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적으로 계층을 나눈다면 허 부장은 어디에 속할까. 부자 연구의 대가 토머스 스탠리의 재산기대치 공식에 대입해봤다. 재산기대치보다 실제 재산이 많으면 부자라고 할 수 있다.
허 부장의 재산기대치는 ‘나이×연간소득÷10=44세×1억4000만원÷10=6억1600만원’이다.
허 부장은 재산기대치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갖고 있으므로 부자인 셈이다. 그런데 앞으로 자녀 교육비, 결혼비용 등을 고려해 미래의 자산변동을 예측한 결과 허 부장이 69세가 되는 해 그는 집까지 팔아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허 부장이 죽은 뒤엔 그의 아내가 자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부자 허 부장의 비참한 말로
우선 그의 현재 지출 상황을 보자. 그는 다달이 생활비로 800만원을 쓰는데, 이중 200만원은 두 자녀의 학원비다. 그의 희망대로 10년 동안 회사에서 더 근무한다고 가정하고, 근무기간의 소득증가율은 7%로 잡았다. 퇴직한 뒤 그는 생활비로 월 500만원을 쓸 예정이다. 강남에서 살면서 품위를 유지하자면 이 정도는 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금부터 허씨 부부가 죽을 때까지 재산이 어떻게 변동하는지 살펴보자(다음 페이지 참조).
허 부장이 퇴직하는 55세, 그의 보유자산은 최고조에 이르며 그후부터는 연금 수령액을 고려해도 생활비가 턱없이 모자라 자산이 급격하게 감소한다. 두 자녀가 결혼해 목돈이 나가면서 급기야 허 부장이 69세가 되는 해엔 살고 있는 집까지 팔아야 한다. 그의 아내는 남편 사후 더욱 비참한 생활이 예상된다. 자식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한 가지 변수가 더 있다. 만약 자녀가 취직을 하지 못해 국내 대학원이나 해외 유학이라도 가게 된다면 가계는 급속하게 붕괴된다. 게다가 부부가 노년에 병이라도 들면 재산 감소세는 더욱 빨라진다.
노후의 삶 문제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더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까닭은 상당액의 돈이 자녀 교육비로 지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녀가 유아원에 들어가서부터 대학 졸업까지 한 가정에서 지출하는 돈의 20~40%가 교육비다. 그만큼 한국 가정은 노후 준비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높은 선진국도 고령화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는 터에, 산업구조가 취약한 ‘어설픈’ 경제대국이자, 비정상적인 교육비를 지출하는 우리에게 고령화와 노후 대책은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국가경제의 허리 역할을 해야 할 중산층이 과다한 교육비 부담으로 붕괴할 위험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는 서울 강남에 사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강남 중산층을 겨냥한 폭풍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