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한국을 찾을 양팀 선수 24명을 돈을 주고 데려온다면 어피어런스 머니(출전료)가 2000만 달러(약 200억 원)를 웃돌 것이다. 하지만 프레지던츠컵엔 초청료가 없다. 대신 양팀 주장과 부주장, 출전 선수가 지정하는 자선단체에 그 선수의 이름으로 일정 금액을 기부하게 된다. 프레지던츠컵엔 상금도 없고 경기복에 후원사 로고를 새겨 넣을 수도 없다. 그런데도 선수들은 출전을 영광으로 여긴다. 대륙을 대표하는 최고의 골퍼라는 명예가 따르기 때문이다. 프레지던츠컵 유치를 이끈 인물은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다. 류 회장은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그리고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한국 골프의 발전을 위해 프레지던츠컵을 유치했다고 했다. 프레지던츠컵은 지난 10차례의 대회를 통해 자선기금 3200만 달러를 모금했으며 이를 15개 국가 460개 자선단체에 전달했다.
류 회장과 몇 차례 라운드할 기회가 있었다. 1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에 머물 정도로 출장이 잦은 류 회장은 건강 관리를 위해 시간만 허락되면 골프를 친다. 그래선지 18홀 내내 카트를 타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18홀을 돌면 8~9km 정도 걷게 된다. 바쁜 스케줄 탓에 따로 시간을 내 운동하기 어려운 류 회장으로선 라운드가 골프도 즐기고 건강도 챙기는 ‘일석이조’의 운동이다.
류 회장은 골프 실력보다는 인품으로 더욱 평가받는다. 명문가인 풍산 류씨 후손답게 아랫사람에게 하대하는 법이 없다. 대화를 나누다보면 ‘예’와 ‘덕’을 소중히 여기는 가풍이 느껴진다. 류 회장은 또한 골프의 정신인 매너와 에티켓에도 철저하다. 플레이를 할 때 항상 동반자를 배려하며 미스샷이 나오면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류 회장의 골프관(觀)은 미국의 경제 전문지인 포춘에서 실시하는 설문조사와도 통한다. 포춘지는 매년 말에 미국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다. 질문 내용 중 하나는 ‘직원들에게 골프를 장려하십니까?’다. 90% 이상의 압도적인 CEO들이 ‘그렇다’고 답한다. 미국의 CEO들이 직원들에게 골프를 권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직원들의 책임감 고취와 단합을 위해서다. 신사의 운동인 골프는 스스로 심판이 돼 룰을 적용하는 유일한 스포츠다. 룰을 철저히 지키는 직원에게 부정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그다음은 비즈니스를 위해서다. 미국의 CEO들은 중요한 계약을 앞두고 파트너를 골프장으로 초대한다. 함께 골프를 치면서 5~6시간 동안 상대방을 탐색한다. 골프 룰은 잘 지키는가, 어떤 골프용어를 사용하느냐가 체크 포인트다. 옳지 못한 인성을 가진 이들은 골프를 하면서도 밑천이 쉽게 드러난다. 미국 정계와 재계에 긴밀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류 회장이 골프의 이런 기능에 주목했을 것은 당연하다.
류 회장은 지난 연말 남산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시상식에 참석해 프레지던츠컵 유치와 관련된 발언을 했다. 당시 류 회장은 “사업가로서 한평생을 살면서 사무실보다는 골프장에서 더 많은 계약이 이뤄지는 것을 경험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KPGA 프로 여러분도 프레지던츠컵에 출전할 수 있는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기 바란다”는 덕담을 했다. 좋은 인품의 지도자는 좋은 결과를 만든다. 2015년 프레지던츠컵이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고 나눔의 철학을 확산시키는 동시에 한국 골프의 발전을 이끄는 견인차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