었던 그녀는 나중에 박씨에게 “그때 네 머리가 짧았으면 절대 친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두 번째 이상형은 ‘반듯한 사람’. 히피 같은 차림에 가슴과 양팔 가득 문신을 새긴 그의 외형은 절대 ‘반듯’과는 거리가 멀다.

    “겉모습과 달리 일본말을 잘해서 머리가 좋고 노력하는 타입으로 보였다고 했어요. 순전히 ‘감’으로 찍은 거죠. 반면 저는 미키가 ‘기숙사 딸린 직장을 구할 테니 거기서 함께 시작해보자’고 했을 때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멋진 여자가 어떻게 35세가 되도록 미혼일까’ 싶어 신기했어요. 결정적으로 끌린 건 비듬이 어깨에 하얗게 내려앉았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는 미키의 내숭 없는 성격이었어요.”

    실제로 그녀는 귀국 후 기숙사 딸린 태국 마사지 가게에 취직해 그를 일본으로 불러들였다. 두 사람은 방 두 칸에 살림살이까지 완벽히 갖춰진 그곳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골목 안 청대문 집’

    “미키를 알기 전엔 아주 소소하고 소박한 걸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하면 다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어떻게 그런 게 행복일 수 있지? 로또 정도는 맞아야 행복한 거 아냐? 그런 식이었죠.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말도, 사는 게 다 갈등이고 스트레스인데 그게 말이 돼? 싶었어요. 근데 지금은 사소한 행복도 느끼고, 스트레스 안 받고 살 수 있는 삶을 실천해요. 이제야 그 말이 이해된 거죠.”

    호주에 머물 때, 어렵사리 대형마트 새벽 청소 일을 구한 박씨는 축구장만한 넓이의 매장을 청소하기 위해 매일 청소기를 돌렸다. 식당 일을 그만두고 그와 합류한 미키 씨는 바닥 대걸레질을 하고 직원 전용 화장실 청소를 도맡았다. 하루하루 몸은 힘들었지만 틈날 때마다 도시락을 싸들고 숙소 근처 강변에서 둘만의 데이트를 즐겼다. 도시락이라곤 밥 위에 아보카도와 계란말이를 올려 간장을 뿌린 게 전부였지만 그들에겐 매순간이 만찬이었다.

    세계여행에 꽂힌 ‘글로벌 거지 부부’

    박건우 씨는 스스로를 ‘대한민국 사회 부적응자’라고 칭한다.

    “일자리를 따라 대전의 한 여관에서 ‘달방(다달이 숙박비를 지불하는 방식의 투숙)’ 생활을 할 때 미키에게 치즈케이크를 사준 적이 있어요. 그걸 받아들고 37세 여자가 일곱 살짜리 아이처럼 방방 뛰며 기뻐하더라고요. 케이크를 먹으면서 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함박웃음을 짓는데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어요.”

    최근 한일 관계는 ‘최악의 상태’라는 우려가 쏟아질 만큼 심각하다. 한국 또는 일본과 멀리 떨어진 해외에서라면 실시간 뉴스에 눈과 귀를 닫겠건만, 부부가 양국 어느 한곳에 머무른다면 일부러 피하기가 쉽지 않다. 극복하기 힘든 양국 갈등을 두 사람은 어떻게 소화할까?

    “우리가 정식 부부가 된 2010년이 마침 한일합병 조약을 맺은 지 100년이 되는 해였어요. 일본에 머물 때 한일 관계를 주제로 한 특집방송이 쏟아졌어요. 미키가 지난 역사를 이해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양국 관계를 보길 바랐는데 두 나라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잘 모르더라고요. 오히려 인터넷 사이트에 떠도는 ‘혐한’ 글들을 보고 사실이냐고 묻는 때가 많았어요. 그걸 부정하다 미키에게 막말을 퍼붓기도 했죠. 그렇게 몇 번 부딪치다보니 둘의 문제가 아닌 일로 다투는 게 회의가 들어 타협을 봤어요. 각자 ‘민간외교관’ 자리는 내놓기로. 그 뒤론 안 다퉜어요. 양가 부모님들은 만날 기회가 별로 없고, 설사 만난다 해도 서로 언어가 안 통하니 얼굴 붉힐 일도 없겠죠.”

    박씨의 집안사람들은 국적도 다르고 나이 차이도 많은 두 사람이 어떻게 외국에서, 더욱이 성격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났는지 신기해한다. 부부도 지금까지 서로 신기하긴 마찬가지다. 지금의 삶이 문득 불안할 때가 없는지 물었다. 혹시라도 애써 감추는 정곡을 찌르는 게 아닌지 말투가 저절로 조심스러워졌다. 그가 시원하게 대답했다.

    “20대 초반이 제일 불안했어요. 지금은 하루하루가 정말 좋고 행복해요. 과연 미래에도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가끔 있지만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10대 때부터 신문배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봤기에 돈 버는 방법을 알고, 닥치면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돼 있어서 미래가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아요.”

    평범한 일반인의 시각에서 두 사람은 ‘대책 없이 사는 부부’쯤으로 비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번뜩임과 끌림을 안고 자유롭게 살고 싶고, 돈은 쓸 만큼만 벌면 된다’는 게 부부의 생각이다.

    인터뷰 이틀 뒤, 박씨는 6일간의 현지 가이드 일을 하기 위해 홍콩으로 떠났다. 누가 뭐래도 이들 부부의 내면은 치열하고 삶은 뜨겁게 느껴졌다.

    출국 전, 요청한 부부의 사진을 그가 e메일로 보내왔다. 집주소도 함께였는데 ‘동대문구 제기동 00번지’ 끝 괄호 안에 ‘골목 안 청대문 집’이라고 썼다. 긴 골목길을 지나 철문을 밀고 들어서면 햇살 가득한 마당 수돗가에서 두 사람이 잠옷 차림으로 나란히 앉아 입안 가득 하얀 거품을 문 채 ‘치카푸카’ 양치질을 하며 환하게 함박웃음을 터뜨릴 것만 같다. 마치 태국의 어느 허름한 숙소에서 처음 만난 듯 낯선 방문객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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