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9개 골프장을 설계한 송호 코스 디자이너.
코스 디자이너와의 라운드는 ‘현자(賢者)’의 안내를 받는 느낌을 준다. 눈에 보이는 것에 의존해 ‘단순’하게 홀을 공략하지 않게 된다. 홀별 설계 의도와 좋은 공략 포인트를 알려준 송호 디자이너 덕에 그날 라운드는 스코어도 좋았다. 그리고 또 하나. 왜 10년 전인 2003년 남촌CC 개장 라운드 때 ‘산 너머 남촌(南村)이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골프장 이름과 분위기가 너무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는지도 알게 됐다. 송호 디자이너는 한국인의 감성을 자극할 따뜻한 마음씨의 소유자였다.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송호 디자이너는 골프의 에티켓과 매너를 중시한다.
유명 화가에게 화풍(畵風)이 있듯이 골프 설계가에게도 저마다의 색깔과 특징이 있다. 송호 디자이너가 설계한 국내 여러 골프장에서 라운드하며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은 코스가 예쁘고, 전략적으로 플레이해야 하며, 라운드할 때 마음이 푸근하다는 것이다. 코스 매니지먼트 면에선 ‘황금곰’ 잭 니클라우스의 디자인과 비슷하다. 마치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신나게 데이트를 한 뒤 뿌듯한 마음을 안고 귀가하는 청년의 느낌이랄까.
좋은 골프장이란 아름다워야 하고, 재미가 있어야 하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 그게 송호 디자이너의 설계 철학이다. 그가 으뜸으로 치는 골프장은 안양 컨트리클럽이다. 일반 골퍼가 생각하는 명문 코스의 조건은 관리가 잘돼 있어야 한다, 직원 서비스도 좋아야 한다, 난이도가 너무 높지 않아야 한다 등이다.
그러나 진정한 명문 코스는 ‘골프는 스포츠’라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안양 컨트리클럽의 그린 사이드 벙커는 그린의 어느 한쪽에만 위치해 있다(단 18번 홀만 예외다). 그건 배려의 정신이다. 잘 치는 사람은 벙커를 넘겨 치고 못 치는 사람은 벙커를 피해가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골프장은 그린 사이드 벙커를 양쪽에 배치해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이란 불편함을 준다. ‘올리거나 아니면 빠지거나’다.
명문 코스에 대한 송호 디자이너의 정의는 명쾌하다. 핸디캡에 관계없이 모두 재미있고 즐겁게 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송호 디자이너는 “양갓집 규수가 시집가서 시댁을 잘 이끌려면 가족 간 융합을 잘 이뤄야 하듯이 골프코스 역시 다양한 핸디캡을 가진 골퍼들을 잘 보듬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갓집 출신이라고, 예쁘다고, 공부 잘했다고 까탈스러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에서 스포츠로
송호 디자이너는 지난해 겨울 뉴질랜드 퀸스타운의 애로운 타운 골프클럽을 방문한 후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벙커가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 그는 “국내 골프장 500개 중 300개 이상 가봤고 전 세계의 유명 골프장 500개 이상을 가봤는데 벙커가 없는 골프장은 그때 처음 봤다. 큰 쇼크를 받았다”고 말했다. 벙커로 코스 난이도를 주던 자신의 설계 스타일에 대한 반성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재미를 주는 골프장을 만들까를 고민한다. 현재 설계 중인 중국 주하이의 골프장은 9홀에 벙커가 20개가 안된다. 벙커가 아닌 자연스러운 언듈레이션으로 코스 난이도를 맞추겠다는 의도다.
송호 디자이너와 교유하면서 느낀 것은 그가 법 없이도 살 바른 사람이란 점이다. 송호 디자이너는 “골프는 에티켓과 룰, 매너의 게임”이라며 “골프를 대하는 자세를 보면 그 사람의 품격과 인성, 스포츠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한국에서 골프는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다. 빨리 스포츠로 돌아와야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대한민국 골퍼들이 자신이 설계한 골프장에서 삶의 활력을 충전하고 인간 본연의 가치를 가다듬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제 역할을 다하길 송호 디자이너는 바란다. 산 너머 남촌(南村)에서 노니는 그런 푸근함 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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