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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과의 전쟁 벌여온‘백신의 황제’

WHO 신임 사무총장 이종욱

결핵과의 전쟁 벌여온‘백신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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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과의 전쟁 벌여온‘백신의 황제’

해방둥이(58세)인 이종욱 박사의 초등학교 시절 모습

“뭐 그런 걸. 대단한 것도 아닌데. 나중에 자서전을 쓰면 그 때나….”

집으로 돌아가는 이박사의 승용차 안에서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지만 끝까지 자세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본인은 “나를 슈바이처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지인들에게 자주 말한다고 한다.

기자가 그날 차 안에서 새로 들은 ‘영양가 있는’ 내용은 취미였다.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어쩌다 하는 말도 아주 짧았다. 좀 무뚝뚝해 보이고, 그래서 특별한 취미도 없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 목소리를 약간 높이면서 “취미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스키와 스쿠버다이빙을 즐겨요. 선거만 아니면 매주 알프스 산맥에 가는 건데…”라고 말했다. 그리곤 차를 돌려 숙소인 뫼벤피크 호텔에 기자를 내려놓고 가버렸다.

언론에 알려진 이박사의 개인 얘기는 대부분 본인의 입이 아니라 몇몇 지인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국민참여센터 본부장인 이종오(李鍾旿) 계명대 교수가 그의 동생이어서 이박사의 옛날 얘기가 더 자세히 알려지게 됐다.

대학 때 ‘나자로마을’에서 봉사활동



그는 서울의 마포 용산 서대문 종로 구청장을 지낸 이명세(李明世)씨의 4남1녀 중 셋째로 서울서 태어났다. 이종오 교수는 넷째이고 성공회대 사회학과의 이종구(李鍾久) 교수가 막내다.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어서 유복하게 어린 시절을 지냈지만 4·19 직후 아버지가 종로구청장을 사임하고 그 이듬해 세상을 떠나면서 이들은 힘든 시절을 보냈다. 이박사가 경복고 1학년 때였다.

이리저리 돈을 융통해서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고교 졸업 후 공대에 입학했다. 본인 표현을 빌리면 “공대 다니다 군대 갔다와서 다시 의대에 들어갔다.” 어느 대학 공대인지, 어디서 군생활을 했는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이런걸 꼬치꼬치 물으면 그는 “외국 기자들은 개인 얘기는 절대 묻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대학 시절 그는 경기 안양의 나환자촌 마을인 ‘나자로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동갑(1945년생)으로 가톨릭 신자인 카부라키 레이코 여사를 거기서 만나 결혼했다. 하와이 주립대로 유학 가서 공중보건학 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1983년 WHO와 첫 인연을 맺었다. 남태평양의 피지에서 나병 관리 책임자로 근무하기 시작한 것. 그리고 WHO의 지역 사무처 질병관리국장, 예방백신 사업국장, 세계 아동백신운동 사무국장을 잇따라 역임했다.

그는 남태평양과 동남아의 많은 국가에서 의료봉사를 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본인은 사실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귀국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일이 좋고 봉급이 좋아서 계속 남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제프리 삭스 교수는 이박사를 가리켜 “외교관 타입이며 대단한 실용주의자이자 성과 지향적”이라고 말한다.

예방백신 사업국장 시절 소아마비 유병률(有病率)을 세계인구 1만명당 1명 이하로 떨어뜨려 사실상 박멸에 가까운 성과를 올리자 1995년 미국 잡지인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그를 ‘백신의 황제’라 불렀다.

하를렘 브룬틀란트 현 총장이 취임한 1998년 이후 이박사는 수석 정책보좌관, IT프로젝트 담당관으로 WHO의 핵심 정책부서장을 두루 역임했고 2000년 결핵관리국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사무총장 아래 고위 관리직 37명 중 한 명이었다.

이박사는 회원국이 내는 연간 5000만달러의 기부금으로 북한에 6만명분의 결핵약을 공급하는 등 19개 국가를 대상으로 ‘결핵과의 전쟁’을 벌여왔다.

지난해 8월 결핵퇴치 문제로 북한을 방문했다가 서울에 들른 이박사는 브룬틀란트 현 사무총장이 건강을 이유로 차기 선거에 나오지 않겠다고 하자 출마 의사를 굳혔다. 한번도 남에게 드러내지 않았지만 20여 년 전부터 마음에 둔 WHO 사무총장 선거에 뛰어든 것이다.

그는 먼저 인권대사이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인 박경서(朴庚緖) 박사를 찾았다. 박경서 박사는 제네바에 있는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WCC)에서 오래 근무했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였다. 이박사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WHO 사무총장이 돼야 하는 이유를 A4 용지 8페이지에 담아 도움을 요청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오랜 인연이 있는 박위원은 박지원(朴智元) 비서실장에게 이박사 얘기를 전했고, 박실장은 다음날 박위원에게 “대통령님께서 이해하셨다”며 지원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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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상근 동아일보 사회2부 기자 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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