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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몰락, 이란이 가장 크게 웃는다

IS 권불십년과 ‘포스트 IS 시대’의 중동

  • 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IS 몰락, 이란이 가장 크게 웃는다

  • ● 알 카에다와 탈레반이 결합한 돌연변이 생계형 테러국가
    ● 알 카에다는 톱다운, IS는 보텀업
    ● ‘시아파 초승달’ 뜨자 ‘피의 숙청’ 나선 사우디
IS 몰락, 이란이 가장 크게 웃는다
이슬람 테러단체의 역사는 유구하다. 그 원조로 11세기말 오늘날 이란 북부지역을 장악했던 시아파 계열 신비주의 종파 ‘하시샤신’이 꼽힌다. 당시 아랍권은 중앙아시아에서 출원한 투르크족 중심의 셀주크투르크 왕조(수니파) 지배하에 있었다. 하시샤신은 막강 군사력을 자랑하던 셀주크투르크 지배층에 대한 무자비한 암살과 테러로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자신들의 독립성을 유지했다. 이들이 보낸 테러리스트는 백주대낮에도 암살을 저질렀고 죽음과 고문도 두려워하지 않아 ‘대마초(하시시)에 취한 사람들’ 같다는 의미로 하시샤신으로 불렸다. 

실제 하시샤신이 보낸 암살자는 신분을 위장하고 셀주크투르크 왕조 최고의 재상으로 꼽히던 니잠 알 무크 같은 고관을 암살하거나 술탄의 침상 몇 발치 앞에 단도를 박아두는 위협을 통해 자신들 요구를 관철했다. 공포와 신비가 더해진 이들의 전설적 이야기는 14세기 십자군을 통해 유럽에 전해졌고 영어로 암살자를 뜻하는 ‘어새신(assassin)’의 어원이 됐다. 

하시샤신에 비견되는 21세기 테러단체가 ‘이슬람국가(IS)’를 참칭한 다에시(IS에 대한 경멸의 의미를 담은 용어로 ‘짓밟는 자들’이란 뜻을 함축한다)다. 다에시는 수니파이기 때문에 시아파 테러단체인 하시샤신과 비교되는 것을 질색할지 모른다. 하지만 물불 안 가리고 가미카제식 테러를 저지른다는 점에서 다에시야말로 하시샤신의 계승자라 할만하다. 

그 다에시가 소멸을 앞두고 있다. 다에시는 고작 수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시리아와 이라크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한때 5만4700㎢ 영토에 최다 1000만에 이르는 인구를 장악해 세계를 경악게 했다. 점령지에서 고대 정복국가들이나 자행할 법한 살육과 강간, 노예화, 문화재 파괴를 저질렀을 뿐 아니라 불특정 민간인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폭탄테러와 총기테러를 사주하거나 수출해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런 다에시가 올해 7월 유전지대 에 위치한 이라크 2대 도시 모술을 잃은 데 이어 10월에는 수도로 삼았던 시리아의 락까까지 상실했다. 그리고 11월 현재 시리아 동부의 마지막 거점인 아부카말에서 단말마의 항전을 벌이고 있다. 

다에시가 처음 국가를 참칭한 2013년 4월을 기점으로 잡으면 4년 7개월 만에 존폐의 위기에 몰린 셈이다. 또 칼리프국가(caliphate)를 선포한 2014년 6월 이후를 기점으로 삼으면 3년5개월 만에 지구상 최악의 테러국가가 종말을 고하게 된 셈이다. 그들의 ‘권불십년(權不十年)’을 돌아보고 유사국가 행세를 하던 다에시가 사라진 이후 중동 정치 미래를 짚어보자. 


‘탈레반의 탈을 쓴 알 카에다’

다에시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려면 알 카에다와 탈레반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에시는 원래 국제네트워크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일부였지만 여기에 순수 이슬람국가를 꿈꾼 탈레반의 반군 모델을 접목해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테러국가’를 수립했다. 한때 아프가니스탄에 정부를 수립했던 탈레반의 선례를 따르면서 이를 기반으로 알 카에다 식 테러 네트워크 확산을 노린 것이다. 

알 카에다(아랍어로 ‘기지’라는 뜻)는 19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맞서 지하드(성전)를 펼치는 무자헤딘(무슬림 전사)을 지원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의 부호 오사마 빈 라덴이 무기와 자금을 공급하는 지원재단으로 1988년 설립됐다. 그러다 1989년 무장단체로 전환했고 1993년 1차 이라크전 이후 반미단체로 돌아섰다. 2001년 미국 본토를 강타한 9·11테러로 세계적 악명을 떨쳤지만 2002년 은신 중이던 아프간에 미군이 침공한 이후 조직이 와해됐고, 2011년 5월 창립자인 빈 라덴이 54세의 나이로 미군에 사살되면서 이슬람 과격 세력에 대한 지도력을 상실했다. 

탈레반(파슈툰어로 ‘학생들’이란 뜻)은 1994년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 주(州)에서 결성된 무장 이슬람 정치단체다. 1995년 수도 카불을 장악한 뒤 1996~2001년 이슬람원리주의 정권을 세웠다. 여성에게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 착용을 의무화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미얀 불교유적을 파괴하는 야만성으로 지탄을 받았다. 9·11테러 한 달 뒤 미군과 영국군의 침공으로 정권을 상실한 뒤 파키스탄 접경지대를 중심으로 반군활동을 펼치고 있다. 초대 지도자이자 탈레반 정부 수반이던 무하마드 오마르는 미군의 추적을 피해 숨어 다니다 2013년 4월 결핵으로 숨졌다. 당시 나이 53세였다. 

이 둘의 ‘하이브리드’라 할 다에시는 1999년 2월 요르단 출신 아부 무사르 알 자르카위가 아프간에서 오사마 빈 라덴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세운 ‘유일신과 성전 조직(JTJ)’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무자헤딘 양성 캠프를 운영하던 이 조직은 2003년 이라크전이 발발하자 이라크로 옮겨와 미군에 대한 테러를 저지른다. 특히 2004년 이슬람 테러 역사에 남을 만행을 저지르는데 민간인을 참수하면서 이를 동영상으로 제작해 배포한 것이다. 이 ‘최초의 미디어 테러’의 희생양이 미국인 기술자 닉 버그와 한국인 선교사 김선일이었다. 


‘이슬람 일국혁명론’

[동아DB ]

[동아DB ]

JTJ는 2004년 10월 알 카에다에 충성을 맹세하고 ‘알 카에다 이라크 지부(AQI)’로 불리게 된다. 2006년 6월 알 자르카위가 미군 폭격으로 숨진 뒤 존재감을 잃어가던 이 조직이 급부상한 것은 내전과 군사력 공백이 초래한 카오스(혼돈)가 시리아와 이라크에 몰아닥친 2011년부터다. 3월 시리아에서 내전이 발생하자 시리아 정부군에 대항하는 반군 세력에 가담하더니 12월 말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자 시리아 동부와 이라크 북서부 일대를 무대로 큰 세력을 형성한다. 

여기서 자신을 얻은 다에시는 2013년 4월 단체 명칭을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로 바꾼다.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로부터 독립해 독립국가를 세우겠다는 선포였다. 당시 알 카에다의 2대 지도자 아이만 알 자와히리는 길길이 날뛰었지만 다에시는 개의치 않고 자신들 노선을 강행했다. 그런 면에서 알 카에다의 노선이 영구혁명을 주장한 트로츠키주의라면 다에시의 노선은 일국혁명론을 주장한 스탈린주의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에시는 2014년 시리아 동부 락까 주의 주도 락까를 탈취하고 이라크 제2의 도시이자 유전지대에 위치한 모술까지 장악한다. 이에 고무된 이들은 급기야 칼리프국가를 선포하고 나서면서 자신들의 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46)를 칼리프로 추대한다. 

칼리프는 632년 최후의 예언자(라술) 무함마드가 죽고 난 뒤 그 권위를 승계해 이슬람공동체 ‘움마’를 다스린 최고지도자를 뜻하는데 그 초대 칼리프의 이름이 아부 바크르다. 시아파가 4대 칼리프인 알리를 유일한 정통 칼리프로 여긴다면 수니파는 아부 바크르 이래 모든 칼리프를 정통으로 간주한다. 알 바그다디의 이름에는 그렇게 시아파에 맞서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칼리프라는 거창한 칭호가 붙긴 했지만 사실 알 바그다디가 보여준 카리스마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가 다에시 지도부의 ‘얼굴마담’에 불과하며 다에시는 실상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 실업자 신세가 된 전직 이라크 군 장성과 관료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세운 조직 취급(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교수)을 받는다. 특별한 이념이나 전략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자신들이 잘하는 것을 하며 먹고살기 위해 유사국가를 세웠다고 보는 것이다. “알카에다의 무자비한 테러리즘과 후세인 시절 이라크군의 조직력이 결합됐다”고 다에시를 분석한 2014년의 월스트리트저널 기사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14년 7월 5일 인터넷에 공개된 다에시의 최고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뉴시스]

지난 2014년 7월 5일 인터넷에 공개된 다에시의 최고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뉴시스]

공포와 야만 먹고 자란 불가사리

알 바그다디는 이슬람 율법학자로 2003년 이라크전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붙잡혀 이라크 내 미군 포로수용소 캠프 부카에 수감됐다가 2007년 풀려났다. 인터넷을 통한 홍보전략의 귀재여서 다에시의 괴벨스로 불리며 서열 2위로 평가받던 수석대변인(공보장관에 해당) 아부 무함마드 알 아드나니(2016년 8월 사망)와 이라크 지역 군사령관 아부 무슬림 알 투르크마니(2015년 8월 사망), 시리아 지역 군사령관 아부 알리 알 안바리 모두 미군 포로수용소 출신이다. 

이들은 칼리프국가 수립을 선포한 뒤 샤리아(이슬람 율법 담당), 슈라(내각·입법 담당), 군사, 안보 등 4개 위원회를 두고 석유개발 장관을 포함한 전시내각을 운영하며 지역 세금과 원유 밀무역을 토대로 1년에 10억~20억 달러의 예산을 주물렀다. 다에시는 이런 자금원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자원한 무슬림을 대거 무자헤딘으로 기용했다. 

다에시의 전체 병력은 최다 20만까지 추산되는데 이 중 외국 출신 무자헤딘의 숫자는 2015년 미 중앙정보국(CIA) 추산 3만 명으로 조사됐다. 이중 프랑스 독일 영국 출신 무슬림의 숫자가 4000명에 육박한다는 조사도 발표됐다. 이들 서방 출신 무자헤딘에게는 숙식은 물론 이라크·시리아 출신 무자헤딘에 비해 3배나 많은 월급이 지급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다에시가 이처럼 많은 해외 동조자를 거느릴 수 있었던 이유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세계 도처에 소외된 무슬림들 마음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2014년 7월부터는 매달 온라인 홍보지 ‘다비크’를 발행했다(올해 8월부터 발행 중단). 이때 홍보 전략은 다에시에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게 가능하다는 식의 선정성 극대화였다. 수천 년 된 문화유산을 폭파하고, 사람의 멱을 따는 장면을 생중계하고, 철창에 가둔 포로를 불태워 죽이고, 동성애자를 빌딩에서 떨어뜨려 죽이고, 이교도 여성을 성노예로 사고팔고, 열 살도 안 된 어린이에게 총살형을 집행하게 하고…. 

서구에서 출발한 휴머니즘(인문주의)을 통해 금기가 된 것들의 봉인을 풀다시피 한 이런 홍보 전략은 ‘야만의 관리(The Management of Savagery)’라는 교본에서 출발한다. 이집트 출신의 알 카에다 이론가 아부 바크르 나지(56)가 집필한 이 책은 군사력 대결로 서방국가를 이길 수 없으므로 그들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민간인을 겨냥해 공포와 경악을 극대화할 것을 주문한다.
 
똑같은 이론에서 출발하지만 이를 실현하는 알 카에다와 다에시의 방식은 대조적이다. 알 카에다가 위에서 아래로 비밀지령에 따라 실행이 이뤄지는 톱다운 방식이라면 다에시는 아래에서 알아서 먼저 실행하고 사후에 수뇌부에 보고하는 보텀업 방식이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사회에 불만이 많은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뭐든 닥치는 대로 저지르고 난 뒤 소셜미디어 채팅 창을 통해 ‘IS에 충성을 맹세한다’고 하면 IS 지도부에서 2~3일 뒤 이를 승인하는 방식”이라고 이를 설명했다. 


다에시 패퇴는 곧 이란의 승리

IS 몰락, 이란이 가장 크게 웃는다
다에시는 특히 위기 국면마다 이런 공포와 야만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행태를 보여 왔다. 2014년 국가 수립을 선포한 뒤 전선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굴복하지 않았던 시아파 주민이나 쿠르드족에 대해 잔혹한 참수와 테러를 자행했다. 이후 시리아와 이라크 2개 전선이 교착상태에 이르자 ‘서방 인질 참수’로 전선을 확대했고 2015년부터는 프랑스, 벨기에, 터키에서 대규모 테러를 배후 조종했다. 

하지만 이는 국제사회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를 명분 삼아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과 러시아의 개입까지 초래했다. 결국 지난해부터 시리아와 이라크 두 개의 전선에서 패퇴를 거듭한 끝에 유사국가로서 다에시는 종언을 맞게 됐다. 

과연 다에시의 이후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인남식 외교연구원 교수는 다에시 자체는 소멸될 것으로 예측했다. 서정민 교수는 다에시에게 충성 맹세한 테러단체들이 있는 리비아, 이집트, 예멘, 나이지리아, 아프간, 필리핀으로 거점을 옮길 가능성에 좀 더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변형된 형태의 제2, 제3의 다에시가 출현할 것으로 봤다. 

그럼 국가 형태의 다에시가 사라진 이후의 중동, ‘포스트 다에시’ 시대 중동은 안정과 평화를 되찾을까. 전문가들은 모두 ‘No’라고 답했다. 오히려 다에시 문제로 인해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시아파와 수니파의 대결이 전면에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아랍권에서 전통적으로 시아파는 소수, 수니파는 다수였다. 하지만 다에시 척결을 기치로 시아파가 하나로 뭉치면서 ‘시아파 초승달’ 세력과 사우디를 수장으로 한 수니파 세력 간의 패권다툼이 노골화할 것이란 관측이다. 

시아파 초승달이란 시아파의 맹주 이란, 시아파가 인구의 다수인 이라크, 시아파가 권력을 잡은 시리아, 시아파 헤즈볼라가 최대 정파인 레바논을 지도상에서 하나로 엮을 때 초승달 모양이 된다는 데서 나왔다.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가 2004년 “이라크전의 사실상 승자는 이란”이라 경고하면서 쓴 표현인데 수니파 테러단체인 다에시가 제거되면서 이 경고가 현실화하고 있다. 수니파로 사우디가 고향인 사드 알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11월 4일 사우디에서 사임을 전격 발표한 것이나 사우디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대대적인 내부 개혁을 주도하며 이에 반발하는 왕실 세력에 대한 숙청에 나선 것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한다. 

인남식 교수는 “이란과 사우디가 직접 무력 충돌할 가능성은 작지만 레바논과 예멘처럼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나라에서 ‘만성적 대리전’을 펼칠 가능성은 크다”고 봤다. 장지향 중동센터장은 “대세는 이란으로 기울고 있다. 반(反)IS를 기치 삼아 터키가 이란 편으로 돌아섰고 러시아와 중국도 이란을 지지하고 있다. 사우디는 친(親)사우디 성향인 트럼프의 미국에 기대 이란의 발흥을 막으려 하지만 힘겨워 보인다”고 진단했다.


입력 2017-11-19 09:00:02

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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