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좋은 작품 만든다면 오스카 무대에 설 수 있다”

[97th Academy Awards] ‘기묘한 케이지’의 아카데미 시상식 참관기

  • 영화 유튜브 '기묘한 케이지' 운영자 케이지

    입력2025-03-1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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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슬램덩크’ 제작팀이 백희나 ‘알사탕’에 주목한 이유

    • “경력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새로운 이정표 같은 작품”

    • ‘아노라’ 5관왕 이변일까…리뷰 평균 91점의 의미

    • 수상 불발된 ‘서브스턴스’ ‘컴플리트 언노운’의 한계

    • 계급사회에 대한 반성, 변화 모색하는 할리우드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니시오 다이스케 감독(오른쪽)과 ‘알사탕’ 원작자인 백희나 작가, 와시오 다카시 프로듀서.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니시오 다이스케 감독(오른쪽)과 ‘알사탕’ 원작자인 백희나 작가, 와시오 다카시 프로듀서.

    3월 2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알사탕’을 원작으로 한 단편 애니메이션이 최종 후보에 올라 화제가 됐다. 비록 수상은 불발됐지만 애니메이션 제작팀의 일원으로 시상식에 참가한 나는 마치 ‘알사탕’의 주인공 ‘동동이’가 된 듯 강렬한 체험을 하고 돌아왔다.

    도에이 애니메이션과의 인연은 지난해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기묘한 케이지’라는 구독자 50만 명을 넘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다양한 영화 콘텐츠를 분석하고 전 세계 영화계 소식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특히 2023년 일본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국내 개봉에 맞춰 작품 속 각 캐릭터의 설정과 배경을 심도 있게 분석한 영상을 여러 편 제작했는데 이 콘텐츠가 반향을 일으켜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우연히 이 영상을 본 도에이 측에서 일본 도쿄 본사로 초대하는 메일을 보내왔다.

    얼마 후 도쿄 취재 일정이 잡혀 겸사겸사 스기나미구에 위치한 도에이 애니메이션을 방문했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뛰는 유명 작품의 제작자들을 만나는 영광을 누렸지만 이들이 왜 나를 만나고자 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한국의 유명 그림책 작가 백희나의 작품 ‘알사탕’을 애니메이션화했다고 밝히며 이에 관한 영상을 제작해 달라고 부탁했다. 특히 한국 원작을 일본 기업이 작품화했다는 점을, 백희나 작가의 팬들과 대중이 납득할 만한 시각으로 조명해 주기를 바랐다.

    ‘알사탕’ 캐릭터 미니어처를 손에 들고 포즈를 취한 니시오 감독(왼쪽)과 와시오 프로듀서. 도에이

    ‘알사탕’ 캐릭터 미니어처를 손에 들고 포즈를 취한 니시오 감독(왼쪽)과 와시오 프로듀서. 도에이

    짧지만 강렬한 힘, ‘알사탕’ 감동의 20분

    ‘알사탕’은 20여 분의 짧은 작품이었지만 나는 예상치 못한 감동에 마음이 요동쳤다. ‘알사탕’의 주인공 동동이는 문구점에서 알사탕 한 봉지를 사는데 이 알사탕을 먹으면 사물, 동물, 사람들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때부터 동동이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진심’을 알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어느새 작품 속 동동이는 바로 나 자신이었고, 그 소년이 아빠를 뒤에서 매달리듯 끌어안은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짧지만 강렬한 힘이 담긴 작품이었다.

    ‘알사탕’ 프로젝트를 기획한 사람은 ‘프리큐어’라는 변신 소녀 시리즈를 20년째 이어오고 있으며, ‘원피스’를 비롯한 수많은 히트작을 성공시킨 명(名) 프로듀서 와시오 다카시였다. ‘알사탕’의 연출은 1980년대 초부터 전설적인 ‘드래곤볼’ 거의 전 시리즈를 연출해 온 니시오 다이스케 감독이 맡았다. 그는 도리야마 아키라의 원작을 초박력 액션으로 움직이게 만든 주인공이다. 게이오대학을 나와 방송기자로 6년간 일했던 와시오 프로듀서가 도에이 애니메이션으로 이적해 니시오 감독을 만나 만든 것이 바로 ‘소년탐정 김전일’ 시리즈다. 이후 두 사람은 제작 명콤비로 불리게 됐고, 2000년대 ‘프리큐어’를 탄생시킨다.

    이들에게 한국의 그림책에 주목한 이유를 물었다. 와시오 프로듀서는 “‘알사탕’은 내 경력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새로운 이정표 같은 작품”이라고 했다. 그는 작품을 본 순간 반드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했고, 곧바로 홋카이도로 향해 일본 방문 중이던 백희나 작가를 직접 만나서 진심을 전했다고 한다. 감독은 당연히 니시오 다이스케가 맡았다.

    이들은 제작이 결정되자마자 서울로 날아와 취재를 시작했다. 낡은 아파트 단지와 빨간 벽돌 다세대주택이 밀집된 골목길 등 서울만의 풍경, 형태, 색채감을 빠짐없이 찍고 기록하고 머릿속에 새겼다. 백희나 작가의 오브제를 마치 클레이 애니메이션처럼 보이게 하되 전면 3D CG로 만든다는 파격적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것을 구체화하기 위해 ‘슬램덩크’의 박진감 넘치는 경기 장면을 연출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니시카와 가즈히로 프로듀서와 2024년 일본 최고 화제작이었던 ‘고질라 마이너스 원’의 매트 페인트 담당 에바 사치코, 현 일본 최고의 영화음악 감독으로 꼽히는 사토 나오키가 힘을 보탰다.

    좋은 원작은 국경을 넘어 마음 움직인다

    그저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 영웅들을 만나는 즐거운 경험일 줄 알았는데, 갑자기 큰 숙제를 떠안고 돌아와 취재 내용을 정리하던 무렵 도에이사에서 연락이 왔다. 뉴욕 국제어린이영화제에 ‘알사탕’을 출품했으니, 이참에 ‘알사탕’ 팀에 합류해 현지 취재를 하고 영상화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당장 다음 날 뉴욕에서 만나자는 요청에 허겁지겁 짐을 싸서 맨해튼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촬영과 인터뷰가 시작됐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스튜디오에서 와시오 프로듀서, 니시오 감독, 백희나 작가, 니시카와 프로듀서와 깊은 대화를 나눴다. 그날의 인터뷰는 지금도 선명하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창작자들의 진심 어린 철학과 열정이 느껴졌고, 좋은 원작이 국경을 넘어 마음을 움직인 놀라운 순간이었다.

    단편 애니메이션 ‘알사탕’은 ‘동동이’(왼쪽)와 ‘동동이 아빠’ 등 원작 속 인물들을 생생하게 살렸다. 도에이

    단편 애니메이션 ‘알사탕’은 ‘동동이’(왼쪽)와 ‘동동이 아빠’ 등 원작 속 인물들을 생생하게 살렸다. 도에이

    결국 ‘알사탕’은 2024년 제25회 뉴욕 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단편 경쟁 애니메이션 심사위원상과 관객상 등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이번 영화제에서 수상하면 오스카 출품 자격이 주어집니다.” 뉴욕에서 맞은 마지막 밤늦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우리가 나눈 대화가 현실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시엔 오스카상에 도전한다는 것이 와닿지 않았지만 ‘알사탕’이 체코 즐린 국제영화제와 영국 케임브리지 영화제 등에서 연이어 상을 받자 ‘한번 도전해 보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드디어 도에이 측은 ‘알사탕’을 오스카에 출품했다. 처음에는 예비 후보 15편 안에 든 것만으로도 기뻤지만, 오스카 노미네이트 발표일이 다가오면서 혹시나 싶어 조금씩 긴장됐다. 추웠던 겨울밤 ‘알사탕’의 노미네이트가 확정된 순간 냉정하기로 유명한 와시오 프로듀서가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그 감동의 순간을 담아 아카데미 시상식을 운영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에 보냈고, 이 영상은 오스카 공식 SNS로 볼 수 있다.

    나는 ‘알사탕’ 팀의 프로모션 슈퍼바이저 자격으로 할리우드로 향했다. 오스카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고 이 작품에 담긴 진심을 전해서 더 많은 사람이 보게 하는 것이 나의 미션이었다. 어쩌면 이 글도 그 미션의 일환인지도 모른다. 전 세계 영상업계의 정점인 오스카 시상식. 그 무대에 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오스카상에 처음 도전하는 ‘알사탕’ 팀은 시상식 한 달여 전에 할리우드에 도착했다. 수상을 노리는 작품들은 짧게는 시상식 3개월 전, 길게는 6개월 이상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홍보 활동을 펼치는 것이 관례이니, 경쟁작들보다는 못해도 4개월 이상 늦은 셈이었다. 3월 2일 시상식을 며칠 앞두고 와시오 프로듀서와 니시오 감독은 수상 소감을 적은 쪽지를 턱시도 안주머니에 소중히 넣어두었다. 유난히 화창한 시상식 당일, 턱시도를 입은 니시오 감독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트로피를 받든 못 받든 즐기자고. 이런 날은 다시 오지 않아.” 시상식 측이 발표 순번을 귀띔해 줬고, 숨죽여 기다린 끝에 프레젠터가 무대 위로 올라와 수상자가 적힌 카드를 열었다. ‘알사탕’은 트로피를 받지 못했다. 단편 애니메이션상은 이란 제작자들이 만든 ‘인 더 셰도 오브 사이프레스’에 돌아갔다. 이들은 전날까지도 비자 문제로 입국하지 못했다. 발표 순간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하지만 오스카 아닌가. 모두가 힘들게 여기까지 왔고, 누구라도 트로피를 들 자격이 있었다.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니시오 감독의 말대로 즐기자고 생각했다. 아쉽지만 아쉽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오락영화의 정체성 끝까지 밀어붙인 ‘아노라’

    이제부터는 영화평론가이자 유튜버의 시선으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분석할 차례다. 이번 시상식은 많은 이변을 낳았다. 먼저 ‘아노라’의 5관왕은 그야말로 이변이었다. ‘아노라’는 600만 달러라는 저예산으로 스타 배우에 의지하지 않고 만든 션 베이커 감독의 걸작 인디 영화다. 션 베이커가 다작을 해온 건 아니지만 앞서 만든 몇 편을 통해 서민사회적 코미디라는 지점을 쭉 견지해 왔다. 그런 진골 기질이 작가성과 농후하게 녹아 있으면서도 오락영화로서의 템포도 좋았다. 무엇보다 영화가 상당히 정력적이고 재미있다. 미국 평론 사이트인 ‘메타크리틱’이 집계한 리뷰 평균 91점으로 이번 오스카 관련작 중 넘버1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션 베이커 감독은 오스카상을 의식하지 않고 기존에 자신이 해오던 것을 그대로 해서 수상까지 했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는 칸 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팔름돌을 획득했는데, 미국 영화로선 ‘트리 오브 라이프’ 이후 13년 만에 쾌거였다. 오스카 직전 중요한 상으로 꼽히는 PGA(전미 프로듀서 조합상)와 DGA(미 감독 조합상)의 더블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여기까지 왔기에 수상 자체는 당연했으나 5관왕까진 예상하지 못했다.

    현장에선 다소 가벼운 톤의 사회 테마성이 약한 작품이 이 정도까지냐며 놀라는 기색이었지만 내가 본 인상은 달랐다. 무엇보다 ‘아노라’는 스토리의 정합성이 좋았다. 처음 보여줬던 인물상과 관계성을 점점 달라지게 하면서 후반부의 다이얼로그까지 쭉 달려나간다. 이런 점이 할리우드 각본가와 파업으로 빈약해진 이번 오스카 라인업 속에서 유독 빛을 발했다. 스토리가 잘 정돈된 영화는 다시 봐도 맛이 깊어진다. 수회차의 스크리닝에 참석한 아카데미 회원들은 흔들림 없이 이 영화를 지지했고, 이 자체로 훌륭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야심의 크기에 비해 빈약한 스토리 ‘브루탈리스트’

    비평가 평점만큼은 ‘아노라’와 호각을 이룬 ‘브루탈리스트’는, 음악상과 에이드리언 브로디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주는 데 그쳤다. 예술성만큼은 ‘아노라’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았고, 특히 영상미와 음악이 훌륭했다. 장대하고 순도 높은 시네마를 지지한다면 확실히 ‘브루탈리스트’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야심의 크기에 비해 스토리의 힘이 부치는 경향을 보였다. 인터미션까지 포함해 장시간 감상한 결실이 막판에 피어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고, 배우들의 헝가리어 발음과 억양에 AI를 사용한 것도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런 이유로 오스카 목전에서 지지율을 잃었을 것이다.

    멕시코가 무대인 스페인어 작품인 ‘에밀리아 페레즈’는 여우조연상과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평론가의 찬반이 갈린 점이 마음에 걸렸다. 이 영화는 참신함과 래디컬한 표현 양식을 이유로 평론가보다는 창작자와 공연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주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이 과거 SNS에 반무슬림적 발언을 올린 것이 논란이 됐고, 심지어 이야기의 무대가 된 멕시코 및 주변 남미 국가들에선 마피아에게 죽은 자들의 현실을 경시한다는 비판도 쏟아지면서 불온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종합적으로 이 두 영화가 들 수 없는 트로피를 ‘아노라’가 끌어안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임 스틸 히어’와 ‘플로우’는 각각 국제영화상과 장편 애니메이션 상으로 브라질과 라트비아에 첫 오스카를 안겨줬으며,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 ‘노 어더 랜드’가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 제작자의 공동 작업으로 포착해 낸 작품으로, 오스카는 이 작품이 바로 지금 봐야 할 영화라고 외치는 듯했다.

    이 정도면 반드시 받을 줄 알았던 ‘서브스턴스’의 데미 무어는 결국 여우주연상을 놓쳤고, 현지에서 시네마스코어 A라는 좋은 평가를 받은 ‘컴플리트 언노운’ 역시 빈손으로 시상식장을 떠나야 했다. 이 영화는 무난했고 나쁘게 말하면 밋밋했다. 현장에선 혁신성과 야심 부족이 지적됐다. ‘컴플리트 언노은’을 서치라이트가 배급한 점에 주목했다. 이 회사는 오스카 레이스에 능숙하다. 하지만 오스카가 최근 마이너 노선을 택한다는 지적도 작용한 듯했다. 티모테 샬라메는 연인 카일리 제너의 손을 꼭 잡고 등장해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지만, 정작 이날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밥 딜런의 존재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지만 믹 재거가 프레젠터로 무대에 오른 건 꽤 흥미로웠다.

    누구보다 화려한 드레스로 사전 행사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던 ‘위키드’의 아리아나 그란데도 공연 무대를 장식했을 뿐, 오스카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다. 이 영화는 미국의 국민적 동화인 ‘오즈의 마법사’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다. 무대장치나 의상 등 테크니컬한 면은 분명 할리우드 최정점이었으나 2부작의 파트1이라는 점이 불리했다. 속편까지 보지 않으면 정당한 평가를 내릴 수 없다는 소리도 나왔다. 주인공의 피부색(녹색)에 대한 리액션이 너무 컸고, 극 중 모두의 태도가 180도 바뀌는 점은 나쁜 의미로 좀 만화적이었다.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는, 그동안 몇 년째 회원 수를 점진적으로 늘리고 새로운 피를 수혈하며 이제 9000명이 넘은 아카데미 회원들의 의지를 보여준 듯하다. 유명 스타들이 영화 세계의 절대적 동경 대상이던 시절이 저물어가고 있음을 이번 오스카는 분명히 보여줬다. 어쩌면 그것은 계급사회처럼 굳어진 할리우드의 구심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음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할리우드는 그 나름대로 반성 모드를 보여주었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보다는, 작품 본연의 매력과 예술성을 우선적으로 선택했다.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차분하게 진행된 시상식 분위기, 긴 경력에도 불구하고 오스카 사회자로서 처음 무대에 선 코넌 오브라이언의 긴장된 표정은 아카데미가 더는 그들만의 축제가 아니라는 신호처럼 보였다.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자들. 왼쪽부터 에이드리언 브로디, 마이키 매디슨, 조이 살다나, 키에란 컬킨. 
아카데미 시상식 홈페이지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자들. 왼쪽부터 에이드리언 브로디, 마이키 매디슨, 조이 살다나, 키에란 컬킨. 아카데미 시상식 홈페이지

    미리 쓴 수상 소감 “백희나 선생님, 드디어 우리가 해냈어요”

    누구든 좋은 작품을 만든다면 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가능성의 메시지가 전 세계 영화인들에게 명확히 전달된 밤이었다. 무겁게 닫혀 있던 아카데미의 문이 비로소 모두에게 활짝 열린 느낌이었다. 시상식이 끝난 밤, 와인잔을 기울이던 니시카와 프로듀서가 백희나 선생님 앞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넌지시 통역을 부탁하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의 작품을 영상화할 기회가 있다면 꼭 다시 도전하고 싶습니다.” 그 말처럼 비록 트로피는 얻지 못했지만 그들은 이미 마음속 어딘가에 트로피를 둘 공간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 그것은 앞으로의 무대를 수평에 두겠다는 오스카의 메시지에 대한 우리의 대답이었다. 니시오 감독의 말처럼, 우리는 원 없이 오스카를 즐겼다. 이제 오스카는 더는 신기루가 아니다. 게다가 영화와 애니메이션계에서 한국과 일본이 손을 맞잡았던 좋은 기억도 새롭게 새겨졌다. 와시오 프로듀서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불발된 ‘수상 소감’을 낭독했다. 그가 안주머니에서 접어둔 쪽지를 펼쳤을 때 유독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백희나 선생님, 드디어 우리가 해냈어요.”
    반듯한 한글로 적힌 그 문장. 그는 ‘알사탕’의 작품화를 위해 한국어를 배웠고, 이제는 한글을 완벽하게 읽고 쓸 수 있다. 만약 수상했다면 오스카 역사상 최초로 일본인이 한국어로 수상 소감을 전하는 순간이 됐을 것이다. 몇 년 뒤를 기약해 본다. 그때 다시 함께 할리우드의 뜨거운 공기를 마시며 또 한 번 울고 웃고 마음껏 즐길 수 있기를.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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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13 13:13:18
      유튜브에서 매번 퀄리티 좋은 영상과 정보력에 감탄하며 시청하고 있습니다 최근 오스카 시상식에 다녀왔다는 소식에 자세한 내용이 궁금했는데 이런 뜻깊은 경험을 하고 오셨다니 놀랍고 부러울 따름입니다 알사탕 팀도 기묘한케이지 님도 고생 참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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