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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혈 권력욕’ 모락모락 君子, 추락하다

안철수의 선택과 포기

‘순혈 권력욕’ 모락모락 君子, 추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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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없이도 다양한 영역에서 성공을 거두어온 능력남 안철수 의원이 ‘군자’의 반열에 오르는 사건은 바로 서울시장 후보 양보의 순간이었다. 한국 사회의 신뢰도를 묻는 조사에서 가장 점수가 낮은 집단은 언제나 사법 당국과 정치인이다. 그러한 인식이 합당한지와 상관없이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정치인은 탐욕스럽고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하고 국민이나 국가, 공익은 안중에도 없다고 국민 대다수가 인식한다는 증거다. 대기업, 사주, 자본가와 같은 가진 자에 대한 인식도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런 한국 사회에서 자본가이며 정치인인 안 의원이 아무런 조건 없이 서울시장후보 자리를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하는, 그것도 자신의 지지율이 더 높은데도 포기하는 모습은 신선했다. 바로 가질 수 있는데도, 가져도 되는데도, 모두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홀연히 포기하는 모습은 바로 국민이 원하는 군자의 모습이었다. 배려와 양보의 표상으로 부각된 서울시장후보 양보 사건은 과거에 백신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했던 행동, 기득권(의사로서, 성공한 사업가로서)을 포기한 경력 등과 함께 국민에게 일관성으로 지각됐을 것이다.

사람의 행동에 대한 관찰이 그 사람에 대한 성격이나 기질적, 또는 인격적 성향으로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일관성이다. 병을 고쳐주는 의사라는 직업과 게임이나 상업적인 프로그램이 아닌 컴퓨터에 해로운 바이러스를 없애주는 백신 프로그램의 개발자라는 공익적 이미지도 그런 일관성을 더욱 부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안 의원은 많은 사람에게 능력 있는 군자가 됐고, 바로 이 시대가 갈망하는 롤모델이 될 수 있었다.  

선택은 포기하는 것

‘순혈 권력욕’ 모락모락  君子, 추락하다

2011년 9월,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양보 의사를 밝힌 뒤 박원순 변호사와 악수하는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

안 의원이 능력과 군자라는 두 가지 매력을 동시에 가졌다는 사실은, 두 매력이 단지 1+1=2의 효과를 가져온다는 뜻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능력(세속적인 성공)과 군자적 인성은 일반적으로 양립하기 힘든 가치로 여겨진다. 현실에서 많은 사람은, 가지고 싶은 이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하나를 얻는 대신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갈등을 경험한다. 그런데 안 의원의 등장은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의 전파였다. 선택을 싫어하는 한국인에게 두 가치를 모두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무척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선택은 흔히 ‘취할 수 있는 여러 개 가운데 필요하거나 적절한 것을 뽑는 행위’라고 정의된다. 이런 정의는 맞기도 하지만 사실 틀린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러 개 중 하나를 고르는 선택 행위의 결과는 하나를 얻지만 동시에 반드시 그 이상의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결과를 수반한다. 짜장면과 짬뽕을 놓고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하게 된다. 편의점의 수많은 음료수 앞에서 하나를 고르는 순간 수십 개의 다른 음료수는 포기해야 한다. 결혼하는 순간 이 세상의 30억이 넘는 이성을 포기하게 된다. 대학입시에서 6개의 지원서를 내는 순간 지원하지 않은 수많은 대학에 진학할 기회를 포기하게 된다.

현실에선 포기하는 것이 훨씬 더 많고 크다. 그래서 원래 선택은 갖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선택의 과정에서 가질 것에만 목숨을 건다. 그러니 당연히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포기가 본질인 선택은 한국인의 심리적 특성에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 서양의 철학적 관점은 일반적으로 대립적이고 직선적이며 명시적이다. 선과 악, 천당과 지옥, 천사와 악마, 빛과 어둠 등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대립적인 개념으로 만들어 서로 경쟁해 한쪽이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철학적 구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서양의 동화나 영화도 대부분 명확한 선의 존재와 악의 존재 간의 갈등을 그린다.

진실을 규명한다는 현대과학적 사고와 방법도 이러한 정신체계적 선호를 반영한 것이다. 어찌 보면 융합이니 통섭과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학문적 시류에 대한 반박인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와 같은 논란은 바로 서구적 과학적 정신세계와 그 반대 세력의 충돌로 볼 수 있다. 반대 세력의 사상적 관점은 훨씬 더 동양적 철학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서양에서 대립 개념으로 보는 것들이 동양에서는 더 조화롭고 유기적으로 상위 수준에서 통합되며, 결투를 통해 한쪽만이 생존하는 것보다 서로 보완적이고 의존적인 관계로 인식된다.

사회문화적으로 유교적 배경을 가진 한국인 또한 비슷한 사상적 배경을 가졌다. 어릴 때부터 항상 철학적으로는 중용의 가치를 배우고 융화, 화합을 추구하도록 교육받는다. 심지어 국기인 태극기의 가운데 있는 태극 문양도 직선이 아닌 S자 모양의 곡선으로 음과 양의 조화를 상징하고, 4괘도 하늘, 땅, 물, 불의 조화와 보완이다.

어떤 극단적 치우침보다는, 한쪽이 이기고 다른 쪽이 완전히 패배하는 결과보다는,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것보다는, 항상 ‘치우치지 마라, 그것만 하지 말고 이것도 해라, 놓치는 것이 없는지 봐라, 이겨도 너무 이기지 마라, 이겨도 너무 기뻐하지 마라, 이건 잘했는데 저건 왜 못했니’와 같이 잃어버리는 것이 없도록 교육받는다. 이런 문화적이고 사상적인 배경은 결국 한국인으로 하여금 포기하는 것은 나쁘고, 포기하기 싫어하고, 더구나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을 가지게끔 만든다. 더구나 현실에서 선택하면서 뭔가를 포기하면서도, 자신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착각에 빠지게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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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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