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호

검찰, 수사 방해하려다 경찰에 덜미 잡혔다

김광준 검사 수뢰의혹 檢·警 수사 막전막후

  •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입력2012-11-21 14: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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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청의 ‘조희팔 수사’ 대구로 이첩 지시
    • 경찰, 관심 적은 곳서 은밀 수사 金 차명계좌 발견
    • 유진그룹 등 곳곳서 돈 받은 ‘양파 검사’ 옭아매
    • 검찰, ‘비리’ ‘특권’ 비난 여론…개혁 칼날 맞을 듯
    검찰, 수사 방해하려다 경찰에 덜미 잡혔다
    11월13일 오후 3시 베이지색 코트 차림에 검은 뿔테안경을 쓴 중년 남성이 나타나자 서울 서부지검 앞은 갑자기 술렁였다. 기자들의 질문과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비장한 표정으로 견뎌내던 그는 2분쯤 아무 말 없이 서 있다 검찰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그동안 불러들인 수많은 피의자가 걸었을 그 길을 따라 그는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뇌물로 10억여 원을 받은 혐의를 받던 현직 부장급 검사가 대중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바로 서울고검 김광준 검사(51)였다.

    김 검사의 비리 의혹을 처음 포착한 건 경찰이다. 수사권 조정을 두고 검찰과 갈등을 빚어온 경찰이 지난달부터 김 검사의 혐의를 낱낱이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현직 검사에 대한 경찰의 사상 첫 수사였다. 경찰은 오래도록 검찰의 핍박을 견뎌오며 ‘검사 한 명 걸리기만 해봐라’고 이를 갈고 있던 참이었다. 경찰에겐 대형 호재였고 검찰로선 긴급상황이었다. 검찰이 ‘룸살롱 황제’ 이경백 씨를 수사하며 그에게서 돈을 받은 경찰관 명단을 손에 쥐었던 것처럼 경찰 역시 김 검사뿐 아니라 다른 검사의 비리 연루 혐의까지 쥐락펴락할 수 있는 상황이다. 경찰은 김 검사가 받은 돈의 대가성 입증에 실패해 형사처벌을 못 하더라도 수사 내용을 언론에 흘려 검찰 조직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검찰이 식은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을 만든 건 검찰의 ‘악수(惡手)’였다. 당초 경찰의 수사 목표는 김 검사가 아니었다. 경찰은 4조 원대 다단계 사기사건 용의자 조희팔의 은닉자금을 추적하고 있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올해 초 조희팔 측근인 강모 씨(51)와 내연녀가 은닉자산을 관리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이들에 대한 계좌추적을 시도했다.

    대구로 보낸 게 惡手

    그런데 영장 발부 권한을 가진 서울중앙지검이 제동을 걸었다. 강 씨 등의 주소지가 대구에 있으니 대구의 경찰서로 사건을 넘기라는 지휘를 내렸다. 당시 경찰과 수사권 조정으로 갈등을 빚던 검찰은 수사지휘권을 이용해 경찰청이 직접 수사하는 사건을 지방으로 넘기라는 지휘를 자주 했다.



    검경은 지난해 형사소송법 개정과정에서 극한의 갈등을 빚어왔다. 경찰은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해 수사권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고 검찰은 “경찰의 모든 사건은 검사가 수사지휘를 해야 한다”고 양보하지 않았다. 국무총리실 중재과정에서 경찰에 수사개시 및 진행권을 주되 검찰에 수사지휘권을 보장하는 내용으로 두루뭉술하게 타협이 됐지만 권한에 대한 경계가 불분명해 양 기관은 주요 사건마다 마찰을 빚고 있다.

    조희팔 사건에서도 검찰의 지방 이송 방침에 경찰은 경찰청의 수사 기능을 무력화하는 부당한 지휘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이게 도리어 검찰에 부메랑이 될 줄은 검·경 둘 다 몰랐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직원들은 사건을 들고 대구로 내려갔다. 지방으로 가자 ‘중앙’의 관심이 한풀 꺾였다. 경찰은 대구지검 서부지청에서 관련 영장을 받아 강 씨 등에 대한 계좌추적을 광범위하게 진행했다. 강 씨가 2억4000만 원을 입금한 수상한 계좌가 포착됐다. 경찰은 처음엔 조희팔 은닉자금이 흘러든 수십 개의 차명계좌 중 하나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해당 계좌의 실제 소유주를 확인한 경찰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주인이 김 검사였던 것이다. 경찰은 김 검사가 은행을 방문해 해당 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는 폐쇄회로(CC)TV 영상과 거래내역까지 확보했다. 경찰은 이 내용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조희팔 은닉자금이 현직 부장급 검사에게 흘러든 사실을 검찰이 알게 되면 사건을 즉시 넘기라고 지휘할 게 뻔했다.

    경찰은 ‘독 안에 든 쥐’를 다루듯 김 검사의 계좌에 오간 자금을 하나하나 파헤쳤다. 김 검사가 받은 돈은 10억 원이 넘었다. 입금자 추적 과정에서 유진그룹 EM미디어 유순태 사장이 2008년 가족과 회사 직원 등 6명의 명의로 나눠 5000만 원을 입금한 정황도 나왔다. 정상적인 거래라면 유 사장이 실명으로 김 검사의 실명계좌에 돈을 보냈을 것이므로 수상한 자금 흐름이었다. 경찰은 조사과정에서 김 검사가 자신의 차명계좌에 입금한 5억5000만 원이 유 사장 측으로부터 받은 수표란 사실도 확인했다. 유진그룹 측에서 자그마치 6억 원을 김 검사에게 건넨 것이다. 나머지 1억6000만 원도 개인이나 중소기업이 김 검사에게 보낸 돈이었다.

    “파면 팔수록 나오는 양파”

    김 검사 계좌로 돈이 입금된 시기는 대부분 2008~2009년으로 김 검사가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과 대구지검 서부지청 차장 등 고위 검찰간부로 근무하던 시점이었다. 대가성이 있는 자금일 개연성이 컸다. 경찰 관계자는 “김 검사는 파면 팔수록 새로운 게 나오는 양파였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고위 정치인이나 대기업의 범죄 등 대형 비리를 수사하는 곳으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버금가는 화력을 자랑한다. 특별수사로 잔뼈가 굵은 검사들이 포진해 있는 데다 정치인과 재벌의 비리를 파헤치는 수사로 ‘재계의 저승사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김 검사도 수도권과 부산 등에서 특수부장을 지내다 서울중앙지검에 입성했다.

    검찰, 수사 방해하려다 경찰에 덜미 잡혔다

    김수창 특임검사(왼쪽)는 “간호사(경찰)는 의사(검찰) 처방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 검사가 특수3부장으로 근무할 당시 유진그룹의 나눔로또 사업 인수합병(M·A)에 대해 내사했다는 소문에 주목했다. 유진그룹 측이 내사 무마를 부탁하며 돈을 줬을 가능성이 의심됐다. 경찰은 12일 서울중앙지검에 당시 유진그룹 및 계열사 내사·수사 여부에 대한 사실 조회와 자료 제공을 요청했지만 아직 답변은 오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아직 보고를 받은 바 없고 당시 (유진그룹에 대한) 수사나 내사 여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경찰은 김 검사가 지난해 유진그룹의 계열사인 유진기업 주식을 사들인 뒤 3∼8개월간 보유하다 되팔아 2억 원의 시세차익을 올린 사실을 파악했다. 김 검사가 미공개 공시 정보를 유진 측에서 넘겨받아 높은 수익을 올렸을 개연성이 있는 대목이다. 김 검사는 이와 별개로 2008년에도 후배 검사 2, 3명과 함께 해당 주식을 사들였다가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 검사가 2008년 KTF 임원과 마카오로 여행을 다녀오면서 항공료 등 여행비를 KTF 측에서 제공받은 사실도 확인했다. 해당 임원은 경찰 조사에서 사실상 대가성 향응이었다고 시인한 상태다. 조영주 전 KTF 사장은 중계기 업체 대표에게서 납품 청탁과 함께 24억여 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2008년 10월 구속 기소됐고, 모회사인 KT 남중수 전 사장마저 유사한 혐의(배임수재)로 11월에 구속 기소됐다. 이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서 진행됐다. 경찰은 김 검사가 특수3부장 재직 당시 옆 부서에서 진행 중이던 수사를 무마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KTF 측에서 편의를 제공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조희팔 측근 강 씨에게 2억4000만 원을 받은 시점은 김 검사가 특수3부장일 때지만 김 검사는 이듬해인 2009년 8월 대구지검 서부지청 차장으로 이동했다. 조희팔 관련 수사를 진행한 곳이 바로 그 곳이다. 경찰 관계자는 “김 검사의 고향이 경북 경주여서 대구지검으로 내려올 가능성이 있는 데다 강 씨와 학교 동창이어서 주요 관리대상으로 본 것 같다”고 전했다.

    경찰은 김광준 검사가 해당지청 차장으로 재직할 당시 전직 국가정보원 직원 부부의 기업인 협박사건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뒷돈을 받은 혐의도 포착해 수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전직 국정원 직원 안모 씨(59)는 1999년 양모 씨가 운영하는 회사 주식 7000만 원어치를 사들인 뒤 양 씨에게 되팔려다 거절당하자 “투자금을 안 돌려주면 약점을 들춰내 망하게 하겠다”고 협박했다. 협박에 못 이긴 양 씨는 안 씨 부부에게 주식투자액과 위로금 명목으로 8억 원을 돌려줬다.

    양 씨는 2009년 안 씨가 국정원에서 퇴직한 직후 이들 부부를 대구지검 서부지청에 고소했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리했다. 그러자 양 씨는 법원에 재정신청을 했고 지난해 안 씨 부부에게 실형 2년이 선고됐다. 경찰은 안 씨 부인 김모 씨가 당시 해당 지청 차장이던 김 검사의 차명계좌로 수천만 원을 보낸 사실을 확인했으며 이 돈이 사건무마 청탁용이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김 씨를 불러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올해 4월부터 8개월간 김 검사에 대한 수사를 이 정도까지 진행하면서 검찰에 김 검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거나 수사 개시 보고를 하지 않았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경찰은 검사의 수사지휘에 따르게 돼 있고 관련 대통령령에는 4급 이상 고위 공무원에 대한 수사는 수사 시작과 함께 검찰에 수사 개시 보고를 하도록 돼 있다. 경찰은 “검찰 간부가 연루된 대형 비리 사건이라 검찰이 사건을 빼앗아갈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며 “검찰도 손쓸 수 없을 만큼 수사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혐의를 구체화한 뒤 검찰에 보고할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비난 여론에 꿈쩍 않는 검찰

    8일 김 검사에 대한 경찰의 수사상황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검찰은 경찰의 이 약점을 파고들었다. 경찰이 법규에 규정된 정식 수사 개시 보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수사가 아닌 내사일 뿐이고 따라서 검찰이 별도로 김 검사에 대한 수사를 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검찰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튿날인 9일 대검찰청은 김수창 법무연수원 연구위원(50·사법시험 29회)을 김 검사 사건을 수사할 특임검사로 지명했다. 검찰은 “국민의 관심이 높은 사안인 만큼 검찰이 직접 나서 신속하게 의혹을 밝히겠다”는 명분을 내걸며 검사 10명을 투입했다. 이전에 특임이 수사했던 ‘그랜저 검사’나 ‘벤츠 여검사’ 사건 때는 검사가 4, 5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검찰이 사안을 매우 중대하게 여기고 있다는 신호였다.

    경찰로선 도저히 맞설 수 없는 싸움이었다. 검찰의 허락 없이는 피의자를 구속하거나 압수수색을 할 수 없는 경찰이 대규모 수사 인력과 영장청구권을 가진 특임검사팀을 상대로 싸우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수사 진도는 검찰보다 한참 앞서 있긴 하지만 향후 수사 진행이 불투명해진 것이다.

    경찰은 “검찰이 조직 내 비리가 드러나는 걸 사전에 차단하고 검찰 고위 간부가 경찰에서 피의자로 조사받는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사건 가로채기를 하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기용 경찰청장도 “검찰의 부당한 수사개입이며 검찰 수사와 상관없이 경찰은 수사를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로써 동일 사건에 대해 2개의 수사기관이 동시에 수사하는 사상 초유의 이중 수사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수사권 갈등을 빚어온 검경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여론이 이번에는 검찰을 비난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김수창 특임검사는 “검찰이 직접 수사하겠다고 하는 건 이번 사건을 더 중요시한다는 뜻”이라고 해명했지만 현직 부장검사가 연루된 사건이라면 ‘제 식구 감싸기’란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기관이 수사해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여론이었다.

    “비겁한 가로채기”

    검찰, 수사 방해하려다 경찰에 덜미 잡혔다

    김수창 특임검사팀이 11월 12일 서울고검 김광준 검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뒤 자료를 상자에 담아 나오고 있다.

    검찰이 스스로 들춰내기 꺼리던 사안을 경찰이 수사한다고 하자 비겁하게 가로채기를 한다는 비판도 많았다. 검찰은 김 검사 사건을 수사할 기회가 예전에도 있었다. 경찰이 2008년 검찰에 송치한 조희팔 수사 기록에는 김 검사의 비리 의혹이 포함돼 있었다. 검찰은 4년이 지나도록 가만히 있다가 경찰이 본격 수사를 시작하고 그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우리가 수사하겠다’며 뒤늦게 나선 셈이다.

    검사가 동료 검사를 수사한 결과에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검찰은 ‘그랜저 검사’와 ‘벤츠 여검사’ 사건 때도 특임검사에게 수사를 맡겼지만 언론과 정치권에서 이미 제기된 혐의만 일부 확인하는 데 그쳤다. 서울의 한 변호사는 “특임검사가 실체 규명용이 아닌 적당한 선에서 수사를 무마하는 특검 방지용이 아니겠느냐”며 “김 검사 외에 검사 2, 3명이 추가 의혹에 휩싸인 이번 사건을 검찰이 직접 수사할 경우 검찰이 꼬리 자르기를 시도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검찰은 2010년 경찰의 ‘서울 대원외고 불법 찬조금 수사’ 때 비슷한 시도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경찰은 이 학교 교장과 이사장이 학부모에게 찬조금 21억 원을 모금한 경위와 사용처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4차례 검찰에 신청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검찰은 경찰에 이례적으로 “기소 불기소 판단도 하지 말고 즉시 송치하라”고 요구해 사건을 넘겨받은 뒤 “찬조금에 대가성이 없다”며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당시 수사를 한 경찰은 “찬조금을 낸 학부모 중 검사장급 검찰 간부가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검찰이 사건을 가로채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검찰이 검찰 간부의 비리를 감춰주기 위해 무리하게 경찰 수사를 중단시켰다는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검찰은 자신들을 향한 비판여론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 특임검사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검찰이 경찰 수사를 지휘하는 건 검사가 수사를 더 잘하기 때문이고 간호사가 의사 처방을 따라야 하는 것 역시 의사가 간호사보다 의학지식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해 뼛속 깊이 박힌 검찰의 특권의식을 보여줬다. 이 발언으로 대한간호협회가 김 특임검사에게 “간호사 비하 발언을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등 물의를 빚자 검찰 일부에서도 자성론이 일었다. 13일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에는 “경찰이 장기간 내사해온 사건을 검찰이 가로채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렇게 되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로 가는 것 아니냐”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런 지적 역시 일부의 메아리로 그쳤다.

    검찰이 경찰 수사에 끼어들면서 이중 수사가 된 상황에서 검찰은 경찰보다 한발 먼저 주요 피의자를 소환하는 방식으로 주도권을 잡아갔다. 특임검사팀은 경찰이 16일 출석을 요구한 김 검사를 사흘 앞선 13일 소환조사했다. 당초 경찰은 김 검사가 출석에 계속 불응하면 강제구인까지 불사하겠다며 별렀다. 하지만 검찰이 선수를 치는 바람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처지가 됐다.

    김 검사에게 6억 원을 준 유진그룹 유순태 사장은 13일 경찰에 출석하기로 해놓고 하루 먼저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뒤 경찰 출석을 거부했다. 유 사장은 특임검사 소환에는 응하면서도 경찰에는 “이중 수사이기 때문에 별도 조사에 응할 수 없다”는 의견서를 보내왔다. 돈의 대가성 여부를 밝혀줄 다른 주요 참고인 역시 경찰 소환에 줄줄이 불응할 개연성이 높다.

    반면 경찰이 김 검사에게 돈을 준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2∼9일 불러들인 참고인 10명은 모두 검찰 조사에 응했다. 같은 이중 조사라도 검찰 조사에는 순순히 응하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당초 경찰에 출석하기로 한 주요 참고인을 검찰이 아침에 데려가 조사하고는 ‘경찰에는 나갈 필요 없다’고 했다더라”고 말했다.

    다시 확인된 ‘검찰의 벽’

    수사 주도권을 두고 검찰과 신경전을 벌이던 경찰은 특임검사 출범 사흘 만인 13일 사실상 백기(白旗)를 들었다. 김 검사에 대한 독자 수사 방침을 포기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날 “김 검사에 대한 수사는 계속하되 검찰과 같은 내용의 교집합은 빼고 검찰이 수사하지 않는 여집합을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핵심은 빼고 부스러기만 수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 조사를 받은 사람을 또 불러내면 인권침해 논란이 일 수 있고 검찰에 구속이나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해도 받아들여지겠느냐”며 “김 검사의 새로운 비리 혐의는 계속 파헤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기류 변화의 표면적 이유는 검경 갈등을 신속히 봉합해야 한다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의 방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국무회의 후 권재진 법무부 장관과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을 따로 불러 “경찰의 수사개시권과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규정한 형사소송법에 근거해 신속하고 엄정하게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임종룡 국무총리실장은 “자율적 해결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조정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두 기관 간 갈등을 치유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경찰로서는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는 처지라 어차피 검찰에 맞설 ‘무기’가 없는 마당에 이 같은 지침이 내려오자 검찰 수사를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만 수사하겠다는 나름의 ‘출구전략’을 내놓은 것으로 분석된다. 경찰이 “이번만큼은 우리 손으로 검사 비리를 밝히겠다”고 나섰지만 견고한 현실의 벽만 재확인한 것이다. ‘검사가 연루된 사건은 검사만 수사 한다’는 검찰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해온 검찰에 대한 개혁 압력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대선 후보와 정치권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로선 일단 눈앞의 ‘비’는 막았지만 더 큰 우산이 필요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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