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발전소·제철소…“대기오염원을 차단하라”
컨테이너선 배출 오염물질, 승용차 5000만 대분
육상 발전소 전기를 정박한 배에 공급
중유 쓰는 화력발전소, LNG 바꿔
제철소 청정설비 장착
시민 이름 붙인 나무, 수소충전소로 공기 질 개선
미세먼지 감축률 경기도 ‘1등 도시’ 평택
‘일하기 좋은 도시’에서 ‘살고 싶은 도시’로
경기 평택시 통복천 인근에 조성된 녹지 ‘도시 숲’. [지호영 기자]
평택은 최근 일하기 좋은 ‘산업도시’에서 살기 좋은 ‘생활도시’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 중심이 환경이다. 평택시는 ‘깨끗한 환경이 최고의 복지’라는 믿음으로 환경보존 및 오염원 제거에 힘쓰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평택시는 환경부 지정 ‘스마트 그린도시’에 선정되는 등 성과를 보이고 있다. 스마트 그린도시는 도시 환경을 보존하는 동시에 스마트 도시화를 통해 시민들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이다.
평택시가 만드는 매연 없는 항구
5월 28일 찾은 평택시는 이미 생활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시내 유휴 공간마다 녹지가 조성됐고, 시내 주요 시설 옥상에는 미세먼지 관측소가 설치돼 실시간으로 대기오염을 파악하고 있었다.평택은 경기도에서 공기가 가장 좋아진 지역이다. 2020년 평택시의 미세먼지 감축률은 전년 대비 23.9%로 경기도 최고 수준의 감축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경기도 전체 미세먼지 감축률은 17.7%였다. 전국의 미세먼지 감축률 평균치는 17.4%다.
‘산업도시’에다 산림이 거의 없는 평택이 공기질 개선에 성공한 비결은 ‘오염원 발본색원’이었다. 대증요법이 아니라 애초 대기오염 물질을 방출하는 원인을 찾아내 개선하는 근본 처방에 나선 것. 그중 한 곳이 평택항이었다. 평택항은 경기도 최대 무역항인 만큼 주로 대형 컨테이너선이 드나든다. 문제는 배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 양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조사에 따르면, 컨테이너선 한 척이 배출하는 대기오염물질은 디젤 승용차 5000만 대, 디젤 트럭 50만 대 배출량과 같다.
컨테이너선은 정박 중에도 연료를 쓴다. 선박 내 전자기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연료를 태워 선박 내 발전기를 돌려야 한다. 항구에 정박한 컨테이너선의 경우 작은 화력발전소 한 기가 머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택시는 정박하는 동안 배에서 나오는 미세먼지 및 매연을 줄이기 위해 육상전력공급설비(AMP)를 도입했다. 육상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정박한 배에 공급하는 설비다. 이를 이용하면 정박 중인 배는 더는 연료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평택시는 2020년 12월 AMP 2기를 평택항에 설치했는데, AMP 1기는 연간 약 1만t의 미세먼지 저감 효과가 있다. 평택시 환경정책과 관계자는 “차츰 AMP를 늘려서 2023년까지 6대를 도입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항구·발전소·제철소 대기오염원을 차단하라
평택시 비전동 대기오염측정소. 평택시는 이곳을 포함한 시내 6곳(안중읍·포승읍·평택항·고덕면·송북동)에 대기오염 측정소를 설치해 대기오염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해당 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은 연료 전환으로 미세먼지 및 대기오염물질 발생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 보고 있다. 한국서부발전의 2020년 4월 발표에 따르면, 연료 전환으로 인해 해당 발전기의 미세먼지 배출량은 84% 줄어들게 된다. 연간 감축량은 약 121t. 평택시 환경정책과 관계자는 “해마다 340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 설명했다.
대기질 개선 노력은 시 바깥까지 퍼졌다. 평택시는 환경단체, 지방자치단체, 현대제철로 구성된 민·관·산(民官産) 협의회를 구성했다. 협의회는 제철소에서 나오는 오염물질 저감을 위해 2020년 2월 현대제철 당진 공장의 소결로 3기에 청정설비 공사를 완료됐다. 평택시 관계자는 “이 설비를 통해 제철소가 배출하는 대기오염물질의 양이 약 56% 줄었다”고 밝혔다.
항구와 발전소, 제철소의 대기오염원을 차단하면서 평택시는 동시에 ‘녹지 개발’이라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했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도시에 조성된 녹지에서는 도심 지역과 비교해 대기 중 미세먼지 양이 25.6%가량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초미세먼지의 양도 40.9% 줄어든다. 평택시는 평택항에 약 165만3000m2(약 50만 평) 규모의 해양생태공원을 조성하고, ‘30년 그린웨이 프로젝트’를 통해 시내 녹지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5월 28일 평택시민들이 통복천 녹지를 산책하고 있다(왼쪽). 시민과 단체가 기증한 나무가 녹지 곳곳에 자라고 있다. [지호영 기자]
정장선 평택시장도 “기념비나 탑은 시간이 지나면서 철거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차라리 나무를 심으면 그럴 일도 없고 의미도 새길 수 있다”며 “이런 의미가 많이 알려지면서 지역 단체나 사적 소모임에서도 나무 심기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평택은 수소연료전지자동차(이하 수소차) 도입에도 적극적이다. 수소차 도입은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차를 줄여 대기오염을 줄이는 동시에 탄소배출 감축에도 도움이 된다. 2020년 한 해 평택시가 보급한 수소차는 총 244대. 2030년까지 6000대를 보급하는 게 목표다.
수소에너지 산업단지가 주는 의미
평택시 장안동의 차량용 수소연료전지 충전소에서 차량이 수소를 충전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5월 28일 평택 장안동의 수소충전소에서 만난 이모(34) 씨는 “1만 원이면 수소전지를 최대치로 충전할 수 있다. 가득 충전하면 보통 300㎞ 이상 운행이 가능하다. 소음도 휘발유나 경유차에 비해 현저히 적어 충전소만 늘어난다면 앞으로도 계속 수소차를 탈 계획”이라 밝혔다. 평택시의 수소충전소 관리 담당자는 “시가 직접 수소충전소를 운영해 민간 충전소에 비해 충전 가격이 3분의 2 수준으로 저렴하다”고 설명했다. 평택시는 수소차 보급 및 충전소 건립을 넘어 수소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
지난해 평택시는 국토교통부의 ‘수소교통 복합기지 시범사업’ 지역으로 최종 선정됐다. 평택 LNG 화력발전소 인수기지 내 수소생산시설에서 연료를 공급해 평택 전역에 수소연료 공급망을 설치하는 것이 이 사업의 목표다. 평택시 환경정책과 관계자는 “2030년까지 수소에너지 융·복합 산업단지 구축을 완료할 계획”이라며 “미래의 평택은 수소에너지 기반의 친환경 미래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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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選 의원 출신 정장선 시장의 ‘환경論’
“지자체는 산업발전만큼 환경보호에 적극 나서야”
● ‘미세먼지 저감’ 국가대표 지자체…친환경 산단 준비● 산림청장 만나 ‘미세먼지 차단 숲’ 조성하겠다
● 국무총리 ‘미세먼지대책위’ 저감 비결 전파
● 평택 녹지 비율 17%…“녹지를 조성하라”
● 취임 첫 일성이 환경…4년간 ‘독려’하며 성과 내
● 수소 산단 조성…산업도시에 친환경 입힌다
● 살기 좋은 집은 청소부터…환경 좋아야 평택 찾는다
5월 28일 평택시 환경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정장선 시장.
5월 28일 평택시청에서 만난 정장선(63) 평택시장은 환경정책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정 시장은 26년 전인 1995년 지역구 평택에서 경기도의회 의원에 당선됐고, 2000년에는 경기 평택을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내리 3선(選)을 했다. 그러나 2012년 1월 19대 총선을 3개월여 앞두고 돌연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신동아’ 인터뷰에서 그는 “국회가 국민의 갈등이나 욕구를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며 총선 불출마 이유를 밝혔지만, 국회의원의 능력과 품격을 보여준 그의 ‘탈(脫)여의도’에 대해 언론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런 그가 2018년 평택시장에 당선돼 취임한 뒤 일성은 환경이었다. 취임과 동시에 다양한 환경정책을 수립하고 4년 동안 정책 시행을 독려하면서 성과를 냈다. 대표적 성과가 미세먼지 저감. 평택시는 2020년 기준 전년 대비 미세먼지 배출량을 23.9% 줄이면서 도내 미세먼지 저감 지자체 1위에 올랐다. 같은 달 국무총리실 주관 ‘미세먼지특별대책위원회’에서 대표 발표자로 나서 평택시의 미세먼지 저감 ‘비결’을 설명하면서 ‘미세먼지 저감 국가대표 지자체’라는 평가도 받았다. 지난해 12월 환경부 지정 ‘스마트 그린도시’ 지자체로 선정된 것도 이러한 환경개선 노력 덕이었다. 3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쌓은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도 ‘정장선표 환경정책’을 구현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잘 알려진 것처럼 평택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쌀 산지인 동시에 삼성반도체·LG이노텍의 생산기지가 있는 첨단 산업도시다.
다양한 산업과 기반시설 덕에 평택 인구도 빠르게 늘고 있다. 2021년 1월 평택 인구는 54만929명. 2019년 1월(49만6324명)에 비해 4만4605명 늘었다. 전국 162개 지자체 중 22번째로 인구가 많다. 정 시장은 “살기 좋은 집을 만들려면 청소부터 해야 하는 것처럼, 환경오염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평택에 살려고 하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최우선 환경정책은 대기질 개선
- 정박 중인 배에 전원을 공급하기 위한 육상전력공급설비(AMP)를 설치하고 화력발전소의 연료를 천연가스(LNG)로 전환하는 등 오염물질 배출원부터 ‘공략’한 게 환경정책의 묘수였던 거 같다.“AMP 도입이나 발전소 연료 전환 등으로 미세먼지가 확실히 준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평택항에 드나드는 배의 연료도 바뀌었다.”
- 배 연료가 바뀌었다면….
“그간 평택항에 들어오는 컨테이너선은 황함유량이 3.5%가 넘는 연료를 사용했다. 황함유량이 높은 연료는 연소되면서 대기오염 주범인 황산화물(SOx)을 다량 발생시킨다. 평택시는 해양수산부와 협의해 지난해 9월부터 황함유량이 0.1%인 연료를 사용하는 배만 평택항에 입항할 수 있도록 배출 규제를 강화했다. 이 조치로 배에서 나오는 대기오염물질이 이전보다 35배가량 줄게 됐다.”
- 다양한 환경문제 중 대기오염 문제를 정책의 우선순위에 올린 이유는 뭔가.
“평택시민이 생각하는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가 대기오염이기 때문이다. 3월 평택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평택시 환경정책 시민인식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 미세먼지 저감 등 ‘대기오염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36%로 가장 많았다.”
평택시민 여론조사에서 대기오염 문제 다음으로 개선이 필요한 정책으로 △재활용 등 폐기물 처리’(26.4%) △‘하천 수질개선’(17%) △‘악취·소음 개선’(9.2%) 등이 뒤따랐다.
- 최근 가장 집중하는 대기오염 저감 정책은 뭔가.
“녹지 조성 사업이다.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을 줄이는 녹지를 시내 곳곳에 설치하고 있다. 평택항이 있는 포승읍과 인근 산업단지에는 50만 평(165만1250㎡) 규모의 ‘미세먼지 차단숲’을 조성하고 있다.
- 황사 발원지인 내몽골에 사막 숲을 조성하는 느낌이다. 재원은 어떻게 마련했나?
“직접 산림청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산림청장((박종호 전 청장)이 ‘지방자치단체장이 녹지를 조성하겠다며 산림청을 직접 찾아온 역사는 없었다’며 놀라더라(웃음). 산림청에 숲 조성 필요성을 설명했고, 사업비 100억 원을 지원받아 조성하고 있다. 이외에도 시 전역에 녹지를 조성하고 있다.”
- 미세먼지 배출 시설이 아닌 시 전체에 녹지를 조성하는 이유는 뭔가.
“평택은 원래 녹지가 부족하다. 전 국토의 65%가량이 녹지와 산지로 이뤄져 있지만 평택의 녹지 비율은 17%에 불과하다. 녹지는 대기오염을 정화하는 동시에 시민 쉼터 역할을 한다. 삼성반도체 공장 등 앞으로도 평택시에는 다양한 생산시설이 더 들어서고, 인구도 늘어날 거다. 새로 평택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녹지는 더 필요하다. 맑은 하천도 마찬가지다.”
생활폐기물 처리 직접 해결
- 한천 수질개선 사업은 어떤가.“평택을 흐르는 하천은 안성천과 진위천, 그리고 통복천이 있다. 이 중 안성천과 진위천이 만나 큰 지류를 이룬 ‘평택강’도 수질개선에 나설 계획이다. 동시에 통복천 수질개선 사업도 함께 진행한다. 사실 평택에 있는 하천은 한강 하류여서 퇴적물로 인한 오염이 심각한 편이었다. 하천 대부분이 4~5급수였다. 2023년까지 2급수까지 개선할 계획이다.”
- 음식물 쓰레기 등 생활폐기물도 수질 및 토양 오염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생활폐기물은 어떻게 처리하고 있나?
“시에서 운영하는 폐기물 처리시설 ‘에코센터’에서 전부 처리한다. 음식물 쓰레기부터 재활용 폐품까지 다양한 폐기물을 직접 관리한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 폐기물이 늘어 별도의 재활용 대책을 준비 중이다. 동시에 환경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분리수거 및 폐기물 처리 방법을 시민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 평택시에는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전용 충전소(수소충전소)가 2곳 있고, 경기도 최대 규모인데.
“당초 2020년까지 수소충전소를 6곳 설치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장비나 인력이 들어오는 시점이 늦어졌습니다. 올해 안에 수소충전소를 6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평택시에 수소 교통 특화 산업단지를 꾸릴 계획이다. 이미 지난해 수소차, 수소연료전지 모빌리티 관련 기업 10여 곳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 기업들은 평택항이 있는 포승읍을 중심으로 입주해 수소연료전지를 이용한 버스, 트럭 등을 개발한다. 게다가 포승읍 인근 화력발전소에서는 천연가스를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고 있다.”
- 반도체, 자동차에 이어 산업단지를 또 하나 조성하는가.
“그렇다. 탄소배출 저감 및 환경오염 개선을 넘어 ‘친환경산업’으로 먹고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게 수소 산업단지 계획의 최종 목표다. 산업도시에서 친환경 산업도시가 될 날도 머지않았다(웃음).”
#환경보호 #녹지 #평택 #정장선 #신동아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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