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엔 “우리는 대선에 강하다”는 ‘자기확신’이 있다.
2002년 대선 패배 직후 한나라당 핵심은 갤럽의 대선 ‘리뷰’ 자료를 면밀히 검토했다.
지역별 득표에서 이회창 후보는 영남, 강원을 제외하고 완패했다. 그러나 ‘유권자의 출신연고지별’ 득표에선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왔다. 이 후보는 호남 연고지 유권자를 제외한 모든 지역 연고지 유권자들에게서 노무현 후보보다 많은 표를 얻은 것으로 나왔다.
“호남 유권자는 영남 유권자에 비해 소수”라는 상식이 깨진 순간이었다. 호남을 떠나 전국 각지에 거주하는 호남 인사를 포함한 ‘호남 연고 유권자’는 그 수에서 ‘영남 연고 유권자’ 전체보다 더 많을 수 있다는 새로운 분석틀이 나왔다.
이는 한나라당이 ‘친호남 서진정책’을 추진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됐다. 한나라당이 좋아하는 ‘경제논리’대로라면 호남고속철은 해선 안 될 사업이지만, 이해찬 총리가 이에 반대할 때 한나라당은 적극 지지했다. 한나라당은 광주학생운동의 격을 높여 ‘학생의 날’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바꾸는 법안을 냈다. 광주일고 동문회에서 감사의 뜻을 표했다.
한나라당은 호남을 배려하는 정책을 내놓으면서 호남에서의 지지율 상승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의 ‘득표 전략적’ 목표는 호남을 배려함으로써 수도권 거주 호남 인사들의 반(反)한나라당 정서를 완화해 이들 중 일정부분을 지지층으로 끌어오는 것이다. 일종의 ‘성동격서’ 방식이다.
행정수도 이전논란, 공공기관 지방이전 발표로 조성된 수도권의 ‘반(反) 여권 정서’는 한나라당의 이 같은 전략과 맞아떨어져 한나라당은 창당 이래 수도권에서 최고의 지지율을 구가하고 있다. 수도권의 호남 연고 유권자 밀집지역에서도 한나라당은 재보궐선거를 완승으로 이끌었다.
‘수도권 지역의식’의 부상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된 이래 1987년, 1992년, 1997년, 2002년 대선에선 영·호남에서 특정 후보에게 몰표가 나오고 충청은 캐스팅 보트, 수도권은 유력 두 후보가 비슷한 비율로 나눠 갖는 식이 됐다. 그러나 지금의 분위기는 다르다. 분명 수도권에선 ‘수도권 지역’ 의식이 부상하고 있으며, 수도권은 독자적 정치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수도권 지역 의식은 여권의 필승카드인 ‘호남+충청 연대’와도 비견된다.
한나라당은 물론 당에 우호적인 현재의 수도권 민심을 대선까지 끌고 가려한다. 한나라당으로선 2006년 서울시장·경기지사·인천시장 선거가 이를 ‘증폭’하는 단계다. 여론은 선거에서 이긴 쪽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내는 속성이 있다. 승자의 지지자들은 ‘거봐 내가 맞았지’라고 생각하고, 비지지자들 중 일부는 ‘어? 내가 틀렸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도권 지방선거, 특히 광역단체장 선거가 무승부 또는 한나라당의 패배로 결론 나면 이를 전환점으로 수도권 민심은 달라질 수 있다.
여권 인사들 중 상당수는 ‘수구보수’ 한나라당에 대권을 내주는 것은 자신의 민족관, 세계관의 파괴 그 자체이며 악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