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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모욕적 협상 응했다 뒷돈 요구한 적도 없다”

남북 정상회담 비밀접촉 주역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북한은 모욕적 협상 응했다 뒷돈 요구한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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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건 여러 번 만나

2009년 10월 북한 고위인사 2명이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 투숙했다. 김 부장과 원동연 통일전선부 부부장이었다. 두 사람은 5박6일간 싱가포르에 체류했다. 10월 15일 베이징에서 날아와 20일 베이징으로 돌아갔다. 접촉 장소로 싱가포르를 선택한 것은 북한 인사가 일반 관광객처럼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어 보안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임 전 실장과 김 부장은 구면(舊面)이었다. 두 사람은 두 달 전(8월 21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양주잔을 함께 기울였다. 김 부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 조문 사절로 서울을 찾았을 때 일이다.

“북쪽과 소통 창구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에 참석할 때 대통령 면담을 시켜달라는 요청이 저한테 먼저 왔습니다. 그때 제가 역할을 했습니다.”

임 전 실장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시절부터 김 부장 쪽과 소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싱가포르 접촉 이전에도 김 부장을 여러 차례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싱가포르 만남은 두 사람이 그간 논의한 내용을 합의하는 성격이었다.



▼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움직인 건가요.

“그럼요. 장관 신분이 어떻게 그냥 가요….”

그는 ‘미션(임무)’이라는 표현을 썼다.

“통-통에서 서명하기 직전까지의 과정을 마무리해놓고 오는 게 (대통령이 지시한) 미션이었습니다. 내가 맡은 임무가 거기까지였습니다.”

그가 언급한 ‘통-통’은 한국 통일부- 북한 통일전선부 회담을 가리킨다. 남북대화 채널은 크게 셋이다. 통일부가 주연 격인 공식-공개 채널은 남북이 협상장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언론에도 보도된다. 공식-비공개 채널의 주연은 정보기관인 예가 많다. 통일부도 공식-비공개 라인을 가동할 때가 있다. 마지막으로 비공식-비공개 채널, 즉 비선(秘線)이 있다. 임태희 라인은 ‘장관급 회담’이었다는 점에서 공식-비공개 채널로 봐야 할 듯하다.

임 전 실장은 김양건 부장과 정상회담, 국군포로 및 납북자 고향방문, 한반도 비핵화, 이산가족 상봉 및 고향방문, 인도적 지원(쌀 비료) 문제, 국군 유해 발굴 등 6개 항목에서 의견 접근을 봤다. 두 사람은 협의한 내용을 서면으로 정리했다. 정상회담 협의사항은 통-통 채널로 넘겨 최종마무리하기로 했다.

국군포로·납북자 고향방문 공감대 이뤄

▼ 서면으로 정리한 문서에 ‘비핵화’라는 단어가 들어 있습니까.

“물론 들어가 있죠. 김 부장이 정상회담을 하겠다기에 비핵화 문제를 의제에 올리자고 했습니다. 북측은 초기에는 의제에 올리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북미 간에 대화할 문제이지, 남북 간에 논의할 게 아니라는 식이었습니다. 대화하면서 의제가 돼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결국 정상회담에서 의제로 삼기로 정리했습니다.”

싱가포르 접촉 직전 남북 사이엔 훈풍이 불었다. 북한이 ‘숙이고 들어오는’ 자세를 보인 것. 2009년 9월 6일 북한이 임진강 황강댐 물을 방류해 남측 하류에서 야영하던 남측 주민 6명이 사망했다. 북측은 이례적으로 하루 뒤 신속하게 해명했다. 임태희 라인의 설득 덕분이었다. 2009년 추석 때 이산가족 상봉은 역사상 처음으로 식량지원 없이 이뤄졌다. 쌀을 수십만 t씩 퍼주고도 핵실험으로 뺨을 얻어맞은 과거 정부와는 달리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받아낸 것.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북한에 쌀을 주고 이산가족 상봉을 받아와 국내 정치에 활용했다. 북한은 상봉 행사와 쌀, 비료 지원을 항상 연계했다.

임 전 실장은 “한반도 비핵화,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 이산가족 문제, 인도적 지원 문제, 국군 유해 공동 발굴 사업을 정상회담에서 의제로 삼기로 김양건 부장과 협의했다”고 밝혔다. 정리된 서면에는 “이명박 대통령 평양 방문 시 전쟁시기와 그 후 소식을 알 수 없는 사람들 ○명의 고향방문을 실시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전쟁시기와 그 후 소식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은 납북자와 국군포로를 가리킨다. 납북자, 국군포로의 고향방문이 정상회담 전제조건이었고 이를 북한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이 열렸다면 이 대통령은 평양에서 김정일을 만난 후 납북자, 국군포로 ○명과 함께 서울로 귀환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임 전 실장은 이 대목을 특히 안타까워했다.

“그런 조건이 협의가 됐어요.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거예요.”

▼ 한두 명만 한국으로 돌아왔어도 남북관계가 크게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요. 북한이 납북자, 국군포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북한은 그간 국군포로 및 납북자의 존재를 부인해왔다. 임 전 실장과 김 부장이 정리한 서면에는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를 인도적 조치(쌀, 비료 지원)와 연계해 해결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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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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