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5 전투기에 탑승한 이은영 기자(뒷좌석). 앞좌석은 조일권 소령.
“혈액형입니다. 이 기자님, AB형이신가 보네요.”(대위)
“어깨엔 금속 계급장이 없네요?”(기자)
“네. 조종복에는 없어요. 비행안전 때문입니다. 활주로에서는 조그만 돌덩이도 위험요소가 되죠. 혹시라도 떨어져 엔진으로 들어가면 큰일나거든요.”(대위)
2005년 12월20일. 기자는 강원도 원주에 있는 공군 제8전투비행단을 찾았다. 공군 전투기 조종사 교육훈련을 체험하면서 조종사들의 생활을 밀착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공군 제8전투비행단(이하 ‘8전비’)은 국내 9개 전투비행단 중 최전방에 속하는 기지로 대한민국 영공(領空)방위의 최일선이다. 출격 후 7~8분이면 서울에 닿는 북한 전투기에 대응하기 위해 출격시간이 빠른 전투기인 제공호(F-5)와 공격기 A-37B가 배치돼 있다. 특히 A-37B는 ‘8전비’의 자랑인 공군 곡예비행단 블랙 이글스(Black Eagles)가 운용하는 기종이기도 하다. 에어쇼로 유명한 블랙 이글스 팀은 비행시간 1000시간이 넘는 국내 최고 베테랑 조종사들로 구성돼 있다.
기자의 2박3일 조종사 체험을 도와줄 장교는 이종섭(공사46기) 대위. 원주기지 238전투비행대대 소속 전투조종사다. 공군복지단 재경공보실 소속인 이 대위는 원주기지에 파견돼 근무하고 있다.
기자의 계급은 대위. 비록 ‘이틀살이’ 대위지만 최전방 기지인 ‘8전비’의 207전투비행대대 3편대 소속 조종사로 배속됐다. 이 대위는 비행단에 도착한 기자가 공군 조종복으로 갈아입을 수 있도록 숙소로 안내했다. 숙소는 기지 내 관사로 19평 남짓한 아파트였다. 이 대위는 “남자 조종사는 BOQ(장교숙소)에서 생활하지만 여자 조종사는 미혼이라도 아파트에 산다”면서 “여기자라서 아파트를 숙소로 제공하게 됐다”고 했다.
“선배님, 도착하셨어요?”
관사 입구에서 환한 웃음으로 기자와 선배 조종사를 맞은 이는 박지연(공사49기) 대위다. 기자의 룸메이트를 자청한 박 대위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 중 한 사람으로 남편은 공사 동기인 정준영 대위다. 두 사람은 ‘빨간마후라 부부 1호’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남편이 공지합동작전에 참여하느라 육군부대에 파견돼 있기 때문에 외박(?)할 수 있다”고 농담을 건넨 박 대위는 “대위급 전투조종사는 일정 기간 TACP (Tactical Air Control Party·전술항공통제반)에서 연락장교요원으로 지상근무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5년간 전투기 15대 추락
박 대위는 기자에게 조종복을 건네주면서 “상하의가 붙어 있는 원피스형인데 기다란 지퍼가 목부터 배꼽 위치까지 달린 점퍼라서 여자 조종사는 화장실에서 일보기가 불편하다”고 귀띔했다. 조종복의 질감이 독특했다. 군복인데도 거칠지 않고 부드럽고 가벼웠다. 기내에 불이 났을 때 조종복에 불이 붙지 않도록 소방복처럼 고온에 견디는 아라미드 원단을 사용했다고 한다. 아라미드 원단은 철보다 강도가 5배 이상 높은 첨단소재로 탄성과 강도가 높고 내화학성이 뛰어나 우주복이나 방탄복으로 사용된다.
박 대위는 빨간 머플러를 두르려는 기자에게 “머플러 대신 빨간색 목 폴라 티셔츠를 입어도 된다”고 했다. 영하 15℃의 강추위를 감안해 기자를 배려한 얘기였지만, 기자는 빨간 머플러를 선택했다. ‘빨간 마후라’야말로 전투조종사 최고의 상징물 아닌가.
박 대위는 “조종복이 잘 어울린다”며 난데없이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