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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을 담아 던진다 그렇게 ‘빚’ 갚겠다”

‘지지 않는 남자’ 오·승·환 독점 인터뷰

  • 세인트루이스·샌디에이고=이영미 | 스포츠 칼럼니스트 riveroflym22@naver.com

“혼을 담아 던진다 그렇게 ‘빚’ 갚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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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기는 법 아는 팀에서 뛰는 게 기뻐”
  • ● 이미지 곤두박질…MLB 호령하며 반전
  • ● 야구 말고는 할 게 없는 환경…“행복해요”
오승환(34·세인트루이스)의 야구 인생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입단 전과 후로 나뉠 것이다. 메이저리그 진출 전까지만 해도 개인 문제로 바닥까지 곤두박질친 이미지가 카디널스에서의 활약을 통해 ‘역대급 반전’을 이뤘고, 지금은 비난보단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이들의 목소리가 더 큰 듯하다.

오승환은 5월 11일(한국시각) 현재 16경기에서 16⅓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1.65로 순항 중이다. 세인트루이스 불펜 투수 중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했고, 올 시즌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한 한국인 선수 중에서도 눈에 띄는 성적을 기록 중이다.

‘돌부처’란 별명 뒤에 숨은 오승환의 인간적 매력과 그의 메이저리그 생활을 해시태그(#)로 정리했다.



# 오승환이_달라졌어요

오승환을 만나려 세인트루이스를 방문했을 때 그를 취재한 후배들로부터 이런 얘길 들었다. “선배, 오승환 선수가 달라졌어요. ‘돌부처’ 오승환이 아니더라고요.”



궁금했다. 마운드에서는 물론 인터뷰할 때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던 그가 달라졌다? 도대체 얼마나 바뀌었기에 한두 명도 아닌 기자 여럿이 그런 얘길 할까.

메이저리그 경기를 취재하려면 MLB 사무국으로부터 승인받은 번호로 크리덴셜 신청 사이트에 들어가 취재하고 싶은 날짜를 클릭해서 취재 신청을 해야 한다. 취재 신청은 경기 시작 24시간 전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이후에는 신청 자체가 안 되거나 구단 홍보팀에서 승인을 안 해준다.

그런데 취재 신청이 잘못됐는지, 세인트루이스 홈구장 부시스타디움에 도착해 크리덴셜을 받으려 했더니 창구 직원이 기자의 이름이 명단에 없다면서 데일리 크리덴셜조차 발급해줄 수 없다는 게 아닌가. 나중에 알아보니 취재 신청이 아예 안 돼 있었다.

난감했다. 기자보다 먼저 경기장에 들어간 다른 매체 후배 기자가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오승환에게 이런 상황을 전한 모양이다. 오승환은 통역을 통해 “멀리서 오셨으니 최대한 도움을 드리라”고 구단에 부탁했고, 통역 구기환 씨는 세인트루이스 홍보팀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한 후 데일리 크리덴셜을 발급받게끔 도와줬다. 살짝 감동했다.

이렇듯 우여곡절 끝에 경기장에 들어가 팀 훈련 때 첫 대면한 오승환은 “힘들게 오셨는데, 그래도 (야구장에) 들어오셔서 다행이네요”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다른 이들이 전한 ‘오승환이 달라졌어요’가 떠올랐다.

에피소드 하나 더. 세인트루이스에서 홈경기를 마친 오승환은 샌디에이고 원정을 떠났다. 기자도 원정길에 동행했다. 오승환은 샌디에이고 페코파크에서 기자와 정식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인터뷰 약속 시각은 오후 12시 50분.

경기장으로 출근할 준비를 하는데 통역 구기환 씨로부터 문자가 왔다. 페코파크의 미디어 게이트 오픈 시간이 오후 3시라 12시 50분에는 기자가 경기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걸 어쩌지…’ 하고 있는데, 구기환 씨가 다시 문자를 보내 샌디에이고 홍보팀을 통해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잠시 후 반가운 문자가 도착했다. ‘12시 40분 스타디움 정문 옆에 있는 프런트 로비에서 기다리면 샌디에이고 홍보팀 직원이 우리가 있는 곳까지 에스코트해줄 것’이라고 했다. 오승환의 배려 덕분에 인터뷰를 무난히 진행할 수 있었다.

개인적 에피소드를 길게 서술한 이유는 ‘오승환이 달라졌다’는 것을 생생하게 전하고 싶어서다.



# 행복

오승환은 메이저리그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행복해했다. 야구만 잘하면 만사 오케이인 메이저리그 환경이 그를 웃게 만들었고, 여유를 안겨줬으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게 한 듯하다.

“미국 음식과 문화가 잘 맞는 것 같다. 여기 와서 한식을 거의 찾지 않았다. 미국 음식이 아주 좋다. 술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경기 후 통역과 함께 맥주 한잔 하는 것 외엔 제대로 술 마셔본 적이 없다. 일본에선 일본식으로, 미국에선 미국식으로 사는 게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프링캠프 때는 선수들과 자주 어울렸다. 선수들이 초대하는 식사 자리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그들과 빨리 친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않고 찾아오기만 기다리면 아무도 내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내가 먼저 찾아가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면서 선수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생활은 편하다. 모든 선수와 친해질 수 있었으니까.”


# 세인트루이스

오후 7시 경기가 예정돼 있으면 오승환은 1시 이전에 야구장에 도착한다. 웨이트트레이닝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12시 이전에도 출근한다. 집과 야구장만 오가는 따분한 일상의 반복이다. 웨이트트레이닝 덕분인지 야구선수치곤 드물게 군살 없는 몸매를 자랑한다.

“옆에서 보면 따분해 보이겠지만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을 만큼 정신이 없다. 야구장과 집만 오가는 일과 덕분에 마음이 편하다. 집중도 잘된다. 세인트루이스에선 딱히 할 일도 없다. 한국 사람도 많지 않고, 한국 음식점 찾기도 어렵다. 야구만 하고 지내기에 최적화한 도시다(웃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뉴욕 양키스(27회 우승) 다음으로 많은 월드시리즈 우승 횟수(11회)를 자랑한다. 최근에는 2004년, 2011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강정호가 속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같은 지구(내셔널리그 중부지구)에 속해 해마다 지구 우승을 놓고 두 팀이 치열한 다툼을 벌인다.

현재 세인트루이스를 이끄는 리더는 마이크 매시니 감독. 세인트루이스 포수 출신으로 LA 에인절스 마이크 소시아 감독과 더불어 몇 안 되는 포수 출신 감독이다. 매시니 감독은 오승환을 영입한 후 한국어 공부에 열성을 보였다. 감독실 책상 옆에다 ‘Today-오늘-oh neul, Yesterday-어제-uh jae, Tomorrow-내일-nae il’ 같은 메모를 적어놓고선 시간 날 때마다 암기한다. 감독의 이런 행동은 선수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선수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적극적인 제스처여서다.

세인트루이스 클럽하우스에 있다 보면 선수들이 한국 기자를 발견할 때마다 “안녕” “안녕하세요”라며 인사하는 걸 자주 목격한다. 자신들이 아는 한국어를 뽐내고자 한국어를 구사하며 깜짝쇼를 펼치는 게 보기 좋았다. 오승환은 이런 친절하고 따뜻한 팀 문화 속에서 이방인이 아닌 팀 메이트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 몰리나

오승환이 세인트루이스 입단 소식을 알렸을 때 메이저리그 팬들은 오승환과 포수 야디어 몰리나(34)의 호흡이 어떻게 나타날지 호기심을 드러냈다. 야디어 몰리나는 지난해까지 8년 연속 내셔널리그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메이저리그 최고의 포수다.

5월 8일(한국시각) 부시스타디움에서 열린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홈경기 때 일이다. 7회 1사 3루에서 구원 등판한 오승환은 ⅔이닝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다. 당시 오승환이 2사 1, 2루에 몰렸을 때 몰리나가 타임을 요청하고 마운드로 가서 오승환과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누더니 등을 두드리고 내려갔다. 경기 후 기자들이 그때 상황에 대해 묻자 오승환은 “몰리나가 한국말로 ‘낮게 낮게’라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낮게’란 단어는 오승환이 스프링캠프 기간 몰리나에게 알려준 한국말인데, 몰리나가 그 말을 잊지 않고, 마운드에서 사용한 것이다.

이렇듯 몰리나는 메이저리그 ‘루키’인 오승환이 마운드에서 경기에만 집중하도록 최대한 배려한다. 오승환은 첫해에 경험이 풍부한 최고의 포수를 만난 게 메이저리그 적응에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한다.

“많은 기자가 몰리나와의 사인 교환에 대해 궁금증을 드러낸다. 누가 리드하느냐는 질문이 많다. 당연히 몰리나의 리드를 따라간다. 그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포수이고, 베테랑이고, 나보다 상대팀 타자에 대한 분석이 뛰어나다. 내가 그의 리드를 안 따라갈 이유가 없다. 이따금 그 공을 던지면 안 되겠다고 생각되는 구종과 코스의 사인이 나오면 내 의지대로 밀고 간다. 요컨대 대부분 몰리나의 리드에 맡긴다.”



# 체인지업

4월 21일 시카고 컵스와의 홈경기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오승환은 4-1로 앞선 8회초에 등판했다. 7회초 컵스 공격이 끝난 직후 비가 쏟아져 경기가 중단되면서 양 팀은 3시간 20여 분을 기다린 뒤 경기를 재개했다. 첫 연투인 데다 오랜 시간을 대기한 끝에 마운드에 오른 탓인지 오승환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메이저리그 첫 실점을 경험한다.

그 경기 전까지만 해도 오승환은 7경기에서 7과 ⅔이닝을 치르는 동안 단 1개의 안타만 허용했고, 삼진은 13개나 기록했다. 이날은 좌타자 앤서니 리조에게 체인지업을 4개 연속 던지며 풀카운트 승부를 펼친 후 우익수 앞 안타를 내주는 바람에 3루 주자가 홈을 밟았다. ‘돌직구’로 불리는 오승환이 좌타자를 상대로 체인지업 4개를 연속으로 던졌다는 게 눈에 띄었다. 오승환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체인지업 4개는 몰리나의 요구였다고 밝혔다.

“다른 팀도 아닌 라이벌 팀인 컵스 전이다 보니 몰리나가 타자들에 대해 더 많이 분석했을 것이고, 더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몰리나의 리드를 믿고 공을 던졌다. 물론 체인지업만 4개 연속 던진 게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서 그렇지, 결과가 좋았다면 그 또한 반전이었을 것이다. 몰리나와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이 좋다. 내가 포수 복(福)이 있나 보다.”



# 로젠탈

오승환이 세인트루이스에서 마무리가 아닌 중간계투로 활약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팀의 마무리투수 트레버 로젠탈(26)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줄곧 마무리를 맡았던 오승환으로선 이런 상황이 어색하겠지만 금세 적응했다.

“프로 데뷔 이후 초반을 제외하곤 대부분 마무리가 내 보직이었다. 그래서 ‘파이널 보스’란 별명도 얻은 터라 마무리 투수에 대해 미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세인트루이스와 계약할 때 로젠탈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내가 마무리로 나설 수 없는 상황도 충분히 인지했다. 동료로 만난 로젠탈은 야구 실력뿐 아니라 ‘멘털’도 훌륭하더라. 나이 어린 친구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았겠나 싶었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나한테 적극적으로 다가와줘서 친하게 지낸다.”

로젠탈과 관련한 오승환의 얘기 중 인상적인 것은 시속 100마일(160km)의 강속구 투수이자 2년 연속 40세이브를 기록한 로젠탈이 오승환에게 야구 상담을 청했다는 것이다.

“로젠탈이 나보다 야구 경험이 적다보니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로젠탈의 고민 중 한 가지가 이닝당 투구 수가 많다는 점이다. 투구 수를 줄이려 노력하는데 쉽지 않다더라. 고민을 듣고 ‘너는 빠른 볼 하나로도 상대를 제압할 투수이므로 투구 수를 줄이려면 초구, 2구는 쉽게 가라’고 말해줬다. 너무 코너 위주로 던지려다 보면 제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니 강속구 위주의 피칭으로 파울을 유도하면 투구 수 조절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들려줬다. 내가 그 선수에게 조언할 처지는 아니지만, 서로 야구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내 생각을 밝힌 것이고 로젠탈도 그 부분을 받아들였다.”



# 스트라이크 존

한국과 일본에서 ‘끝판왕’의 위용을 제대로 과시한 오승환. 투수다 보니 리그에 속한 심판들의 스트라이크 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오승환은 한·미·일 스트라이크 존의 차이에 대해 정답을 내놓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정답이 없다고 하는 건 심판 성향에 따라 스트라이크 존이 달라서다. 나라별로 스트라이크 존의 기준은 있다. 단, 심판에 따라 낮은 볼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높은 볼을 스트라이크로 선언하는 이도 있다. 그걸 한·미·일 야구 스타일로 비교하기가 어렵다. 한국은 어느 정도 스트라이크 존 기준이 비슷한 반면 메이저리그는 심판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오승환은 1회 혹은 2회를 마친 후 다른 투수들과 함께 더그아웃에서 불펜으로 이동한다. 외야에 마련된 불펜에서 대기하는 것이다. 5회 이후부터는 열심히 몸을 풀기 시작한다. 몸을 풀면서 경기도 살펴봐야 한다. 타자의 성향을 분석하고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을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 심판의 특징을 파악하고 투구해야 유리하다.”

한국과 일본 야구를 경험했고, 이제 미국 야구를 경험 중인 오승환은  나라별 타자들의 스타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메이저리그는 1번부터 9번까지 누구나 홈런 칠 파워를 갖고 있다”는 말로 스타일의 차이를 설명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기본적인 파워가 있기 때문에 어느 타순도 쉽게 상대하기가 어렵다. 일본은 3, 4, 5번을 치는 선수들은 장타를 노리는 반면 나머지 타순 선수들은 방망이에 맞히는 능력에 집중한다. KBO 리그의 최근 경기들을 보니 한국 타자들의 파워가 크게 향상됐더라. 미국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다. 한국 프로야구를 떠난 지 3년이 되는데 그새 선수들의 파워가 더 강해졌다.”



# 슬라이더

메이저리그에서 안정된 피칭을 이어가자 메이저리그 선배인 서재응, 김선우 해설위원은 오승환이 결정구로 종종 던지는 슬라이더에 대해 궁금증을 나타냈다. 한국과 일본에서 던질 때보다 슬라이더의 각이 좀 더 커지고 구속이 빨라졌다는 것이다. 오승환에게 실제 그런지 물었더니 ‘그렇다’고 답했다.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사용할 때는 안타나 홈런을 맞지 않기 위해서다. 선배님들이 짚어내신 것처럼 한국, 일본에서 던지던 슬라이더와는 다르게 회전을 좀 더 많이 주는 편이다. 이전보다 힘을 줘 던지다 보니 각이 좀 더 커지고 빨라졌다는 얘길 듣는다.”

오승환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일부 야구인은 구종(球種)을 추가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 많은 사람이 ‘빠른 볼과 슬라이더만으론 버티기 힘들다. 구종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잘 던질 수 있는 볼을 정확하고 강력하게 뿌리는 게 우선’이라고 대답했다. 1이닝 정도를 책임지는 상황에서 레퍼토리에 변화를 주는 것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정교함을 덧입히려 노력했다. 몸쪽 속구 사인이 나면 좀 더 정교한 제구력으로 파고들고, 슬라이더 사인이 나면 좀 더 예리한 각도로 던지려 노력한다.



# 필승조   # 추격조  

세인트루이스 팬이라면 오승환의 등판 상황을 정확히 예측할 것이다. 매시니 감독은 대부분 팀이 이기고 있을 때 오승환을 마운드에 세운다. 팀이 연패 등으로 위기에 빠지거나 동점 등 접전일 때도 오승환은 불펜에서 몸을 풀기 시작한다. 최근 ESPN은 세인트루이스 관련 기사를 내보내며 다음과 같은 설명을 곁들였다.

‘세인트루이스의 긍정적인 점은 그들이 원하던 대로 불펜이 강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오승환은 사실상 완벽에 가깝다. 최근 7⅔이닝을 던지는 동안 13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오승환은 ‘필승조’와 ‘추격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어느 투수든 지는 경기보다는 간발의 차이로 이기거나 동점 상황에서 나가는 게 자극도 되고 훨씬 힘을 낼 수 있다. 그럼에도 필승조, 추격조를 구분하고 싶진 않다. 감독 지시가 있다면 어떤 상황이라도 올라가 내 임무를 완수하면 되는 것이다. 한동안 나의 연투 문제로 시끄러웠는데, 그 또한 구단에서 체력 관리를 해주고 있기에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시즌 초라 그런지 등판 횟수가 잦다고 해서 체력적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 기념구  

오승환의 메이저리그 데뷔 첫 등판은 4월 4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홈구장인 PNC파크에서 펼쳐진 원정 개막전이었다. 팀이 0-3으로 뒤진 7회말 마운드에 오른 오승환은 1이닝 동안 안타는 내주지 않았지만, 2볼넷(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투구 수는 27개, 최고구속은 93마일(149km)이었다. 팀은 오승환이 처음으로 삼진을 잡은 공을 따로 챙겼고, 기념구인 만큼 팀 트레이너가 특별한 포장에 담아 오승환에게 선물했다.

팀 피지컬 트레이너는 오승환의 통역 구기환 씨의 도움으로 한글을 배웠고, 열심히 연습한 끝에 오승환이 삼진을 잡은 공에다 한글로 멋진 글자와 기록을 새겨줬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최초의 한국인 투수’라고 적힌 공에는 오승환이 데뷔한 날짜와 장소, 그날 기록한 숫자들을 정성 들여 표시해 넣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로고도 함께! 오승환은 팀에서 기념구에 글씨를 써준 건 처음이라고 했다.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 팀은 선수에게 감동을 주는 법을 아는 듯하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데뷔 첫해인데 마치 오래전부터 이 팀에 있던 것처럼 모든 게 편하고 익숙하다. 무엇보다 이기는 법을 알고, 이기려고 최선을 다하는 팀에서 뛴다는 게 행복하다.”

오승환을 인터뷰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단어가 ‘행복’이다. 한국에서 그를 여러 차례 인터뷰했지만 그때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서 오승환은 야구를 통해 인생을 배우면서 삶의 여유를 되찾았다.

“여기 와서 한 경기, 공 한 개에 혼을 담아 최선을 다하는 게 목표라는 말을 자주 한다. 모든 게 새롭고, 모든 게 처음인 상황에서는 열심히 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팬들에게 빚진 것을 야구로 갚아나갈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좋은 공을 던지는 게 내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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