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2년 음력 4월13일 새벽 일본이 부산포에 쳐들어온 것을 배달겨레는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고 부른다. 반면 침략자 일본은 이를 ‘문록전역(文祿戰役)’이라고 한다. 그해 일본 년호가 문록(文祿)이고 그들이 일으킨 전쟁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본에선 ‘경장전역(慶長戰役)’으로 쓰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처럼 같은 사건을 나라마다 서로 다르게 부르는 것을 ‘력사용어 일방통행’이라고 한다. 바로 여기에는 어느 쪽이 침략했는지 알 수 있는 단서가 숨어 있다. 침략을 당한 쪽에서는 ‘란’으로 부르는 반면 침략한 쪽에서는 전쟁이라 칭한다. 북배달이 경인란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곧 침략을 자인하는 셈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경인란을 흔히 ‘6·25 동란’ 또는 ‘6·25 전쟁’이라 쓰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읽는 대로 적으면 ‘륙이오 전쟁’인데, 이를 통상적인 력사용어로 풀이하면 ‘륙’국과 ‘이오’국이 전쟁한 것이 된다. 청과 일본의 ‘청일전쟁’이나 러시아와 일본의 ‘러일전쟁’처럼. 또 전혀 엉뚱한 의미의 ‘유교전쟁’으로도 들린다.
그런가 하면 유엔군은 경인란을 ‘코리안 워(Korean War)’라고 부르고, 우리는 이를 ‘한국전쟁’이라고 번역한다. 이는 완전히 엉터리 번역이다. ‘코리안 워’를 정확히 번역하면 ‘코리아 사람 전쟁’이다. 다시 말해 ‘배달겨레끼리 벌인 전쟁’이라는 의미다. 이는 제3자가 사용하는 력사용어다.
그로부터 55년이 흘렀다. 그 사이 남배달과 북배달은 너무도 먼 나라가 돼버렸다. 한민족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이질적인 문화와 사회가 형성됐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말과 글이다. 심지어 성(姓)도 달라졌다.
전후 50년 만인 지난 2000년, 금강산에서는 역사적인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이때 만난 남쪽 동생의 가슴에 달린 이름표에는 ‘이삼근’이라고 적혀 있고 북쪽 형의 이름표에는 ‘리원근’이라고 적혀 있었다. 분명 형제지간인데도 ‘이’씨와 ‘리’씨로 성씨가 달라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북쪽 표기가 옳다. 북쪽은 으뜸말과 으뜸소리를 굳게 지키는 프랑스식을 택해서 말글살이가 비교적 바르게 정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