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호

잊지 못할 맛 세계의 술 9선

  • 입력2004-11-02 15: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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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지 못할 맛 세계의 술 9선

    히말라야 산자락, 하늘 아래 첫동네 니얄람의 주막에서 티베트 사람들이 조로 빚은 술인 창을 마신다.

    세계의 지붕 티베트에서는 짧은 여름 한철 내한성 보리 라이와 함께 조생종 조를 심어 8월이 저물 즈음 거둬들인다.

    풍년이 들면 조를 남겨 술을 빚는다. 새까만 조를 쪄서 누룩과 버무린 후 자루에 담아 난로 옆에 두면 새콤달콤한 냄새를 풍기며 발효된다. 이렇게 발효한 조를 그릇에 담아 뜨뜻한 물을 부으면 티베트 전통술인 창이 된다.

    빨대를 그릇에 꽂아 빨아 마시는데, 이 술은 서너번씩 우려내어 마실 수 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처음에 우려낸 창은 너무 독해 술 맛도 모른 채 마시고 두번째로 우려낸 창이 가장 맛있다고들 한다.

    ▲ 쿠바의 다이키리

    잊지 못할 맛 세계의 술 9선

    헤밍웨이의 단골술집 라플로리디타의 다이키리

    1950년대 헤밍웨이와 쿠바의 아바나는 전성시대를 공유한다. 헤밍웨이가 단골술집 라플로리디타에 앉아 낚시 허풍을 떨면 흑인 바텐더 콘스탄테는 언제나 귀를 기울여 장단을 맞췄다.



    콘스탄테는 헤밍웨이의 입맛에 맞춰 새로운 칵테일을 개발했다. 빙설에 1온스의 럼, 사탕수수 생즙, 그리고 오렌지를 넣은 다이키리는 이렇게 태어났다. 헤밍웨이도 콘스탄테도 저세상으로 가고 덩달아 다이키리를 즐기던 체 게바라도 갔지만, 아직도 아바나의 라플로리디타에서 가장 인기있는 칵테일은 다이키리다.

    ▲ 페루 인디오들의 옥수수 막걸리, 치차

    잊지 못할 맛 세계의 술 9선

    안데스 산맥 속의 시골주막에서 파는 술은 단 하나, 옥수수 막걸리 치차뿐이다.

    페루에서 주막에 들러 치차를 마셔보면 남미 인디오들이 우리와 한핏줄인 몽골리안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시골의 흙집 주막 바닥 땅속에 치차 술독이 목만 내놓고 묻혀 있는 모습 하며 희누르스름한 색깔이나 텁텁한 치차 맛이 우리 막걸리를 빼쏘았다.

    먼길을 가던 인디오 부부가 주막에 들러 치차 한잔씩 마시며 쉬었다 간다. 치차는 취하려고 마시는 것이라기보다 허기를 채우려는 데 무게를 두는 것도 우리 막걸리의 역할과 흡사하다.

    ▲ 라오스의 환각주, 라오토

    잊지 못할 맛 세계의 술 9선

    라오스 남부 나사신 마을의 익수아족 남자들이 라오토를 마시며 환각의 무아경으로 빠져든다.

    라오스 남부, 블로방 고원의 정글 속에서 사는 소수종족 익수아의 남자들은 팔자가 늘어졌다. 여자들은 밭에 나가 땀흘리며 일하고 있는데 남정네들은 대낮부터 술타령이다.

    그런데 이 술은 보통 술이 아니다. 찹쌀을 쪄서 누룩과 버무린 다음 여기에 담배잎, 고추, 가지나무 뿌리, 생강, 그리고 열대지방의 천연환각제인 비틀넛을 단지에 넣고 발효시킨 술이다.

    라오토라 불리는 이 술맛은 자극적이다. 캄이라 부르는 길다란 갈대를 술독에 박아놓고 술독 주위에 남자들이 빙둘러 앉아 빨아 마시면, 알코올에 취하고 비틀넛에 취해 금방 몽롱한 환각의 세계로 빠져든다.

    잊지 못할 맛 세계의 술 9선

    사이프러스 포트는 지금도 옛날 방식으로 빚는다.

    지중해에 떠 있는 작은 섬 사이프러스(키프로스)는 지금도 그리스계와 터키계가 남북으로 갈라져 우리나라와 함께 세계 유이(有二)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성찬을 끝낸 뒤 맨 마지막으로 입속의 기름기를 없애고 향을 남겨두기 위해 프랑스 사람들은 코냑을 마시고 영국 사람들은 포트(Port)를 마시는데, 비너스의 고향인 이 사이프러스 섬은 포트의 명산지다.

    적포도주를 증류하여 당도를 높인 포트는 높은 알코올 도수에다 강렬한 포도향과 진한 단맛이 뒤엉켜 묘한 향미를 낸다.

    ▲ 북아일랜드가 자랑하는 위스키, 부시밀

    잊지 못할 맛 세계의 술 9선

    아일랜드 사람들은 스코틀랜드 지역에도 부시밀 마니아가 많다고 자랑한다.

    위스키의 발상지는 스코틀랜드가 아니라 아일랜드다. 그리고 아이리시 위스키 부시밀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위스키 양조장이다.

    이곳 지하수는 땅속의 피트(니탄)를 거치면서 훈제향 비슷한 피트향을 가득 안고 나온다. 스카치 위스키는 두 번 증류하는 데 반해 부시밀은 세 번 증류해서 훨씬 부드러우면서도 짙은 피트향을 담고 있다.

    ▲ 세네갈 맥주, 캐슬

    서부아프리카의 세네갈은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나라다. 비는 적지만 깊은 모래 속에서 끌어올리는 지하수는 물맛 좋기로 유명하다.

    이 나라의 보리는 작황은 풍성하지 않지만 맥아는 최양질이다. 좋은 물과 좋은 맥아가 빚어낸 이 나라 맥주 캐슬은 맥주 본연의 쌉쌀한 맛을 기막히게 담아낸다. 바닷속에 널려 있지만 이 나라 사람들의 입맛이 외면하는, 그래서 값이 싼 전복회를 안주로 해 마시는 시원한 캐슬은 말 그대로 쿨(Cool)!이다.

    ▲ 카자흐스탄의 보드카, 팔러먼트

    러시아 과학원 어느 회원의 수필에 이런 글이 있다.

    “러시아가 두번째로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이고, 첫째는 보드카다.”

    잊지 못할 맛 세계의 술 9선

    카자흐스탄의 보드카 팔러먼트는 톈산산맥의 눈 녹은 물로 빚었다

    라이보리를 발효시켜 증류로 도수를 높인 후 마지막 공정으로 무색, 무취, 무미의 보드카 특질을 살리는 것은 자작나무 숯으로 몇 차례 걸러내는 작업을 거쳐서다.

    보드카의 최대 소비국은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이고 최고급 보드카 생산국도 스웨덴, 핀란드, 카자흐스탄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러시아로 수출되는 카자흐스탄의 팔러먼트엔 지글지글 구운 양고기꼬치 안주가 제격이다.

    ▲ 말리의 도곤비어

    잊지 못할 맛 세계의 술 9선

    사하라사막 도곤족의 술 도곤비어는 우리의 조막걸리와 맛이 흡사하다.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언저리 도곤족의 삶은 고달프기 짝이 없다. 모래폭풍 하마탄, 50℃까지 치솟는 폭염, 척박한 모래땅에 끝없이 이어지는 한발….

    그나마 7∼8월, 살짝 뿌리는 비가 이들이 일년간 먹을 양식인 조를 키운다. 조로 죽을 쑤고 빵도 굽고 남은 조로 도곤비어를 빚는다.

    펄펄 끓는 한낮이 지나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의 저녁 나절, 컬컬한 도곤비어는 고달픈 삶의 시름을 날려버린다. 우리의 조막걸리와 맛이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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