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호

명사에세이

삶으로 그려내는 이주청소년의 꿈

  • 김수영 서울온드림교육센터 센터장

    입력2019-02-12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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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온드림교육센터 중도입국 청소년들.

    서울온드림교육센터 중도입국 청소년들.

    2019년 1월 1일 새해 아침부터 아이들한테 카카오톡 문자메시지가 온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新年快(중국어)’ ‘Chu′c m‵u’ng na∪m m‵o’i(베트남어)’ ‘’نیا سال مبارک(파키스탄어)‘ ‘Танд Шинэ оны мэнд хYргэе(몽골어)’…. 한글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바르지 않은 새해 문자 덕분에 휴대전화가 하루 종일 울려댄다.

    한국에 살고자 이주해 온 청소년에게 선생님이라고 일컬어지며 그들의 한국 사회 적응을 돕는 나는 사회복지사다. ‘선생님’이라는 무게감, ‘사회복지사’라는 책임감에 눌려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 나는 답한다. “녀석들과 함께 어울리며, 꿈을 이야기하기에 매일이 즐거운 행복한 사람”이라고.

    업무를 끝낸 늦은 밤, 이른 새벽, 휴일에도 아이들과 소통하는 나는 중도입국 청소년을 지원하는 기관에서 일한다. 중도입국 청소년은 다문화 청소년, 이주 청소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외국에서 온 녀석들과 ‘서울온드림교육센터’라는 둥지에서 함께 꿈과 희망을 키워간 지 3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그 기간 중도입국 청소년의 지지자이자 버팀목이 되고자 노력한 우리 센터의 선생님들과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려고 고군분투한 녀석들의 힘으로 하나둘 도전을 넘어 희망이라는 그림을 멋지게 그려나가고 있다.

    난데없이 여권을 촬영한 사진이 휴대전화로 전송됐다. 개인정보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내게로 날아온 에트지아즈의 여권 사진이다. 업무를 중단하고 지체 없이 ‘에트’에게 전화했다. “여권 나왔어요? 이제부터 한국 사람으로 외국에 갈 수 있는 거예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 이제 진짜 한국 사람 됐어요.” 수화기 너머로 전달되는 음성이지만 흥분한 에트의 표정과 몸짓을 느낄 수 있었다.



    파키스탄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한국에 정착한 아빠를 따라 이주한 에트와 지크라 남매는 2016년 한국인이 됐다. 한국어와 검정고시, 귀화대비반을 나와 함께 준비했는데 마침내 한국인으로서 모국에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남매가 귀화시험에 최종 합격했을 때와 남매의 주민등록증과 여권이 나온 때는 나에게도 잊지 못할 감격의 순간이다.


    한국인이 된 파키스탄 남매

    “선생님, 한국 여권으로 나 파키스탄에 다녀올 거예요.” “누가 봐도 파키스탄 사람인데 한국 여권으로 파키스탄에 가요. 신기해요.” 에트와 지크라는 신이 나 있었다. “신분증은 선생님인 나한테도 함부로 보여주면 안 된다”고 충고했는데도 “선생님은 괜찮아요. 나에게 도움을 주신 분이니 괜찮아요”라며 무한 믿음을 보인다. 나 또한 녀석들을 통해 큰 기쁨을 느낀다.

    에크와 지크라는 한국인이 된 터라 별도의 비자가 없으면 파키스탄에서 90일 넘게 체류할 수 없다. 2018년 봄 파키스탄에 잠시 다녀온 아이들은 나에게 그곳에서 겪은 일의 이야기보따리를 푸느라 여념이 없었다. 5년 만에 만난 친척들, 친구들을 보고 와서인지 아이들은 많이 흥분해 있었다.

    에크와 지크라는 이제 20대다. 녀석들이 당당한 성인이 된 게 뿌듯하다. 20대 청년이 됐으나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적응할 게 많다. 경찰관도 되고 싶고, 의사도 되고 싶고, 기술교육원에서 공부도 하고 싶고, 운전면허도 따고 싶고, 한국에서 나고 자란 친구도 사귀고 싶어 한다. 새로운 터전에서 살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으나 이제는 안정을 찾았으며 도약을 준비한다. 남매의 성장을 보면서 나 또한 배움을 얻고 있다.


    검정고시로 이룬 대학생의 꿈

    2016년 10월, 우리 센터가 개소한 지 갓 1년이 넘었을 때 일이다.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도 점차 많아지고 이들을 위해 더 많은 프로그램을 준비하자며 2017년을 계획하던 그즈음, 중국에서 온 철훈이가 한국어 초급반 학생으로 들어왔다. 선생님들보다 훌쩍 큰 키에, 한국어를 잘 못하고, 담배를 피우던 사내 녀석. 딱 봐도 말 안 듣게 생긴 그런 녀석이 조철훈이었다.

    지난해 12월 나와 선생님들은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접했다. 철훈이의 대학 합격 소식이 그것이다. 그것도 3군데(서강대, 성균관대, 숭실대)나 합격했다. 철훈이의 도전과 센터 선생님들 모두의 노력으로 대학 입시라는 과제를 함께 수행해낸 것이다.

    한국어 수업을 이수한 지 6개월이 지나지 않은 시점인 2017년 봄의 초입에 철훈이는 검정고시를 치르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한국어가 아직 부족해 어려울 것 같다는 우리의 설명에도 철훈이는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비자를 얻기 위한 공부, 한국어 공부, 검정고시 공부를 동시에 열심히 하겠다며 생떼를 썼다. 오전에 비자, 오후에 한국어와 검정고시, 이렇게 셋 다 준비하고 싶다는 녀석의 성화에 우리는 다 같이 도전해보기로 했다.

    철훈이의 노력은 연이은 합격 소식으로 우리 모두를 감동시켰다. 검정고시를 준비한 지 2개월 만인 4월에 초등졸업 자격을 취득했고 6월에는 한국체류 비자 시험에 최종 합격했으며 8월에는 중등 졸업 자격을 획득했다. 2018년 4월 고등졸업 학력 자격까지 취득하더니 8월에는 토픽(한국어능력시험) 5급까지 내리 합격했다.

    이로써 대학에 입학할 조건은 충족됐다. 과연 철훈이가 대학까지 합격할 수 있을까. 나를 포함한 선생님들에게도 그것은 도전이었다. 자기소개서 작성부터 대학 선택 및 지원까지 모든 과정을 잘 치러 오늘의 결과를 이뤄낼 수 있었다. 현재 철훈이는 대학 등록금을 조금이라도 벌어보겠다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일하느라 늦었다며 1월 1일 늦은 저녁 새해 안부 문자를 보내주는 녀석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하다.

    철훈이는 심리학을 전공해 본인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친구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싶으며 사회복지학을 공부해 자기를 도와준 선생님들처럼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녀석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꽃피는 3월이면 철훈이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삶을 살아내고 꿈꾸게 될 것이다. 지난 3년간의 도전에서처럼 매번 성공하지 못할 수는 있으나 더욱 단단해지며 본인의 삶을 개척해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잘했다, 잘하고 있다”

    이주 청소년들은 이렇듯 새로운 거주지인 대한민국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며 삶으로 꿈을 그려나가려 노력한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이주라는 특수한 경험을 거치면서 더 많은 혼란과 내면의 어려움을 겪었을 아이들의 마음과 생활 태도를 잡아주는 일은 녀석들이 한국에 적응하는 데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도전에 나선 녀석들에게 “잘했다, 잘하고 있다”는 말을 항상 전하지만 뭔가가 부족하다. 사랑받고 있으며 귀중한 존재라는 것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지 날마다 고민한다. 이주 청소년들이 희망 가득한 대한민국에서 밝게 살아가길 소망한다. 중도입국 청소년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지지자로서 녀석들이 삶으로 꿈을 그려내리라 믿는다.


      ※ 서울온드림교육센터는 서울에 하나밖에 없는 중도입국 청소년 지원 기관이다. 서울시와 현대차 정몽구재단의 지원으로 운영된다. 2015년 9월 개소 이후 현재까지 22개국, 705명의 중도입국 청소년이한국어 교육을 비롯해 검정고시, 학교 편입학, 진로 상담, 맞춤형 적응 지원을 받았다.   


    김수영
    ● 1978년 출생
    ●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 박사과정
    ● 서울온드림교육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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