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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지진에 수소폭발? 소가 웃을 일

허점투성이 블록버스터 ‘판도라’

  • 이정훈 | 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 편집위원 hoon@donga.com

6.1 지진에 수소폭발? 소가 웃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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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쓰나미 없는데 電源 상실…엉터리 설정
  • ● 냉각수가 새는 일은 없다
  • ● 후쿠시마 격납용기 16cm, 한국은 65~120cm
  • ● 北 핵시설 토대로 진짜 반핵 영화 만들라
6.1 지진에 수소폭발? 소가 웃을 일

규모 6.1의 지진으로 원전이 수소폭발하는 상황을 그린 ‘판도라.’ 있을 수 없는 일을 소재로 반핵을 주장한다.

박정우 감독의 재난 블록버스터 ‘판도라’에 관객이 몰리고 있다. 개봉 사흘 만에 50만 관객을 넘었으니 1000만 명 돌파는 시간문제일 것 같다. 고리 1호기를 상정한 ‘가상 원전(原電)’ 한별 1호기가 지진으로 수소폭발한다는 게 모티프다. ‘쓰나미[津波]’가 빠진 일본 후쿠시마 1발전소가 중심 소재다.

영화를 보다 실소를 금치 못했다. 창작의 자유를 인정하더라도 ‘뻥’과 왜곡이 너무 심해서다. 미약한 근거로 공포를 극대화해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려 했다. 한별 1호기가 당한 지진 규모는 6.1인데, 그로 인해 원전이 수소폭발했다는 설정이 압권이다. ‘가랑비가 내려 한강이 넘쳤다’는 격이다.



가랑비에 한강 홍수?

후쿠시마 1발전소 사고를 낸 동일본 대지진의 진앙 규모는 사상 최대인 9.0이다. 지진의 위력은 규모가 1 커질 때마다 에너지가 32배 늘어난다. 9.0은 6.1보다 2만9491(32×32×32×0.9)배 강한 지진인 셈. ‘판도라’는 6.1을 9.0인 것처럼 묘사했다.

과학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규모 6.1 지진은 일어날 수 있으니 그 정도는 견딜 수 있게 원전을 설계한다. 한국 원전은 6.5 이상 지진이 일어나야 자동으로 멈추도록 설계됐다. 2016년 9월의 경주 지진은 5.8에 불과해 어떤 원전도 자동 정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워낙 많은 국민이 놀랐기에 수동으로 정지시키고 점검해서 이상 없음을 확인한 후 재가동했다.

지진 다발 국가는 6.1의 지진을 가끔 경험한다. 일본과 미국 서부 해안이 대표적인데, 이곳 원전들은 6.1 정도 지진에선 정상 가동한다. 강진만으론 원자로와 격납용기가 깨지지 않는다. 2011년 일본 본토 동해안엔 하마오카(3기), 도카이(1), 후쿠시마 2발전소(4), 후쿠시마 1발전소(6), 오나가와(3), 히가시도리(1)의 6개 사이트에 18기의 원전이 있었지만, 어떤 원전의 원자로와 격납용기도 깨지지 않았다. 제어봉이 자동으로 원자로에 들어가 핵분열만 멈췄을 뿐이다.

영화를 만들기 전에 알았다면 기자는 박정우 감독에게, “9.0의 지진이 있은 후 초대형 쓰나미가 닥쳐오는 상황을 만들라”고 충고했을 것이다. 그래야 원전은 제대로 사고를 맞기 때문이다. 원전을 가동하려면 외부에서 전기를 끌어와 원자로를 돌려야 한다. 비유하자면, 원전은 외부에서 1의 전기를 가져와 100의 전기를 생산하는 곳이다. 외부에서 끌어온 1의 전기는 냉각수를 순환시키는 모터를 돌리는 데 쓰인다.

원자력발전은 원자로를 채운 핵연료에 중성자를 쏴주면서 시작한다. 중성자가 들어가면 핵연료는 분열을 시작해 막대한 열을 낸다. 그때 모터를 돌려 원자로 안으로 물을 넣어주면, 분열에 들어간 핵연료의 높은 열을 받아 그 물이 빠져나온다.

이때 발생한 증기로 터빈을 돌려 발전한다. 이 물이 ‘냉각수’다. 이걸 순환시키는 모터를 돌리는 전기가 외부에서 들여오는 1의 전원이다. 따라서 강진으로 송전탑 등이 쓰러져 외부 전원이 끊어지면 모터를 돌리지 못할 수 있다.

강진이 일어나면 자동으로 제어봉이 원자로에 들어가 핵분열을 멈추게 하지만, 핵연료는 여전히 고온 상태다. 이 때문에 원자로가 자동 정지돼도 계속 냉각수를 주입해 열을 식혀줘야 한다. 그런데 외부 전원이 끊겨 모터를 돌리지 못하면 핵연료 온도는 점점 올라가 마침내 핵연료를 둘러싼 피복재를 녹인다. 피복재는 핵분열 시 나오는 강한 방사능을 견뎌야 하기에 ‘지르코늄’이란 특수 금속으로 만든다.

지르코늄이 녹으면서 수소가 발생한다. 과열된 핵연료는 원자로까지 녹이는데, 그렇게 되면 원자로 안에 갇혔던 수소가 나와 원자로를 둘러싼 거대한 격납용기 안에 축적된다. 이 수소의 농도가 10%가량에 이르면 격렬한 폭발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수소폭발’이다. 격납용기가 단단하면 폭발을 막아내지만 약하면 뚫린다. 후쿠시마 1발전소 격납용기는 약했기에 폭발을 견뎌내지 못했다.



지상 비상발전기+ 트레일러

외부 전원 상실은 수소폭발로 이어질 수 있어 모든 원전엔 디젤로 가동하는 비상발전기를 설치해놓았다. 규모 9.0의 지진은 송전탑을 쓰러뜨려 후쿠시마 1발전소는 외부 전원을 상실했으나 바로 비상발전기를 가동해 자동 정지한 원자로를 계속 냉각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수십 분  뒤 예상치 못한 일에 직면했다. 거대한 쓰나미를 맞은 것이다.

그런데 후쿠시마 1발전소는 비상발전기를 지하에 설치해놓았다. ‘부푼 바다’에서 들이닥친 쓰나미는 후쿠시마 1발전소를 할퀴고 바다로 돌아갔다. 하지만 지하로 들어간 물은 돌아가지 못했다. 비상발전기가 물 속에 갇힌 것. 비상발전기를 돌리려면 그 물을 퍼내야 하는데, 모든 전원을 상실했으니 펌프를 가동할 수 없었다. 소방차 모터로도 불가능했다. 우왕좌왕하며 25시간을 보내자 후쿠시마 1발전소의 1호기가 수소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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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 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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