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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혈 권력욕’ 모락모락 君子, 추락하다

안철수의 선택과 포기

‘순혈 권력욕’ 모락모락 君子, 추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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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력 대통령 후보인 안철수 의원이 평당원으로 돌아갔다.
  • 어쩌면 그에겐 더 큰 선택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 권력욕이 없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지만 정치에 실패한 군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권력욕이 있어 군자가 아닌, 그래서 사랑받지 못하는 성공한 정치인으로 변신할 것인가.
‘순혈 권력욕’ 모락모락  君子, 추락하다

7월 31일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사퇴를 표명한 뒤 국회를 떠난 안철수 의원.

많은 사람이 7월 30일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이변으로 여긴다. 세월호 사고, 인사파동 등 갖가지 문제의 책임이 정부와 여당에 쏠리는 상황에서, 질 수 없을 거라는 선거에서 패배한 야당에 심각한 후폭풍이 불고 있다. 그중 가장 큰 사건은 바로 유력 대통령후보인 안철수 국회의원의 정치적 위기다.

정치는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에서 물러난 안철수 의원이 정치적으로 치명타를 입었고 예전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만약 이대로 안철수 의원이 정치적으로 몰락한다면, 아마 대한민국 정치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드라마틱한 등장과 가장 드라마틱한 퇴장을 한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이다.

안 의원이 워낙 혜성같이 등장해 엄청난 인기를 누렸기에 ‘안철수 현상’이라고까지 불리며 수많은 논란과 해석을 낳았다. 매우 예외적인 안철수 현상에 대한 설명으로 흔히 기존 정치에 대한 환멸, 변화와 새로운 정치에 대한 요구, 개인 안철수의 성공신화에 의한 후광효과, 청년 토크 콘서트의 인기 등과 같은 다양한 사후 분석이 있었다. 그 많은 이유가 함께 모여 만들어냈기에 한국의 정치 역사상 유일무이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환경적이고 피상적인 상황적 요인들로 설명하기에는 안철수 현상과 관련된 너무나 많은 본질적 질문이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교과서적인 롤모델

정치인들은 안철수 현상에 대해 정치적 관점에서 그 역할과 의미를 논의해왔다. 하지만 국민이, 특히 안 의원을 지지하거나 지지했던 많은 사람이 과연 그를 정치인으로 인식하느냐가 의문시된다. 많은 사람이 안철수라는 한 개인에게 관심과 사랑을 가졌을지 몰라도 정치적인, 특히 정치공학적인 안철수의 의미를 그리 크게 기대하거나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안철수라는 개인에게서 바로 우리 사회가 갈망하던 ‘능력 있는 군자’라는 환상을 좇았을 수 있다. 한국인은 이상적인 리더로 아버지와 같은 군자상을 추구한다. 스스로를 위하는 게 아니라 남을 위하고 더 큰 사회적 이익을 위해 자신의 욕심과 이득을 포기하고, 사사로운 감정이나 관계가 아닌 원칙과 사회적 규범을 중시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아끼는 따뜻하고 관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유달리 좋아한다. 이런 사람을 싫어하는 사회와 사람들이 어느 세계에 있겠냐마는, 가족주의적이고 관계주의적인 한국인의 문화심리적 특성은 이런 리더에 대해 유달리 강하게 집착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 사회의 역사적 배경과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면 그러한 군자는 성공하기 힘들다. 타인을 배려하고 양보하며 사익보다는 공익을 우선시하고 욕심보다는 원칙을 따르며 살아온 이들이 세속적인 기준으로 성공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역사였고 세상이었다.

지난 50년 동안 세계 역사상 전례가 없는 경제 발전을 이루어온 대한민국은 그러한 발전의 대가로 원칙과 명예, 배려, 규범을 다소 외면해왔고, 그 과정에서 그런 군자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래서 많은 한국 사람은 마음속 한 곳에 그런 가치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과 후회, 그리고 분노와 갈망을 안고 있다. 경제 발전의 과정에서 많은 기성세대는 원칙을 지키고 손해를 보느니, 편법과 비겁을 선택해왔다. 배려와 양보보다는 경쟁과 승리를 추구해왔다. 이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은 원치 않았고 마음은 불편하지만 가족을 위해, 회사를 위해, 국가를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왔다.

하지만 경제가 발전하고 교육이 보편화하고 사회적 욕구와 기준이 다양해지면서 이제는 사회의 원칙과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세대는 그런 가치를 당연히 지키면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배웠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다만 그들의 부모 세대에서 그런 예를 찾기 힘들어 실망했고, 그들의 부모는 여전히 (최소한 암묵적으로) 과거와 같은 방법으로 경쟁과 생존에서 살아남기를 기대하는 이중성에 혼란스러워한다. 이런 혼돈의 시기에 안철수라는 존재는 바로 그런 교과서적인 롤모델로 등장했다. 

능력 있는 군자?

안 의원이 실제 인격적으로 군자의 덕목을 갖추었는지, 세속적으로 성공했는지 (이 점은 상대적으로 명확해 보이지만)는 그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필자가 확인할 길이 없고 사회심리학자인 필자의 관심사도 아니다. 하지만 일반 국민, 특히 최소한 안 의원을 지지하는 국민에게 그는 바로 군자처럼 살면서도 세속적인 성공을 이루어낸 영웅이었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세상에 보여주는 존재였을 것이다.

안 의원은 서울대 의과대학을 다녔고 의사가 됐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산업에 선구자적으로 뛰어들어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해 엄청난 벤처부자가 된다. 서울대 의대 입학, 의사고시 합격,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등과 같은 성공의 경로는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지탄받는 특혜나 편법이 통할 여지가 없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부의 상속, 뇌물, 부패, 부당거래, 갑을관계 등의 불법과 탈법 뉴스에 지치고, 현실에서 그러한 유혹에 시달리고, 그러한 비리에 피해를 경험해온 국민에게 안 의원은 그런 것이 없어도 세속적인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존재처럼 인식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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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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