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호

이재명이 ‘정한’ 비례대표제, 의석 나눠먹기만 남았다

[노정태의 뷰파인더] 民意 없고 정치 수 싸움만…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jeongtaeroh@ries.or.kr

    입력2024-02-1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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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가피함 이해해 달라” 대선 공약 파기, 번복 택한 李

    • 文 ‘거절할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타협 카드

    • 지역구 당선자 많이 낼수록 손해, 위성정당 창당 불가피

    •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과연 ‘좋은’ 제도인가

    • 필연적 이유도, 정의도 사라진 야합

    “같이 칼을 들 수는 없지만 방패라도 들어야 하는 이 불가피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2월 5일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내놓은 말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폐기한다는 본인의 대선 공약을 파기하고, 현행 선거법대로 올해 총선을 치르겠다는 의향을 밝힌 것이다. 이 대표의 논리 흐름은 다음과 같이 단순명료하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없애고 기존의 병립형으로 돌아가고 싶다 → 하지만 국민의힘이 먼저 위성정당을 만들어서 민주당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비례정당을 만들지 않으면 의석 손해를 볼 것이 분명하다 → 그러니 현행 제도를 유지하며 그에 최적화된 해법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

    선후 관계가 바뀐 주장이다. 선거제를 둘러싼 논란을 지켜봐 온 국민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시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대표가 병립형을 택해 여야 합의로 선거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유지해왔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현행 비례대표제에 반대해왔다. 반면 민주당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현 선거제를 밀어붙인 후 지금껏 자중지란에 빠져 있다.

    대체 왜 우리는 선거를 고작 두 달 앞둔 시점까지 선거제를 놓고 갈등하는 나라에 살게 된 걸까. 표면적 이유는 정치적 이해득실을 고려해 마구잡이로 만들어놓은 선거제도와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 세력들 간 이합집산 때문이다. 근본적 이유가 있다. 이를 말하기 위해선 올바른 선거제도, 더 나아가 올바른 정치에 대해 한국의 유권자들이 품고 있는 거대한 착각을 짚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 대권 위한 의석 내주기

    5일 광주 서구 치평동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날 이 대표는 “불가피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주길 바란다”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 방침을 밝혔다. [뉴스1]

    5일 광주 서구 치평동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날 이 대표는 “불가피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주길 바란다”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 방침을 밝혔다. [뉴스1]

    먼저 뚜렷이 보이는 것, 이 대표의 2월 5일 발언부터 살펴보자.

    “정권 심판과 역사의 전진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과 함께 위성정당 반칙에 대응하면서 연동제의 취지를 살리는 통합형 비례정당을 추진하겠습니다.”

    여기서 핵심어는 ‘모든 세력’, 그리고 ‘통합형 비례정당’이다. 민주당과 뜻을 같이하는 정당과 세력이 모두 참여한 비례정당을 만들어 선거에 임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이것은 이 대표가 그 전날인 2월 4일 경남 양산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문 전 대통령과 회동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된 행보였다. 이날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힘뿐 아니라 민주당과 조금 우호적인 제3세력들까지도 한 데 모아서 상생의 정치로 나아갈 수 있다면 우리 정치를 바꾸는 데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은 단순한 권유나 제안이 아니었다. 문 전 대통령이 “향후 대선에서도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말을 덧붙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굳이 말하자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해 친명계가 의원 자리를 독차지하지 마라, 그렇게 한다면 비명계는 네 대권 행보에 큰 차질을 빚게 하겠다’는 취지의 복선이 담겨 있다고 보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말이다.

    이 대표의 발표를 반긴 것은 문 전 대통령만이 아니다. 정의당 대표를 지낸 심상정 녹색정의당 의원 역시 2월 5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표가 병립형 퇴행의 동반자가 되길 원하는 국민의힘 손을 뿌리쳤다”며 “민주당과 함께 선거제 개혁에 깊숙이 관여했던 사람으로서 참 다행으로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여기서 우리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둘러싼 정치적 맥락을 투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한다는 것은 이 대표가 민주당의 전권을 쥐고 ‘이재명 충성파’에게만 공천을 줄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한다면 지역구에서 많은 의석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되는 민주당은 비례대표 의석에서 손해를 봐야만 한다. 따라서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따로 창당하거나, 비례대표를 노리고 지역구 출마를 하지 않거나, 지역구 득표가 저조할 것으로 예상되는 친 민주당 성향 정당들과 연합해야 한다. 요컨대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 내 비명계 관점에서, 심 의원은 민주당 바깥 위성정당들의 관점에서, 각각 환영의 메시지를 낸 것이다.

    지역구 당선자 내면 더 손해니…

    2019년 9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문희상 당시 국회의장이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대 속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시행 등을 담은 공직 선거법 일부 개정안을 가결하고 있다. [뉴스1]

    2019년 9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문희상 당시 국회의장이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대 속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시행 등을 담은 공직 선거법 일부 개정안을 가결하고 있다. [뉴스1]

    이 상황을 파악하려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 제도는 선거구의 크기에 따라 소선거구제, 중선거구제, 대선거구제로 나누어진다. 그런데 이 모든 제도들은 개별 선거구에서 당선자를 가릴 뿐이다. 어떤 정당이나 정치인이 전국적 인기를 누리고 있더라도 특정 선거구에서 승리를 따내지 못하는 한 국회에 입성할 수 없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이상을 놓고 볼 때 이는 문제다. 국민의 의지가 국회 의석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는다고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의 여러 민주국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도입했고, 그 가운데 하나가 비례대표제다. 지역구가 아닌 전국 단위 투표를 통해 정당에 의석을 할당하는 것이다.

    듣기엔 좋은 말이지만 문제는 지금부터 복잡해진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집계할지를 놓고 정치적 수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각 지역구 후보자가 얻은 표를 해당 후보자 소속 정당에 대한 투표로 간주하고, 득표를 모두 합친 것에 비례해 지역구 외 의석을 나누는 것이다. 이른바 ‘전국구’ 국회의원 선출 방식이다. 단순명료하지만 무소속 후보를 향한 투표는 전국구에서 사표(死票)가 된다. 후보자는 좋지만 정당은 싫거나, 그 반대의 경우를 반영할 수 없다. 결국 2001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판결됐다.

    이로 인해 2004년부터 2016년까지는 병립형 비례 명부제로 총선이 치러졌다. 후보자에 대한 투표와 정당에 대한 투표를 분리하고, 비례대표 의석 내에서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총 10석이라는 놀라운 성취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투표 방식 때문이었다. 지역구에선 고작 2석을 얻었으나 정당득표율에서 13.1%를 기록해 비례대표 8석을 얻은 것이다.

    여기까지의 역사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비례대표제는 상대적으로 소수정당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소수 정당이 이른바 ‘공중전’을 통해 전국적 지명도를 얻어 정당명부 투표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 일은 지역구를 돌파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에서 정의당을 중심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까닭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정당명부 투표를 통해 나온 선거 결과를, 비례대표에 할당된 의석이 아닌 전체 의석에 적용해 의석을 할당하는 제도를 뜻한다. 300석 가운데 47석인 비례대표를 편의상 50석으로 가정해 계산해보자. 정당명부 투표에서 A당은 10%, B당은 30%, C당은 60%의 득표를 했다고 가정하면 병립형 비례대표제하에선 비례 의석은 처음부터 비례대표에 할당된 의석에만 돌아간다. 10%를 득표한 A당은 5석을 가져가는 식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선 A당은 정당명부 득표율 10%에 맞춰 300석 가운데 30석을 가져가고, B당은 90석, C당은 180석을 가져간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엄연히 지역구 선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A당의 지역구 선거 결과가 매우 저조해 지역구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고 해보자. 그런데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각 정당이 정당명부 득표율에 비례한 의석을 갖게 만들려는 제도다. 그렇다면 50석에 불과한 비례 의석 중 3/5에 해당하는 30석을 A당이 가져가야 한다는 말인데, 이게 가능한 일일까.

    놀라지 마시라.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면 정말 그렇게 돼야 한다. 지역구 당선자 숫자를 뺀 후 비례대표 의석 배분 계산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B당과 C당은 각 지역구에서 선전을 거뒀음에도 비례대표에서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A당은 지역구에서 당선자가 없다는 이유로 비례대표에서 이익을 얻고, 반대로 B당과 C당은 열심히 해서 지역구 당선자를 많이 낸 만큼 손해를 보도록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독일식’이지만 ‘베네수엘라식’이기도 한 제도

    2020년 4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의원 및 관계자들이 21대 총선 중앙선대위 합동 출정식을 진행하고 있다. [동아DB]

    2020년 4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의원 및 관계자들이 21대 총선 중앙선대위 합동 출정식을 진행하고 있다. [동아DB]

    필자는 국민 상당수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작동 원리를 모른다고 생각한다. 20대 국회의 말미에 이 제도의 논의가 시작되고,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납득할 수 없는 절차를 통해 통과되고, 기어이 이 제도로 선거를 치러 21대 국회를 꾸렸음에도 불구하고 전 국민적 반발 없이 넘어간 현실을 감안하면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다시 정리하자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선거 잘하는 정당’에 불이익을 주는 제도다. 지역구 당선자가 없으면 없을수록 비례 의석 확보에서 이득을 보도록 제도가 짜여 있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이 나누어지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는, 어떠한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지역구 승자에게 인위적으로 손해를 강요하는 제도가 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여기서 약간의 절충을 가한 것인데, 근본적 취지는 동일하다. 21대 국회의원총선거는 총 47석의 비례대표 의석 가운데 30석을 연동형으로, 나머지 17석을 병립형으로 선출했다. 지역구에서 당선자가 많은 정당일수록 손해를 보는 제도로 30석을 가져가게 만들어놓고 선거를 치른 셈이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각각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을 창당한 후 지역구 출마자를 단 한 명도 내지 않았던 까닭이다. 연동형으로 배분되는 30석 의석에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지역구 출마자를 내지 않는 위성정당을 만드는 것 외에 다른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들어 의석을 가져가는 것은 전혀 예상 불가능한 전개였을까. 강우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2020년 논문 ‘한국의 준연동형 선거제도 개혁과정 평가-주체, 목적, 정치적 결과를 중심으로’(21세기정치학회보 제30집 4호)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논문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다. 연동형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다수의 앞선 사례(알바니아, 레소토, 베네수엘라)에서 연동형 제도의 제도적 허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다양한 형태의 집합적 전략투표 동원 전략이 시행됐다. 또한 한국에서도 선거제도 개혁 논의 과정에서 이미 그 위험성이 지적된 바 있다.”

    여기서 우리는 본질적 의문을 품어볼 필요가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과연 ‘좋은’ 제도일까.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배분돼야 한다는 당위론은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밀어붙인 이들은 대개 독일이나 네덜란드 등 EU 가입국을 예시로 드는 경향이 있다. 흔히 ‘독일식 정당명부제’라는 식으로 홍보됐던 기억이 생생한데, 물론 독일도 그와 유사한 제도를 운용한다.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 자체가 ‘선한 제도’라고 할 수는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독일식 정당명부제일 수도 있지만 ‘베네수엘라 선거제’일 수도 있는 것이다.

    20대 국회의 무리한 선거법 개정은 애초에 표방된 목적인 비례성의 확대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비례성을 늘린다는 명분을 내걸고 선거법을 마구잡이로 뜯어고친 결과, 올해 2월 5일까지는 어떤 규칙에 따라 선거를 치르게 될지 이재명 대표 한 사람을 제외하곤 아무도 알 수 없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시행 과정의 부작용이 심각하다면 애초에 그 목적 자체가 올바른지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2020년 4월 6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 소재 인쇄소에서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가 인쇄되는 21대 총선 투표용지를 검수하고 있다. 당시 총선에선 비례대표 선거에 나선 정당이 35곳으로 확정돼 정당투표 용지 길이가 48.1㎝에 달했다. [뉴스1]

    2020년 4월 6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 소재 인쇄소에서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가 인쇄되는 21대 총선 투표용지를 검수하고 있다. 당시 총선에선 비례대표 선거에 나선 정당이 35곳으로 확정돼 정당투표 용지 길이가 48.1㎝에 달했다. [뉴스1]

    비례대표제 확대, 굳이 해야 할까

    앞서 인용한 논문엔 이렇게도 쓰여 있다.

    “준연동형 개혁의 목적이었던 비례성의 확대여부는 불비례성(disproportionality)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수인 갤린거 지수(Gallagher index)를 통해서 평가할 수 있다(Gallagher 1991).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갤린거 지수는 5.873이었는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11.90으로 크게 늘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준연동형 선거제도 개혁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갤린거 지수와 우리가 말하는 소위 ‘정치 선진국’의 수준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미국은 양당정치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공화당을 찍는 ‘레드 스테이트’와 민주당을 지지하는 ‘블루 스테이트’가 아예 다른 나라처럼 여겨질 정도다. 심지어 연방 상·하원 선거에 비례대표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미국의 갤린거 지수는 2016년 하원 의원 기준으로 5.22다. 나쁘지 않은 편이다. 이는 양당제가 극복돼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도 심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미국의 상·하원 선거는 민주당, 공화당 경선이 곧 본선으로 간주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 보니 블루 스테이트에 사는 공화당 지지자, 레드 스테이트에 사는 민주당 지지자들은 연방의회 선거에서 본선 투표를 포기할 때가 많다. 사표가 줄어들면서 득표와 의석수의 편차가 상대적으로 낮은 나라가 된 것이다.

    반대로 갤린거 지수가 높지만 정치가 역동적으로 작동하는 나라도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단 한 석의 비례도 없는 나라, 영국이 그렇다. 2019년 총선 기준 영국의 갤린거 지수는 15.02로 매우 높은 편에 속하지만 영국은 보수당과 노동당의 양당 구조를 뒤흔들고 깨뜨리는 정치적 이변을 늘 겪고 있다. 비록 총리를 배출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스코틀랜드 국민당, 자유민주당, 민주연합당 등이 오직 지역구 선거를 통해 상당한 의석을 가져가면서 전체 정치 구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거의 모든 이들이 너무도 당연시하는 어떤 지점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다. 비례대표제 확대는 정의로운가. 정당명부 투표의 득표율과 국회 의석수가 비례해야 할 어떤 필연적 이유나 명분이 있을까. 비례성 확대는 그 자체로 추구해야 할 정치적 과제인가, 아니면 특정한 제도의 운용 과정에서 나타나게 되는 어떤 지표 가운데 하나인가.

    2004년 총선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자유민주연합에서 비례 1번으로 출마한 김종필 대신 민주노동당의 비례 8번 노회찬 후보가 당선했다. 처음 도입된 정당명부제 비례대표제 덕분이었다. 그 무렵 진보정당에 기대를 건 사람은 필자뿐이 아니었다. 선택의 기로 몇 번에서 좋은 판단을 내리고 실행했다면 한국의 정치 구도는 마치 영국처럼 보수당 대 노동당의 양당 구도로 재편됐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진보 정치는 그 모멘텀을 살리지 못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맞바꿔 비례대표 의석 몇 석을 더 가져가려다 선거법 졸속 개정에 앞장섰다는 오명을 뒤집어쓴 정의당은 녹색정의당이 된 후에도 생존이 위태롭다. 노골적으로 민주당의 위성정당 노릇을 도맡는 여타 정당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 정치의 위기 앞에 두 거대 정당만을 탓할 수는 없는 이유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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