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7기! 목소리 그것밖에 안 나오나?”
“아닙니다∼!”
“천자봉 행군하느라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6월9일 오후 3시30분, 해병대 교육훈련단(단장 양수근 준장) 제1신병교육대대 연병장. 413명의 훈련병이 대대장 김영은 소령 앞에 일사불란하게 도열했다. 엄청난 인내와 체력을 요하는 까닭에 이른바 ‘극기주(克己週·일명 ‘지옥주’)’라 부르는 훈련 5주차를 맞아 이들은 해병대 신병교육의 극점(極點)으로 통하는 천자봉(원래 천자봉은 경남 진해에 있지만, 포항으로 훈련장소를 이전한 이후 포항시 영일읍의 운제산(해발 474m)을 ‘천자봉’이라 부른다) 행군을 막 마친 참이었다.
새벽 6시에 시작된 행군은 9시간여 만에 끝났지만, 연병장의 흙먼지는 채 가라앉지 않았다. 행군 전날 배식량은 반으로 줄었고, 지난 밤새 이어진 목봉체조 등 체력단련으로 1∼2시간밖에 눈을 붙이지 못해 몸은 말 그대로 파김치다. 게다가 수은주가 30℃까지 치솟은 무더운 날씨. 저마다 만감이 교차하면서도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간다. 점점 무감(無感)해진다. 체중과 함께 30kg이 넘는 완전군장을 왕복 24km 행군 내내 어렵사리 지탱해준 두 무릎이 그제야 의지와 무관하게 후들거린다.
“훈병 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훈병 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훈련교관들이 각자 맡은 소대를 돌며 훈련병의 가슴 오른쪽에 붙은 노란색 명찰 위로 해병대의 상징인 빨간 명찰을 하나씩 덧달아주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악에 받친 듯 관등성명을 외치는 소리가 터져나온다. 훈련교관이 명찰을 달아준 훈련병의 어깨를 툭 치며 던지는 딱 한마디.
“고생했어.”
이어 연병장에 낮게 깔리는 해병대가(歌) ‘나가자 해병대’.
“우리들은 대한의 바다의 용사, 충무공 순국정신 가슴에 안고….”
비록 10분 남짓한 사이에 끝났지만, 빨간 명찰 수여식은 고되기로 소문난 훈련을 마침내 견뎌내고 비로소 한 명의 해병으로 인정받는 자리. 이제 남은 건 1주간의 보충교육뿐. 그런데도 감회에 젖어 눈시울을 붉히는 훈련병은 없다.
하지만 그들은 안다. 5월2일 가입소해 이제 며칠 후면 수료식을 마치고 각기 배치받은 실무부대로 떠날 즈음, 6주간 동고동락한 동기들과 자신을 쉴새없이 ‘갈구던’ 훈련교관들과의 연(緣)을 되새김질하며 봇물처럼 터질 눈물을 결코 감출 수 없으리란 것을. 그것은 올해로 창설 56주년을 맞기까지 쉼없이 이어져온 해병대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8월5일 1000기 신병 탄생
대한민국 해병대(ROK Marine Corps)가 ‘1000기(期)’ 신병을 맞는다. 공군 등 타군의 병(兵)에도 기수란 게 있지만, 해병대에서 그것은 존재의 표상(表象)과도 같다. 전원 지원자로만 구성되는 부대 특성상 1000기수를 이어왔다는 자부심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해병대에도 징집기수는 있었다. 전쟁 발발시 동원예비군으로 활용하기 위해 서울, 대구·경북, 인천, 제주 등 특정 지역에선 1975년부터 연간 24개 기수 중 8개 기수 병력을 무작위로 차출, 충원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