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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골프 필승법

내기골프 필승법

내기골프 필승법
골프를 즐기지 않는 이들은 내기골프라는 말만 들어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겠지만, 실제로 해보면 내기 없는 골프는 ‘속 없는 찐빵’과 같다. 배는 불러도 영 맛이 없다. 주말 골퍼들이 욕을 먹더라도 꼭 내기를 거는 이유다.

한 경제주간지에 오랫동안 ‘JP의 골프 이야기’를 연재한 일이 있다. 그 무렵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로부터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재벌총수나 정계 실력자들도 거의 예외 없이 내기골프를 친다. 한 홀에서 진 사람이 다음 홀에 판돈의 2배나 3배를 걸자고 요구하는 이른바 ‘따블(더블)’ ‘따따블’의 원조는 중앙정보부장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망명한 뒤 불귀의 객이 된 김형욱이다. 쌍용그룹 창업주 김성곤 등 공화당 실력자들과 어울려 툭하면 내기골프를 쳤다고 한다.

푼돈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들까지 내기골프에 열광하는 걸 보면 내기는 분명 골프에 맛을 더해주는 양념인 모양이다. 골프는 흔히 인생에 비유되곤 한다. 아마도 남과 경쟁하는 가운데 희로애락을 느낀다는 점에서 둘을 닮은꼴로 생각하는 것 같다. ‘골프는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격언의 속뜻은 알겠지만,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 아래 홀로 카트를 끌고 가는 나의 모습은 솔직히 상상하기도 싫다.

비록 은근슬쩍 ‘내기골프 예찬론’을 펴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도박 같은 내기까지 부추기는 건 결코 아니다. 마음속에 경쟁의 불씨를 살짝 지필 정도의 내기를 하자는 것이지 마음이 홀랑 타버릴 정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되면 골프가 아니라 도박이 되어버린다.

얼마 전 고교 동창들과 용인CC에서 라운드하면서 주말 골퍼들이 얼마짜리 내기를 하면 적당할지를 놓고 설왕설래한 적이 있다. 결론은 ‘1타당 5000원, 배판일 때는 1만원’이었다. 논리적 근거는 없지만 경험상 대략 그 정도가 적당하다는 것이었다. 그 정도면 게임에서 이긴 사람은 캐디피와 밥값 낼 만큼의 돈을 따게 된다. 승리자가 공짜 식사를 마친 후 패배자에게 “덕분에 밥 잘 먹었네”라고 인사만 하면 만사 오케이다.



그런데 아무리 부담 없는 내기라도 자꾸 지면 스트레스가 된다. 핸디캡 8인 한 친구는 내기골프에서 좀체 지는 법이 없어 동반자들을 허탈하게 만들곤 한다. 그래서 나머지 친구들은 어떻게 하면 내기골프에서 이길 수 있는지 비법을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스윙만 잘한다고 내기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친구에게 전수한, ‘내기골프에서 지지 않는 네 가지 비법’을 살짝 공개하겠다.

1. 파 3홀에서는 그린 중앙을 노려라

파 3홀은 파 4나 파 5홀에 비해 실수했을 때 만회할 기회가 없다. 따라서 실수를 줄이는 게 상책이다. 파 3홀은 대개 거리는 짧지만 그린 주변에 해저드나 벙커를 조성해 난도를 높여놓았다. 핀을 직접 겨냥하는 과감성을 발휘하기보다는 안전하게 그린 중앙을 공략하는 게 효과적이다.

2. 분노와 의심을 버려라

내기골프를 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분노와 의심이다. 내기골프의 고수들은 이 같은 마음의 적을 잘 다스린다. 우리나라 골프장에서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OB에 대한 두려움이다. 산악지대가 많은 지형 특성상 OB를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으므로 OB가 났을 때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화가 나면 절대 속으로 삼켜서는 안 된다. 차라리 남이 안 보는 곳에서 힘껏 헛스윙을 하거나 발길질을 하라.

3. 그린 위의 승부에서 이겨라

내기골프 고수들은 흔히 첫 홀을 아웃하면서 “오늘 그린은 좀 빠른 것 같아”라며 상대방 귀에 들릴 정도로 혼잣말을 하며 궁시렁댄다. 그러면 어지간한 골퍼들은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스킨스 경기라면 승부와 관계 없는 홀에서는 웬만큼 먼 거리의 퍼팅이라도 ‘기브’를 줘라. 그러면 상대방은 ‘기브’ 거리에 익숙해져 긴장을 늦추게 된다. 이때가 찬스다. 승부가 갈리는 홀에서 당연히 ‘기브’를 받을 줄 알고 공을 집어들려는 상대방을 향해 “마크!”라고 외친다. 상대방의 얼굴에는 민망함과 분노와 꼭 넣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교차할 것이다. 그 다음 상대방의 공은 여지없이 홀을 벗어날 테고, 당신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번지리라.

4. 골프 룰을 알고 나서라

골프 룰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내기골프에 나서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공이 해저드에 빠졌을 때 평소처럼 적당히 치기 좋은 곳에 드롭하다가 동반자가 “공이 물에 빠진 지점에서 홀에 가깝지 않게 두 클럽 이내에서 드롭해야 한다”고 정색하고 어필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렇잖아도 공이 물에 빠져 열 받아 있는 상태에서 상대방의 어필을 받으면 심리상태가 엉망이 돼 미스 샷을 할 수밖에 없다. 슬라이스나 훅이 생겨 나무 밑으로 들어간 공을 툭 쳐서 옆으로 옮겨놓는 매너 없는 동반자에겐 그냥 “그러면 안 되는데…”라고 하면 된다. 말을 더 이을 필요도 없다. 당사자는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얼굴을 붉히며 다음 샷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신동아 2006년 9월호

김국진 포브스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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