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특별기고

한국 조폭은 정치인이 키웠다

베테랑 ‘조폭검사’ 직격 발언

  • 글: 조승식 대전지검 천안지청장

한국 조폭은 정치인이 키웠다

2/10
당시 이러한 조직폭력배의 발호는 정치권과 관련이 있다. 1987년 대선을 앞두고 여당후보를 이면에서 지원하던 모 정부기관의 일부 인사가 이들을 우익단체화해 선거에서 그들의 도움을 받고자 이들 단체의 결성 초기부터 관여했던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조직폭력배들이 전국적 연합체를 결성하기에 앞서 그 기관의 고위간부급 인사가 거물급 조직폭력배들과 수차 회합을 갖고 우리나라에도 건달들이 일본의 야쿠자 같은 우익단체를 결성해야 한다고 조언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위에서 언급한 몇몇 단체의 결성식 행사장에 그 간부가 그 기관의 지역책임자를 통해 격려성 금일봉을 보낸 사실 등이 확인된 바 있다.

‘범죄와의 전쟁’ 당시 필자가 호텔 파친코 개입 혐의 등으로 조사했던 조직폭력배들의 말에 따르면 호텔 파친코 임대나 운영을 둘러싸고 조직폭력배들간에 분쟁이 생기면 모 기관에서 구체적으로 개입해 지분을 조정하는 등 ‘교통정리’를 해줬다. 그들은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그 기관이 실제로 그런 권한을 가진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어느 정치인은 자신과 형님동생 하며 지내는 유수한 기업의 모 회장이 1980년대 후반 서울시내에 특급관광호텔을 신축한다고 하자 마침 호텔 파친코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소문을 듣고 그런 것 하나만 가지면 평생 정치 하는 데 돈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싶어 임대를 부탁했다.

그런데 그 회장은 관광호텔이 비록 자신의 건물이긴 해도 파친코는 모 기관에서 관여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실토하더라는 것이다. 그 정치인은 나에게 문제의 그 기관이 실제로 그런 조정권한을 갖고 있냐고 물어왔다.



이런 점에 비춰 그 기관에서 마치 최고위층으로부터 모종의 권한을 부여받은 것처럼 행동하고 그런 역할로 조직폭력세계를 조정·통제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나는 법률전문가로서 정부조직원리상 그 기관에 그런 권한이 부여됐을 리가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는 군사정권시대로 그 기관이 법에 없는 권한도 행사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혹시 최고위층에서 그런 권한을 부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강력부 탄생과 ‘범죄와의 전쟁’

그후 ‘범죄와의 전쟁’ 와중에서 그 기관의 간부로 있던 동창을 만나 자초지종을 말하면서 내막을 알아보았다. 그는 자신이 몸담은 기관에 그런 권한은 없다면서 그쪽이 이른바 대선(大選)팀인데 대선을 핑계로 그런 월권을 행사한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정치에 나선 일부 실세가 정치적 도움을 받기 위해 조직폭력배나 그 비호세력을 정략 차원에서 접촉한 사실도 있다. 이처럼 조직폭력배에 친화적인 일부 고위 공직자들의 처신이 그후 이들이 발호하게 된 여건을 제공한 것으로 생각한다.

검찰은 조직폭력배들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때마다 단발적으로 대처해오다가 조직폭력배 발호가 사회문제가 되자 전담부서를 창설했다. 1989년 초 당시 횡행하던 인신매매사범, 마약사범, 퇴폐사범 등과 함께 조직폭력사범을 국민생활침해사범으로 규정, 이에 대처한다는 명목으로 형사부 주도의 민생침해사범합동수사부 또는 특수부 검사들이 주축이 된 민생특수부 등의 임시수사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다 한계를 느끼고 1990년 5월 전국 주요 6대 도시의 지방검찰청에 강력부를 신설해 조직폭력을 전담수사토록 했다.

검찰 강력부는 이처럼 한국판 마피아 탄생 일보 직전의 상황에서 출범했다. 조직폭력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등에 업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조직폭력배 검거에 나섰다.

전국 주요 도시의 기존 폭력조직을 범죄단체혐의를 적용, 사법처리해 와해시키고 폭력조직의 뒷전에서 조직을 비호하거나 조직의 힘을 이용해 각종 사업에서 부당하게 이익을 챙겨온 비호세력까지 대거 소탕하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마침 정부에서도 조직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1990년 10월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해 조직폭력과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당시에는 강력부가 설치된 검찰청뿐 아니라 전국 모든 청의 강력 전담 검사가 나서서 조직폭력 수사에 전력을 다했다. 5공 초기의 소위 삼청교육은 옥석을 가리지 않고 선량한 시민까지 모함이나 헛된 소문에 의해 마구잡이로 붙잡아 적법한 재판절차도 없이 군부대 등에 수용, 지옥 같은 고통을 안겨줘 우리 사회에 큰 상처를 남겼다.

2/10
글: 조승식 대전지검 천안지청장
목록 닫기

한국 조폭은 정치인이 키웠다

댓글 창 닫기

2019/09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