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12월 19일 채널A의 18대 대통령선거 개표방송.
그런 종편이 ‘대선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객관적 지표상으로도 종편의 약진은 기대를 훨씬 웃돌았다. 2011년 12월 개국 이후 대선이 본격화하기 전인 2012년 9월까지 종편의 평균 시청률은 1%를 밑돌았다. 그러나 10월부터 평균 시청률이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하더니 12월에도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갔다. 종편 채널마다 편차는 있지만 4개사 모두 시청률이 8월 대비 2배 이상 큰 폭으로 뛰었다.
종편의 정치적 영향력이 무시 못할 정도로 높아졌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는 분위기다. 대선 기간 내내 하루 종일 정치뉴스를 틀다보니 국민의 종편 정치뉴스에 대한 노출도가 상당했다. 필자가 대선기간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에 가까운 응답자들이 “종편이 투표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거 초반 MBN을 제외한 종편 출연 금지령을 내린 민주통합당 관계자들도 10월 이후 종편에 적극적으로 출연해 입장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종편 4사는 대선 기간 내내 온종일 정치뉴스와 토론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아무리 정치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고조된 시기라 해도 오락매체 성격이 강한 TV에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정치뉴스만으로 시청률을 두어 달 사이 두 배 이상 끌어올린 종편의 저력은 주목할 만하다. 이런 약진이 지상파 방송의 10분의 1에 불과한 제작비를 투입해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또 한번 놀랄 만하다.
“투표에 종편 영향 받았다”
진보 성향의 일부 학자들은 이를 두고 “종편이 충분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만, 아마도 지상파 처지에서는 가장 약 오르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총 제작비는 SBS 3731억 원, KBS 3026억 원, 서울 MBC 1885억 원인데 반해 종편이 개국 이후 2012년 8월까지 프로그램 제작비로 투입한 금액은 jtbc 650억 원, TV조선 340억 원이었다. 이는 지역 MBC(391억 원)나 지역민방(426억 원)의 제작비 수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종편이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까. 많은 이가 갖는 궁금증이다. 이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은 엄밀한 사회과학적 분석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며, 필자 또한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학술적 검증 결과가 아직 나와 있지 않은 현 시점에서는 미국 폭스뉴스(Fox News Channel)의 예를 살펴보면서 그 답을 어느 정도 예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 경제학자인 비그나와 캐플란 박사 연구팀은 미국의 보수적 뉴스 채널인 폭스뉴스의 보급이 미국 대선과 상원의원 선거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는지 추정했다. 폭스뉴스는 1996년부터 케이블 TV를 통해 보급되기 시작해 2000년 보급률이 35%가 되었다. 연구자들은 9000여 개 지역의 1996년과 2000년 대선 결과를 분석해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통제하고도 폭스뉴스가 보급된 지역에서 공화당 후보의 득표율이 약 0.4%p에서 0.7%p 높다는 것을 밝혀냈다. 마찬가지로 연구자들은 같은 기간 폭스뉴스의 보급이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공화당 후보들의 득표율을 약 3%p에서 8%p 상승시켰다는 것을 확인했다.
美 폭스뉴스 파워
한국 대선은 누가 당선되든 득표율이 50%를 크게 넘지 못할 정도로 정치적 대립이 극심하다. 이런 정치 환경에서 미국 연구자들이 추정한 폭스뉴스 정도의 영향이 한국 대선에도 나타난다면 이는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영향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종편 시청자 다수는 이미 새누리당 지지 성향을 가진 유권자였을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선거 캠페인의 주 효과는 어차피 강화 효과다. 또 한국 유권자가 고령화하고 있고 이번 대선에서 50대 이상의 투표율이 예상외로 높았던 점, 한국의 정치 지형상 어차피 대선에서는 1~3%p 차로 당락이 결정될 공산이 크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종편의 존재가 향후 선거에 미칠 영향이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종편은 미국 폭스뉴스를 롤모델로 벤치마킹해 한국적 환경에 맞도록 진일보한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루퍼트 머독이 경영하는 폭스뉴스는 1996년 개국과 동시에 ABC, CBS, NBC 등 지상파 3사는 물론 걸프전 등을 거치며 뉴스 전문채널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CNN 등 경쟁사들의 틈새에서 생존을 향한 뉴스전쟁에 돌입했다. 친공화당 성향의 보도와 논평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보수층 시청자를 끌어안으면서 2002년 이후 폭스뉴스는 CNN 시청률을 능가하면서 현재까지 이 부문 선두를 달리고 있다.
퓨(Pew) 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2000~2004년 폭스뉴스의 정규 시청자 층이 50% 가까이 성장하는 동안 경쟁사들의 시청률은 정체를 보였다. 이번 대선에서 종편이 일으킨 돌풍은 폭스뉴스가 막강한 경쟁사 틈바구니에서 생존하기 위해 썼던 전략을 동아 조선 중앙 매경이라는 최고의 신문사를 운영해온 노하우에 접목해 한국 실정에 맞게 풀어낸 성과물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