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또 종이 쓰레기 만들었구나 싶어요”

상술로 쌓은 K팝 앨범 판매 신화, 자원 낭비 백태

  • 김지은 고려대 사학과 3학년

    ann83217@gmail.com

    입력2024-05-0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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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평 앨범 가게 하루 매출 2500만 원

    • 팬들이 ‘앨범깡’ 하는 진짜 이유

    • 하이브·SM엔터테인먼트의 변화

    지난해 8월 11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 광경. [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8월 11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 광경. [사진공동취재단]

    오전 7시. 해도 다 뜨지 않은 늦가을 아침. 수십 명의 사람들이 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 지하상가 앨범 가게 앞에 줄지어 섰다. 지하에서부터 시작된 줄은 상가로 내려오는 계단을 지나 계단 입구까지 늘어섰다.

    오전 8시, 상점 셔터가 드르륵하는 소리를 내며 올라갔다. 사람들은 한 번에 수십 장, 많게는 수백 장까지 거침없이 앨범을 구매했다. 몰려드는 주문에 앨범 상자를 옮기는 점원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4평(13.2㎡) 남짓한 이 작은 가게의 매출은 이날 2500만 원을 넘겼다.

    써클차트에 따르면 2022년 기준 K팝 실물 앨범 판매량은 약 8000만 장이다. 정작 소비자들은 앨범 판매량 증대가 연예기획사의 과도한 상술이 낳은 결과라고 냉소했다. 포토카드가 대표적이다. 포토카드는 음반을 구매하면 부록으로 들어 있는 카드 모양의 아이돌 멤버 사진이다. 원하는 멤버를 정해 구매할 수 없는 탓에 팬들은 자신이 원하는 멤버의 포토카드를 갖기 위해 과도하게 많은 앨범을 구매한다. 이를 ‘앨범깡’이라 한다.

    앨범 가게에서 일하는 심예림(21) 씨는 ‘앨범깡’을 일주일에도 몇 차례씩 목격한다. “원하는 멤버 포토카드를 가지려고 한 번에 앨범 수십 장을 구매하는 건 다반사예요.” 구매한 앨범을 포토카드만 빼 가고 그대로 버리는 사람도 많다고 예림 씨는 설명했다.

    비슷한 시기,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한 쇼핑몰 내 앨범 가게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사람들은 차례대로 앨범을 구매하고, 구매한 앨범의 숫자만큼 코인을 받아 자판기처럼 생긴 기계에 넣었다. 기계에서 포토카드가 쏟아졌다. 환희에 찬 비명과 짜증 섞인 아쉬움이 공존했다. 한 아이돌 그룹의 ‘럭키 드로’ 현장이었다.



    ‘럭키 드로’는 ‘제비뽑기’를 뜻하는 영어 단어 ‘lucky draw’에서 유래했다. 앨범 한 장당 포토카드 한 장을 뽑을 수 있다. 김주희(21) 씨는 “앨범을 사야 포토카드를 얻을 수 있으니 자원 낭비에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답답하다”고 했다.

    “ESG 활동, 인센티브 제공이 해결 방안”

    팬 사인회 역시 앨범 판매고를 올리는 데 큰 부분을 차지한다. 앨범 구매량이 많을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팬 사인회에 자주 참여한 A씨가 보여준 영수증에는 한 번에 적게는 300장, 많게는 500장에 이르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약 500만~1000만 원 내외 금액이다. A씨는 이렇게 구매한 앨범을 들춰본 적도 없다. “펴보지도 않고 도매처로 넘기거나 그냥 집에 쌓아두죠. ‘아, 내가 또 종이 쓰레기 만들었구나’ 싶어요.”

    실물 앨범 대량 구매에 따른 자원 낭비 논란이 이어지자 업계도 변화를 추구하는 분위기다. 연예기획사 ‘하이브’는 소속 가수의 앨범을 재활용이 용이한 재료로 제작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제작에 필요한 자원을 줄인 ‘S-Mini’ 앨범을 출시했다. 이외에도 많은 연예기획사가 친환경적 앨범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아이돌 그룹의 팬인 전은주(21) 씨는 “소비를 줄이는 게 더 시급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면서도 “(연예기획사들이) 변화하려는 노력 자체가 중요하다”고 했다.

    김민성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대면 공연 개최가 어려워지면서 K팝에 대한 팬덤의 소비 심리가 실물 앨범 구매로 이어졌다”면서 “연예기획사들이 ESG 활동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대량 구매에 대한 자체 조정 노력 등을 평가하고 이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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