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시민운동하다 처음 만나
시민운동가일 때도 정치적 이득 앞에 둬
이재명만큼 재개발 잘 아는 사람 없다
정치를 해서는 안 되는 사람
[이재명과 '나'] 신상진 성남시장
신상진 성남시장. [지호영 기자]
신상진 성남시장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단어다. 그는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7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생이지만 학생운동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결국 붙잡혀 옥살이까지 했다. 출소 후 학교로 돌아가 의사가 된 뒤에는 성남시에서 시민운동가로 활약했다. 2000년에는 의권쟁취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의약분업 반대 시위를 이끌었다. 2004년 돌연 한나라당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다.
“의약분업 반대 시위를 하며 진보 세력에 대한 실망이 커졌다. 의사들이 무조건 의약분업에 반대한 것이 아닌데도 의사를 나쁜 세력으로 규정하는 이들에게 크게 실망했다.”
지역구 선택도 특별했다. 보수 세력에는 험지인 성남시 중원구에 출마했다. 이상락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밀려 낙선했으나 이 후보의 허위 학력 기재로 재선거가 치러졌다. 신 시장은 이때 당선해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러곤 18대, 19대,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해 4선 의원이 됐다.
성남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은수미 전 성남시장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감사에 나섰다. [성남시]
감사원 감사 ‘두 손 들어 환영’
그는 공약대로 전임 시장들의 과오를 바로잡고 있다. 성남시장직인수위원회가 꾸려지자 ‘정상화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공무원 e메일 삭제 조치, 성남FC 부적절 지출 등 3건의 의혹을 검증·고발하겠다고 나섰다.임기가 시작한 지 9개월이 다 돼가지만 성남시의 검증은 끝나지 않았다. 최근엔 정자동 호텔 특혜 의혹 감사에 착수했다.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내부감사를 진행해 실체를 밝히겠다는 것. 성남시에서 이재명 지우기에 열중인 신 시장을 3월 10일 성남시청에서 만났다.
전임 시장 관련 의혹에 대해 집중 조사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을 빠르게 도려내야 원활한 시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시정도 사람의 몸과 같다. 질환이 생긴 부분을 그대로 두면 계속 상태가 악화되는 것처럼 시정도 과오를 빠르게 바로잡아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이 대표와 은 전 시장은 성남시를 떠난 사람들이다.
“전임 시장들이 일으킨 문제를 덮으면 나쁜 전례를 만들게 된다. 개발사업 의혹에 가담한 사람들을 확실히 처벌하지 않으면 계속 비슷한 문제가 일어난다.”
2월에는 감사원이 성남시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원 감사를 환영한다고 밝혔더라. 피감기관이 감사를 환영한다는 이례적 장면이 연출됐다.
“성남시 내부감사로는 퇴직자들을 감사할 수 없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등 이 대표와 함께 성남시를 떠난 인물에 대해서는 의혹 검증이 어려웠다. 감사원은 성남시가 권한이 없어 검증하지 못한 의혹들도 샅샅이 검증할 수 있다. 그래서 ‘두 손 들어 환영한다’고 했다.”
그는 “여기저기 불거진 개발 특혜 의혹으로 적법한 개발사업도 의혹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며 “개발사업 특혜 및 잘못된 시정에 대한 진상을 파헤쳐 개발특혜시라는 오명을 씻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월 10일 경기 수원시 경기도의회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경기도지사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전형수(64) 씨가 전날 사망한 데 대해 “검찰의 과도한 압박 수사 때문에 생긴 일이지, 이재명 때문인가. 수사당하는 게 제 잘못이냐”고 주장했다. [뉴스1]
전 씨는 이 대표가 성남시장이던 시절에도 비서실장이었다. 전 씨에 대해 알고 있나.
“이름만 들어봤다. 얼굴은 본 적 없다.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어떤 부분이 안타까운가.
“이 대표와 관련해 너무 많은 사람이 다친다. 전 씨 이전에는 김문기 전 성남도공 개발1처장, 유한기 전 성남도공 개발사업본부장이 목숨을 끊지 않았나. 시장 일을 해보니 공무원은 시장의 전횡에 맞서 저항할 힘이 없다.”
소신 있게 맞설 수도 있지 않나.
“공무원도 생업이다. 시장의 실정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는 어렵다. 이 대표의 성남시가 보통 성남시였나. 당시 이야기를 들어보면 구청 단위의 작은 공사도 전부 정진상 전 실장을 거쳐야 했다. 이 대표와 정 전 실장이 성남시의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상황에서 소신 내세우는 공무원이 나오기 쉽지 않다. 설사 있었다고 해도 오래 발붙이고 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재명 아는 사람이라면 코웃음 칠 얘기
신 시장의 과오 청산 행보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조정식 성남시의회 민주당 대표의원은 3월 10일 성남시의회에서 “수사와 진상규명 조사는 수사기관과 감사원이 할 일”이라며 “성남시는 경제위기 극복과 민생 해결에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발언했다.전임 시장들 과오를 들추는 일에만 힘쓴다는 비판도 있다.
“노후화된 원도심 개발,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 시 발전을 위한 업무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2001년 10월 ‘주민소환제도 도입과 성남시장 퇴진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김병량 당시 성남시장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동아DB]
“당선 이후 주말 한 번을 쉬지 않고 시청에 나와 일했다. 주변에서는 내 건강을 걱정한다. 이렇게까지 일만 하다 쓰러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듣고 있다.”
신 시장이 지금은 이 대표 의혹 검증에 힘쓰고 있지만, 30여 년 전만 해도 두 사람은 친구 사이였다. 신 시장은 1992년 성남시 자원봉사 단체 성남YMCA 이사로 활동했다. 변호사로 일하던 이 대표도 성남 YMCA 이사였다. 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얼굴을 마주했다. 1995년경에는 학생운동을 한 성남시 인사들이 모여 ‘성남시민모임’을 만들었다. 여기서도 신 시장은 이 대표와 함께했다.
이 대표와는 얼마나 가까웠나.
“술친구였다. 자주 만나 성남시에 대해 이야기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이 대표는 시민운동가 시절 어떤 활동을 주로 했나.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분당 신도시 ‘파크뷰 불법 분양’ 사건일 것이다.”
2000년 5월 성남시는 기존 상업지 용도였던 정자동 부지를 갑자기 주거지로 바꿨다. 이 과정에서 김병량 당시 성남시장이 재개발을 맡은 회사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 대표는 검찰 사칭 사건에 연루되기까지 하면서 이 문제 해결에 매진했다.
“이 대표는 불법 개발 의혹을 자기 손으로 파헤친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만큼 재개발 시장의 구조를 잘 안다. 그런 사람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말하고 있다. 이 대표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코웃음 칠 이야기다.”
꽤 친한 사이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교유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친구로 지낼 때도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
어떤 부분이 맞지 않았나.
“이 대표는 그때도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툰 적도 있나.
“다투지는 않았지만 나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당시 성남에 ‘성남연합’이라는 통합진보당 계열 단체가 있었다. 이 대표는 성남시민모임에 있을 때부터 이 단체와 손을 잡고 활동했다. 나는 이념이 한 쪽에 치우친 단체와 손잡는 것은 위험하다고 이야기했다. 정치 단체보다는 성남시민들의 불편을 해소하는 시민운동을 하자고 제의했지만 듣지 않더라.”
이석기의 경기동부연합과도 손잡아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이 전 의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 선동 죄로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동아DB]
그 사건으로 이 대표와 거리가 멀어졌나.
“그렇지는 않다. 이 대표가 2002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하고 내가 2004년 한나라당에 입당하며 자주 만날 일이 없어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됐다.”
국회의원과 시장으로도 이 대표를 마주할 기회가 있었을 것 같다.
“공식 행사가 있으면 인사하는 정도지 따로 만나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시민운동가, 정치인으로 이 대표를 겪어봤다. 이 대표는 어떤 사람인가.
“정치를 해서는 안 될 사람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정치인은 신념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이해관계로 움직이는 사람?
“시민운동가일 때도 이 대표는 항상 정치적 이득을 생각했다. 지역개발과 관련해 시와 이견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나를 포함한 다른 시민운동가들은 시민들의 의견을 먼저 모았다. 그러고는 그것을 통해 관련 단체를 설득하려 나섰다.”
이 대표?
“일단 시에 싸움을 건다. 1인 시위에 나서거나 시청 앞에서 소란을 피운다.”
설득하기보다는 다투는 편이다?
“시와 다투기 시작하면 공무원들의 마음이 돌아선다. 확실한 근거를 갖고 요구하는 편이 시와 시민들을 위해서도 더 낫다.”
이 대표는 왜 싸움을 걸었을까.
“싸우면 유명세를 얻기 쉽다.”
자세히 설명해 달라.
“시위를 하면 지역 언론이 보도한다. 그때 한두 마디 말한 게 정치인의 경력이 된다. 이 대표는 시민운동가 시절부터 지금까지 항상 같은 패턴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 자신이 한 일의 성과보다는 과정을 크게 알린다. 성과가 좋지 않아도 크게 부풀린다. 그런 방식으로 성장해 대선후보에까지 올라선 사람이다.”
신 시장은 “이 대표와 같은 정치인들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정책으로 승부를 낼 생각을 해야지 소란과 선동으로 국민의 눈을 가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000년 신 시장은 검찰에 기소됐다. 의약분업 대정부투쟁을 주도했다는 이유였다. 이때 이 대표가 신 시장의 변호를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 시장을 기소한 검사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1심 판결문에 윤 대통령의 이름이 검사로 적혀 있다.
이재명이 변호? 실소만 나와
대한의사협회 의권쟁취투쟁위원장을 맡았을 당시 신상진 성남시장. [동아DB]
“당시 검사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 대표가 변호사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애매한 면이 있다.”
이 대표는 어떤 역할을 맡았나.
“당시 의협은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에게 변호를 맡겼다. 이 대표에게는 내가 따로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변호는 전 위원장이 맡고, 이 대표는 일부 도왔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의협 사건 때 이 대표와 윤 대통령이 처음 맞붙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쳐 있다.
“이 대표가 대선을 앞두고 만든 이야기인 것 같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대선 정국에 이 대표가 의협을 찾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협에 가서는 본인이 의약분업 해결을 위해 변호에 참여했고 나와도 친하다고 한참 떠들고 갔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이 대표가 당시 변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나.
“법정에 한 두번은 왔나. 나는 거의 본 기억이 없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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