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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진퇴양난…교육부 ‘개혁실험’ 1년

미봉책 절충안, 비대한 관료주의가 ‘백년지대계’ 발목잡았다

좌충우돌, 진퇴양난…교육부 ‘개혁실험’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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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교육 잡을 복안으로 등장한 EBS 수능방송, 공교육을 살리자는 대입제도 개선안…. 2004년 초 안병영 교육부총리가 소신껏 밀어붙인 교육 개혁안들이 표류하고 있다. 수능방송은 되레 사교육 시장을 키웠고, 입시개혁안은 혼란만 가중시킬 조짐이다. 설상가상으로 교육부는 ‘수능 부정’이란 암초를 만나 사면초가에 빠졌다.
좌충우돌, 진퇴양난…교육부 ‘개혁실험’ 1년
2003년 12월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 장관 취임식. 정부 교육개혁 드라이브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안병영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게선 자신감이 묻어났다. 합리적 개혁성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아온 그는 취임식에서 “과열된 사교육 시장을 잠재우고 공교육을 부활시키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어 2·17 사교육비 경감대책, 대입제도 변경안 등 잇따라 정책을 내놓으며 힘찬 개혁행보를 보였다.

그로부터 채 1년도 안 돼 안 부총리는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전례 없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부정 파문으로 입시 관리의 허점을 노출했기 때문이다. 역점을 두고 추진한 교육방송(EBS) 수능강의와 공교육 활성화 방안에도 회의적인 평가가 쏟아졌다. 게다가 방송강의에서 대거 출제된 2005학년도 수능은 변별력이 떨어져 학생들이 고가의 논술학원으로 다시 몰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혼란을 자초한 교육부의 개혁안을 되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BS 수능강의는 ‘해열제’?

교육부는 2004년 2월17일 ‘사교육비 경감 및 공교육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 골자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교육방송 수능강의에 명망 있는 교사들을 총동원하고 방송 강의에서 시험문제를 출제하겠다는 것이다. 학원으로 몰리는 학생들에게 교육방송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면 자연스럽게 사교육비가 절감된다는 계산이었다.

또 하나는 현재 수능 위주의 대학 입시전형을 내신 위주 전형으로 전환하고 공교육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공교육에서 수준별 수업을 확대하고 보충수업 실시를 허용했다. 교사들이 학부모와 학생에게 개별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공교육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단기 대책은 EBS 수능강의다. 안 부총리는 한 특강에서 EBS 수능강의와 수준별 보충수업을 일컬어 ‘감기의 열을 내리는 해열제’라 지칭하며, 이를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단기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또 교육의 체질강화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으로 수준별 이동수업과 내신 위주 대입제도, 교원평가제 등을 제시했다.

사교육비 경감대책의 핵심은 역시 EBS 방송강의와 수능의 연계다. 실제로 대책이 발표된 이후 교육방송은 수능강의를 대폭 개편했고, 결국 EBS 홈페이지에 접속이 몰리면서 인터넷 서버가 다운돼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선학교는 EBS 방송을 시청하기 위한 설비를 확대했고, 수능방송 동영상을 보기 위해 가정의 컴퓨터 수요도 급증했다. 수능방송의 내용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순전히 수능시험 문제를 EBS 수능강의에서 출제하겠다는 정부 방침 때문에 빚어진 결과다.

사교육 창출한 수능방송

수능방송 교재는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수능방송 자체가 상품이 됐다. 학원가는 수능방송을 요약하고 해설하는 강좌를 발빠르게 개설했다. 사교육비 경감대책으로 마련된 EBS 수능강의가 학생들에게는 추가적인 학습부담을 안겨줬고, 사교육 시장엔 새로운 교육상품을 창출하게 해준 것이다.

실제로 2005학년도 수능은 EBS 수능강의에서 상당수 출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원래의 정책 목표인 사교육비 경감효과를 얻지는 못했다. 오히려 수능의 변별력이 떨어져 혼란에 빠진 학생들이 논술학원으로 몰려드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교육부가 야심만만하게 내세운 사교육비 경감대책은 실패로 귀결됐다.

사실 수능방송을 통한 사교육비 경감대책은 교육적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전국의 모든 학생이 교육방송을 통해 획일적 커리큘럼을 공부하도록 강요받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식정보사회에서 한국 교육의 획일성은 시급히 극복되어야 할 과제”라는 데 동의한다.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경직성은 교육의 획일화를 초래했다. 학교에 대한 관료들의 지나친 간섭도 지식정보사회에 역행하는 한국 교육의 폐단으로 지적됐다. 교육부가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마련한 EBS 강의와 수능의 연계방안은 한국 교육관료주의의 결정판이다. 교육의 획일화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노력해온 교사들의 수업 재량권마저 수능방송 탓에 크게 위축됐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을 요구하는 지식정보사회에서 국가가 제공하는 수능방송은 어디까지나 보충적인 기능을 해야 한다. 수능방송은 학습자와 일선 교사들의 노력만으로 학습이 충분하지 않거나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훌륭한 보충 커리큘럼이 된다. 그러나 현행 입시를 좌우할 정도로 강력한 파워를 지닌 EBS 수능강의는 교육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교육부는 2008학년도부터 적용될 대학 입시제도의 변경안을 제시했다. 학생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의 반영 비중을 높이고 원점수를 표기하며, 과목별 석차등급제(9등급)를 변경하는 것이 한 축이다. 또 치열한 성적 경쟁을 완화하고 학생부 중심의 대입 전형을 유도하기 위해 수능의 백분위 및 표준점수는 제공하지 않으며 영역별·과목별 등급만 제공하는 것이 다른 한 축이다. 교육부는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등을 실시하지 않는 ‘3불(不) 정책’을 고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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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기우 인하대 교수·사회교육학 leekw@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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