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 캠페인 당시 대중에게 박 후보는 장인이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든 심오한 예술작품이었다. 이런 명품을 앞에 두고 원가가 얼마인지 따진다면 속물이 되고 만다. 박 후보가 그간 무슨 말을 했고 무슨 업적을 남겼는지 따지는 것은 명품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닌 것이다. 당시 국민은 이미 가진 것을 지키고 싶어 하며 특별하게 큰 변화를 바라진 않았다. 동시에 표면적으로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줬으면 하는 욕망을 품었다.
하지만 현재는 대통령이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듯하다. 대통령 이미지 탐색 결과에서 보듯 국민은 그가 측근들에게 뜯어 먹히고 용도 폐기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는 국민이 대통령의 어려운 처지를 공감하기 때문이 아니다. 리더가 존재함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된 상실감에 낙담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 희망을 갖지 못한 채 막연한 피해의식만 느낄 뿐이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앞으로 어떠한 대통령 이미지 전략을 짤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나 정윤회 사건 같은 큰일이 터질 때마다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소통에 임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는 박 대통령의 성격이나 행동 방식이 달라지면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에서 비롯된 조언이다.
그러나 지지율은 특정 시점이나 사건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 지지율은 해당 정치인에 대해 대중이 가진 이미지의 반영이다. 현 시점에서는 박 대통령이 “경제가 문제입니다. 경제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는 발언을 자주한다 하더라도 대중은 “저 맹한 양반이 왜 저런 소리를 하나. 자기와 별 관계없는 이야기하듯…” 하는 마음만 커질 공산이 크다.
아직은 흐릿한 잠룡 이미지 현재로서는 ‘우리 VIP’ 이미지가 유지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민에게 고통을 덜 주고 권력의 레임덕 현상이 급하게 오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보좌진 처지에서는 ‘우리 회장님’ 이미지를 인정하기 어려워 ‘개혁 지향 정치인’의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현재 벌어진 사정(司正) 정국이 그 일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대통령이 국민에게 진정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쇼’로 여겨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 국민은 정치인 박근혜를 통해 ‘높고 훌륭한 연예인 같은 정치인’의 이미지를 소비했다. 대중에게 그는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끊임없이 소통에 노력하며 보통 사람의 아픔을 위로하는’ 정치인이었다. 아니, 대중은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이번 이미지 탐색에서 보듯 이런 기대는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진 듯하다. 이제 대중은 정치인 박근혜를 통해 충족하려 한 자신의 욕망을 거둬야 할까. 그것은 차기 대선에서 누가 기선을 잡을 것인가 하는 질문과 연결된다.
앞으로 대중이 미래의 희망을 거는 지도자는 누가 될까. 이번 박 대통령 이미지 탐색 결과는 이런 질문에 대한 추론적인 답이 될 수 있다. 현재 대중이 원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주도적 영웅’이다. ‘전략적 명장’ ‘야전 사령관’ ‘개혁적 정치인’이 주도적 영웅에 해당한다. 그러나 요즘 잠룡으로 부각되는 김무성 김문수 홍준표, 문재인 박원순 안철수, 그리고 반기문 중 어느 누구도 뚜렷하게 이런 이미지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다.
대통령 이미지 탐색 방법은?
60명의 97개 문항 답변 분석
‘혼군’ 인식이 가장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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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조사는 여론조사와 다르다. 대중이 명확하게 의식하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 마음속에 막연하게 존재하는 ‘무엇’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먼저 심층 인터뷰를 통해 해당 이슈와 관련한 대중의 마음을 드러내는 다양한 단서를 찾아낸다. 그리고 이 단서들을 활용해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해나간다. 위즈덤센터는 이를 ‘마음의 MRI’ 기법이라고 칭한다. 대중이 해당 이슈에 대해 가지는, 거의 무의식적인 상태에서의 반사적인 심리 반응을 마치 MRI로 찍듯이 확인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이미지 연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됐다. 우선 비교적 정치 이슈에 관심이 많은 집단과 일반 집단을 반반으로 해 10명가량을 사전 인터뷰했다. 동시에 대통령을 다룬 다양한 문헌과 신문 기사들을 참고해 대통령 이미지를 나타내는 97개 문항을 도출, Q표본(샘플 응답 단서)을 구성했다. 그리고 연구 참가자로 20~60대 일반 대중 60명을 인구통계학적 비율로 선정했다.
연구 참가자들은 총 97개 문항이 적힌 카드(Q표본)마다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는 정도에 따라 점수를 줬다. 가장 부정하는 것(1점)에서부터 중립(7점), 가장 긍정하는 것(13점)의 척도로 강제 정규 분포 반응을 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수집한 자료로 Q요인분석을 실시했다(PC QUANL 프로그램 사용).
대중이 인식하는 박 대통령 이미지는 4개 요인, 즉 ▲혼군(昏君) ▲우리 VIP ▲얼굴마담 ▲관료적 정치인으로 구분됐다. 이들 요인이 설명하는 총 누적 변량비율은 58.04%였다. 이번 연구가 전체 대중이 가진 마음의 60% 가까이를 읽어냈다는 뜻이다.
60명의 참여자 중 40명이 박 대통령을 ‘혼군’으로 인식해 가장 비율이 높았고(60%), ‘얼굴마담’으로 인식한 사람이 9명(15%)으로 그 뒤를 이었다. ‘우리 VIP’는 7명(12%), ‘관료적 정치인’은 4명(6%)이었다.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를 주로 혼군의 이미지로 여겼고, 지지하는 사람들은 ‘우리 VIP’ ‘얼굴마담’ ‘관료’로 보았다.
대통령 이미지 탐색은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와 관련된 인식론적 이슈를 다루는 것이다. 대중의 마음속에 은연중에 존재하는 생각을 끄집어낸 그 연구 결과가 구체적인 사회현상이나 여론조사 결과로 드러나기까지는 보통 이미지 탐색 조사가 끝난 후 최소 6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걸린다. 이런 이유로 2014년 7~9월 진행한 연구를 2015년 5월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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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2015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