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호

이 사람

“좌파가 문화권력 장악…우파도 선동가 돼야”

‘보수 女전사’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6-01-05 18: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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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파는 戰線이 어디인지도 몰랐다
    • 대한민국 배회하는 ‘마르크스의 유령’들
    • 젊은이에게 기회 주는 이념이 자유주의
    • 좌파가 쳐놓은 거짓의 장막 걷어내야
    “얼굴 보니 잘 싸우게 생기진 않았죠?”
    전희경(40)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이 웃으며 말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때 방송토론으로 뜬 바로 그 사람. ‘보수 여전사’ ‘보수의 새 아이콘’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싸움닭처럼 공격적이면서도 빈틈없이 정연한 논리로 상대를 몰아세웠다.



    # 선동가

    그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 루드비히 폰 미제스(1881~1973)의 사상 궤적을 걷는다. 서울 마포구 신화빌딩 13층 자유경제원 입구에는 하이에크의 글이 액자에 걸려 있다.
    “자유주의 지식인은 반드시 선동가가 돼야 합니다. 자본주의에 대해 적대적인 현 시류를 돌려세워야 하기 때문이죠. 자본주의만이 세계 인구를 다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무너지면 제일 먼저 굶어 죽는 게 제3세계입니다.”
    ▼ 선동가가 돼야 한다?
    “맞습니다. 자유주의는 지적 노력 없이 감성으로만 받아들이기엔 굉장히 어렵습니다. 누구나 의타적이고 싶은 감성이 있고, 정부 같은 거대한 계획체제에 자기를 내맡기고 싶은 욕망 같은 것을 가졌거든요. 자유주의는 감성보다는 이성에 호소해야 하는 면이 크기에 대중의 지지를 받기가 참 어렵습니다. 지식인의 지적 유희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에 자유주의를 심는 선동가가 될 것을 당부한 겁니다.”
    ▼ ‘보수의 새 아이콘’ ‘보수 여전사’라더군요.
    “‘선동’이라는 표현까지 썼는데, 앎을 우리끼리만 이해하고 공유하는 것을 넘어 대중에게 알리자는 거죠. 선전·선동은 좌파가 주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죠. 우파에게는 사회가 정도(正道)대로 걸어간다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러한 믿음이 흔들리는 시대가 왔다고 봅니다. 다수의 목소리가 소수의 목소리에 묻혀요. 다수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진짜가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시대입니다. 좌파의 맹렬한 적극성과 대중을 휘어잡으려는 다각도의 노력 탓에 영화, 문학, 음악, 예술은 물론이고 교과서에 이르기까지 우파가 밀려났습니다. 침묵하는 다수가 우리 편이라는 점에 안도하면서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나 그것이 흔들리는 단계에 이르렀어요. 상황이 이런 터라 강하게 말한 것이 과분하게 주목받은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 우파 운동

    그는 이화여대 사회과학대학을 졸업하고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공부했다. 우파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책실장으로 일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정책팀장도 역임했다.
    ▼ 우파 운동에 나선 계기는.
    “사람이 타고난다고 하잖아요, ‘보수적인 것 같아’라는 성향을 타고났어요. 운동에 뛰어든 것은 노무현 정부 때 느낀 게 많아서예요. 국가보안법 폐지, 종합부동산세 신설, 사립학교법 개정 등에 반대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쌓아올린 공통의 가치와 정당한 권위라는 게 있거든요. 여러 사람이 자기희생을 통해 지키고자 노력한 끝에 쌓아온 것들인데, 노무현과 그의 사람들은 공통의 가치와 정당한 권위마저 일거에 허물어뜨려도 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노력을 통해 뭔가를 이뤄낸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똘똘 뭉쳤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 이렇게 가면 대한민국이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는 굉장히 다른 길로 가겠구나 싶었죠. 생각만 할 게 아니라 목소리를 내야겠다, 그래서 시민운동을 시작한 거죠.”
    ▼ 시민운동에서는 좌파의 목소리가 더 큽니다.  
    “숫자상으로는 대한민국의 장래를 긍정적으로 보면서 번영의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목소리 내는 일에서는 우파 쪽이 소수예요. 좌파 정당이 선명하고 강성인 것과 비교하면 보수 정당은 상대적으로 미흡하죠. 보수에겐 열심히 일하고, 정당하게 세금 잘 내고, 사회에 의탁하지 않고, 자신을 잘 건사하는 게 국민으로서 본령을 다하는 것이라는 마인드가 있어요. 국가에 뭐를 내놓으라고 한다든지, 사회가 뭘 해줘야 한다든지 하는 것은 보수의 가치와 맞지 않거든요.
    공동체주의는 좋은 것이고, 개인주의는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데, 개인이 자유를 신장하면서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는 사회가 이상적입니다.”
    ▼ 10월 15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강사로 참석해 “당당해지라”고 주문해 화제가 됐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여부를 당론으로 채택하는 의원총회 표결 직전이었습니다. 교과서에 문제가 많다는 게 백일하에 드러났는데도, 극단적인 인사로 몰릴까봐, 특정 정권의 하수인처럼 매도당할까봐,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길을 당당하게 못 가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말씀드렸죠. 가만있어도 중간은 가잖아요. 그런 행동을 기회주의라는 극단적 언사로 비난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분들이 가진 두려움에 대해 걱정하지 마시라, 당당해지시라고 한 겁니다.”




    # 보수주의, 자유주의

    그와의 대화는 12월 8일 자유경제원 강당에서 이뤄졌다. 눈앞에는 자유주의 사상가 하이에크와 미제스 등의 초상이, 등 뒤에는 이들의 사상을 현실에서 구현한 정치가 로널드 레이건(1911~2004)과 마거릿 대처(1925~2013) 등의 초상이 걸렸다.
    “사상가와 실천가로 구분해 액자를 나눠 걸었습니다.”
    진보, 보수라는 말을 누구나 사용하지만 한국식 보수를 정의하는 개념은 명확하지 않다. 미국 보수주의 흐름은 ①시장경제와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경제적 보수 ②공산주의 팽창을 우려하는 반공적 보수 ③국가, 교회, 가족 같은 전통적 공동체 가치를 지키려는 전통적 보수 세 갈래다. 미국의 정치 이론가 러셀 커크는 △제한된 정부 △자유 기업 △강한 국방 △전통적 미국 가치를 보수주의의 4대 강령으로 꼽는다(러셀 커크 ‘보수주의 마인드’ 참조). 
    ‘자유주의’라는 말도 혼돈스럽게 사용된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나의 한국현대사’라는 책을 내면서 “쉰다섯 살 자유주의자의 한국사 독법”이라는 꼬리말을 달았다. ‘전희경 자유주의’와 ‘유시민 자유주의’는 다르다. 하이에크와 미제스의 경제적 자유주의는 영어 표현으로는 ‘리버테리어니즘(libertarianism)’이다. 리버럴리즘(liberalism)은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의 구속을 배격하지만 1930년대 대공황을 거치면서 불평등 해소와 복지 증진을 위한 국가의 경제에 대한 개입을 강조했다. 미국 민주당이 ‘리버럴’이다. 요컨대 ‘전희경 자유주의’가 하이에크와 미제스의 ‘리버테리어니즘’이라면 ‘유시민 자유주의’는 ‘리버럴리즘’과 맥이 통한다.
    ▼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경제적 자유주의’가 공격을 받았습니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불균형이 심화됐다, 빈부격차가 벌어졌다면서 사람들이 기회로부터 멀어지고 소수 특권층만을 위한 사회가 됐다고 말합니다. 명백한 오해죠.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그들이 말한 것을 가장 완화한 체제입니다. 절대적 빈곤이 줄었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을 배고픔으로부터 구한 게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입니다.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가 열렸고, 이를 통해 기회의 장(場)이 특권계급에서 대중으로 내려왔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자유주의 탓에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본질은, 대출해주면 안 되는 사람에게 무리하게 대출해 부동산을 소유하게 한 것입니다. 인위적인 경기부양 정책이 빚은 폐해로 봐야 해요.”


    # 마르크스의 유령들

    그는 12월 1일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철홍 장로회신학대 교수와 함께 ‘마르크스의 유령들’이라는 책을 냈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함께 쓴 ‘공산당선언’ 첫 구절이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A spectre is haunting Europe - the spectre of communism)”이다. 유령(revenant)의 원래 뜻이 ‘저승에서 돌아온 자’라는 점에서 볼 때 사회주의가 붕괴했으나 마르크시즘이 되돌아오는 현실을 꼬집은 책 제목이다.  
    “마르크스의 유령을 저는 반(反)대한민국적 사고라고 부릅니다. 검정 역사교과서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경제적 번영을 이룩한 산업화 과정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왜곡해 묘사합니다. 외국 자본, 정경유착 같은 것에 잠식당한 산업화라는 겁니다. 반대로 북한에 대해서는 후합니다. 역사교과서는 대한민국 헌법 가치에 부합해야 해요. 현재의 교과서는 좌편향이면서 불량품입니다.
    반대한민국 세력의 결집이, 그들의 적극성이 이렇듯 심각합니다. ‘역사교과서 하나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묻는 분도 있어요. 그렇기는 합니다. 학교 문을 딱 나서면 만나는 영화, 베스트셀러 저작물의 상황이 어떻습니까. 연예인은 또 어떻고요. 좌파가 오랜 세월 교육 및 문화권력에 천착해 진지를 다져놨습니다. 그들이 똬리를 튼 곳에서 피어나는 반대한민국적 사고방식이 얼마나 심각한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겁니다. 때가 어느 때인데 색깔론이냐, 웬 이념타령이냐는 식으로 여겨선 안 돼요.”
    ▼ 교과서 문제는 하이에크가 강조한 ‘자유경쟁 시장’에서 우파가 패배한 것이라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파가 전선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던 거예요. 정치권력의 향배가 국가의 방향을 정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한 거죠. 그사이 좌파는 인간의 저변을 파고드는 인식을 자기들 것으로 만드는 데 공을 기울여왔습니다. 문화로, 교육으로 뛰어들었어요. 그럼 우파는 뭘 했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겁니다. 뒤늦게 알았을 때는 헤게모니가 저쪽에 완전히 장악된 상태였습니다. 검정제하에서 우파 교과서(교학사 교과서)가 진 게 아니라, 저들이 형성해놓은 시장에 못 끼어든 겁니다.
    공고한 담합이 새로운 상품의 시장 진입을 막았습니다. 왜곡과 음해가 벌어졌죠. 우파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에 위력을 행사하는가 하면, 학교장들과 이사장들에 대한 인신공격, 마녀사냥도 벌어졌습니다. 취재를 빙자해 겁을 주기도 했고요. 교육 외길만 걸어온 분들이 감당하지 못할 상황이 되면서 두 손, 두 발을 다 든 거예요.”


    # 노예의 길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에서 “국가가 개입하려 드는 것이야말로 전체주의 국가의 특징”이라고 썼다. 국가의 개입이 인간을 국가의 노예로 만든다는 것이다. “정부가 특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배타적 권력을 갖게 되면 자유는 심각하게 위협받는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개인에 대한 자의적 강제로 사용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하이에크 신봉자들은 ‘시장 실패’도 국가나 사회의 개입 탓에 벌어지는 것으로 본다.
    ▼ 자유주의자가 국정화를 찬성하는 게 언뜻 이해되지 않는데요.   
    “자유주의의 핵심은 당연히 시장의 힘을 믿는 거죠. 시장은 진입과 퇴출이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소비자의 선택으로 좋은 제품이 살아남아야 하는데, 교과서 소비 시장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좌파에 의해 진입장벽이 세워졌어요.
    소비자의 선택이라는 게 뭡니까. 학생, 학부모의 선택이죠. 역사 교사의 상당수가 전국역사교사모임에 속합니다. 전교조의 핵심 세력이 전국역사교사모임과 전국국어교사모임이죠. 이들의 사상적 투철함이라는 게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학생, 학부모가 시장에서 선택하는 게 아니라 그분들이 선택하죠. 시장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경제학에서 ‘시장 실패’라고 말하는 상황이기에 정부가 개입해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게 경제학의 일반 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 미제스는 “독점시장일지라도 국가 개입보다는 낫다”고까지 주장합니다. 개입주의는 필연적으로 자유를 제한한다는 건데요. 하이에크에 따르면 국정화는 ‘노예로 가는 길’ 아닌가요.
    “이상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현 상황은 달라요. 국가 대 시민의 대립이 아니라 시민 대 시민의 대립이 더 심각합니다. 시민이 다른 시민의 자유로운 선택과 자유로운 사고를 억압하는 지경입니다. SNS에서 다른 사상을 말하는 사람에게 쏟아지는 집중 난타를 보세요. 어느 쪽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합니까. 1970~80년대처럼 독재국가와 민주시민의 대결이 아닙니다.
    하이에크나 미제스의 얘기를 교조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자유주의 가치가 있는 게 아닙니다. 두 사람의 궁극적 지향은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입니다. 획일적이고 편향된 역사교과서로 공부하는 개인은 절대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현재의 교과서는 하이에크와 미제스가 강조한 자유의 가치를 담아내지 못해요. 두 사람이 한국의 교과서를 봤다면 ‘이것은 고칠 수밖에 없다’고 했을 겁니다.”
    하이에크의 사상을 따른다고 해서 그와 생각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자유경제원의 전신인 자유기업원 원장을 지낸 김정호 연세대 특임교수는 11월 1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어떤 책으로 배울 것인지는 배우는 사람이 선택할 문제다. 정부와 정치가 학생에게 무엇을 배울지 강제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썼다.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자유주의 입장에서 본 역사교과서 논쟁’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국정화의 논거로 이용한 시장 실패 개념부터 틀렸다”며 “검정제는 바른 교과서를 만들어 좌파와 경쟁할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국가독점은 그 가능성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고 비판했다. 민 교수는 “단기적 이익을 위해 원칙을 버리면 기다리는 건 자유의 상실”이라고도 썼다(‘문화일보’ 10월 28일자 참조).



    # ‘자유주의 버스’에 올라타기 

    ▼ 보수주의 운동가가 진보주의 운동가에 비해 젊은 세대에게 마케팅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러냐면, 하이에크가 ‘선동가가 돼라’고 한 것도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인데, 보수주의의 가치인 ‘책임을 자신이 진다’는 말은 무섭습니다. ‘국가는 충분한 자유를 보장하면서 최소한의 것을 지켜주는 역할만 한다. 사회의 모든 작동원리는 시장에 의해서 당신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라고 말할 때 ‘아, 좋다’라고 반응할 사람은 몇 명 안 됩니다. 경쟁에 놓이고 선택에 따라 책임을 진다는 게 두려운 일이거든요.”     
    그가 덧붙여 말했다.
    “대표적 자유주의자인 복거일 선생에 따르면, 정치적 자유를 부르짖고 표현의 자유를 외치면 많은 사람이 자유주의의 버스에 올라탄답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달라고 외칠 때는 환호하다가 경제적 자유 얘기를 하면 상당수 사람이 버스에서 내린다는 거예요. 왜? ‘국가가 책임을 져줘야지’ ‘약자도 배려해줘야지’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물론 자유주의가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가 직접 개입하는 것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도 자유주의자들에게 냉혈한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습니다. 좌파의 장막 탓에, 젊은 세대가 자유주의가 가진 철학적 가치에 닿기 전에 외면해버리는 겁니다. 자유주의야말로 젊은 세대에게 가장 많은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아직까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일례로 청년 고용을 막는 것은 기득권을 과보호하는 정부의 룰 때문이죠. 자유주의로 그런 것들을 허물어뜨려야 하는데 젊은 세대는 좌파가 씌워놓은 주홍글씨에 휘둘립니다.”
    ▼ 우파 운동가 그룹은 좌파 운동가 그룹보다 응집력이 떨어지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자유주의, 뉴라이트 등 다양한 그룹이 각개 약진하는 듯해요.  
    “뭉치지 못한다기보다는 우파의 속성이, 작은 차이라도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뭔가를 뒤에서 조정하는 어떤 세력이라든지, 막후가 없습니다. 과거 좌파 운동권은 전선에 나서는 사람들 뒤에 막후가 있었죠.
    당장은 잘 뭉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쁘다고만 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돈으로 우파 운동에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은 돈으로, 재능으로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은 재능으로, 지적·학문적인 것으로 도울 수 있는 사람은 그것으로, 거리에서 운동하실 수 있는 분은 또 그 분들대로 반대한민국 전선과 맞서는 일입니다.”
    ▼ 그거 김일성이 한 얘기인데요.
    “그래요?”
    김일성은 광복 후 평양에 돌아와 개선 연설에서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지식 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힘 있는 사람은 힘으로 부강한 자주독립 국가를 건설하자”고 말했다.
    ▼ 국가 개입이 자유를 억압한 최악의 사례가  북한이죠.
     “사람들이 국가가 시키는 대로 갔죠. 결과는 참혹했고.”


    # 하이에크 vs 케인스

    ▼ 지난 대통령선거 때 복지공약 경쟁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대선의 화두가 경제민주화였습니다. 그 중심에 복지가 있었고요. 어느 정당이든 복지 일변도, 정부 역할 팽창 일변도의 정책을 내놓고 싸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선 후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 기조를 걷어들인 것은 매우 잘한 선택이에요. 좌파가 민주화 이후 끌고 갈 담론이라는 게 복지 정도가 남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대기업 때려서 더 많이 뜯어내 없는 쪽에 나눠주는 부의 재분배 정책을 실시하면 되지 않냐는 식의 사고 수준을 못 벗어난 것 같아요.
    빼앗기는 사람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경제 행위자는 정부보다 훨씬 기민합니다. 다 해외로 나가버리면 국가를 누가 끌고 갑니까. 좌파의 복지 담론에는 철학도, 방법론도 없어 보여요. 새누리당이라는 보수 정당도 지난 대선에서 좌파가 주장해온 복지 담론을 답습했고요.
    복지가 무엇이냐에 대한 답은 단순하다고 봅니다. 보육이니 뭐니 다 무상으로 하겠다,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게 말이 안 되죠. 자유시장에서 자력으로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자력으로 가게 놔두면 됩니다. 자력으로 갈 수 있는 사람까지 끈을 놓게 유도해선 안 돼요.”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했다.
    ▼ 헌법 119조 2항은 어떻게 봅니까.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표현은 헌법의 도처에 있죠. 저는 경제질서를 규정한 119조에서 1항이 원칙이고 2항이 부칙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이에크는 ‘자유헌정론’에서 “소득을 사회화해 편익을 배분하는 가족국가를 만들어내는 수단으로서의 복지국가가 낡은 사회주의를 대체하게 됐다”면서 상대 빈곤 완화는 제대로 된 국가가 할 일이 아니라고 못을 박는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견해는 정반대다. 케인스는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가 사는 경제 사회의 두드러진 결함은 부와 소득의 분배가 자의적이고 불평등하다는 점에 있다. 소비 성향을 증가시킬 수 있도록 소득의 재분배를 도모하는 여러 방안은 자본의 성장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게 될 것이다.” 



    # Ideas vs Ideology

    ▼ 케인스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지 않나요.
    “시장경제, 자유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이 복지를 무조건 배격하거나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복지는 해야죠. 누구에게? 자력으로 일어설 수 없는 빈자(貧者)에 한해서! 얼마나? 그 사람들에게 충분할 만큼!
    보편적 복지를 하다보니 자력으로 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도 복지라는 이름의 혜택이 갑니다. 정작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표피에만 그치는 복지, 발만 담그고 빼는 복지라는 이름의 혜택이 갑니다. 무상급식 같은 걸 보세요. 부자들도 세금 내는데 왜 무상복지에서 빼놓느냐는 언어도단이죠. 이렇듯 트릭 쓰는 것에 끌려다니면 국가의 장래가 정말로 어두워집니다.” 
    조지 W 부시 정부 때 영향력을 확대한 미국의 신보수주의(네오콘)는 국가론에서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에 부딪힌다. 신보수주의는 “현대 민주주의에서 국가의 성장은 불가피할 뿐 아니라 자연스럽다”면서 “민주국가가 복지를 부정할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좌파나 리버럴과 달리 이들에게 복지는 ‘권리’가 아니며 ‘비올 때 우산 같은 것’이다. 네오콘은 ‘자활 의지가 있는 빈자’에 대한 선별적 복지를 강조한다(어윈 스텔저, ‘네오콘 읽기’ 참조).
    전희경 사무총장이 복지를 보는 시각은 신보수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에 걸쳐 있다. 하이에크는 국민연금, 의료보험 같은 것도 민간에서 해결하는 것이 훨씬 좋다고 봤다. 다양한 복지 제도가 난립하면서 이런저런 국가기관이 생겨 자금 운용의 효율성마저 추락한다는 것이다.
    전 사무총장은 “정부가 하는 복지 정책의 문제 중 하나가 전달 비용이다. 전달 기관과 공무원 수만 팽창된다. 복지의 대원칙은 고용이다. 일자리 확대가 복지 정책이다. 고용은 기업만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 사회의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해묵은 이념 논쟁’ ‘이데올로기 타령’으로 여기며 이념 대결에 냉소를 보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념 대결’이라고 하면 부정적 느낌이 든다. ‘보수꼴통’ ‘진보깡통’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Ideology’의 원래 뜻은 ‘허위의식’이다. 이념은 ‘Ideas’다. 국가가 어떤 이념을 채택했느냐에 따라 개인에게 어떤 차이가 벌어졌는지를 한반도가 실증해 보여줬다. 이념 대결에 철 지났다는 딱지를 붙이거나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머리 속에 아이디어가 없다(‘머리가 비었다’)고 고백하는 것일 수도 있다(황성준, ‘보수주의 여행’ 참조).
    처참한 실패로 끝난 마르크스 추종자들의 사회주의를 차치하면 ‘복지국가 모델’과 ‘자유주의 모델’ 중 어떤 게 더 현재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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