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호

집권 2년차 이명박 정부 리더십

혁신과 통합의 ‘피플 프렌들리’로 경제·정치 위기 돌파하라

  •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kimhoki@yonsei.ac.kr│

    입력2009-02-05 16: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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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심판으로 출발한 이명박 정부는 지난 1년간 놀랍게도 노 정권의 길을 그대로 따라왔다. 최고 정치지도자 개인에 의존한 정치 동원체제인 ‘위임 민주주의’의 딜레마다. CEO형, 권위주의적 리더십의 한계를 인정하고 사회통합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집권 2년차 이명박 정부 리더십
    이명박 정부 집권 1년이 지나고 있다. 어느 정부이건 마찬가지겠지만, 집권 1년의 시간은 길게 느껴진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새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큰 만큼 정부가 발표하는 사안마다 찬반 토론이 벌어진다. 둘째, 새 정부의 국정이 안착되기 위한 시행착오가 반복되면서 역시 이에 대한 논란이 활발히 진행된다. 사람을 새로 사귈 때 첫 1년의 경험이 오래 기억되듯이 첫 1년의 체험은 강한 인상을 남기고, 또 경로의존성을 만들게 된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뜻하는 바가 바로 이것일 터다. 아쉬운 것은 시작으로서 이명박 정부의 1년이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촛불집회를 경유하면서 20~30%대로 떨어진 국정운영 지지율은 다소 증감이 있었으나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전망 역시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노무현 정부 답습

    오히려 적지 않은 사람은 이명박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유사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노무현 정부가 통치의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것은 대체적으로 2006년 지방선거 이후다. 어떤 정부라 하더라도 국민의 3분의 2에 가까운 사람이 지지를 철회하면, 정부 정책에 대한 허탈감과 그에 짝하는 성마른 비판이 커지게 된다. 상대적으로 낮은 지지율이 구조화되면 집단적 무기력과 분노 또한 구조화하게 마련이다.

    여기에 일종의 악순환이 발생한다. 지지가 취약한 정부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정책을 조급하게 내놓게 되며, 그것이 성급하게 추진되는 만큼 국민적 합의를 소홀히 하게 되고, 통합이 소홀해지는 만큼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과 비판은 다시 커지게 된다. 이 과정에 권력은 갈수록 오만한 것으로 비치며, 국민의 마음속엔 권력 심판의 욕망이 자연스레 자리 잡게 된다.



    투표를 통해 집권한 정부로서는 권력의 위임을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국민은 그 위임이 선거라는 한 번의 과정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정책 추진에 대한 지속적인 평가 속에 이뤄지는 법이다. 이른바 정당성의 위기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2년 전 겨울, 노무현 정부를 심판해 이명박 정부를 출범시켰지만 지난 1년간 이명박 정부는 바로 정확하게 노무현 정부의 길을 따라왔다는 점이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지만, 최고 정치지도자 개인에 의존한 정치 동원체제인 ‘위임 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의 딜레마를 이명박 정부 역시 그대로 안고 있다. 한마디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여전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지난해 6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 100일을 맞이했을 때 이명박 정부의 리더십을 ‘집권적 권위주의’라고 명명한 바 있다. 그때의 논의를 참조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성격, 이명박 정부의 리더십과 거버넌스(governance·통치), 그리고 국정운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미리 지적해두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이명박 정부에는 올해 1년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이다. 내년에는 지방선거를 치르며, 지방선거 이후 정치적 관심사는 자연스레 2012년 총선과 대선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정부가 올해 1년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노무현 정부 집권 후반기와 같은 만성적인 정당성 위기에 휩싸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신자유주의적 발전주의’

    먼저 주목할 것은 지난 1년간 드러난 이명박 정부의 성격이다. 노무현 정부의 성격은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노 전 대통령이 규정한 바 있다. 좌파 신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좌파적인 사회정책의 결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지구적으로 관찰할 때 좌파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영국 블레어 정부나 독일 슈뢰더 정부의 ‘제3의 길’을 ‘신자유주의 좌파’라고 명명한 바 있으며, 이들 정부 역시 신자유주의에 경사된 경제정책을 추진하되, 여기에 좌파의 복지국가 정책을 결합하고자 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는 박정희 시대의 ‘발전국가론’과 세계화 시대의 ‘신자유주의’가 결합한 신자유주의적 발전주의(neo-liberal developmentalism)로 이름 지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발전주의는 국부(國富)를 겨냥하는 발전주의의 목표에 국가 기능의 축소, 민영화 및 탈규제,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를 결합하려는 발전전략이다.

    구체적으로 2007년 대통령선거 과정부터 논란을 빚은 대운하 정책이 이명박 정부의 발전주의적 특성을 상징한다면, 각종 탈규제와 민영화 정책들은 신자유주의적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보수적 관점에서 보면 ‘신자유주의적 발전주의’는 발전국가론이라는 우리 산업화가 갖는 경로의존성을 고려한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한국적 변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먼저 주목할 것은 최근 ‘4대강 정비 사업’에서 볼 수 있듯이 이명박 정부가 이른바 토건국가적 기획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토건국가란 호주의 동북아시아 전문가 개번 매코맥(Gavan McCormack)이 사용한 개념이다. 정부가 건설을 포함한 사회간접자본(SOC)에 집중 투자하지만, 이면에는 정치권과 건설업자 간의 제휴가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토건국가의 매력은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에서 단기적으로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대운하 또는 4대강 정비를 포함한 일련의 국책사업을 이명박 정부가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토건국가적 정책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일본 사이타마대 우종원 교수는 일본에서 “공공사업의 ‘약발’이 떨어졌”으며, “빚만 눈덩이처럼 쌓였다”고 주장하고, 그 결과 2007년 현재 일본 정부의 채무 잔액이 국내총생산의 175%에 달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중앙일보, 2007년 6월14일). 우리 사회가 일본 사회의 길을 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도 논란거리다. 거시적으로 보면,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다른 국가들의 역사적 경험을 고려할 때, 그 명암이 분명한 전략이다. 긍정적 시각에서, 기업에 대해 규제완화를 단행하고 노동시장에 대해 유연성을 높이며 감세를 포함한 최소국가를 지향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일자리가 창출되고 경기가 다소 활성화되며 성장률은 어느 정도 높아질 수 있다.

    비교사회학적으로 볼 때, 출범 당시 이명박 정부는 프랑스 사르코지 정부의 신자유주의와 독일 메르켈 정부의 실용주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집권 1년을 돌아볼 때 이명박 정부는 ‘중도적 실용주의’가 아니라 ‘시장친화적 전략’의 성격이 두드러졌다. 경제정책은 물론 복지정책과 교육정책을 포함한 사회정책까지 철저하게 시장원리를 특권화하려는 방향으로 나아 갔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해온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지난해 가을부터 가시화된 세계적 금융위기와 맞물려 고조됐다는 점이다. 금융위기가 확산되기 전부터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존재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일자리 창출, 소득분배 개선, 사회통합 제고 등과 같은 문제들을 결국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명박 정부에서는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고, 시민사회로 부담을 이전하더라도 복지 수준은 정체하거나 후퇴하며, 결과적으로 정부와 대기업을 한 축으로 하고 진보적 정치조직 및 사회운동조직들을 다른 축으로 하는 새로운 대립구도 속에서 사회통합적 자원들은 고갈된다는 예견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해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금융위기는 바로 이런 예견을 현실로 옮겨놓았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금융위기도 가을을 지나면서 실물경제 위기로 이동했으며, 그 결과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최저점에 도달했다. 우려스러운 것은 올 한해 경제 전망이 몹시 어둡고, 이것이 다시 세계경제의 불황과 맞물려 쉽게 회복되기 어렵다는 예측이 설득력을 갖는다는 점이다.

    경제정책과 더불어 지난 1년간 큰 논란을 빚은 것이 이명박 정부의 리더십이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우리 사회의 정치적 리더십은, ‘그림 1’을 참조해 보면, A 유형에서 B 유형으로 이동해왔다. 다시 말해,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리더십은 ‘집권적 권위주의’에 가까웠는데, 이 리더십은 대통령이 마치‘계몽군주’처럼 시민사회 위에 군림하는 동시에 권력이 소수에 집중된 것으로 특징 지어졌다.

    ‘집권적 권위주의’ 리더십

    이어 노무현 정부의 리더십은 ‘집권적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초기에는 D 유형인 ‘분권적 자유주의’를 지향했다. 하지만 분권과 자율, 토론과 타협을 중시한 노무현 대통령의 ‘탈(脫)권위주의 리더십’은 시간이 흐르면서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B 유형인 ‘집권적 자유주의’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리더십은 바로 이 ‘집권적 자유주의’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인수위원회 시절에 ‘실용’ 또는 ‘경쟁’을 강조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보수적 집권주의와 시장적 자유주의가 결합한 리더십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현실로 드러난 것은 ‘집권적 권위주의’였다. 특히 ‘쇠고기 사태’를 경유하면서 이 리더십은 민주화 이전 군부권위주의 시대의 리더십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으며, 민주화 시대를 역행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갖게 했다.

    이명박 정부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대단히 비판적이다. 예를 들어, 진보적 정치학자 손호철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에 대해 “1%의 ‘강부자’를 위한 종부세 완화정책, 이미 위험수위에 이른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강행하려 한다”고 지적하고,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루스벨트식의 ‘일 국민정책’이 아니라 점점 잘사는 소수와 점점 못사는 다수로 분열시키는 ‘두 국민정책’을 추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한국일보, 2008년 10월13일).

    집권 2년차 이명박 정부 리더십

    불황으로 텅 빈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분권적 자유주의로 나아가야

    한편 보수 성향의 칼럼니스트인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은 이명박 대통령이 “무기력하고 정권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대통령은 매일 교과서 같은 말을 쏟아내지만 알맹이가 없고 매가리가 없다. 쇠고기파동 이후 그는 과단성과 결단력을 잃었고 국민은 그에 대한 신뢰를 잃었으며 야당과 좌파는 그를 깔보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조선일보, 2009년 1월12일).

    진보 세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보수 세력으로부터도 이명박 정부의 리더십은 이렇게 비판받아왔다. 지난 2007년 12월 대선에서 큰 표 차이로 당선된 정부로서는 적잖이 당혹스러운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이명박 정부의 리더십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 이에 대해 필자는 세 가지를 주목하고 싶다.

    첫째, ‘CEO형 리더십’으로서 이명박 정부 리더십의 명암이다. 일반적으로 CEO형 리더십은 ‘목표 달성’이라는 결과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기에 이 리더십은 한편으로는 효율성이 높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을 경시한다.

    문제는 이런 CEO형 리더십과 정치적 리더십 사이에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 다시 말해 국민적 여론형성 과정을 경시하는 리더십은 바로 그 국민의 거부여론에 직면하게 되며,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집권보다는 분권의 리더십을, 권위주의보다는 자유주의의 리더십으로 나아가야 한다. 대통령은 국가적 의제에 주로 집중하고 전체적인 ‘통치의 오케스트레이션’을 담당하는 지휘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정치의 과제 중 하나가 시민사회 내 다양한 이익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데 있다면, 이를 위해서 정부의 리더십은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나 더욱 자율적이고 유연한 ‘분권적 자유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둘째, 이명박 정부가 간과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변화다. 정치와 일부 경제 영역에서는 민주화의 시대가 여전히 유효할지 몰라도, 일부 경제와 사회 및 문화 영역에서 우리 사회는 이미 세계화 시대에 진입해 있다.

    세계화와 정보사회의 진전은 경제 및 문화생활을 탈국민국가화하고 자발성과 유연성을 증대시킨다. 특히 쌍방향 소통의 ‘웹 2.0 사회’의 도래는 정부의 권위주의적 리더십과 태생적으로 양립하기 어렵다.

    돌아보면 그래도 노무현 정부는 탈권위주의를 내세움으로써 이런 시대적 변화에 나름대로 대응해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런 시대적 변화를 읽어내고 적절히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갈수록 국민과의 거리를 벌려 왔다.

    정부의 주요 양대 과제는 국가의 기본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정책 추진과 사회 갈등을 제어할 수 있는 사회통합의 제고다. 중요한 것은 그 정책 추진과 통합 제고가 모색되는 상황과 맥락에 대한 정확한 이해다.

    이명박 정부는 변화하는 세계를 제대로 독해하지 못한 채 구식 권위주의 방식으로 되돌아감으로써 스스로 정당성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2007년 한나라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보다 상대적으로 중도에 가까웠던 이명박 후보가 완고한 보수주의와 보수적 통치를 고수하는 한 우리 사회의 현주소와 맺고 있는 이런 불편한 관계는 쉽게 해소되기 어렵다.

    소통의 부재

    정책 기조, 리더십과 더불어 이명박 정부가 갖는 또 하나의 문제는 사회갈등을 제어할 수 있는 소통 시스템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어느 나라이건 갈등 제어를 통한 사회통합의 제고는 정부에 부여된 중대한 과제 중 하나다. 지난 1년간 이명박 정부는 이 과제를 수행하는 데 매우 미숙하다는 것을 보여줬으며, 지난해 봄과 여름 ‘쇠고기 사태’를 맞아서는 정권 위기의 문턱까지 다가서기도 했다.

    현대사회가 이익사회인 한 이해관계의 충돌은 불가피하며, 따라서 갈등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비용을 과다하게 치를 경우 갈등은 사회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갈등을 일방적으로 부정할 게 아니라 이를 어떻게 조정하고 관리할 것인지는 매우 중대한 과제다. 갈등 관리를 위해서는 우선 갈등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한데, 무엇이 충돌하는지를 정확히 이해할 때 올바른 대책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갈등은 크게 ‘이익 갈등’과 ‘가치관 갈등’으로 양분된다. 이익 갈등이 경제적 이익을 둘러싼 생계형 갈등이라면, 가치관 갈등은 서로 다른 생각과 생활방식이 충돌하는 세계관 갈등이다. 노사·빈부·지역 갈등이 전자를 대변한다면, 개발·양성평등·세대 갈등은 후자를 대표한다. 한편 이념 갈등은 두 가지가 모두 얽혀 있는, 우리 사회에서 유독 두드러진 ‘복합형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서구의 경우 이익 갈등에서 가치관 갈등으로 그 중심이 변화되어 온 반면, 우리 사회의 양상은 두 갈등이 거의 동시적으로 분출하는 ‘압축 갈등’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인수위원회 시절 영어 공교육과 대운하를 둘러싼 논쟁, 봄과 여름의 ‘쇠고기 사태’를 둘러싼 논란, 여름 이후 외환정책을 포함한 경제정책을 둘러싼 논란, 그리고 교과서 개정 등을 포함해 1년 내내 지속된 이념 관련 논쟁 등은 갈등 해소를 위한 소통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이명박 정부가 갖는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갈등 해소를 위해 정부에 부여된 역할은 시스템의 구축과 거버넌스의 활성화에 있다. 시스템을 통한 조정 및 관리는 갈등해결의 자의성을 줄일 수 있으며, 거버넌스 구축은 정책 추진의 장기적인 효율성과 정당성을 높일 수 있다. 이 두 가지 관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가진 문제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집권 2년차 이명박 정부 리더십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로 큰 어려움에 빠졌다.

    먼저 이명박 정부는 당정관계, 정부와 야당의 소통에서 모두 미숙함을 드러냈 다. 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여당 간의 생산적 분업이 매우 중요한데,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바람직한 당정협력 관계를 구축하지 못했다. 정무수석실을 신설했지만 정무 기능은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으며, 이는 노무현 정부가 보여주었던 ‘당정분리’와는 또 다른 국정운영의 아마추어리즘일 뿐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계 문제다. 지난해 4월 총선 과정에서 불거진 박근혜 대표와의 불편한 관계는 이른바 ‘친박 세력’으로 하여금 여당 안에서 야당 노릇을 하게 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정부의 정책 추진에 상당한 부담을 안겼다. 정당 내에서 다양한 분파 사이의 긴장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현재 여당 내에서 두 진영의 관계는 생산적인 긴장 관계를 넘어선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부와 야당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성숙한 민주주의 체제라면 정부와 야당의 관계는 협력과 견제가 조화된 ‘생산적인 경합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야당과의 생산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도 한계를 드러냈다.

    권위주의적 통치로의 회귀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 정세균 대표와의 회담이 대표적인 사례다. 영수회담이 제대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사후 결과가 매우 중요한데, 두 회담 모두 결과적으로 정국을 전환하는 데 별다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미숙함을 다시 드러내는 셈이 됐다.

    마지막으로, 시민사회와의 소통 또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오늘날 어떤 정책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제대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시민사회를 의사결정 영역의 밖으로 밀어냄으로써 국정을 독단적으로 이끌어왔다.

    사회갈등 조정 업무를 담당하는 시민사회수석실을 신설하고 새로운 거버넌스를 모색했던 노무현 정부도 작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명박 정부는 아예 해당 기구를 폐지하고 그 기능을 축소함으로써 스스로 시민사회와의 통로를 좁혀놓았다.

    이명박 정부의 이런 전략은 단기적으로 효율적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 그 단적인 결과는 ‘쇠고기 사태’에서 이미 드러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이명박 정부가 선택한 것은 거버넌스로의 전환이 아니라 권위주의적 통치로의 회귀였다.

    지난 1년간 이명박 정부에 가장 중요한 두 사건은 5월부터 시작된 촛불집회와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일 것이다. 이 두 사건은 적잖은 사람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이었다.

    생각해보면 이 두 사건은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자본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촛불집회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냈다면, 현재진행형인 금융위기는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2008년 우리 사회는 정치와 경제의 양 영역에서 새로운 전환점에 도달했다고 봐야 한다.

    주목할 것은 이 두 사건이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촛불집회의 경우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협상이 도화선이 됐다면, 실물경제 위기로 옮겨진 금융위기의 경우 이명박 정부의 설익은 외환정책이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촛불집회와 금융위기는 관련성이 있다. 금융위기가 미국식 신자유주의 세계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촛불집회에서 제기된 민영화 반대 등의 이슈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적극적 거부 의사를 표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SOC 투자로는 안 돼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두 가지다. 첫째, 최근 우리 사회는 ‘이중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우리를 더없이 우울하게 하는 ‘경제의 위기’뿐 아니라 사회문제 전체를 조타(操舵)해야 하는 ‘정치의 위기’ 또한 우리 사회의 현주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의 위기에서 야당들도 면책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일차적 책임은 이명박 정부와 여당에 있다.

    중요한 것은 경제위기와 정치위기가 긴밀히 결합돼 있다는 점이다. 경제위기를 수습해야 할 이명박 정부가 어설픈 대책들을 남발함으로써 이에 실패했다면, 위기의 수준이 업그레이드된 경제는 다시 정부가 정책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더욱 협소하게 만들었다.

    외환정책이 그 단적인 사례다. 정부의 무분별하고 일관성 없는 외환정책은 통화가치의 하락을 막지 못했으며, 결국 외환보유액을 크게 축내는 것으로 귀결됐다. 이런 외환정책은 다시 정책 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좁혀놓았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바로 이 점에서 넓은 의미의 정치, 좁은 의미의 정부 역량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최소 정부’를 지향했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중대한 경종이다. 신자유주의가 케인스주의 ‘정부의 실패’의 대안으로 ‘시장의 복권’을 전면에 내걸었다면, 이제 ‘시장의 실패’가 역사적으로 다시 가시화되는 국면이다.

    문제는 시장의 실패가 진행된다고 해서 과거 ‘정부의 복권’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고용 문제는 단적인 증거다. 프랑스 사회학자 앙드레 고르(Andre Gorz)가 강조했듯이 오늘날 전 지구적으로 3분의 1의 노동력은 과잉 공급돼 있다. 정부의 개입을 통해 완전고용을 이뤘던 1950~60년대 케인스주의의 황금시대가 정보사회에서는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사회적 총생산량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일자리와 일의 양이 크게 줄어드는 이른바 ‘포스트 노동사회’에서 정부는 ‘포스트 리버럴’이든 ‘포스트 케인시안’이든 새로운 고용창출 정책을 내놔야 한다.

    최근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정비사업으로 대표되는 녹색 뉴딜을 새로운 정책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이에 대한 비판이 만만치 않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정확하게 지적하듯이, 미국에서 “1930년대 뉴딜은 테네시강 유역 개발사업뿐 아니라 광범위한 금융규제, 노동자의 권익보호, 사회안전망 등 국가개입의 확대가 주된 내용이었다. 단순한 SOC 투자가 아니라 경제운용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라 할 수 있다(‘세계 경제위기와 한국경제의 미래’, 2009년 1월12일 한국 금융연구원 강연).

    요컨대, 이중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현명한 역할이 더없이 중요하다. ‘큰 정부’ 또는 ‘작은 정부’의 이분법은 지난 20세기에 갇힌 낡은 패러다임일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에 중요한 것은 단기적 전략과 장기적 전망, 국민국가적 수준과 세계사회적 차원을 동시에 고려하는 복합적 지혜 또는 현명함을 갖추는 것이다.

    약자들, 더욱 어려워져

    정부의 현명한 역할에 중핵을 이루는 것은 단연 경제정책이다. 앞서 필자는 이명박 정부의 발전전략을 ‘신자유주의적 발전주의’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 세력의 담론이 박정희식 발전국가론 또는 개발독재론을 넘어서 신자유주의적 발전주의로 ‘진화’한 것은 지난 10년간 보수세력의 변화와 상응한다.

    2007년 대선과정에서 보수세력은 한편에서 여전히 구식 개발주의와 반공주의에 의존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 공동체주의를 새로운 가치로 내세움으로써 기성세대는 물론 젊은 세대에게도 상당한 정치적 효과를 창출했다. 발전주의가 노장 세대를 중심으로 과거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면, 신자유주의는 세계화의 충격에 대응한 경쟁, 효율성 담론을 부각함으로써 청년 세대에게 어필했다.

    다시 말해, 노무현 정부를 경유하면서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은 구식 개발독재와 신식 신자유주의 사이의 어디엔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선진화’로 상징되는 민주화 시대 이후의 경제·성장·발전을 자신의 가치로 전면에 제시함으로써 국민 다수의 삶과 정서에 상당한 공감을 모아왔다.

    이 점에서 지난 대선 과정에서 보수세력에는 노무현 정부로 대표되는 중도 또는 진보 세력에 대한 실망이 가져온 반사 이익 이상의 ‘그 무엇’이 존재했으며, 그것은 이명박 후보의 ‘경제 살리기’라는 담론과 전략으로 구체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지난 1년을 돌아보면 국민 다수의 열망인 이 ‘경제 살리기’를 이명박 정부가 당분간 달성할 수 있을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1년 내내 이명박 정부는 ‘3중고’를 겪어왔다.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하나였다면, 순탄하지 못한 남북관계는 또 다른 정치적 과제로 부각됐으며, 여기에 더해 ‘쇠고기 사태’로 극명하게 드러난 소통의 딜레마가 존재해왔다.

    이런 흐름 가운데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앞서 지적한 신자유주의 경제 및 사회정책이 본격화될 경우 ‘20 대 80 사회’ 또는 ‘모래시계형 사회’로의 경향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지난 1년간 추진돼온 경제정책 및 사회정책의 목록들을 보면 ‘경제 살리기’라는 이름 아래 이명박 정부는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경제력 집중을 강화하고 소득분배를 악화하며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고 고용불안 및 실업을 늘림으로써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할 가능성을 배태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형평성과 공공성을 배제한 채 효율성과 경쟁력을 일방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시민사회를 황량하게 만들고, 결국 인간적인 가치와 존엄을 훼손할 가능성도 열어 왔다.

    신자유주의를 이분법으로만 파악하는 것이 반드시 옳지는 않다. 효율성, 경쟁력은 형평성, 공공성 못지않게 세계화 시대가 요구하는 주요 덕목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사회가 놓인 현재적 조건을 고려할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한 개방의 문제 역시 이분법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전지구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수정 또는 폐기가 이뤄지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가 이를 고수하는 것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우리 사회 전체를 사회적 강자와 사회적 약자의 ‘두 국민 사회’로 재편해왔다면, 보수적 해법이든 진보적 해법이든 이런 두 국민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을 모색하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일차적인 과제일 것이다.

    다수의 행복 위한 경제 실현해야

    이제 결론을 맺자. 어느 나라이건 정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다. 집권 1년이 지난 현재 국민 다수는 과연 이명박 정부가 국민을 위해, 국민적 삶의 조건의 향상과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진보에 가까운 국민들은 촛불집회에서 이 질문을 던졌으며,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이제 보수에 가까운 국민이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로서도 물론 할 말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세계 경제위기라는 구조적 조건 아래에서 우리 경제가 갖는 대외의존적 특징을 고려할 때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의 폭이 넓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10년 만에 중도 정부에서 보수 정부로 바뀐 만큼 새로운 적응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훈련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촛불집회와 경제위기라는 이중적 상황에 대면한 정부로서는 여유를 갖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집권 1년의 시행착오는 그래도 용인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집권 2년의 경우 국민의 평가는 더욱 냉정해질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국정운영의 틀을 모색하지 않으면 앞으로 만성적인 정당성 위기에 시달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집권 2년의 이명박 정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역사에서 비약은 없다. 지난 1년의 경험에 대한 겸허한 성찰에서 그 해법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이에 대해 필자는 세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 권위주의 리더십을 민주적인 리더십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 이명박 정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비즈니스 프렌들리’ 못지않게 ‘피플 프렌들리’, 다시 말하자면 ‘국민 곁으로’‘국민 속으로’의 리더십이라 할 수 있다. 세계화의 충격과 정보사회의 진전으로 우리 사회는 이미 변화돼 있다. 이점에서 과거 권위주의 리더십으로의 회귀는 단기적으로 효과적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둘째, 현재 진행 중인 경제위기를 고려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경제정책 및 사회정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성장 또는 경제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한 성장, 무엇을 위한 경제인지가 더욱 중요한 법이다. 이명박 정부가 내건 진정한 ‘선진 일류국가’란 다름 아닌 국민을 위한 성장, 다수의 행복을 위한 경제를 실현하는 국가를 지칭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셋째, 새로운 거버넌스를 모색해야 한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와는 달리 오늘날 시민사회의 동의 또는 신뢰를 구하지 않은 정책은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과거의 일방향적 통치와는 다른, 국가와 시민사회가 함께 협의하고 결정하는 거버넌스를 구체화할 때 정책 추진은 탄력을 받고 국민 다수로부터 정당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집권 2년차 이명박 정부 리더십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독일 빌레펠트대 사회학박사

    미국 UCLA 방문연구원

    現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 ‘한국 시민사회의 성찰’ ‘세계화시대의 시대정신’ ‘현대 자본주의와 한국사회’ ‘한국의 현재성과 사회변동’


    2009년을 맞이해 이명박 정부는 비상경제정부 체제를 운영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문제는 무엇이 이 비상체제의 핵심이 돼야 하느냐다. 필자는 두 개의 ‘아이(I)’, 혁신(Innovation)과 통합(Integ-ration)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혁신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방향이라면, 통합은 정치위기를 타개하는 방향이다.

    남은 집권 4년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국민 다수는 여전히 이명박 정부가 제대로 된 혁신과 통합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다. 사회 통합에 기반을 둔 경제혁신이야말로 집권 2년을 준비해야 하는 이명박 정부에 부여된 최대 과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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