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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푸틴, 안보리 제재 ‘폐그물’ 만들어

[백승주 칼럼]

  •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前국회의원

    입력2024-05-0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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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거부권 행사로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 해체

    • 모스크바가 평양에 첨단 군사기술 제공하면…

    • 對러시아 관계 악화 막을 외교 강화 필요

    • 우크라이나 전쟁, 한반도에 검은 구름 드리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3년 9월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하는 모습을 조선중앙TV가 보도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3년 9월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하는 모습을 조선중앙TV가 보도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쳐]

    3월 28일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북핵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활동 중단이 결정됐다. 유엔, 국제공조, 외교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리라고 기대하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중국의 대북제재 이탈 행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의 거침없는 대북협력 강화 태세로 ‘북핵 관련 유엔 제재’라는 그물망에 큰 구멍이 나버렸다. 그동안 촉각을 세워 안보 정세를 살핀 필자에겐 그다지 충격적 소식은 아니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어 담담했다.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가 원인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은 “전문가 패널의 활동이 중단된 직후 북한 당국은 러시아 푸틴 정부에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외교부의 초상집 분위기에 김정은 체제는 어깨춤을 춘 것이다. 북한은 전문가 패널의 활동 중단을 대북한 유엔 제재의 사망선고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북핵 해결을 위한 국제공조, 유엔 안보리 공조가 사실상 붕괴된 이후 북핵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는 더욱 답답한 안보 현안이 됐다.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가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서 ‘러시아·중국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로 한층 더 복잡하고 무거워졌다.

    안보리의 자문기구인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은 2009년 설치됐다. 북한 2차 핵실험 이후 안보리에 의해 핵을 가진 P5(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와 한국, 일본, 싱가포르가 추천한 전문가 8명으로 패널이 구성됐다. 이들은 안보리 결의 내용을 유엔 회원국이 잘 지키는지를 평가·조사해 위반 사례를 중심으로 그 결과(중간·최종 보고서)를 연 2회 안보리에 제출한다.

    전문가 패널은 북핵 활동 상황 평가와 관련해 많은 결과물을 만들었다. 2018년과 2022년 핵실험장이 있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지역 위성사진을 분석해 추가 핵실험 준비 관련 정황을 보고한 것이 좋은 예다. 그 보고 결과를 통해 추가 핵실험을 경고함으로써 2018년 6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에서 이뤄낸 비핵화 합의를 북한 당국이 지킬 의사가 없음을 국제사회가 알도록 했다.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뉴시스]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뉴시스]

    2018년에는 북한산 석탄이 제3국 선박을 통해 인천, 포항으로 반입된 사례를 보고해 문재인 정부가 유엔 제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실정을 알림으로써 국내 정치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울러 김정은 등 북한 정권의 핵심세력이 고급 승용차, 명품, 사치품을 구입하는 정황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이 북한 통치 자금 사용을 압박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올해는 북한이 사이버 탈취로 6년간 4조 원대의 수익을 창출한 내용을 폭로해 평양의 국제범죄 행각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문가 패널은 3월 20일 보고서를 통해 “유엔 제재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할 무기를 북한으로부터 수입하는 정황이 포착됐다”는 내용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 보고서가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만들었다는 관측이다. 전문가 패널의 8개국 위원은 임기가 1년이다. 이들의 임기는 매년 3월 안보리 의결로 갱신된다. 그런데 3월 28일 안보리 회의에서 러시아가 임기 갱신 절차에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활동 중단이 결정돼 4월 말 임기가 끝난다.

    구멍 숭숭 뚫린 유엔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 활동 중단이 대북제재 중단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핵과 미사일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14개 대북제재 결의안은 유효하다. 대북제재는 193개 유엔 회원국이 동참해야 실질적 의미를 가진다. 전문가 패널 유지를 거부한 러시아, 추가 제재 결의에 반대해 온 중국이 실질적으로 동참하지 않을 경우 유엔의 대북제재는 실효성을 상당 부분 잃는다.

    대북제재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막기 위한 국제공조 그물망이다. 193개 회원국이 짠 그물망은 물샐틈없이 촘촘해야 한다. 러시아, 중국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그물망을 보란 듯이 찢어 큰 구멍을 내면, 그물로서 기능할 수 없다.

    미국 등 서방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때문에 기존 결의안을 폐기할 수는 없지만 실질적 폐기 효과를 러시아, 중국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이번 거부권 행사로 국제사회가 그동안 벌인 북핵 폐기 노력이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됐다. 유엔의 대북제재 그물이 사실상 폐그물이 된 것이다.

    북한-러시아 군사협력의 미래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에도 이른바 ‘리즈 시절’이 있었다. 북한 정권이 수립된 시기부터 1996년 초반까지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냉전과 크고 작은 갈등을 외교적으로 활용해 러시아와 군사협력 관계를 잘 유지하고 발전시켰다. 북한과 러시아는 1961년 군사동맹조약을 체결했다. 이는 북한의 군사 현대화, 미사일 개발에 엄청난 도움이 됐다.

    냉전체제 해체 이후인 1996년 러시아의 요구 및 통보로 군사동맹조약이 해제됐다. 이후 한국과 러시아 간 경제협력은 물론 안보협력까지 급격히 진행됐다. 러시아는 유엔의 대북제재에 적극 동참했다. 2010년대 중반까지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무기, 무기부품 금수조치를 철저하게 준수했다. 2019년 북한 요원이 러시아 전투기 부품을 몰래 구입하려다가 러시아 보안 당국(FSB)에 체포되기도 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한과 러시아 간 군사협력이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소모전으로 바뀌면서 러시아에서 지뢰, 개인화기, 단거리 미사일 등 재래식 무기 수요가 급증했다. 반면 북한은 핵실험 이후 유엔 제재 장기화로 체제 내구력이 한계에 이르렀다. 국가의 물자 공급 기능에 문제가 생겼고, 석유류 제품의 생산가동률이 바닥 수준이다. 체제에 대한 주민의 충성심 이탈도 가속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하고, 러시아는 북한 체제의 경제적 붕괴를 막기 위해 물자를 제공하는 그림이 만들어진 것이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자 북한은 러시아를 적극 지지했다. 유엔 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결의안 표결에 반대표를 던졌다. 반대표를 던진 국가는 러시아를 제외하고 북한, 벨라루스, 에리트레아, 시리아뿐이다. 2023년 9월 블라디미르 푸틴과 김정은의 두 번째 정상회담 이후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이 복원됐다.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과 푸틴의 러시아는 군사 관계에서 새로운 전성시대를 연 것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월 13일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자국의 리아노보스티 통신과 인터뷰하면서 “북한은 자체적 ‘핵우산’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여섯 차례나 핵실험을 했지만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상 외교적으로 핵보유국이 아니다. 러시아 역시 북한의 핵실험을 비판했으며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아왔다. 그런데 푸틴이 태도를 바꿔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북한 당국 처지에선 오매불망 바라던 ‘핵보유국 인정’을 러시아 최고지도자로부터 받은 것이다.

    푸틴發 북핵 인정의 파장

    한국 총선을 앞두고 북한은 KN(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에 부여하는 코드 번호)계열 신형단거리 극초음속미사일에 사용할 고체연료실험용 미사일을 여러 차례 발사했다. KN23 북한판 이스칸데르, KN24 북한판 에이테킴스(요격이 어려운 저고도 미사일), KN25 초대형 방사포 등은 북한이 러시아와 기술협력을 이뤄내면 더욱 정교한 핵무기 투발수단으로 발전할 수 있다. 1990년 걸프전 당시 미국의 패트리어트에 충격을 받은 러시아는 요격을 피할 수 있도록 비행 미사일의 속도·고도를 변칙적으로 바꾸는 기술을 장착한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개발했다. 야구로 치면 투수가 던지는 마구 같은 것이다. 푸틴 정권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고 투발 미사일 기술 개량에 협력한다면 평양이 핵을 전술적으로 사용할 역량을 키우게 된다.

    다만 러시아가 현 단계에서 북한에 지원할 물자는 군사기술이 아닌 식량, 원유 등일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소요되는 재래식 전쟁 물자를 수입하는 대가로서 최첨단 기술을 제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판단된다. 2019년 푸틴과 김정은의 1차 정상회담을 전후해 러시아 정보 당국이 북한의 전투기 기술 밀수를 차단한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대북 첨단기술 지원 가능성 정도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된 이후에도 북한과 러시아 간 군사 관계가 심화·발전할 경우 모스크바가 평양에 첨단 군사기술을 공여할 가능성이 있다.

    푸틴 정부의 북한과의 군사협력 강화는 다음 몇 가지 방향으로 동북아 및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첫째, 냉전시대의 ‘북·중·러 VS 한미일’ 진영외교를 심화할 것이다. 둘째, 북한과 러시아의 과도한 밀착은 북·중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소지도 있다. 북한과 러시아 협력이 중국 주도의 글로벌 재편 의도 실현에 방해된다면 북·중 관계는 갈등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셋째, 북한은 푸틴의 핵 보유 인정을 과대 포장해 미국을 상대로 핵군축 협상을 주장하며 한반도 질서를 주도하려 할 것이다.

    외교관을 배출하는 러시아 국립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에서 수학한 저명한 러시아 전문가 유영철 박사는 1990년 한국-러시아 수교 이후 작은 나라가 처한 곤혹스러운 외교적 입지를 ‘짧은 담요 외교’로 설명했다. 추운 겨울밤 짧은 담요를 머리 방향으로 끌어당기면 발이 시리고, 발쪽 방향으로 덮으면 머리가 춥다는 내용이다.

    ‘짧은 담요 외교’에서 ‘통찰력 넘치는 외교’로

    윤석열 정부가 흔들리는 한미동맹을 바로세우고 가치외교를 강조한 후 미국과 대결하는 러시아·중국이 우리에게 보낼 외교적 신호를 예측하지 못한 바는 아니다. 그러나 푸틴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고, 안보리 제재 자체를 무력화하는 상황은 우리의 안보와 외교에 새로운 도전을 가져오고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

    우선, 러시아를 제외한 유엔 회원국이 안보리 결의안을 지키도록 하는 총체적 외교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 전문가 패널 활동이 중지됐지만 유사한 일을 하는 국제기구와 국제 민간단체가 북핵 및 미사일 활동을 감시하는 일을 지속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둘째, 1990년대 초 북방정책을 추진하던 시기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호시절일 때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일한 사람들이 관계 악화를 막기 위한 1.5트랙 외교, 공공외교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군사 차원에서는 평양의 핵 사용 의지를 말살할 능력을 갖추고, 동맹국과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북·러 관계가 강화될수록 한미동맹 태세, 특히 핵 대비 태세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1917년 볼셰비키혁명의 이데올로기가 우랄산맥을 넘어 한반도를 분단시킬 줄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광복 전후 지도자들의 통찰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반도 미래에 검은 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통찰력 넘치는 외교로 새로운 과제를 극복해야 한다. 우리 내부에서 좀비정치로 싸울 때가 아니다. 글로벌 환경, 동북아 안보 환경 변화를 직시하고 생존, 번영의 길을 만들어가야 할 때다.

    백승주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現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국민대 석좌교수, 한중안보평화포럼 회장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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