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 등 상임중앙위원들이 5월6일 오전 경기 성남시 성호시장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시장 상인들과의 ‘낙선사례’ 간담회에서 단체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박기춘 사무차장은 이날 기자에게 “예상대로라면 국회의원 재선거 여섯 곳 중 적어도 두 곳, 잘하면 세 곳까지는 자신한다”고 했다. 박 사무차장은 “지난밤 여론조사에서 경북 영천과 충남 공주·연기에서 승리한다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투표율에 따라서는 충남 아산도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이것은 기자가 “결과가 ‘5(한나라당)대 1(무소속)대 0(열린우리당)’이 되는 게 아니냐”고 물은 데 대한 답변이었다.
당 지도부는 “2승은 무난하다”고 자신했다. 총선과 달리 방송사의 출구조사가 없기 때문에 당의 여론조사에 의존한 예상결과였지만 이변이 일어나리라곤 보지 않았다.
그로부터 30여 분 뒤, 개표가 시작됐다. 예상과 달리 국회의원 선거구 여섯 곳 중 경북 영천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선두에 나섰다. 열린우리당이 정권의 운명을 걸고 ‘수도권 이전’을 추진한 충청권 두 곳도 상황은 마찬가지. 믿었던 충남 공주·연기에서마저 열린우리당 후보가 무소속 정진석 후보에게 밀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패색이 짙어지자 염동연 의원은 지도부 중에서 가장 먼저 자리를 뜨면서 뒤따라오는 기자들에게 “여당이 재보궐선거에서 이기는 것 봤냐”고 말했다. 자리를 지키는 지도부의 표정에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았다. 웃음도, 대화도 중단됐다.
잠시 분위기가 반전됐다. 개표가 지연되던 경북 영천에서 열린우리당 정동윤 후보가 초반 개표에서 박빙의 리드를 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뒤편에서 TV를 시청하던 당직자들 사이에서 “영천만 이기면 나머지 선거구에서 다 져도 이긴 것이다”면서 격려성 위로의 말이 나왔다. 일부 영남 출신 당직자는 큰 목소리의 부산 사투리로 “앞으로 우리당은 영남당이 되는 것 아니냐”며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계파간 서로 책임전가
박빙의 리드는 그러나 오후 10시30분을 지나면서 무너졌고, 한두 차례 엎치락뒤치락하더니 어느 순간 한나라당 후보에게 완전히 뒤집혀버렸다. 일부 당직자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영천으로 전화를 해 남은 투표함이 몇 개며, 어느 지역이 남았는지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보수적 성향의 아파트 주민들 표만 남았다”는 부정적인 답변이 들려왔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오고, 당직자들은 얼굴이 완전히 굳었다. 문희상 의장과 지도부가 정 후보가 480여 표 차이로 한나라당 후보를 앞서는 것을 지켜보다가 당의장실로 옮겨간 지 5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날 열린우리당의 패배는 국회의원 선거구 여섯 곳에서 그치지 않았다. 종합 전적 무려 23대 0이다. 국회의원 선거구 여섯 곳, 시장·군수·구청장 선거구 일곱 곳, 광역의원 선거구 열 곳 등 정당 공천이 이뤄진 23개 전 선거구에서 단 한 곳도 승리하지 못하고 ‘전패’한 것이다. 도대체 왜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졌을까.
4·30 재보궐선거 직후 당내에서는 전패의 원인을 놓고 계파별로 책임을 전가하며 한바탕 승강이를 벌였다. 유시민 의원을 비롯한 개혁·재야파는 “정체성 없는 실용주의 노선 때문”이라고 지도부를 공격했고, 유재건 의원 등 ‘안개모(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모임)’는 “실천 없는 탈레반 식의 ‘말로만 개혁론’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문희상 의장과 염동연 의원 등 민주당과의 합당 필요성을 강조하는 실용파는 ‘호남 유권자 분산 등 지지기반 취약론’을 제기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장수’와 유시민 ‘장교’가 싸우면 필패가 분명하고 따라서 ‘장수’급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당에 조기 복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계파에 따라 이념적 지향에 따라 원인 분석이 제각각인 셈이다.
문희상 의장도 이 같은 당내 분위기를 반영하듯 5월2일 ‘서울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선거 패인에 대해 “한 가지만 원인이 아니다. 선거에 패하려면 모든 원인이 다 작용하게 마련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분석들이 ‘23대 0’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 왜 열린우리당에선 ‘23대 0’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엿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