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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배창호가 떠나려 한 그 바다가 보고 싶다

남애항과 ‘고래사냥’

  • 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배창호가 떠나려 한 그 바다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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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래사냥’이 만들어진 1984년, 대학가에선 광주민중항쟁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었다. 녹화사업이니 학원안정법이니 해서 시위가 그치지 않던 혹독한 군사독재 시절. 이 영화엔 일탈과 방황이라는 화두를 통해 우회적으로 시대를 비판하고 풍자하려는 배창호의 의지가 담겼다.
배창호가 떠나려 한 그 바다가 보고 싶다
세상은 참 우연의 연속이다. 이 연재를 위해 남애항에 갔다 온 것은 이미 지난달이다. 배창호 감독이 ‘고래사냥’을 찍은 곳이고,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 기간에 가면 호젓한 느낌이 좋았던 기억이 남은 곳이다. 그런데 그곳, 남애항을 다녀온 직후 배창호 감독에게 사고가 났다. 6월 1일 아침 6시 즈음이었고, 강남의 무슨 역인가 아무튼 지하철로에서였다. 영화계는 충격에 빠졌다.

지난 몇 년 사이 우리는 많은 이를 잃었다. ‘겨울 나그네’의 곽지균 감독과 드라마 ‘모래시계’의 김종학 감독, 그리고 ‘301, 302’의 박철수 감독. 곽 감독과 김 감독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박 감독은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많은 사람은 이들의 죽음을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쪽으로 생각한다. 크게는 이 사회가, 좁게는 영화계나 쇼 비즈니스계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배창호 감독에게 사고가 났다는 소식은 그래서, 영화계를 패닉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도무지 원고가 한 줄도 나아가지 못했다. 병원으로 그를 찾아 가서 만나고 온 다음에는 더더욱 그랬다. 배 감독은 상태가 좋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그의 영화에 대해서 쓰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결국 배창호를 대중의 품으로 다시 돌려보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러려면 그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배창호를 잊힌 감독으로 방치해선 안 될 일이다. 그는 여전히 뛰어난 ‘작가형 감독’이며 앞으로 훨씬 오래 영화를 해야 할 인물이다.

배창호가 떠나려 한 그 바다가 보고 싶다

군사독재 시절 청춘들의 일탈과 방황을 그린 영화 ‘고래사냥’

초원의 빛, 꽃의 영광

배창호가 떠나려 한 그 바다가 보고 싶다

배창호 영화의 특징은 ‘예술적 순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와 나는 감독과 제작자로 만났다. 영화평론가로서의 삶 말고도 나는 종종 저예산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로 활동했는데, 2009년 뜨겁던 한여름 복판에 그와 나는 ‘여행’이라는 148분짜리 영화를 만들었다. 수작(秀作)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극장 배급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일부 영화제나 기획전에서 소개됐을 뿐 나중에 TV를 통해서도 대대적으로 방영되지 못했다. 어쩌면 그의 유작이 됐을지도 모를 영화 ‘여행’은 아직도 그냥 묻힌 작품 취급을 받고 있다.

배창호 감독은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 ‘초원의 빛’을 유별나게 좋아한다. 이 시는 영화 ‘여행’에서도 어김없이 사용됐는데, 그 시구를 떠올리면 이번 사고와 연결돼 마음속 깊은 곳을 떨리게 한다. 왜 이 사람이 이 시를 좋아했고 유창하게 외우고 다녔는지, 그 속내를 짐작하게 만든다.

한때는 그리도 찬란한 빛이었건만 / 이제는 속절없이 사라진 /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 오히려 강한 힘으로 살아남으리 / 존재의 영원함을 / 티 없는 가슴으로 믿으리 / 삶의 고통을 사색으로 어루만지고 / 죽음마저 꿰뚫는 / 명철한 믿음이라는 세월의 선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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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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