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 재건축을 부동산 가격 폭등의 ‘주범’으로 지목한 정부가 ‘재건축과의 전쟁’을 선언하고 정부 기관이 모두 나서 재건축 비리를 잡기 위한 ‘합동작전’을 벌이던 5월초, 기자가 만난 한 재건축 업자는 이렇게 말했다.
경찰의 집중 단속으로 재건축시장이 일시적으로 얼어붙을 가능성은 있지만 이미 비리 사슬이 조합-설계업체-철거용역업체-시공사-구청, 게다가 구의회나 정치권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어 그 고리를 단칼에 끊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재건축 시장을 잡기 위한 건설사들의 경쟁이 격화되다 보면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한 방법 또한 더욱 교묘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무자격 조합장 내세워
재건축 비리 사슬이 이어지는 첫 단계는 재건축조합을 구성할 때 만들어진다. 첫 번째가 무자격 조합장 선임. 재건축조합 정관상 조합 간부의 자격은 2년 이상 해당 지역에 주택이나 아파트를 소유하고 2년간 거주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그러나 막대한 이권을 노리고 조합장이나 조합 간부가 되려는 사람들치고 이런 자격요건에 들어맞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러다 보니 시공사나 컨설팅업체 는 자신들이 손쉽게 ‘부려먹을’ 만한 사람을 조합장으로 내세우기 위해 이들에게 돈을 대주거나 사실상 집을 사주는 경우도 발생한다는 것. 서울시내 A재건축 조합 관계자의 말이다.
“조합장이 시공사에서 무이자로 2억원을 빌려 조합 창립총회 직전 재건축 단지 내에 집을 샀다는 소문이 파다했어요. 무이자로 빌렸다고는 하지만 나중에 조합장이 이 돈을 갚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조합원 중에도 아무도 없더군요.”
조합장과 간부들이 철거용역 업체 선정→설계업체 선정→시공사 계약 등 사업단계별로 각종 이권에 개입해 금품을 받아챙긴다는 것은 재건축시장에서는 상식으로 통하는 일이다. 재건축 조합장 노릇을 하기 위해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전주곡에 불과하다.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조합장이나 간부로 내세운 이들에 대한 특혜의 결정판은 뭐니뭐니 해도 완공 후 특혜 분양이다. 실제로 조합 집행부 간부들에 대해서는 동과 호수 추첨을 거치지 않고 로열층 가구에 대한 우선 분양권을 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조합 정관에 이와 관련해 특별한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다. 최근까지 서울 B지구 재건축 조합 임원으로 일하던 C씨의 설명.
“조합원 명부를 보면 우선 배정을 받을 사람들 이름 옆에는 ‘×’표가 그려져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이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조합장 측근으로 통하는 일부 대의원까지도 특혜 분양 대상으로 분류돼 있는 경우도 있고요. 그렇지 않은 대의원들 중에서도 뒷말이 나올 것 같으면 완공한 뒤에 몇백만원씩 드는 베란다 새시라도 무료로 해주는 게 일반적입니다.”
게다가 조합 구성 단계에서부터 각종 인허가권을 가진 구청 공무원을 한두 명 끼워 넣는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서울의 한 재건축 아파트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구청 간부 한 사람이 두 개 조합에 똑같이 이사로 등재되어 있는 거예요. 같은 동네에 집을 두 채 갖고 있지 않은 한 불가능한 일이죠. 실제로 이 구청 간부는 조합에서 회의가 열릴 때면 조합장을 제쳐두고 회의를 주도하더군요. 구청을 상대로 하는 일이 많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이 사람이 구청과 조합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각종 비리의 주범이었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