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銀 요강에 소변 보고최음제·春畵 가득하니…

조선시대의 탕자들

銀 요강에 소변 보고최음제·春畵 가득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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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을 물 쓰듯 써보는 것.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서민들의 공통된 바람일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사치와 낭비를 일삼던 족속이 있었다. 충격적인낭비벽으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탕자들의 성장과 몰락은 그 자체가 한편의 드라마다.
銀 요강에 소변 보고최음제·春畵 가득하니…
지난호에서 조선 후기 서울 유흥계의 주역이었던 별감(別監)에 대해 다루었다. 나는 별감이란 존재에 관심을 둔 이래, 별감의 속성을 잘 갖춘 실명(實名)의 별감이 존재하지 않을까 늘 궁금했다. 하지만 별감은 있어도, 별감 ‘아무개’는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치하고 노는 일에 골몰한 사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 구체적인 이름을 남긴 별감이 쉽게 나타날 리 만무인 것이다. 생각해 보라. 당신이 평생 한 일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기생의 기둥서방이 되어 술과 도박과 풍악으로 일생을 보냈다고 답할 사람이 있을지?

하지만 간절하게 바라면, 하늘이 보답하기도 한다. 나는 김윤식(金允植, 1835~1922)의 문집을 읽다가 내 기대에 꼭 들어맞는 인물을 발견했다. 김윤식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 인물이다. 구한말 한문학의 대가요, 정치가인 것. 다만 그의 이름 앞에는 ‘친일파(親日派)’라는 관사가 붙는다. 한일합방 당시 일제가 주는 자작(子爵)의 작위와 은사금(恩賜金) 5만원을 받았던 것이다.

그의 문집 ‘운양집(雲養集)’에 ‘금사이원영전(琴師李元永傳)’이란 작품이 있는데 주인공 이원영(李元永)이 바로 별감이다.

유흥계 누빈 탕자

이원영과 함께 다룰 인물이 둘이 있다. 실존 인물도 아니고 별감도 아니지만, 유흥계를 누볐던 탕자라는 점에서 동일한 인물이다. ‘이춘풍전(李春風傳)’의 이춘풍과 ‘게우사’의 무숙이다. 이들은 오로지 소비와 유흥으로 일생을 보낸 인물이다. 이들을 통해 나는 탕자(蕩子)의 전형을 말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흔히 남성에 한하여 탕자란 이름을 붙이며, 또 그들이 어떻게 탕자가 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이 탕자는 언제부터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가? 이 점을 동시에 살펴보기로 한다. 나는 이 두 소설의 일부를 자료로 가끔 인용해왔는데, 사실 감질나는 일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한번 다루어 보고자 한다. 먼저 김윤식의 ‘금사이원영전’부터 살펴보자.



김윤식은 30세인 1864년 진사시에 합격한 뒤 10여 년 동안 대과(大科)를 보지 않는다. 그는 대원군이 하야하고 고종이 친정을 시작한 이듬해(1874년)에야 대과에 합격하고 이후 출세 길을 달린다. 그가 이원영을 만난 때는 진사시 합격 2년 뒤인 1866년(병인년)이다. 그는 서울에 있을 때 금객(琴客)을 따라 노닐다 종종 그들이 금사 이원영을 칭송하는 소리를 듣곤 했다. 왜 서울을 표나게 내세우느냐 하면, 그의 원래 집은 경기도 광주이기 때문이다. 1866년 봄 김윤식은 건원릉(健元陵) 참봉으로 있었다. 건원릉은 양주에 있는 조선 태조의 능이다. 능참봉이란 별 소임이 없어 무료해하던 중 어떤 사람이 이 고을에 거문고의 명인이 있으니, 불러보는 것이 어떠냐고 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을 불렀더니, 풍채가 좋은 백발노인이었다. 그런데 앞을 보지 못했다. 김윤식은 “이곳에는 무엇이 있고, 이곳에는 무엇이 있다”는 식으로 점잖게 안내를 한 뒤 성과 이름을 물었다. 그런데 그가 다름아닌 젊은 날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거문고의 명인 이원영이 아닌가.

“나는 노인장께서 저 세상의 분이리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이곳에 계시는군요?”

김윤식의 말에 노인은 자신의 평생을 늘어놓았다. 그에게 거문고를 주자, 거문고를 안고 석상처럼 꼼짝을 않더니, 노래를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이 몸이 어인 몸고?동궁마마 가까이 모시던 몸이라네.이 거문고는 어떤 거문고인고?세자께서 즐거워하시던 거문고라네.꽃다운 젊은 세월 머물지 않아이내 몸은 떠돌이가 되었다오.거문고여, 거문고여!누가 너를 알아줄까?

노래가 끝나자 한바탕 거문고를 타는데, 그 소리에 눈물을 떨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김윤식이 제안을 하였다.

“노인께서는 이제 늙으셨습니다. 세상에 다시 이름을 떨칠 수가 없으니, 내가 노인장을 위해 글을 써서 영원히 전해지게 해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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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hkmk@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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