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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의 죽음은 통계일 뿐

전쟁 범죄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의 죽음은 통계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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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을 죽이면 살인범이지만 1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
  • 전쟁의 승자는 ‘술 취한 것 같은 기쁨’으로 약탈, 살인을 일삼는다.
  • 카르타고를 절멸시킨 로마의 살인자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이유는 뭘까?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의 죽음은 통계일 뿐

카르타고는 군사력을 갖춘 해상대국이었으나 로마라는 라이벌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불우한 강국’이었다. 자코포 아미고니의 ‘알프스 산맥을 넘는 한니발’

기원전 149년 한때 지중해를 주름잡던 도시국가 카르타고가 역사에서 사라졌다. 로마는 카르타고를 함락한 후 철저히 파괴했다. 전쟁 전 카르타고의 인구는 25만 명이었으나 전쟁에서 패한 뒤에는 5만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는 힘없는 노인이나 어린이와 부녀자였다. 로마군은 이들을 아프리카의 외진 곳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로마군은 카르타고의 흔적을 없애려고 성벽, 신전, 민가, 선착장, 창고 등 모든 건물을 부쉈으며 돌덩어리와 흙밖에 남지 않은 땅을 가래로 갈아 엎어 고른 다음 소금을 뿌려 풀 한 포기 나지 않게 만들었다. 로마에서 땅에 소금을 뿌리는 건 신의 저주를 의미했다.

해골로 피라미드 쌓은 티무르

고대 아시리아의 왕 센나케리브는 바빌론을 함락시킨 뒤 모든 사람을 죽였다. 바빌론 시가지는 시체로 가득 찼다. 집과 사원, 성벽 등 건물을 천장부터 바닥까지 부수고 불을 질렀다. 또 바빌론 한복판에 운하를 파고 그곳의 물을 도시로 넘치게 해서 홍수를 일으켰다.

14세기 말 중앙아시아를 지배한 티무르는 이란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직접 정벌에 나서 주민 7만 명을 죽이고 성 밖에 해골로 피라미드를 쌓았다. 티무르는 인도 정벌에서 델리를 점령한 뒤 10만 명이나 되던 포로를 모두 처형하는 잔혹함을 보였다.

한 명을 죽이면 살인범이지만 1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한 명을 죽이건 1만 명을 죽이건 정당한 이유 없는 살인은 범죄에 불과하다. 전쟁은 다른 어떤 범죄보다도 잔인하고 참혹하다. 그럼에도 전쟁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거나 필요악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다.



‘전쟁론’으로 유명한 클라우제비츠는 이렇게 밝혔다. “전쟁은 외교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외교는 말로 하는 전쟁이고 전쟁은 총으로 하는 외교다.” 클라우제비츠는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전쟁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전쟁 이야기가 나오면 흔히 인용되는 “외교라는 부드러운 벨벳 장갑 속에는 언제나 전쟁이라는 주먹이 숨어 있다”는 말 역시 전쟁의 필요악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의 죽음은 통계일 뿐

아돌프 히틀러

사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은 일상이었다.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역사서술이란 가장 크고 중요한 전쟁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역사학자 트라이츠케는 “평시는 역사책의 빈 페이지에 불과하다”면서 전쟁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다보니 전쟁을 옹호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군을 이끌었던 로버트 리 장군은 “전쟁이 끔찍하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전쟁을 너무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술 더 떠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미국의 조지 패튼 장군은 “전쟁이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라고 전쟁광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독일 작가 기 사예르도 전쟁의 공포 뒤에 몰려오는 ‘술 취한 것 같은 기쁨’에 대해 말하면서 이러한 기쁨 때문에 양쪽 군의 순진한 젊은이들이 차마 상상할 수도 없는 가혹 행위를 저질렀다고 증언했다.

전쟁에 대해 ‘필요악’ ‘불가피한 선택’ 심지어 ‘기쁨’과 ‘즐거움’으로 표현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살인이나 절도, 강도를 두고 불가피한 선택이니, 필요악이니 하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모든 범죄는 탐욕의 결과다. 국가가 벌이는 전쟁도 마찬가지다. 일반 범죄와 전쟁 범죄의 동기는 같다. 저지른 잘못을 합리화하는 것도 비슷하다. 전쟁 범죄는 특히 합리화가 심하다. 내 탓이 아니라고 둘러대는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의 패망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전제 국가의 군주는 결정은 내리되 책임은 지지 않는다. 반면에 신하는 결정권은 없지만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기독교 국가의 군주는 신의 뜻을 받아 그 지위에 오른 존재이고, 그 군주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곧 신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신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이상 군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로마의 겁탈

제2차 세계대전 때 많은 독일인이 자신들의 총통, 국민,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고 생각했을 수 있지만, 사실 그들은 히틀러와 같은 전쟁 범죄자들을 위해 나가 싸우고 비참한 결말을 맞은 것에 불과했다. 대다수 독일인의 비극은, 전쟁이 끝나서야 그 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심지어 핵심 전범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나치 독일 전범 상당수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자신은 군인 또는 독일 국민으로서 독일 법을 준수하고 조국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라고 말이다.

고대에는 전쟁이 범죄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살육과 약탈, 파괴는 승자의 전유물일 뿐 죄가 될 수 없었다. 유럽에서 30년 전쟁이 끝나고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이 체결되면서 비로소 국제법이란 게 나타났다. 그러나 국제법 개념이 확실하게 자리 잡은 근대 이후에도 대량 학살과 약탈은 끊이지 않고 있다. 국제법 자체가 자연법을 기초로 한다는 점에서 법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전쟁을 통해 죄 없는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도시를 약탈하고 파괴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이며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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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무│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형사사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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